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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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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현 배나무골에 때아닌 마을 잔치가 열렸다.

새로 온 사또가 자기들을 끔찍이도 괴롭히던 공납의 부담을 덜어준다 하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 호(가정)당 쌀 반 가마니씩을 나눠줬다.

이렇게 백성을 굽어살피며 일 잘하는 사또는 세상천지에 없을 터...

마을 사람들은 이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자 잔치를 연 것이다.

돼지도 한 마리, 닭도 몇 마리 잡아 맛있게 끓인 고깃국이 모두의 밥상에 놓여 있다.

이들은 모두 촌장의 잔치 시작 선언만을 기다렸다.

“우리 사또 나리 같이 훌륭한 분을 현감으로 보내주신 주상 전하 천세!”

마을 사람들은 막걸리가 가득 든 사발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며칠 전에 둘째를 낳은 갑돌이도 빠질세라 모두와 같이 술잔을 들었다.

“주상 전하 천세! 사또 나리 천세!”

“사또 나리 앞으로 10년만 더 계셔 주십시오!”

선교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의 성인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말술이라는 보고답게 모두가 순식간에 막걸리를 비워냈다.

매일 새참 때 먹는 막걸리랑 똑같은 막걸리임에도.

지금 마신 막걸리는 유난히도 달고 시원했다.

“막걸리 맛 죽이네! 여기 한 잔 더!”

“야, 갑돌아! 술 그렇게 급히 먹는 거 아니다. 그러다 죽는다고, 죽어. 좀 천천히 마셔라.”

“철진 아재는 이런 날에도 잔소리를 합니까? 지겹지도 않습니까?”

“아무리 날이 좋아도 그렇지. 술을 그리 급하게 먹으면, 술 한 잔 더 마시려다가 염라대왕 보러 가게 된다고. 그걸 몰라?”

“아재가 이렇게 잔소리를 해대니, 마누라도 닮아서 맨날 바가지를 긁습니다. 말을 좀 이쁘게 좀 하십시오. 저도 이제 철부지가 아닙니다. 자식이 둘인 엄연한 가장이라고요, 가장!”

갑돌이는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철진에게 술을 한 잔 따라줬다.

저 양반은 눈만 뜨면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아 밉기도 하지만 정 또한 깊은 인간이라는 걸 알기에... 그리고 지금은 어쨌든 좋은 자리가 아닌가.

“그래, 그러고 보니 자네는 참 잘되었어.”

“뭐가 말입니까?”

“우리 사또가 이제 막 부임하셨으니 적어도 2년은 이 고을을 다스리다 가실 거 아닌가? 2년 동안 계시면서 우리 살림살이를 얼마나 펴주고 가시겠냐 이 말이지.”

갑돌이도 조선에서 무려 25년을 살아왔다. 그동안 13명이 넘는 사또를 겪어왔고.

사또라는 작자들도 사람인지라 온갖 유형의 사또가 다 있었다.

부임할 때는 빈손으로 왔지만 돌아갈 때는 수레 수십 대에 귀한 특산물을 가득 싣고 돌아가 두고두고 탐관오리라 불리는 미친 작자도 있고.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으려 노력하여 청렴결백하다 칭송받는 사또가 없었던 건 아니고 말이다.

그러나 흉년으로 세금을 줄여주는 거라면 몰라도, 흉년이 든 것도 아닌데 세금을 줄여주는 사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흉년에도 줄이지 않는 게 공납인데, 그 공납을 줄여주는 사또가 있다?

옆 고을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무슨 되먹지 않은 헛소리냐고 욕부터 할 것이다.

사실 갑돌도 철진도 지금 같은 상황이 꿈만 같았다.

자기들 허리를 대차게 휘게 하던 공납이 앞으로는 줄어들 거라니...

“아재보다는 제가 이 좋은 세월을 오래 살다 가니 부럽다 이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니 나보고 빨리 뒈지라는 거야?”

“억울하면 80까지 사십쇼. 그러면 저보다 좋은 세월 더 오래 누리실 거 아닙니까?”

철진이라 불린 남자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눈앞에 고깃국과 밥을 허겁지겁 먹었다.

갑돌의 말에 할 말이 없어져서 대화를 피한 것이다.

“아재는 말빨로 나한테 안 된다니까?”

“시끄럽고 너도 밥이나 얼른 먹어. 저기 보라고. 걸신들린 아재들이 고깃국 다 먹어 치우고 있으니까.”

철진이 가리킨 곳에는 어디서 일주일은 굶다 온 사람처럼 고깃국과 밥을 순삭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뚝배기 한 사발에 가득 담겨있던 고깃국이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고, 밥도 몇 공기씩 비워대고.

김대붕이 봤으면 깜짝 놀라 목덜미를 잡을만한 광경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빨리 먹을 수가 있냐고 말이다.

갑돌은 그 광경을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새로 오신 사또께서 지금처럼만 잘 해주시면 우리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잘 살 수 있을 겁니다. 아재 생각은 어떠십니까?”

“두말하면 잔소리지. 공납만 줄어든다면야 당장 내 자식들 하루에 밥 두 끼 먹이는 거, 세 끼는 못 먹이겠나? 그게 아니면, 남는 쌀을 모아서 밭 한 마지기라도 사는 거지 뭐.”

갑돌이는 상상했다. 자기 자식과 아내가 밥 한 공기라도 더 배불리 먹는 장면을 말이다.

그리고 밭 한 마지기라도 내 앞으로 사서 내 땅을 가지고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자식들 장가보낼 때 즈음에는 밭 한결 딱 가지고 온전히 내 밭만 갈고 살아가는 모습.

생각만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 야, 우냐?”

“안 웁니다, 아재야 말로...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징그러운 말만 합니까? 벌주나 드시죠.”

“벌주는 개뿔...”

마을 사람들 모두는 오늘 진심으로 즐거워하였다.

쌀 반 가마니를 신임 사또가 돌려주어 기뻤고, 앞으로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겨 행복하였다.

“주상 전하 천세! 사또 천세!”

“이 사람아, 양반 나리가 들으면 어쩌려고?”

“알바인가? 주상 전하 천세! 사또 천세!”

진해현에 사는 백성들은 김대붕이 앞으로 펼쳐나갈 정치에 희망을 품었다.

다른 수령들은 손도 못 대던 분야인 세금을 줄여준 것이니, 이후로 자기들 삶이 얼마나 개선될까 하는 기대 때문에.

**

세상에서 제일 좋은 정치가는 착한 정치가가 아니다.

생활 방식이 조금 더럽고 부패했다 해도, 그 나라 국민의 의식주 사정을 개선해 준 사람. 그 사람이 좋은 정치인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고을에서 참 선비다운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여주기보다는, 내가 오기 전과 오고 난 다음의 삶이 달라졌다고 저들 스스로 나를 찬양하게 만드는 사또가 될 거다.

일 제대로 못하면 황희랑 허조 그 두 양반이 날 담가버릴 테니 그게 두려운 것도 있지만...

이왕 하는 거 일 제대로 해서 백성들에게 ‘좋은 사또’로 남게 되면 얼마나 좋은가.

“사또, 사또...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식을 말인가? 지금 본관은 곳곳에서 쏟아지는 송사를 처리하랴, 세금이 어찌 쓰였는지 검토하랴 아주 정신이 없는 상황이네만.”

“저희 고을에 있는 모든 마을에서 사또의 선정에 감사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축제를 벌였다 하옵니다. 제가 이방 생활을 꽤 오래 했지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백성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사또는 처음 봤습니다.”

“본관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네.”

공납을 중간에서 빼돌려 제 배를 채우던 쳐 죽일 놈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게 이 고을에서는 땡중들이었을 뿐이다. 내가 그 사정을 모르면 모를까.

암 덩어리가 목숨을 갉아먹고 있는 걸 알면서도 가만두는 자가 있다면 그게 말이 돼?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라도 암 덩어리 제거부터 해야지. 안 그러면, 백성과 고을을 완전히 썩어버리게 만들 텐데 말이다.

“저도 아전으로 30년 가까이 이 고을에서 일해왔지만, 사또 같은 명판관은 처음 뵈었습니다. 정말 존경합니다, 사또.”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민생을 개선한다고 해도 한 번에 모든 걸 다 해치울 수는 없는 법이다. 전교 꼴찌가 한 달 빡세게 공부한다 해서 수능 1등급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진짜로 1등급을 받고 싶으면 자기 수준을 파악하여 필요하다면 초등학교, 중학교 공부부터 기초를 다지면서 공부해 나가야 하는 것처럼.

아전들이 자기들 봉급이 안 정해져 있다고, 말단 아전까지 매달 쌀 10섬씩 몰래 챙기는 거를 한 번에 다 뒤집어엎을 수는 없다.

사람 치료하려다가 사람 죽이는 꼴이 날 테니 말이다.

그러니 하나씩, 하나씩 하자는 의미에서 내가 이번 공납의 비리 세력을 ‘땡중’ 놈들에 국한 시켜 까발리고 조진 거지.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그런데 사또께서는 기쁘지 않으십니까?”

“당연히 기쁘네. 내가 입신양명하고 나서 처음 제수받은 관직이 현감이라 부담이 컸었지.”

사실 세종, 허조, 황희가 나한테 과도한 관심만 보여주지 않았어도 그렇게까지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을 거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부정부패 저지르는 놈들 참교육하면서 ‘즐기는 자’로 살면 되는 거였으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대과 전시 보기 전날 내가 만난 분이 악덕 교수 세종대왕님...

“그렇지만 이렇게 백성들에게 칭찬과 감사를 듣고 보니, 본관이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보람이 크군.”

권력이라는 게 이래서 짜릿한 거다. 내가 여태까지 생각해 온 정책, 신념을 실전에 적용함으로써 수천, 수만이 넘는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거.

사람이라면 이 쾌감에 중독될 수밖에 없다, 진심으로.

그러니 여기서 멈춰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황희, 허조 그 양반들도 내가 벌인 일을 한양에서 보고 받으면 기립 박수를 칠 테니까.

‘그런데 여기서 왜 그만둬야 하지?

어차피 시작한 거 끝을 보긴 해야지.

조선에서 세종에게 굴려지는 게 싫기는 하지만, 내가 한국인으로 살면서 만약 조선에 빙의하게 되면 해보고 싶었던 걸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기회를 앞에 놓고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하고 싶은 게 있었다면 다 해보는 거지.

“그렇지만 아직 멈추기는 이르네.”

아전이 나에게 불안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래, 이번에 너희들의 부정부패는 내가 따지지 않고 넘어가 줬지.

그리고 세종대왕께서는 부패한 놈들을 누렁소처럼 부려 먹으셨고.

“이제부터 우리 고을에서는 백성들과 상인들이 자유롭게 시장 여는 걸 허용하겠네. 당장 고을 인근에 시장을 열 만한 땅이 있는지부터 찾고, 거기를 어찌 운영할지와 같은 걸 고민해 보고하도록 하게.”

“예, 사또.”

...... 저놈들은 탐관오리다. 이완용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친일파 헌병 오장 정도는 되는 놈들이다.

즉, 적당한 과로를 도입하여 정신 상태를 개조시킬 필요가 있다는 거지.

이놈들이 청렴결백한 충신이 아니라서 내겐 참 다행한 일이다.

“일주일 안에 해오게.”

“아이고, 사또. 일을 그런 식으로 추진하라 하시면 아전들은 다 죽습니다.”

저놈들은 부패했지만, 나는 부패하지 않았다. 이게 뭔 소리냐고?

나는 저놈들에게 ‘그럼 죽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거다.

“...... 어디 보자, 이번 공납 관련해서 아직 전하께 장계가...”

눈치 빠른 김 이방은 눈 깜짝할 새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동헌 바깥으로부터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호방이랑 다른 아전들 싹 다 불러! 일주일 내 고을에 시장을 만들 거다! 못 하겠다는 놈이 있냐? 죽고 싶지 않으면 그냥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