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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암행어사가 마패를 들고 출도하면서 바로 ‘봉고파직’을 때리는 것이 당연하게 나온다.
수사를 개시한다는 의미로 출도를 선언한 시점부터 창고 및 모든 장부와 서류를 압수하는 봉고는 암행어사의 권한이 맞지만...
파직은 과거를 보고 조선의 벼슬아치가 된 관리를 해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암행어사의 권한을 벗어나는 월권행위에 속한다.
즉, 철퇴 맞아 죽기 딱 좋은 짓이다.
따라서 봉고파직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일이 되겠다.
암행어사는 관아에 출도하는 순간 사또를 제외한 모든 자를 말 그대로 족칠 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데.
곤장 때리다 죽이는 게 아니라면, 관찰사 허락 없이 곤장을 수십 대 때리든 재산을 몰수하든 어떻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을 전체를 싹 다 엎어 놔도 된다.
“어사 나리, 저희는 정말 억울합니다.”
“네 녀석들이 억울한 것은 대체 무엇이냐?”
“저희는 그저 사또 나리께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자비를 베풀지 말지는 고을의 세금 장부를 검토한 뒤에 결정할 것이다. 너희가 정말로 전 안성 군수에게 협박당해서 억지로 백성을 착취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충분히 참작해 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이방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모든 게 끝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내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주 잘 알아들은 것이 틀림없다.
그래, 나라고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억지로 한 것이거나 잡범 수준의 경미한 범죄라면 넘어가 줄 생각이다.
공노비나 병졸, 말단 아전들의 경우 앞으로 할 일에 열심히 협조해만 주면 어지간해서는 엄중한 경고를 주고 봐줄 거다.
그런데 육방(지방 부서)의 장인 이방, 호방 같은 놈들은 한국으로 치면 자치단체 국장급인 건데. 이 친구들이 저지른 범죄가 과연 경미한 수준일까?
나는 이방과 같이 묶여있는 다른 육방관속의 수장인 병방, 호방, 예방과 같은 이들을 보며 방긋 웃어줬다.
내 백만 불짜리 미소를 본 녀석들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중에서 안성군 호방은 내가 주는 공포에 정신이 나갔는지, 고려 망령 들린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어사 나리, 먼 길을 오시느라 여독이 풀리지 않으셨을 텐데. 공무를 집행하시기 전 조금 쉬시는 것이 어떠하실지요?”
저놈의 노림수가 정말 뻔히 보인다. 나에게 온갖 산해진미를 대접하며, 독한 술을 잔뜩 마시게 하여 진탕 취하게 만들려는 거겠지.
더불어 예쁜 기생까지 붙여서 밤 시중을 들게 할 것이다.
조선에서는 이게 딱히 흠이 되지 않는 일이니, 이놈들이 접대를 빌미로 나를 협박할 수야 없겠지만. 내가 접대받는 시간 동안, 이 친구들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죽어라 고군분투할 거다.
내가 뭐 사리사욕을 추구하고, 재물 모으는 거에 환장한 인간이라면 적당히 넘어가 줄 수도 있었겠지만...
‘어림도 없지.’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호방을 향해 삿대질했다.
“네놈이 정녕 실성한 것이로구나. 너희들은 무엇 하느냐, 어서 저놈을 형틀에 묶어라!”
호방이 곧장 형틀에 묶였다.
“저놈에게 장 10대를 쳐라! 감히 어사로 온 본관을 매수하려고 한 것이니, 죽는다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살려주십시오, 어사 나리! 소인은 그저 어사 나리 몸이 고단하실까 봐...”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다. 저놈을 형틀에 묶고 쳐라!”
형틀에 묶인 호장은 내가 이곳에 올 때 대동하고 온 이들에 의해 곤장 10대를 맞게 되었다.
“한 대요!”
다부진 외침과 함께 곤장이 내리쳐졌다.
호방의 신음 소리가 관아에 울려 퍼졌다.
“윽!”
“두 대요!”
이렇게 총 10대를 치니 호방은 기절하였다.
“저놈은 감히 어사에게 뇌물을 주어 매수하려 한 것이니, 그 죄가 매우 무겁다. 감찰을 마치고 나서도 몹시 엄하게 벌할 것이다.”
다른 아전들은 호방이 피떡이 될 때까지 맞는 모습을 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동시에 깨달았을 거다.
나 김대붕은 다른 관리들과 다르게 뇌물을 단 한 푼도 안 받는 미친놈이라는 걸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공무원이 뇌물 안 받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조선의 상식에 익숙한 저들에게는 내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처럼 보일 거다.
“어디 보자, 장부에서만 대충 찾은 게... 참 크게도 해 먹었군. 백미 19,432섬 중에 실제로 전하께 진상될 공물을 사는데 들어간 돈이 3,122섬이라. 그러니까 16,310섬을 해 먹었다는 건데.”
이방을 비롯한 아전들이 이번엔 단체 딸꾹질을 시작했다.
“지금 여기서 쓰는 됫박의 크기가 한양의 됫박 크기보다 5푼(5%)더 크다는 걸 감안하고 보니, 17,000섬 가까이 해 먹었다는 거로군. 대단해, 정말 대단해.”
조선은 지방세라는 개념이 없으니, 이 중에서 7,000섬 가까이는 고을을 위해 쓰였을 거다. 그래서 나도 12,000섬 정도 빼돌린 거면 봉급을 자체 조달한 걸로 치고 엄중 경고만 내렸을 거다.
조선이 워낙 관리들에게 급여를 적게 줘서, 솔직히 뇌물 한 푼 안 받고 관직 생활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게다가 아전들은 아예 무급이니...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거기에 방원법에 따르면 모든 공물은 상인들과 직접 거래해야 한다고 명시되었는데 말이야. 네놈들은 이를 어기고 사찰을 통해서 거래하였군. 대단해, 참으로 대단해."
나는 정말 이 녀석들에게 존경심마저 느꼈다.
방원법의 가장 큰 핵심은 밭 1결에 백미 18두를 걷는 것이다. 녀석들은 이것을 지켰다.
놈들 한 짓을 보면 '방원'이라는 이름이 붙은지라, 18두 보다 더 걷으면 죽을 거 같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것인지 그것만은 제대로 지켰다.
만약에 법 이름이 대동법이었다면, 놈들은 법의 무게를 좀 더 가벼이 여기고 어떤 꼼수라도 더 찾아내서 세금을 더 걷으려 안달복달하였겠지.
운반이나 보관 중 쥐와 새가 쪼아먹는 것 때문에 소모되는 분량을 채우기 위한 작서모 2되, 운송 비용, 보관 비용까지 해서 아주 넉넉하게 뜯어먹었을 거다.
그렇지만 방원이라는 이름이 붙었기에 차마 더 걷지는 못했고.
더 해 먹으려면 이전부터 친하게 지냈던 사찰과의 결탁도 끊어지면 안 되니, 땡중들에게도 돈을 퍼줬다.
"이방."
"예, 어사 나리..."
"안성군의 조사를 끝내고 본 어사가 쓴 장계가 한양에 도달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 것 같나?"
"잘 모르겠습니다, 나리."
몸을 벌벌 떠는 걸 보니 이미 잘 아는 것 같은데, 모르는 척을 하다니.
그렇다면 내가 직접 깨닫게 해줘야겠다.
"안성 군수 이석도는 참형을 면하기 힘들 걸세."
류정현과 달리 이석도는 반역자라는 딱지가 붙지는 않을 거다.
왜냐하면 이놈은 나름대로 선을 지켜서 1결당 18두만 걷는다는 규칙을 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사찰과 거래하고, 사적인 이익을 챙겼을 뿐이니...
이방원도 아무리 일벌백계의 목적이라고는 하나, 반역죄를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명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고, 막대한 공금을 횡령한 죄만으로 처벌당할 것이다.
이 경우 양반 관리들은 어지간하면 '사약'을 받아 나름 명예롭게 죽는 걸로 끝이 나게 되지만, 지금은 본보기가 필요한 시점이니 목이 잘리고 한양에 효수될 것이다.
이건 거의 확정 사항이다.
그래서 나는 나보다 품계가 무려 6단계나 높은 군수 이름을 막 부르고 있는 거다. 목이 곧 잘릴 게 확정된 몸이라서 명예를 존중해줄 필요가 없거든.
"자, 그러면 네놈들은 어떻게 될 것 같나?"
"저희도 이대로 가면 참형을 면하기 힘들 거라 이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껄껄 웃었다.
"이방은 이리도 총명한 데 어찌하여 안성 군수와 손을 잡고 저리도 멍청한 짓을 한 것인가?"
"송구합니다, 나리..."
"송구하지 않아도 되네. 본 어사는 그저 네놈들의 죄를 철저히 조사하여 주상 전하께 고하는 장계를 올리면 그만이니까. 그러면 이방을 비롯한 육방 모두는 아마도 의금부 구경을 하게 되겠지.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야."
지방 관아에서도 종종 중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알게 모르게 인두를 쓰거나, 주리를 틀거나, 곤장을 때리는 일을 한다.
원래는 하면 안 되는 거지만 암암리에 쓰면 다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준다.
너무 많이 쓰다가 사람이 죽으면 문제가 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의금부는 지방 관아와 다르다. 거기 끌려간 사람은 고문받다 죽어도 합법이기에, 혐의가 확실한 놈에게는 고문을 숨 쉬듯이 한다.
"선택지를 주지."
손가락 두 개를 들었다.
그러고 하나를 접었다.
"하나는 지금 이대로 죄를 순순히 인정하는 것이네. 그 경우 운이 좋으면 의금부 구경은 안 해도 될 수가 있네. 물론, 안성 군수와 같이 죽는 건 면치 못하겠지만 말이야."
이방원 성격상, 아니지 자비로운 세종대왕님이라도 저놈들을 살려두지는 않을 거다.
그러니 저놈들은 한양으로 가는 순간 사형이 확정된 산 송장이 되는 셈이다.
마지막 손가락을 접었다.
"또 다른 하나는 내가 방전법을 써서 토지를 측량하는 일에 전면적으로 협조하는 것이네. 은결 적발에 힘을 실어준다면, 본 어사가 자네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찌하겠나?"
"...... 저희보고 고을의 모든 양반을 적대할 각오를 하라 이 말씀이십니까?"
이 세상에서 제일 미운 이가 바로 고자질쟁이다.
학교에서도 고자질 잘하는 놈은 거의 무조건 왕따가 되고, 회사에서도 내부 고발자는 업무에서 배제되거나 따돌림당하기가 일쑤다.
하물며,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아전들에게 이런 걸 명령한다?
살고 싶으면 너희가 쌓아놓은 기반을 스스로 부수라고 명령하는 셈이기는 한데 말이다.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나의 말에 이방이 고개를 숙였다.
"살려만 주십시오."
자, 그러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토지 측량', 아니 세무조사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