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3 KiB
류정현 탄핵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었고, 방원법도 곧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여 나는 아주 편한 마음으로 내 고향 양구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진해보다는 여기가 아무래도 촌스럽지? 그래도 물이 맑고 경치가 좋기에 살기에는 좋은 곳이야.”
진해현은 조일 무역의 중심지인 동래현이 근처에 있고, 어업과 농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지역이기에 사는 사람이 많다.
반면, 내 고향 강원도 양구현은 한양과 비교적 가깝고, 물길도 한양까지 이어졌다는 장점을 가졌지만...
아직 조선의 상업이 크게 발달하지 않은 탓에, 개발이 잘 된 그런 곳과는 거리가 멀다.
“소녀는 나리께서 가시는 곳이라면 삼수갑산이라도 좋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나리께서는 이 세상에서 소녀가 만난 이 중 저에게 가장 상냥한 분이시니까요. 이제 소녀는 나리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이 말을 하는 겨울이의 눈에서 ‘대붕이는 이제 겨울이랑 같이 죽는 거야.’라고 말하는 어느 게임 속 미소녀의 그림자가 보인 것 같았지만...
이것은 다 관직에 시달리면서 내가 얻은 스트레스와 피로 때문일 거다.
혼례를 대충 치르고 곧장... 음, 아니다. 아직 이르다.
조선의 선비라는 놈이 왜 이렇게 조급하고 흥분을 잘하는 건지, 모르겠네.
이게 다 내가 22살 청년이라 혈기와 정력이 끓어 넘쳐서 그런 거다.
결코 내가 야한 것, 미녀, 가슴이 큰 미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저기 산 보여? 저게 바로 고방산인데, 고방산 중턱에는 멋진 폭포가 있어. 아주 경치가 좋고 물이 시원한 것으로 유명하지. 그러니까 여름이 되면 서과(수박)를 들고 가서 폭포수에 담갔다가 먹는 거지. 그때 먹을 서과는 어찌 달고 시원할지. 겨울아, 우리 꼭 가자.”
“네.”
겨울이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천천히 집을 향해 가는 중에, 보리타작을 하고 있는 백성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고, 김 서방. 결혼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힘이 다 빠진 거야? 밤에 마누라한테 쥐어짜이다 보니 낮에는 영 힘이 안 들어가나 봐?”
“부러우십니까?”
“아니, 하나도 안 부러운데. 그때 딱 지나봐라, 너도 나처럼 여편네가 ‘오늘 애들 다 재웠어요.’라는 말만 해도 오금이 벌벌 떨릴 거다.”
“아이고, 그건 형님 허리가 힘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닙니까? 제가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형님 허리 힘 약한 건 우리 마을에서 아주 유명합니다. 얼마나 허리에 힘이 없으면, 단오 때 40살 먹은 옆 마을 갑돌 아재한테 씨름에서 진답니까?”
우리는 조선이 초기, 중기, 후기를 통틀어서 성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을 거라 생각하기 십상인데...
사실 그건 양반, 중인, 잘 사는 상인 정도에만 해당돼는 이야기다.
일반 백성들은 결혼한 뒤에 서로 안 맞으면 이혼하는 일이 비교적 흔했다.
이혼했다 하여 떨어질 명예도 없을뿐더러, 과거 제한 같은 게 걸리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성적인 이야기도 굉장히 맵게 했었고 말이다.
이런 이야기에 면역이 없는 겨울이는 얼굴을 새빨간 사과처럼 붉히고서 고개를 확 돌렸다.
그런 겨울이가 몹시 귀여워 보였지만, 지금 내게 더 신경 쓰이는 건... 저기 보이는 이들의 타작하는 모습이었다.
“저렇게 타작하면 몹시 불편할 텐데.”
그들은 보릿단을 손으로 잡고 개상이라고 불리는 통나무에 툭툭 내려치거나, 거적을 깔아놓고 도리깨로 죽어라 내려치고 있었다.
지금 시대의 타작 기술로는 저게 최선이기는 한데...
홀테라던가, 족답식 탈곡기 같은 걸 만들어서 쓰면 몇 배나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거라서 말이다.
일을 빨리 끝내고 나서 산에 가서 나물을 캐오든, 나무를 해오든 해서 시장에 내다 팔게 되면, 저들은 지금까지보다 배불리 먹고 살 수 있을 텐데.
그 모습이 계속해서 눈에 밟혔다.
마음 같아서는 농부들 있는 곳으로 가서 개상으로 타작하는 게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그래서는 안 되겠지.
홀테를 만들어 주든, 족답식 탈곡기 같은 걸 만들어 주고 나서 여태 쓰던 개상은 땔감으로나 쓰라 말해야 의미가 있는 거지.
내가 제대로 된 해결책도 안 주면서, 불편하냐고 물어보는 건 불편하다는 사실만 인식시켜 주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내가 벼슬에 있었더라면 지금쯤 장영실을 찾아가 족답식 탈곡기를 설명해 주고 생산 배급에 힘썼을 텐데...
아니지, 아니다. 이런 걸로 머리 썩히지 말자.
사직했잖아, 사직했으니 이제 자유롭게 편히 살면 된다.
“......”
내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옆에 있던 겨울이가 물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각나신 건가요?”
“아니야, 별거 아니야.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냥 가자.”
그렇게 말하고서 나는 약간의 찜찜함을 품은 채 아버지가 계시는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
2년 만에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께서 아주 반갑게 맞아주셨다.
“대붕이 왔느냐. 그래, 조정에서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다 지난 일입니다, 어머니.”
“한낱 노비들 아픈 것도 다 챙기는 네가 탄핵 상소를 올려 중상모략을 일삼는 자들을 감당하느라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겠니...”
어머니는 날 보자마자 눈물 바람이시다.
21세기 한국이나, 15세기 조선이나 어머니가 자식 걱정하는 건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자기 몸 상태는 돌보지 않으시면서, 젊디젊어 웬만한 병은 자고 나면 낫는 내가 기침이라도 한번 하면 의원을 불러라 약을 달여라 하시며 노심초사하시는 게 우리 어머니시지.
“사람이 살다가 힘들면 쉬기도 해야 하는 법이란다. 소도 하루 종일 일만 시키면 병이 나 쓰러지는데, 사람이라고 다르겠니?”
“어머니, 감사합니다.”
“...... 네가 좋아하는 갈비찜을 해놓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 옆에 서 있는 겨울이를 보면서 씩 웃으셨다.
“처자의 이름이 김겨울인가? 대붕이가 종종 보내온 편지에서 처자의 이름을 많이 보긴 하였네. 아직 혼례를 치르지 않은 사이이니, 다른 방을 써줬으면 하는데. 그렇게 해도 되겠나?”
“예, 안방마님.”
어머니는 자상한 미소를 지으면서 겨울이를 격려하였다.
“우리 대붕이가 참 여린 아이인데, 처자 덕분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들었다네. 고마운 일이지. 신분이 달라 첩이라지만, 절대 박대하지 않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우리 집안도 내가 막 태어났을 때는 유교 꼰대 사림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좀 많이 딱딱한 양반 집안이었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부터 노비들도 동등한 인격체, 정확히는 직원으로 보며 최대한 배려해 주다 보니... 집안의 풍조가 변하게 되었다.
어머니도 아버지가 들인 첩을 어느 날인가부터 박대하지 않게 되었고, 애를 막 낳은 노비 부부한테는 출산 휴가도 주고 의원도 불러주면서 기운을 돋우는 약까지 챙겨줄 정도로 변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겨울이만을 데리고 조용히 어딘가로 가셨다. ......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시는 걸까?
"...... 괴롭힐 생각으로 그러시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번에는 아버지께서 헛기침 몇 번을 하시며 다가오셨다.
"대붕아."
"예, 아버지."
아버지는 날 보고 아무런 설명 없이 두 팔을 벌리시더니 꼭 안아주셨다.
"관직 생활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이 아비는 너처럼 대과 급제를 하기는커녕, 소과 급제도 못하였기에 네 고충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양구 이 촌구석에서 너에 관한 소문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열심히 종묘사직을 위해 헌신하였는지가 짐작되더구나."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그저 소자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전역하고 나면 군부대도 아름다워 보인다는 말이 있다. 물론, 그 생각은 예비군을 한번 나가고 나면 아니지 군대 전역하고 3일만 지나면 싹 사라진다고 하지만...
사실 내 관직 생활은 행시 붙고 장교 생활할 때보다는 훨씬 좋았다.
진해현에서는 백성들이 나를 위해 그 비싼 전복도 돈을 받지 않고 가져다 주지를 않나,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송덕비까지 세워 나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해 주었다.
집현전에 가서는 황희가 굴리고, 조말생이 굴리고, 허조가 굴리는 GPT가 되어 부림을 좀 심히 당하였지만, 그래도 나라를 위해 백성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에 나름 보람찼었다.
나중에는 조선 경제를 말아먹을 화폐의 등장에 지부상소라는 극단적 방법을 써서 막는 데 성공하였고 나아가 방원법 시행의 초석을 놓는 것까지 성공하였다.
마지막에는 방원법을 요리조리 저지하면서 끝까지 훼방 놓았을 류정현까지 상소를 올려 정리해 버렸다.
류정현에 관한 상소를 넣는 일은 정말 즐겁고도 보람찼다.
군대에 있을 때나, 중앙 부처에서 일할 때는 상관을 찌른다는 걸 상상조차 못했는데.
사직서 쓴 뒤 홀가분한 상태에서 조선의 발전을 가로막는 탐관오리 놈을 죽여버리는 일은 그야말로 짜릿하기가 최상급이었다.
막말로 이게 야스가 아닐까.
"관직 생활이 꽤 즐거웠나 보구나."
"고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고되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 농부가 철을 따라 농사를 짓는 것도, 경작지를 넓히기 위해 황무지를 개간하는 것도 몹시 고된 일이다. 선비가 학문을 익히는 일에 매진하는 것 또한 편히 낮잠이나 자고 싶고, 친구들 데리고 근처 명산이나 둘러보며 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해야 할 공부에 집중할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니더냐."
아버지의 말에 나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서, 누군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네가 특별해지기 위해서는 지겹고, 어렵고, 힘든 일을 꾸준히 반복해야만 한다.'
그 말대로 나는 관직에 출사하기 위해 고향의 친구들이 여기저기 놀러 갈 때에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서책을 펴놓은 채 주야장천 읽어대기만 하였다.
과거 붙고 나면 그때부터는 공부를 아주 대충하겠다는 꿈과 희망에 가득 차서 말이다.
"그러나 철을 따라 농사일에 전념하다 보면 해마다 수확 철에 많은 수확을 거둘 수가 있고, 땅을 개간하는 고된 일을 몇 년에 걸쳐 하다보면 자기 땅을 가질 수 있게 되는 법이다. 과거 준비를 열심히 한다면 그 결과로 과거에 급제하는 법이고. 그렇게 결실을 거두고 나면, 아니지. 아니야... 결실을 거두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법이다."
...... 부정할 수 없다. 내가 진해 현감으로 있을 때, 일에 시달려서 죽겠다 하면서도 그게 그렇게 힘들기만 하고 즐거움은 아예 없었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백성들이 내 덕분에 사는 게 좋아졌다고, 희망을 줘서 고맙다고 말하였고. 그 기억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내 입가에는 웃음이 걸렸다.
방원법이 실시된다면, 조선 백성들은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
"너는 지금까지 충분히 열심히 해주었다. 그러니 맘 편히 푹 쉬려무나."
"예, 아버지."
"네가 서찰로 겨울이에 대해 알려온 바가 있어서. 모레, 우리 집에서 혼례를 치를 수 있게 간략하나마 준비를 해놓았다. 그때까지는 아무 생각 말고 편히 쉬기만 하거라."
그리하여 나는 바로 혼례를 치르게 되었고... 지금은 가장 중요한 합방을 앞두고 있다.
길고 어색한 침묵을 뚫고 겨울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