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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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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철퇴를 들어 올렸다.

자신이 세운 뜻을 거스르고 나선 자 김대붕.

화폐를 통해 백성을 구하려는 자신의 대의를 가로막고 나선 그를 치워버리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나이가 들어 몸이 이전 같지는 않다고 해도, 철퇴를 들어 올릴 힘조차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김대붕의 머리를 내려치기만 하면 되는 거다. 나의 이 행동 한 번이면 화폐를 반대하는 이들 모두에게 엄히 경고할 수 있다.

화폐를 반대하는 자, 화폐를 쓰지 않는 자. 이들 모두는 김대붕과 같은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백성을 위해 올바른 정책을 내는 것은 위정자의 당연한 의무이다.

하여 위정자가 백성이 가야 할 올바른 길을 고심 끝에 내었는데, 어리석은 백성이 무지하여 그 길로 가지 않고 잘못된 길로 가려 한다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때로는 과감하게 잘라내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다.

심온에게 사약을 먹인 것처럼, 여흥 민씨 집안을 거의 멸문 시켜버린 것처럼 말이다.

이는 조선을 위해, 조선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 선사하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네 뜻이 정녕 그러하다면 어쩔 수가 없구나."

그리 말하고서 철퇴를 내려찍으려 하는 순간 이방원의 동작이 멈칫했다.

사람을 죽이는 게 싫거나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이방원은 가난한 백성, 여린 백성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양녕, 호령, 충녕이라는 이름이 적힌 공을 차고 놀며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세 명의 대군을 저주한 어린아이들'도 그는 용서했다.

조선에서 방술(저주)은 엄연히 사형이고, 그 대상이 왕족이면 대역죄에 준하게 처리하는 게 원칙임에도 말이다.

그러나 그는 죽여야 하는 대상이 가족이라면 가족이라도 죽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고 믿었던 신하, 조선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었던 정도전마저도 그는 죽였다.

이방원은 죽여야 할 대상을 죽이는 일에 아무런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사내였다.

그런 그가 멈칫한 이유는.

한순간 눈앞에 있는 김대붕이 마치 자신이 죽인 정몽주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고려 최고의 문관, 자신의 아버지 이성계가 고려의 왕들보다 더 두려워하고, 더 경계했던 남자.

이방원은 조선이 건국된 뒤로 지금까지 이런 기백과 충정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기백만 따져보면 딱 한 명 더 있었다. 이상적인 유교 국가를 위해 자신을 불사른 남자, 조선을 성리학의 나라로 만들겠다 선언해 조선의 기틀을 짠 삼봉 정도전.

세종 시대를 빛낸 명재상들이라도 이 두 사람에 비한다면 초라해져 버린다.

그 탓일까? 이방원은 자기 자존심을 꺾기로 했다. 저 두 남자와 같은 남자, 자신이 무엇보다도 손에 넣고 싶어 했던 이들과 닮은 김대붕을 품기 위해서 말이다.

"화폐는 조선을 부흥하게 만들 것이다. 원나라에서는 교초를 써서 나라를 크게 키우는 일에 성공하였다. 나는 대도(원나라의 수도)에서 교초가 얼마나 위대한 물건인지를 직접 보았기에 확신하고 있다. 조선도 화폐를 유통함으로 크게 부흥할 것이 틀림없다."

조선 초기, 즉 조선의 건국 과정을 직접 보았기에 그때의 기억이 생생한 재상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철퇴를 들고 정몽주를 때려죽인 이방원, 반대 세력이라면 가차 없이 숙청의 철퇴를 내리쳤던 사람이 '숙청하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그러면 그놈은 무조건 죽는 거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황희도, 허조도, 다른 신하들도 이제 곧 김대붕이 철퇴에 맞아 죽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의 충정과 진심이 담긴 행동은 다른 재상들마저도 감동시켰으니...

그가 죽더라도 남은 가족들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줄 생각이었는데.

이방원이 동작을 멈추는 이상 사태를 보면서 저들은 순간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철퇴를 든 상태에서 마지막까지 설득하고자 했던 사람은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없다.'

선죽교에서 철퇴로 내려찍기 직전까지 설득하려고 했던 남자, 정몽주.

"태상왕 전하의 거룩한 뜻이 틀렸다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화폐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 모든 고을에 시장이 설치되어야만 합니다. 그러고 상업이 발달 되어야 합니다. 모든 백성이 오승포, 백미로 거래하는 게 불편하여 견디지 못할 정도가 되어야만 합니다."

김대붕의 말에 이방원이 이번에는 억지를 부렸다.

"뜻을 굽혀라. 나 그리고 주상은 너를 아주 크게 쓸 것이다."

김대붕은 사실 권력에 별 관심이 없는 자였다. 적당히 조선 발전을 위해 애쓴 뒤에 김겨울과 같이 고향으로 낙향하여 편히 사는 게 진짜 꿈인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건 본인뿐이고, 김겨울마저도 김대붕은 '종신 영의정'이 목표인 사람으로 알고 있다.

"부귀영화와 권력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소신은 종묘사직을 받들고, 태조대왕께서, 그리고 태상왕 전하께서 품으신 거룩한 뜻. 백성들이 모두 즐거워하는 나라를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족합니다. 그리한 다음에 소신은 낙향하여 몇 칸짜리 집을 짓고, 처자식과 함께 태평성대를 이룬 조선에서 편안하게 살고 싶은 것이 제가 품은 진짜 꿈입니다."

저 말을 류정현이나 황희가 했다면 '그냥 가난하고 청렴결백한 척하고 싶어 한 발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김대붕은 진해현에서 무려 송덕비까지 받고, 조선 최초의 사또 임기 연장을 위한 천인소까지 받은 청백리(진짜).

그의 말이 이방원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서 다시 올렸다.

김대붕이 지부상소를 올리기 전에 올렸었던 그의 상소문 내용을 말이다.

머리가 식은 상태에서 그걸 다시 떠올려 보니... 그의 머릿속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자신의 판단, 이게 진짜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 말이다.

"...... 어서 과인의 말이..."

"화폐는 조선을 위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조선은 화폐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돌도 지나지 않은 어린 아이에게 몸에 좋다고 꿀을 먹이면, 아이는 급사하게 되는 것처럼. 조선은 화폐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김대붕의 말은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지금 전하께서 하려는 것은 천자문도 떼지 못한 돌도 안 지난 아이에게 과거 시험을 보게 하여 급제하라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전하께서 아무리 엄히 가르치셔도, 그 아이는 절대 천자문 조차 뗄 수 없습니다. 천자문을 받아들일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네 말은..."

이방원은 김대붕의 말에 당장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했다.

화폐는 조선에 반드시 필요하다. 화폐를 쓴다면, 화폐가 조선에서 널리 쓰이게 된다면 원나라 대도가 그랬던 것처럼 조선도 번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화폐를 써야만 한다. 화폐를 발행해서 더 많은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하는데, 무언가 모순이 떠올랐다.

자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건 알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말로 정리가 안 되었을 때... 김대붕의 말이 또 이어졌다.

"어린아이가 천자문을 떼지 못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부모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다고 회초리를 들어서 자식 종아리를 치는 것이 과연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옵니다, 그건 그저 어린아이를 학대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태종 이방원보고 지금 당신은 애를 학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직구를 던진 김대붕.

그의 패기에 재상들이 순간 움츠러들 정도 였다. 철퇴로 대가리를 깨는 이방원 앞에서 '애민정신을 가졌다는 사람이 백성을 죽이려는 게 말이 됨?'이라고 물은 셈이니까.

"나는 백성들을 위해, 조선을 위해서 그리한 것이다.... 조선에는 화폐가 필요하다..."

김대붕은 저 말을 듣고서 조용히 머리를 땅에 박으면서 절했다. 그러고는 이방원에게 고했다.

"입신양명하여 뜻을 펼치고, 충군애국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입니다. 화폐를 조선에 널리 퍼뜨리려는 전하의 뜻도 조선을 발전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조정에서 화폐를 세금으로도 받지 못하는데, 이걸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돌도 안 된 어린 아이에게 과거 급제를 못한다고 회초리질을 하는 것과 같사옵니다. 그러니 제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이방원은 분했다. 분하고, 또 분해서 반박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저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자신도 화폐를 완벽하게 못 믿어서 세금을 화폐로 안 받고 있는데, 백성들이 믿을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

이방원의 눈에서 눈물이 뚝, 뚝 하고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철퇴를 떨어뜨렸다.

정몽주와 같은 충신, 정도전과 같은 기백을 갖춘 김대붕의 충언에 이방원이 고집을 꺾은 것이다.

저걸 본 허조와 황희가 중얼거렸다.

"태상왕 전하께서 철퇴를 내려치던 중 멈추는 날이 오다니, 대체 무슨 일인 건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중요한 건 딱 하나지."

허조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김 수찬은 이제 살았네. 녀석은 살았어."

이방원은 허탈한 눈빛으로 김대붕을 바라봤다.

그리고 등을 돌려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세종에게 가까이 간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집현전 수찬 김대붕의 말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 검토를 해봐야겠소, 주상."

"......"

세종은 이방원의 항복 선언에 놀랐다. 그러나 그걸 표정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신념을 꺾는다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말을 덧대거나, 표정으로 의문을 표한다면 그건 불효다.

"예, 아바마마."

그 뒤에 김대붕은 모두의 환호 속에 전옥서(감옥)로 모셔졌다.

전옥서 나졸들조차 법도를 어기고 그가 직접 걸어가게 유도했다.

당연히 그에게는 가장 좋은 독방이 배정되었다.

이방원과 세종이 궁으로 돌아가고서 백성들이 천세를 불렀다.

**

지부상소가 올려지고 며칠이 지났다.

이방원은 조회에도 나가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화폐를 시행하는 것이 맞는 건가를 계속해서 고민했다. 김대붕 때문에 그리하였다.

처음에는 자기 인생을 걸고 밀어붙이려던 화폐를 그가 거부하고 나선 것이 몹시 거슬렸고, 하여 이 기회에 그를 제대로 길들여 '황희'처럼 순종적인 신하로 만들려 했는데...

막상 그를 감옥에 처넣고 와 곱씹고 곱씹을수록 자신이 하려던 짓이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세금으로 동전을 안 받으면서, 백성들에게는 동전으로 거래하라 하는 게 참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허황된 처사로구나. 대체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했단 말인가?"

생각해 보니 그랬다. 자신이 즉위하자마자 저화를 발행하여 썼을 때는 백성들 사이에서 나름 통용되었었다. 그러다가 '세금'으로는 저화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때부터 저화는 말 그대로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내 신념에 내가 눈이 멀었었구나. 선의로,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 때문에 한다는 것이 백성들을 다 죽일 뻔했구나."

자신의 실책 원인을 깨달은 이방원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세종에게 종종 읽으라 권했었던 김대붕의 장계 사본을 찾아 읽어보았다.

백성들이 장시가 열리자 모두 좋아했었다는 그 이야기, 가난한 과부에게 태평성대를 줬다는 그 대목.

"다행이구나,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화폐 정책을 밀어붙여 이전의 과오를 되풀이했더라면 이는 자신이 백성 모두를 호랑이 아가리로 밀어 넣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세종까지도 그의 손에 무고한 이들의 피를 묻혔을 것이다.

임금이란 큰 뜻을 위해 잔인해져야 할 때도 있는 것이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 때문에 무고한 백성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것은 절대 금해야 할 크나큰 죄인데... 김대붕 덕분에 그 죄를 범하지 않고 끝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 그의 눈에 뜨인 것이 호조판서 황희를 비롯해 여러 판서들이 올린 상소였다.

김대붕의 말에 틀린 것이 없으니 부디 재고해달라. 그가 한 짓이 불경하기는 하나 죄를 물어 내치면 안 된다 뭐 그런 내용들.

모두 다 자신의 역린을 건드릴 수 있는 충언이었다.

"..... 상온(내시부의 2인자)은 있는가?"

"예, 태상왕 전하."

"잠시 전옥서로 가자. 가서 김대붕을 좀 봐야겠다. 내가 직접 그를 풀어줘야겠다."

이방원이 김대붕에게 벌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그를 풀어주겠다는 말에 상온이 속으로 기겁하였다.

왕권 확립에 미쳤던 작자가 과실을 인정함으로 스스로 왕권을 깎아내리는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방원은 터덜터덜 통금이 걸린 한양 거리를 걸어가서 전옥서 안의 김대붕을 독대했다.

그리고 무거운 입술을 열어 말했다.

"...... 네 말대로 동전, 화폐를 시행하라는 어명을 거둘 것이다. 그러니 다른 판서들에게 대답해 주었던 것처럼 과인에게도 대답해다오."

보통 과인이라는 표현은 임금이 아주 아주 큰 실책을 저질렀을 때, 혹은 분노했다는 걸 드러낼 때 쓰는 표현이다.

지금은 전자의 의미였다.

"조선을 위해 과인이 어찌하면 좋겠느냐?"

그의 물음에 고민 없이 바로 김대붕이 답했다.

"대동법... 모든 공물을 쌀로 걷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