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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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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신념을 잃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말은 매우 옳은 말이다.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따라 살아갈 때 삶의 의미가 생기는 존재이기에.

조선에 화폐가 시행되는 것은 내 신념과 반대되는 것이기에, 화폐가 시행된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 것이다...

뭐 그런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에서 내가 신념을 꺾고 화폐 시행을 방관한다면 아마도 나는 남은 생 내내 후회를 할 것 같다.

이런 비유를 하면 좀 그런데 말이다. 대학교 1학년 때 고백에 실패해서 ‘군대’로 도망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으면 고백을 해야하지 않겠어?

그래야 잠시 그 여자애랑 머쓱해지고, 대학교에 남아있는 게 좀 그렇게 되어도... 나중에 남은 일평생 동안 후회를 안 하지. 고백하고 후회하는 건 잠깐이지만, 고백 안 하고 후회하는 건 평생이니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막는 것이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부숴버렸다. 태조대왕께서 때로는 스승처럼, 때로는 제갈공명처럼 생각하시던 포은(정몽주)도 내가 직접 선죽교에서 죽여버렸고. 전조 고려는 물론이고, 내 동생도, 조선의 기둥과도 같았던 정도전도 모두 내가 부숴버렸지."

정도전이 조선에 남긴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그자가 조선의 기반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이기는 했지만, 그가 남긴 사상과 체계는 건드리지 못했을 정도이며. 그의 장남은 현재 형조판서로 재임하고 있다.

정몽주는 뭐, 조선이 건국할 때 참여만 했으면 '종신 영의정'은 당연히 했을 위대한 인물이었으니 긴 설명은 하지 않겠다.

그러니 나같이 새파랗게 어린놈이 화폐 시행을 막겠다고 도끼를 들고 엎드린 것 정도는 이방원 그가 못 치울 이유가 없다. 정도전, 정몽주도 치워버린 사람이니까.

"소신이 죽게 된다 한들 후회는 없을 것이나, 마지막으로 간언을 올리겠습니다."

"...... 허락하겠노라."

이방원 뒤에 서 있는 황희를 비롯한 판서들과 재상들이 나를 보며 신호를 보내왔다. 지금이라도 부복하며 뜻을 돌이키겠다 밝히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 반대로 나는 이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말을 다할 생각이다.

내가 만고의 충신 그런 건 절대 아니지만, 죄 없는 백성들이 화폐 때문에 죽어 나갈 걸 이미 알고 있는 자로서. 그 고통을 외면할 정도로 모진 사람은 못 되기 때문이다.

"소신은 진해 현감으로 있을 때, 장시를 열어 수많은 백성을 이롭게 하였습니다. 가난한 과부가 자식들을 굶기지 않아도 된다며 기뻐하였고, 소작만 짓던 몇몇 이들이 돈을 모아 자기 땅을 사보겠다며 희망찬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소신이 비록 조선의 개국에 한 터럭 공헌한 바 없고, 개국이 되는 순간을 살아본 적도 없으나. 태상왕 전하께서는 진해 현감이던 소신에게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나도 기억한다. 네가 백성을 이롭게 하고, 희망을 주는 것이 바로 조선의 건국 이념이라고 내가 말했었지."

"소신은 그 과분한 하교를 받은 후에, 부족한 자이지만 더욱 힘써 행하였사옵니다. 조선의 백성들에게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하려는 태상왕 전하의 거룩한 뜻을 받들기 위해서 말입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살기 위해 숨을 쉬듯이 아무 때나 임금님 찬양을 한다. 대화를 하다가도 갑자기 이게 다 임금님 덕분이라면서 뜬금없이 임금님 칭찬을 하는 거다.

나도 그런 맥락으로 이방원을 설득하기 위해 '임금님 찬양'을 쓱 한 거고 말이다.

그러나 임금님 찬양과는 별개로 이방원이 말한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이 조선의 건국이념이며 올바른 가치’라는 말에 100퍼센트 동의한다.

수많은 성공한 사람부터 평범한 가장들까지 이렇게 말하지들 않는가.

가진 것 없기에 오직 성실 하나만으로 힘써 살아온 세월이 몹시 고단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식들이 잘 커 주었으니 모든 시간이 행복했노라고 말이다.

가정이 그러하듯 나라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종대왕님도 그렇게 평생을 사시면서 훈민정음도 창제하셨다.

내가 비록 만고의 충신 이순신 장군님(21세기 현대의 윤리 기준으로 털어도 첩 하나 들인 거 말고 깔 게 없음)도 아니고,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님처럼 전재산을 털어가면서 백성들을 위해 한평생 희생할 깜냥도 없지만...

눈앞에서 사람이 죽을 위기, 그것도 조선의 모든 가난한 백성들이 죽어 나갈 대참사를 막을 수 있는데 나 혼자 살겠다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

죄책감 때문에, 어쩌면 정창손 그 작자가 말년에 유령을 본 것처럼 나도 화폐 정책으로 희생당한 이들의 원령을 평생 보고 살아갈 수도 있겠지. 살릴 수 있었는데, 살리려고 조차 안 한 것이 후회될 테니까.

"그런데 지금 조정은 동전을 주조하여 백성들에게 강제로 쓰게 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금을 낼 때 백성들이 관에 동전을 내면 관은 받지 않겠다 하였습니다. 동전을 발행한 관에서 동전을 받아주지도 않고 인정해 주지도 않는데 과연 백성들이 믿고 쓸 수 있겠습니까? 저라면 쓰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지부상소를 올릴 때 적었던 화폐를 반대하는 이유와 논리는 이미 이방원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기에. 현학적이며 긴 이론 이야기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지금 내가 해야 할 말은 아주 간단하면서 핵심을 찌르는 짧은 것이어야 한다.

'네가 백성을 다 죽일 거다!

의사가 환자에게 ’담배 끊으세요. 폐암 걸려 죽기 싫으면.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백성들은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오승포와 쌀을 계속해서 쓸 것이고, 조정에서는 동전을 쓰지 않는 이를 엄히 벌하기 위해 공권력을 사용할 것입니다. 동전을 쓰지 않는 이를 잡아 곤장을 치고 재산을 몰수하며 수군으로 보낼 것을 명하게 되겠지요."

이방원이 내 말을 듣고 격노했다.

“네놈이 정녕 미친 것이냐?”

내가 미친 건 맞다. 미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방원 앞에서 지부상소를 올려. 막말로 내가 하는 말은 당장 죽여달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는 하다.

그렇지만 내가 하는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진실이다.

방금 말한 참담한 이야기는 세종실록에 실제로 기록된 사건이다.

류정현이 영의정 겸 경시서 도제조가 되어 화폐 사용을 감독하게 되었을 때, 그는 장인 중에서도 거의 천것으로 취급받는 갖바치(가죽 장인)가 화폐를 쓰지 않고 물물교환한 것을 알게 된다.

이에 류정현은 갖바치를 엄히 벌할 것을 청하였고 마침내 그는 곤장에 맞아 죽게 된다.

그와 남은 가족들의 재산은 몰수되었으며, 집안의 남자들은 모조리 수군으로 끌려갔다.

우리가 알기 쉽게 현대 사회에 적용하여 말한다면, 죄를 지은 가장은 사형당했고 전 재산은 몰수되었으며, 살아남은 집 안의 남자들은 청송 교도소보다도 훨씬 열악한 곳으로 끌려가 평생 뼈 빠지게 일하다 뒈지게 된다는 거다.

물론,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은 자신들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저런 꼴을 당한 것이 억울해서 세종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한다. 아버지가 죽임당한 것도 억울한데, 전재산 몰수에 집안 전체를 수군으로 보내는 게 말이 되냐면서 말이다.

세종대왕님은 저 말을 듣고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재산 몰수와 수군으로 보내는 처사는 면해주어서, 가족 전체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만은 면했지만. 가장을 잃은 가족이 과연 멀쩡했을까.

더 무서운 건 실록에는 이 사건 한 건만이 기록되었지만,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지는 세는 것조차 어렵다는 거다.

법에 따라 재산 몰수한 뒤에 입 싹 닫은 수령도 있었을 거고.

그런 식으로 고통을 겪은 백성의 일이 얼마나 많았을지 상상조차 안 된다.

이 끔찍한 참사를 나는 꼭 막아야겠다.

"그러면 백성은 매매 자체를 두려워하여 시전은 물론이고 장시도 이용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쓰는 사람만 손해 보는 동전이니 누구도 쓰려하지 않을 것이고, 궁여지책으로 오승포와 쌀을 써서 거래하다가 걸리면 집안이 풍비박산 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

"진해 현에서 장시가 열려 겨우 살길을 찾은 백성들이 다시 궁핍해질 것입니다. 궁핍해진 가장은 배를 곯고, 곯고, 곯다가 죽어가는 처자식 때문에 괴로워 자매(자기 자신을 노비로 파는 것)를 하거나, 산적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화폐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인 결과인데... 소신은 사는 동안 이런 참혹한 백성의 일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역사를 아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벌어질 일이 얼마나 끔찍할지 눈앞에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백성들은 자식이 굶어 죽어가도 먹여 살릴 길이 없어 하늘을 원망하며 현실을 저주할 것이다. 그러다 굶어 죽는 아이도 나올 것이다.

21세기와 달리 전근대 사회는 기근, 굶어 죽는 게 흔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못 참겠는 이는 류정현 같은 자에게 고리대금을 빌리게 되고 결국 그의 노비가 될 것이다.

이방원이 철퇴를 들어 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