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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2 KiB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다.

종이에 숫자를 적을 때 가짜 정보를 적으면 거기 적힌 정보는 거짓이 돼버리는데.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것처럼 장부에 거짓이 적혀 있으면 그건 눈에 훤히 보이기가 십상이다.

"김 이방." "예, 사또." "여기 적힌 바에 따르면 현에서는 전세로 쌀 4,859섬을 걷었다 되어 있네. 더불어 공물로 바칠 것은 곶감 300근, 멸치 200근, 오동나무로 만든 그릇과 수저, 젓가락이 400벌. 이렇게 적혀 있고. 이게 맞나?" "예, 장부에 적힌 대로입니다."

지금 시기 조선의 전체 인구는 770만 명이 조금 안 될 거다.

내가 부임한 진해 현에는 한 2~3만 명 정도의 백성이 살 것이고.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읍내에 사는 이들은 약 1,000~1,500명 정도 될 거다.

그러니 공물이나 전세는 저렇게 걷는 게 맞는데... 문제는 이거다.

저놈들이 과연 전세를 제대로 걷었을까?

뭐, 지금 당장 전세까지 파악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공납은 어떨까?

조선에 사는 백성 대다수는 평생 쌀농사, 보리농사, 콩 농사 같은 거만 짓고 사는 사람들이라 곶감이나 멸치 같은 건 만들지도 낚지도 못할 텐데 말이다.

그걸 대신 납부해 주는 역할을 맡은 놈들이 과연 장난질을 안 쳤을까?

장난질을 안 쳤으면 기특한 일이 되니 상이라도 주고 싶지만, 내가 녀석들에게 상 줄 일은 결코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이 시대 절간은 공납 대행을 해서 받아먹은 돈으로 사찰을 무리하게 수리하고 사치까지 부렸으니까. 숭유억불의 나라 조선에서 말이다.

"백성들이 오동나무 그릇, 곶감, 멸치와 같은 것들을 직접 만들어 바칠 수는 없었겠지. 그러니 다른 고을에서 그러는 것처럼 절을 통해 물건을 조달하고 있지는 않았나?" "예, 사또. 저희 고을에서는 10년 전부터 절을 통해 물건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싫어하지는 않나?" "처음에는 관아가 쌀을 걷어, 그걸 절에 내고 특산품을 모으는 걸 좋지 않게 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다들 좋아합니다."

저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일 거다.

예를 들어, 내가 클립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다고 치자.

철광산에 가서 철광석을 캐고, 그걸 녹일 수 있는 용광로를 만들고, 용광로에서 녹인 다음에 거푸집에 넣고, 식혀서 철사를 뽑아낸 다음 굽히는 과정까지 마치려면?

문방구에서 수십 개 들어있는 박스 하나에 1,000원 하는 클립 만들려고 최소한 1,000만 원은 써야 할 거다. 자급자족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힘든 거다.

곡식 농사만 짓는 농민들에게 공물을 바치라 하는 건 엄청난 부담이었을 거다.

그런 농민에게 공물 대신 곡식만 바쳐도 된다 하니 그런 면이 좋았을 거다.

어쨌든 매번 1,000만 원씩 안 써도 되잖아.

대신에 절간 놈들은 규모의 경제를 이용해 공물을 싼 가격에 사 온 뒤 막대한 비용을 청구했겠지.

부담은 당연히 백성에게 돌아가는 거고, 그 과정에서 받은 돈 일부는 아전을 비롯한 향리나 각종 높으신 분들의 주머니로 위치 이동했을 거고.

농민들은 결국 1,000원어치 공납하려고, 이래저래 20,000원을 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는 거다.

물론 1,000만 원 쓰는 것보다는 나으니 태평성대기는 하네. 조선 꼴 잘 돌아간다.

"그래서 공물을 다 사는 데 들어간 쌀이 대체 얼마인가?" "쌀 8,234섬을 백성에게 걷었습니다." "공납이 토지세보다도 비싸군.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어."

참고로 나는 저 녀석들에게 뇌물을 안 받겠다고 선언했다.

돌려 생각하면, 저놈들은 나한테 뇌물로 찔러주고도 남을 특산물 삥땅을 치고 있다는 얘긴데.

"하지만 이 일은 당연한 겁니다, 사또. 사또께서도 아시겠지만, 공납으로 내야 할 물건을 백성들에게 만들어다 바치라 하면 그것이야말로 저들에게 고생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궁에 바칠 물건은 엄선된 좋은 것이어야 하고, 특산물 가격은 워낙 비쌉니다."

원래 거짓말을 할 때는 팩트 사이에 숨기는 법이다.

나무를 숨길 때 숲속에다 숨기는 게 제일 안전한 것처럼 말이다.

"제도가 잘못되었으면 이를 고쳐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인데, 어찌 불씨(부처를 낮추어 부르는 말)가 나랏일에 관여한단 말인가?"

마음 같아서는 여기 있는 아전부터 시작해서 관련된 양반들까지 싹 다 쓸어버리고 싶다.

그렇지만 그런 짓거리를 벌이면 내가 사직하고 끝나는 정도가 아니라, 양반들에게 예의 바르지 못했다는 죄목을 씌워 내 목을 날리려 들 거다.

세종에게 상소 러쉬가 이어질 거고 그러면 최소 귀양이다, 귀양.

내가 사직하고 편히 살고 싶다고 한 거지. 귀양 가서 거지처럼 살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러니 딱 조질 놈만 정확히 조질 거다.

솔직히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라서 제대로 된 명분이 있으면 스님들을 자진 입대시켜도 되는 존재로 여기니.

스님들이 공납에 관여해서 남겨 먹는 죄를 지어서 조진다 하면 반대할 사람은 없다.

'승려들 끌고 가서 지은 성이 남한산성이었지.'

"공납을 담당하는 절이 어디인가?" "성흥사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성흥사라, 성흥사." "당장 찾아가서 결판을 내야겠군. 다른 곳도 아닌 절에서 공납을 대신 처리하다니. 그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야. 이방은 당장 나를 따르도록."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마음먹은 날 당장 시작해야지. 안 그러면 죽어도 못 끝낸다.

**

성흥사는 절이라 하기에 너무도 화려했다.

절의 나무 기둥은 죄다 옻칠이 되어 있었고 대문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화학성분을 쓰는 페인트가 나오기 전까지 붉은색으로 칠하는 방식은 돈이 워낙 비싸서 양반들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짓거리였는데. 절이 어찌 이리도 화려해?

돈이 썩어 넘치는 냄새가 아주 그득하다.

"성흥사의 주지는 어디 있나?"

나의 말을 들었는지 나이 지긋한 스님이 조심스럽게 걸어 나왔다.

"나무아미타불, 어서 오십시오. 혹 고을에 새로 부임하신 사또 되십니까?" "그렇소. 들어보니 진해현의 공납을 성흥사에서 다 맡아 해왔다 들었소만... 공납을 맡아 하면서 성흥사는 막대한 부를 축적했나 보오." "소승은 가난한 백성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공납을 대신 했을 뿐입니다. 백성들은 저희 덕분에 큰 곤란을 면하였고, 성흥사는 약간의 수입을 얻을 수 있어 그것으로 절을 보수하였을 뿐입니다."

...... 그런 거 치고 걷어가는 돈이 너무 많더라.

내가 계산해 봤을 때 실제로 백성들이 바쳐야 하는 공납품 값을 다 합치면 얼추 쌀 5~600섬 정도에서 그칠 것 같은데.

이 성흥사 놈들이 중간에 해 먹으면서 아전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수령 선에서 위에 바쳐야 하는 상납금(수증)'까지 바쳐야 하다 보니 무려 8,000섬이 넘는 쌀을 걷었다는 건데...

이게 진짜 맞다고 할 수 있는 거냐?

아니, 내가 1,000섬 정도만 걷어서 그 안에서 수고비와 뇌물 그리고 상납금까지 챙기는 거였으면 건드리지도 않겠다.

너희도 일해서 먹고는 살아야지 하면서 넘겼을 거라고.

하지만 세종실록에 보면 마치 저들이 무슨 봉명사신(왕의 명을 받아 집행하는 신하)이라도 된 것처럼 행세하면서, 수령을 윽박지르기까지 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절은 이제부터 시주만 받게. 어차피 백성들이나 양반 사대부 가문의 아낙네들이 시주하는 것만 받아도 너희들이 먹고사는 것에는 지장이 없지 않나." "나무아미타불, 저희는 그저 백성들을 위할 뿐입니다. 저희가 공물을 대납하기 전에는 백성들이 지금보다 두 배, 세 배에 달하는 고역을 짊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소승이 부처의 마음을 가지고 백성을 구제한다 생각하며 천한 장사에 손을 대니, 백성들의 부담이 확연하게 줄어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저희에게 이 일을 하지 말라 말씀하십니까?"

수령 부임 첫날부터 깽판을 치고 싶지는 않다.

첫날부터 깽판 치게 되면 인사고과는 어떻게 될 것이며, 고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 인가가 뻔히 보이는데...

그런데 저놈이 사람 뚜껑을 열리게 하네.

너희가 무슨 사이비 종교냐?

아니지, 조선 초기 불교는 고려 말기보다는 낫지만 '사이비' 성이 좀 있는 불교긴 하지.

그러다 보니 조선 중기, 후기로 갈수록 조정에서 승려를 천민으로 몰아댔을 수도 있다.

사후세계를 이유로, 종교의 힘을 이용해 백성을 세뇌 시키는 놈들이니 양민으로 인정해 주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고 말이다.

뭐, 이건 배울 대로 배운 양반이라는 작자들도 제대로 된 통제가 없으면 '세도정치' 해버리기가 십상인지라, 꼭 저놈들만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정말 첫날이라서 참으려 했는데 말이다.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참교육을 좀 하긴 해야겠다.

뭐, 이 절을 불태울 생각까지는 없지만... 매운맛이 어떤 건지 보여주긴 해야겠다.

사리사욕이나 쫓는 땡중은 사이비가 맞으니...

"이방은 들어라." "예, 사또." "이들을 모조리 묶어서 체포하라. 그리고 고을이 공물을 사들일 경우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도 조사해라. 만약 저놈들이 받아 간 돈이 공물 가격의 2배를 넘긴다면... 내 저놈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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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아니, 썩어들어가다 못해 뒤틀렸다.

그러고는 내 옷자락을 잡더니 빌기 시작했다.

"사또, 이러시면 정말 안 됩니다. 민심이 안 좋아질 겁니다. 가뜩이나 백성들은 괴력난신(미신)에 휘둘리기 십상인데, 고승들을 탄압하였다 하면..." "전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신 건 백성들을 어루만지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 상황을 가만히 보고만 있겠느냐!"

이방을 뿌리치고서 명령했다.

"당장 이 절의 창고를 봉인하고, 장부를 철저히 뒤져라!"

내가 이렇게 했는데 저 녀석들이 내 생각보다 정말 깨끗하다면 나만 죽어 나갈 일이 되는 건데.

그런 걱정은 마라.

내가 질 리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