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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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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붕이 이제 곧 전근을 가야 한다는 소식은 당연히 고을 양반들에게도 전해졌다.

다른 사또가 전근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는 ‘아, 가실 때가 되셨나! 하며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

좀 부패한 놈이었으면 ‘빨리 꺼졌으면 했는데 이제야 가다니. 하면서 혀를 찼었고, 유능한 사또였으면 좀만 더 있다 가시지 하면서 아쉬워했을 것이나...

김대붕은 너무나도 유능했다.

양반도 만족시키고, 아전도 만족시키고, 상인과 백성까지도 만족시키는 미친 사또.

이런 사또는 두 번 다시 안 올 거라는 위기감에 고을에서 제일 가는 선비, 김남조가 자신의 집으로 고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원래 고을 일을 논할 때 백성을 참여시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나, 지금만큼은 저들의 힘이 각별하게 필요했기 때문에 부른 것이다.

"흠, 흠... 각설하고, 오늘 내가 자네들을 이리 모은 것은 우리 고을에 몹시 안타까운 일이 생겼기 때문이네."

백성 중 한 명이 그 말에 반발했다.

"아니, 대관절 그게 무슨 말씀이 십니까? 사또 덕분에 가난한 과부도 먹고 살 거리가 생겨 자식들 굶기지 않게 되었다며 좋아하고, 저 역시 자식들 하루 세 끼를 먹일 수 있어 좋은데 말입니다. 좋은 일이 우리 고을에 가득한 데, 대체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단 말입니까?"

김남조 본인도 이 말에 동의했다. 사또가 새로 오고 나서부터 고을은 변했다.

백성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가득하고, 흉년이 오지 않는 이상에야 가난한 이라도 굶을 일이 없게 되었다.

새로 건설한 보 덕분에 농사짓는 데 필요한 물도 공급이 잘 되어서 올해는 풍년이 들었으며. 그 결과 자기 집 곳간도 쌀이 가득 차게 되었으니 말이다. 좋은 일만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살면 참 좋겠군.'

"사또께서 영전하게 되실 것이네."

영전, 진급하게 되어서 더 좋은 자리로 가는 걸 의미한다. 분명히 축하할 일이고,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고을 백성들은 물론이고 아전, 양반들까지 그 좋은 일에 기뻐할 수 없었으니.

몇몇 감성 충만한 백성들 가운데는 엉엉 우는 사람까지도 나왔다.

"...... 사또 덕분에 사람답게 살게 되어 매일이 행복한데. 어찌 이리도 빨리 가신단 말입니까?"

"아이고, 사또. 우리 사또님께서 이 고을에 오신 지가 고작 1년 반밖에 안 되었는데."

"평생까지는 아니어도 10년은 계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남조 본인도 사또가 이 고을에 오래 있었으면 한다. 더 나아가서, 오래 계시는 동안 '우연히' 자기 딸과 만나게 되어 춘정과 혈기에 빠진 나머지 일을 저지르게 되고 그리하여 혼례까지 치르게 된다면...?

이 얼마나 가문의 영광이란 말인가.

그게 실패하더라도 이 사또가 하루라도 더 이 고을에 있어야, 자기가 더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게 겪어본 사실. 부자가 될수록 베푸는 게 많아지니 가문의 이름도 높아지고 고을 백성들은 자기를 더 존경해 주고 말이다.

베풀면 베풀수록 부자가 되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괴력난신과도 같은 행운이란 말인가.

이걸 놓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전하께서 결심하셨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네."

여기 모인 이들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정말 방법이 있습니까?"

"조선의 법에 따르면 지방관의 임기는 5년이네. 그런데 우리 사또께서는 고작 1년 반밖에 이 고을에 계시지 않았네. 즉, 우리 고을의 선비들이 힘을 합쳐 상소를 올리고 그게 받아들여지면. 우리 사또께서는 앞으로도 3년 반 동안 진해현에 더 계실 수가 있네."

그 말을 듣고 모두가 좋아했다. 사또가 기왕이면 10년 정도 계셔주신다면 그야말로 더 좋겠지만, 지금 당장 가는 것보다는 3년 반이라도 더 계시는 게 훨씬 좋다.

사또 김대붕이 1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나 고을을 발전시켰으니. 앞으로 3년 반을 더 계신다면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그런데 저희 같은 무지렁이들이 뭘 할 수 있다고 그러십니까?"

김남조가 씩 웃으면서 백지를 쫙 펼쳤다.

거기에는 이미 자신을 포함한 고을 양반, 아전들의 이름이 죽 적혀 있었다.

"자네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게. 그러면 내가 이 종이에 이름을 적도록 하겠네. 그다음 그 밑에 자네들의 먹물 묻힌 손바닥을 찍는 거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겁니까요?"

"전하께 나 같은 양반은 물론이고 아전들, 거기에 너희 같은 백성들까지도 우리 사또가 이 고을에 오래오래 계시기를 바란다고 상소를 올리는 걸세. 그러면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전하께서 우리의 상소를 주의 깊게 보시지 않겠나? 그렇게 되면 사또께서 이 고을에 오래 계실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가는 거지."

그 말에 모두가 납득했다. 백성들도 여기 있는 양반들도 임금님을 만나 뵌 일은 없다.

그러나 임금님은 김대붕과 같은 훌륭한 사또를 보내주셨을 뿐 더러, 정학소 같이 선 넘은 놈 목을 바로 잘라버리셨다.

백성을 그리 사랑하시는 분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무시하실까?

자신들이 목소리를 낸다면 임금님께서도 분명히 사정을 살펴주실 것이다.

"뭐하나, 어서 한 줄로 서서 이름 말 안 하고."

김남조의 말에 이곳에 온 백성들 모두가 한 줄로 서더니 차례로 나왔다.

"쇤네 이름은 김갑돌입니다."

"좋아, 김갑돌... 적었으니까 여기 밑에다가 손바닥 찍게."

"예, 나리."

"자, 다음!"

김남조는 이 자리에 모인 백성 100명에게 이름과 손바닥을 다 찍게 한 뒤 말하였다.

"다른 마을도 이와 비슷하게 하고 있을 걸세. 그런데 여기에 참여하지 않는 녀석이 있지 않겠나?"

"예, 나리."

"우리 사또 오래 모시고 싶으면 당장 와서 손바닥 찍으라고 독촉하게. 정남(성인 남자)들은 다 참여시켜!"

김남조가 이걸 억지로 시키는 것이라면 반역죄에 걸려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왜냐하면 여론을 선동해서 조정의 명에 항의하려고 하는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성들 모두가 원하고 있고, 그 여론을 모아서 왕에게 전달한다면...?

이건 백성들의 뜻을 살피는 선량한 양반이 백성들의 뜻을 모아 왕에게 전달하는 아름다운 사례가 된다. 당연히 이건 후자이다.

"예, 나리!"

우렁차게 대답한 백성들은 아직 이 소식을 모르는 이들을 찾아 빠르게 뛰쳐나갔다.

자기 주변의 손도장을 안 찍은 정남들에게 알려서 사또 나리 오래 있게 해달라는 상소 올리는 데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3일 뒤 고을 전역에서 1,578명의 이름을 올린 '김대붕 사또 임기 연장 상소'가 완성되었다.

상소는 새로운 사또를 정하기 전에 세종에게로 올라갔다.

**

세종 이도는 조선 역사 최초로 양반과 백성이 연명해서 쓴 상소를 읽고 있다.

[진해의 초라한 유생 김남조가 돈수재배하고 아뢰옵니다. (중략) 새로 오신 진해 현감께서는 유랑하는 백성들에게도 먹고 살길을 내주셨습니다. 그 결과, 저들도 먹을 것이 풍족해지고, 입을 것이 생기니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저들은 진해현에 뿌리를 내려 전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양반이 사또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백성들에게 먹고 살길을 내어주어 사람의 도리를 깨닫게 한다.

모든 선비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며, 이루어야만 하는 목표를 그가 직접 이뤘다는 말이었다. 나 빼고 인성에 마구니가 낀 5명이 한 팀을 이루는 게임에서 상대방에게 부모님 안부 여쭈면서 쌍욕을 하는 것 이상의 찬사다.

세종은 고을의 양반이 사또에게 이렇게 칭찬하는 경우가 딱 두 가지라는 걸 알고 있었다.

거의 대다수, 첫 번째는 양반이랑 사또가 아주 잘 붙어먹어서 백성들 등골을 한계까지 빼먹되 임금 귀에 안 들어갈 정도로 잘 처리할 때다.

다른 경우는 사또로 발령받은 자가 너무 일을 잘해서 양반들이 제발 저 인간 데려가지 말라고 비는 경우인데. 이런 경우는 극소수이며, 세종 이도는 이런 인간일 경우 즉시 영의정(은퇴 없음) 후보자로 낙인을 찍어 버린다.

소중히 오래오래 봐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김대붕은 당연히 후자에 들어가는 아주 우수한 인재다.

[전하께서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진해 현감을 통해 전해주시니, 전하의 은덕을 저희 고을 백성들은 아침 햇살과도 같이 포근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현감 나리를 갑작스레 바꾸신다고 하시니, 온 고을 백성들이 몹시 당황해하고 있습니다.]

세종은 여기까지 읽고서 상소문 옆에 아주 두툼하게 쌓인 종이 더미를 보았다.

저 종이 더미는 진해현의 양반, 아전, 상인, 백성들이 자기 이름을 적어 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억지로 선동한 것 같은 기색이 전혀 안 보이는 걸 보니, 대체 얼마나 선정을 펼쳤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하께서는 부디 진해 현의 백성들을 위해 현감께서 국법에서 허하는 임기를 다 채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세종은 상소를 다 읽고서 껄껄 웃었다.

"세상에 말로만 허풍을 떠는 놈은 많다지만, 말로 한 내용을 다 지키는 이는 드문 것인데. 내가 그런 인재를 얻었구나!"

그렇지만 세종은 진해현에서 올라온 상소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저들의 말이 몹시 합당하나, 대붕이라는 이름 그대로 하늘 높이 날아가 조선을 이롭게 해야 하는 김대붕을 진해 현이라는 좁은 곳에만 너무 오래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의 재능은 마땅히 조선 전체를 위해 쓰여야만 한다.

세종은 백성들의 성의에 보답하려 직접 붓을 들어 비답을 내려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김대붕을 대신할 새로운 진해 현감. 아니, 진해가 커짐에 따라 고을의 등급이 올라...

현감(종6품)이 아닌 현령(종5품)이 김대붕과 교대하기 위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