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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빙빙 돌고 짜증 또한 솟구치게 만드는 소리다.
내가 시장을 열어서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잉여물자 교환이 일어나게 되면 고을의 경제는 활성화된다.
짚신을 팔아서 쌀을 사고, 나물을 팔아서 보리를 사면 자원은 이전보다 공평하게 분배되기에.
백성들은 이 과정에서 이익을 보면 봤지, 손해는 보지 않을 거다.
그러니 유교에 뇌가 절여진 꼰대인 네 놈들만 불편할 뿐이다.
불편한 게 싫다고? 그러면 네 놈이 관점을 바꾸면 되고!
이 대가리를 망치로 깨버려도 모자랄 유교 탈레반 놈아!
그러나 내가 아무리 수령이라고 해도 저놈이 하는 말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다.
조선은 선비의 나라고, 저놈은 우리 고을에서 학문 높기로 유명한 인간이니까.
심지어 유향품관이라고 과거에 합격은 못 했지만, 관리와 똑같이 품계도 가진 자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새로 부임하신 사또께서 백성들을 얼마나 아끼고 보살펴 주려 하시는 지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또께서는 부임하시자마자 아전들이 사찰과 결탁하여 비리를 저지른 것을 알아차리시고, 간악한 땡중 놈들을 징벌하고 제도를 바로잡아 공납을 줄여 주시지 않았습니까?"
"수령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셨음에도 이리 겸손하시다니, 사또께서는 장차 조선의 명재상이 되실 것입니다."
지금 저놈이 나를 칭찬하고 있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된다.
저건 게임으로 따지면 필살기를 넣기 전에 방심을 유도하는 말일 뿐이니까.
더불어 자기는 사또가 정치를 순전히 잘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올리는 충언이라는 명분을 얻기 위한 위장술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 이 늙은이도 전하의 성은으로 이리 좋은 사또를 모실 수 있게 된 것이 매우 기뻤습니다만... 이번에 사또께서 올바르지 못한 정책을 펼치시니, 진해현의 선비로서 충언 한 마디 드리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저놈이 한 말만 대충 들어보면 진짜 충신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저놈 진짜 속내는 나와 고을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보고 있자니 매우 아니꼬워서 '충언' 올리는 척하는 거지만 말이다.
"사또께서도 아시겠지만, 진해현에 장이 서니 동래현을 비롯한 주변 고을의 상인들까지 모두 몰려들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온갖 곳으로부터 잡다한 무리가 구름떼처럼 몰려들기도 했고요. 이들 대다수는 선량한 양민이었으나 개중에는 그렇지 않은 작자들도 더러 있었지요."
"아녀자를 협박하여 외상을 쓰려는 자도 있었고, 시비 끝에 주먹다짐을 하는 자도 있었지요."
"사또께서는 시장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을 엄히 벌하셔서 법을 바로 세우셨지만, 시장이 세워져 있는 한 앞으로도 이런 일은 계속해서 생겨날 것입니다. 이는 곧 고을의 풍속을 어지럽히는 일이며, 백성들을 힘들게 만들 겁니다."
조선 후기, 정확히는 영조 시대쯤 가면 검계라는 놈들이 한양에서 나온다.
한양 시전에서 깡패 짓을 하며 시전 상인들이 시키는 안 좋은 심부름도 하고, 중간중간에 선량한 양민들을 죽이거나 강간하기도 하는 쓰레기 자식들이 말이다.
한국에서도 1980년대 범죄와의 전쟁 전까지만 보면 조직 폭력배들이 상인들에게 보호세를 걷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관아에서 시장 관리를 제대로 안 하면 반드시 그 꼴이 날 거다.
산적질하는 놈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팔아 수입을 얻는가 하면, 선량한 상인들에게는 칼 맞기 싫으면 보호세를 내라 협박하겠지.
"그래서 저는 시장이 처음 열리는 날에 직접 시장 안에서 집무를 보고,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들을 엄히 벌한 바 있습니다."
"지금은 사또께서 직접 나서는 것만으로 사태를 수습할 수 있겠으나, 향후에는 더욱더 많은 도적이 들어와 마을을 어지럽힐 것입니다."
나는 저놈이 저렇게 말한다 하여 충격받지는 않는다.
애초에 시장을 여는 걸 무조건 반대하려고 작정하고 온 놈인데... 이 정도 수위의 발언은 당연한 거지.
"그러나 이 모든 폐단은 소인이 사또께 처음 말씀드렸던 백성들이 본업(농업)을 버리고 말업(상업)에 몰두하게 되며 생기는 문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국사를 배우다 보면 자주 접하는 게 '사림'이라는 단어다.
그러면 사림이란 무엇이냐? 숲속에 은거하고 있던 선비를 뜻하는 말이다.
말이 좋아 은거지, 이놈들은 조선 건국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기에 관직을 못 받고 방구석에나 틀어박혀 있던 놈들이며...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소작농들이 바치는 소작료를 뜯어먹으면서 유교 경전이나 죽어라 파고, 그렇기에 세상 모든 만사가 책에 적힌 이론대로만 굴러간다고 믿었던 머저리들이다.
이러니 성종이 경복궁 호수에 물 받는 수조를 구리로 만들려 할 때, 사치라면서 돌로 바꿔야 한다고 깽판이나 쳐대고...
왕이 딱히 백성들 등골 쪼아먹으면서 취미생활 하는 것도 아닌데, 취미생활을 조금이라도 즐길라치면 곧장 충언이랍시고 5,700자의 비판 글을 수십 통씩 쏴댔던 거지.
이 작자도 사림의 조상답게 헛소리를 참 예술적으로 한다.
백성들이 며칠에 한 번씩 나와서 나물 팔고, 짚신 팔고 하는 게 저들을 게으르게 만든다고?
"조선의 근간은 농사에 있습니다. 하여 백성들은 응당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해가 질 때까지 땀을 흘리며 밭을 갈아 거기에서 수확한 곡식을 먹고 세금을 내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장터에 자리를 깔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돈을 벌게 된다면..."
조선왕조실록에 이런 이야기가 기록된 것을 읽으며,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혔던 기억이 있다.
상식적으로 장사가 어디 쉬운 건 줄 아는 것인가? 지들이 안 해봤기에 모르는 거지, 장사도 농사일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24시간 몸을 쓰는 건 아니어도, 좌판이든 가게든 자신의 노동력이나 재물을 사용하여서 팔 물건을 채우고 전시해야 한다. 그 뒤에는 그 물건을 사줄 사람이 올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만 한다.
그것뿐인가? 장사를 공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고민이 쌓여 밤잠을 설치는 일도 생긴다.
그런 걸 다 무시하고,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머저리 새끼가...
조선의 선비, 기득권자라면서 나한테 훈수를 둬? 제기랄, 이래서 연산군이 사화 일으킨 거구나.
내 속이 이리 뒤집히고, 저리 뒤집히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자기 딴에 충언이라는 사명감을 불태우며 개소리를 이어 나갔다.
"백성들은 편하게 돈 버는 일에만 치중하게 되어 게을러질 것입니다. 그러면 나라의 근간인 농업이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사또께서는 백성들의 살림을 살피고자 하는 마음에 시장을 여셨으나, 이는 목마른 이에게 바닷물을 퍼먹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올바르게 판단하시어..."
"......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눈앞에 있는 꼰대는 선비다.
과거에 못 붙었을 뿐이지, 나보다 나이가 많을 뿐 더러 진해현에서는 굉장히 이름이 높은 양반이다.
그러니 나도 여태 저놈에게 경어를 썼다.
조선은 법보다 때로 예의범절과 괘씸죄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나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무슨 벼슬에 환장한 놈도 아니고... 저런 헛소리나 지껄이는 개자식한테 고개를 숙여야 할까?
"관자께서 말씀하시길, 백성은 먹을 걸 하늘처럼 여긴다 하였다! 그리고 공자께서도 강한 군대를 만드는 것보다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 곧 나라를 지키는 길이며, 신농씨를 비롯한 이들이 농사를 가르쳐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구한 덕이 지극하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지켜야 할 도리와 도덕을 잃는 것은 곧 죽음과도 같습니다. 지금 사또께서는 백성들이 편히 앉아서 장사같이 편한 일만 하는 걸 좋게 보시는데, 그렇게 되면 백성들의 성정은 차차 도둑과도 같이 변할 겁니다."
이 시대 장사치들이 하는 짓거리가 솔직히 개판 5분, 아니 그냥 개판 그 자체기는 하다.
내가 힘들게 시장 관리에 집중하는 이유가 그거 때문이기도 하니까.
상법, 식품 안전법, 소비자보호법 같은 게 없는 이 시대는 온갖 부류의 사기가 난무했다.
대충 만든 비단을 중국산 최고급 비단으로 속이는 거 정도는 양반 축에 속한다.
그렇지만 뭐 어쩌라고...? 백성들이 먹고 사는 게 중요한 거지.
"네 녀석이 하는 말은 음식을 할 때 쓰는 부엌칼이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일 수 있으니, 부엌칼을 금하자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네가 하는 말은 장을 담그다가 구더기가 생길 수 있으니, 장을 담그는 것 자체가 백성들을 착취하는 것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저기서 부엌칼 금하라는 이야기는 원나라 이야기다. 그놈들은 한족 애들이 반란 일으킬까 봐 부엌칼을 실제로 빼앗아 갔으니까.
그래서 만들어진 요리가 바로 철 조각으로 반죽을 잘라서 만드는 '도삭면'이고 말이다.
따라서 내가 한 말은 너 이 새끼, 고려랑 붙어먹은 원나라 놈과 네놈이 다르지 않다고 대놓고 욕한 거다.
조선 선비가 할 수 있는 욕 중에서 가장 독한 부류에 들어가는 말이다.
"전하께서는 백성을 사랑하신다. 그런 임금이시기에 아버지와 같은 심정으로 언제나 만백성을 보듬으려 하신다."
세종대왕님은 자기 생명을 깎아가면서까지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고, 업무에 매진하는 분이다.
조금 대충해도, 조금은 쉬엄쉬엄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비록 앞으로 경제정책을 펼치면서 온갖 괴상한 실수를 저지를 테지만, 그 중심에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언제나, 언제나 말이다.
"먹을 것이 족하고, 입을 것이 족해야 예의를 안다고 했다. 나는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고, 도리를 가르쳐서 교화하라는 어명을 받았다. 그래서 시장을 열어 백성들이 조금이라도 더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하려는 것뿐이다."
저놈은 일개 더벅머리 선비에 불과하고, 나는 장원 급제자에 현감이다.
내 말의 논리가 더 합당하면 저놈은 찍소리도 못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시장이 열리고 나서 자식에게 죽도 겨우 먹이던 가난한 백성이 밥을 먹일 수 있게 되었다며 너무도 기뻐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백성들이 남는 물건을 서로 교환하면서 살림이 풍요로워진 것이다. 이것이 여민동락(백성과 임금이 같이 즐거워함)의 이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말빨에 밀려 잠잠하던 놈이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다시 고개를 들고 항의하였다.
"장을 여는 것은 국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부민고소 금지법이 있어 제가 직접 사또의 행동을 고하지 못한다고 하나, 제게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까?"
그래, 진해현에서 이름 좀 날리는 자이니 내 직속상관인 종2품 관찰사랑도 연이 닿겠지.
그게 아니면 한양에 있는 다른 재상들과 연락이 되던지.
내가 멋대로 시장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때다 싶어서 탄핵하라는 이야기가 재상들 입에서 나올 것이고. 그러면 나는 파직 또는 삭탈관직이다.
사실 그렇게만 되면 오히려 나에겐 좋다.
백성을 잘살게 만들려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다 파직당해서 관직에 안 나가는 거라 하면 세종대왕의 종신 노예에서 합법적으로 벗어날 수가 있는 거거든.
그러면 그때는 집안 재산을 써서 예쁜 아내랑 혼례를 올리고 자식도 낳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다.
"나는 내가 한 일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네. 삭탈관직 당하는 오명을 뒤집어쓴다 한들, 내 이름이 후대에 조롱거리가 된다 한들. 나는 두렵지 않아! 선비가 고작 내 목숨, 내 명예, 내 권력이 아깝다고 소신을 꺾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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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해 현의 이름 높은 선비 정학소의 고발이 사헌부 장령을 통해 전달되었다.
이 소식은 당연히 이방원의 귀에도 들어갔다.
"...... 고려의 잔당이 아직도 남아서 조선을 좀먹는구나."
이방원은 검은색 곤룡포를 입고, 철퇴를 들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