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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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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서부(3)

수상쩍기 그지없는 이그나투스의 행적. 이를 추궁하여 숨겨진 진실을 알아내고 말았다.

“헤츨링 때부터 천 년……? 헤츨링이면 새끼 드래곤 말하는 거 아냐?”

“보고도 모르겠느냐. 나름 제국과 역사를 함께한 이 몸이 왜 이리 작은 거라고 생각한 게냐.”

“그런 취향인 줄 알았지.”

황제, 여신, 천하제일인, 드래곤 등등.

이런 최강자 라인의 존재하는 이들의 외견은 어린 여자아이인 것이 상식 아닌가.

……아닌가? 이건 너무 전생의 편견일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이그나투스가 숨기고 있었던 진실. 그것은 그녀가 잠꾸러기 응애 용이라는 것이었다.

여전히 내 무릎에 누운 자세로 기가 차다는 듯이 콧김을 뿜는 이그나투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일단 묻겠는데. 보통 드래곤은 얼마나 자야 하지?”

“평상시라면 그리 잠에 들 필요가 없느니라. 하지만, 대신 몰아서 잔다는 느낌이구나. 예를 들자면……그래. 겨울잠을 자는 곰과 비슷하니라.”

“허…….”

“마음만 먹으면 백 년도 넘게 깨어있을 수 있느니라. 물론, 항상 눈을 뜨고 있는 것은 아니고 여느 종족들이 그러하듯 중간중간에 휴식을 취해야 한다만. 대신 수면기가 찾아오면 최소 20년은 잠들어 있어야 하겠구나.”

“100년 깨어있는 대신 20년 잠드는 건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은데.”

“무얼. 인간도 하루의 3분의 1을 수면으로 소모하지 않느냐. 비율만 보면 이 몸이 훨씬 효율적이니라. 무엇보다 드래곤의 수면은 휴식과 재충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니라.”

“자는 게 자는 거지 뭐가 더 있어?”

“물론이니라. 드래곤의 수면은 성장한 심장의 마나만큼 육신을 성장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느니라. 즉, 잠만 자도 강해진다는 소리이니라!”

축 늘어진 채로 으스대는 이그나투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가느다란 몸에서 힘이 쪽 빠졌다.

“……이 몸은 천 년간 잠들지 못했지만 말이야.”

“천년이라. 애초에 그렇게 오래 잠을 참을 수 있다는 게 대단한데. 아니, 참으면 안 되는 걸 억지로 참아서 지금 상태가 영 안 좋은 건가.”

“옳다. 처음 300년 정도는 의지로 버텼느니라. 허나, 이 몸의 의지는 완벽하지 않았고, 결국 여러 마법과 약의 도움을 받아 지금껏 버텨왔건만……슬슬 한계로구나.”

“……지금 잠들면 몇 년 뒤에 깨어날 것 같아?”

“모르겠느니라. 이 몸이 최후의 드래곤이라 물어볼 이도 없고, 천 년간 잠을 참은 드래곤 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기에.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깊은 한숨을 내쉬는 이그나투스. 어쩐지 이 짧은 사이에 한층 나른함이 더해진 기분이다.

“몇십 년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니라.”

“100년 깨어있으면 20년 잠들어 있어야 하니, 단순 계산해서 10배라 쳐도 200년은 잠들어 있어야 하는 건가.”

와일드 헌트를 보았기에 장담할 수 있다. 마탑은 강하고, 준비는 철저하지만, 이그나투스 없이 100년 넘게 서부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물론 이 몸도 준비를 게을리하지는 않았느니라. 결국 중요한 것은 사룡 모르테우스 아니겠느냐.”

“잠깐. 그나저나 아까 모르테우스가 아버지라고 하지 않았어?”

“……오래전의 일이니라. 동족을 배신하고, 그런 주제에 미친 언데드가 되어버린 작자를 상대함에 주저라는 선택지는 없느니라.”

“그러냐.”

딱 잘라 말하는 이그나투스의 태도에 더는 무어라 물어보지 못했다.

사실 물어볼 필요도 없겠지만. 조금 전에 보니까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이며 절벽 너머로 떨어뜨리더만.

“아무튼 다시 본론을 돌아가자면, 이 몸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몸의 부재를 준비해 왔느니라. 구체적으로는 끝없이 되살아나는 언데드 군세, 혹은 사룡 모르테우스. 둘 중 하나는 완전히 봉인하는 식으로 말이니라.”

“완전한 봉인이라…….”

“으음. 던전의 관리자로서는 조금 듣기 불편한 말이었겠구나. 이 몸이 깨어날 때까지 버텨줄 봉인이라고 정정하마.”

던전이 악신의 하반신을 봉인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무수한 몬스터를 틀어막는 장치라는 걸 떠올린 걸까. 머쓱한 어조로 말을 덧붙이는 이그나투스.

“됐어. 대충 사정은 알겠으니까. 나를……자하브의 힘을 이용해 강화시킨 용아병도 그중 하나인 셈이겠네. 이그나투스 네가 잠들면 용아병을 지금처럼 생산하지 못할 테니, 소모품처럼 써먹는 전략에 금방 한계가 올 테니까.”

“……당대의 자하브는 영특하구나. 아니, 전투와 관련된 일에는 언제나 그러했지. 정답이니라. 한번 쓰고 버릴 수 없다면, 오래 쓸 수 있는 용아병을 만드는 것이 최선일 터.”

거기까지 말한 이그나투스가 내게서 잠시 건네받았던 오나홀을 다시 내밀었다. 힘이 없어서인지 한 손이 아닌 양손으로 조심스레 잡아서.

“그러니 부탁이니라. 강렬한 태양의 마나와, 이 몸의 불길을 품은 이빨과 비늘이 만나 만들어진 용아병이라면 분명 언데드들을 틀어막을 수 있을 것이니라.”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텐데.”

“물론, 용아병들이 언데드들을 상대하는 사이에 이 몸이 준비한 다른 안배로 모르테우스를 상대할 예정이니 걱정 말거라.”

“아니. 내 말은 다른 준비는 없냐는 질문이 아냐. 그 모든 것들로 충분하냐는 소리지.”

“…….”

입을 꾸욱 다문 이그나투스. 그런 그녀를 향해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위화감을 설명해 주었다.

“만약 오래 못 버틴다는 것을 알고, 이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 있다면, 그런 걸 굳이 숨길 이유가 어디 있겠어. 이곳의 언데드들은 이성을 거의 잃었다면서. 당장 와일드 헌트가 시작될 때마다 시험해 봐야지.”

그래야 자신의 준비가 적절했는지, 부족한 점은 어디인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와일드 헌트를 상대하기 수월해짐에 따라 이그나투스 본인에게 가해지는 부담도 덜 해질 테니까.

하지만 이그나투스는 그러지 않았다. 언제나 그러하듯, 직접 날아가 브레스와 마법을 쓰고, 마탑 사람들에게 힘을 과시하며 와일드 헌트를 밀어냈으니까.

“지금껏 준비한 안배라는 것들에 큰 결함이 있는 거겠지? 이번 일도 뭐라도 하나 얻어 걸려라 하는 발버둥일 테고.”

“…….”

양손으로 오나홀을 쥔 채, 이쪽을 가만히 올려다보던 이그나투스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린다.

“……정말. 자하브는 성가시구나. 천 년 전에도 지금도 이런 쪽으로는 감이 좋으니 말이야.”

난 자하브 아닌데.

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는 사이. 이그나투스가 무언가를 내려놓은 듯, 후련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에녹. 그대의 말이 옳다. 이 몸은 정말 여러 준비를 했느니라. 드래곤 하트의 조각을 넣어 마도구를 만들기도 했고, 마나만 불어넣으면 되는 설치형 대마법을 100개 이상 중첩시켜보기도 했으며, 아예 이 몸을 대신할 존재를 길러내기 위해 제자를 들여보기도 했느니라.”

그리 말하며 메이킨 쪽을 바라보는 이그나투스.

스승의 이러한 사정까지는 몰랐는지 얼떨떨해하는 표정을 짓는 메이킨이었으나, 정작 이그나투스는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일 뿐이었다.

“허나, 전부 실패했느니라. 드래곤 하트는 떨어져서도 본체와 연결되는 성질이 있더구나. 하여, 이 몸이 직접 인정한 자가 아니면 기껏 만든 마도구를 사용할 수 없으나…….”

“문제는 네가 몇십 년이 아니라 몇백 년 단위로 잠들어야 한다는 거겠지.”

“그러하니라. 이 몸이 인정한 이가 변절할지도 모를뿐더러, 설령 마지막까지 세상을 위해 헌신한다 해도 수명이 다하면 그 이후는 어찌할 방도가 없더구나.”

이외에도 너무 많은 마법을 중첩시키면 주변을 침식하여 이차원의 존재를 끌어당기기도 하고.

마탑까지 세워 비전을 전수했건만, 정작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제자는 너무나 적고 그나마도 단신으로 모르테우스를 몰아붙일 정도는 되지 않았다.

“……사실 이 몸도 크게 기대를 한 것은 아니니라.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발버둥 친 것에 불과하지.”

“모르테우스가 그렇게 강해?”

“아암. 언데드가 되며, 이지를 잃고 자연스레 마법 또한 다룰 수 없게 되었다고 하나……마지막 드래곤 로드이니라. 육신과, 변질된 죽음의 마력만으로도 이곳의 아이들 정도는 한입에 씹어 삼키겠지.”

“그런가.”

결국 서부의 몰락은 피할 수 없고, 풀려난 와일드 헌트가 제국을 종횡무진 헤집고 다니는 것 또한 확정된 미래라는 뜻.

세상에 이게 무슨 소리람.

그냥 소소하게 몸을 팔아서(?) 비자금을 마련하려던 생각이었건만……안락한 추방 라이프 같은 건 사실 없었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지.

“이그나투스. 내가 강화 용아병 제작을 돕는다 해도 확실하게 와일드 헌트를 막아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지?”

“그 정도가 아니라 강화 용아병으로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니라. 물론, 자하브의 혈계능력과 이 몸의 속성은 궁합이 좋으니 어쩌면 예상외의 결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하지만 나는 자하브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지닌 것은 태양의 마나가 아니라 정순한 화속성 마나.

즉, 레드 드래곤인 이그나투스와 동일한 계열이다.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미친 연금술사가 만든 영약이 드래곤 하트에 비할 바는 아닐 테니 하위호환이라고 해야 할 터.

이그나투스가 기대한 혹시나의 가능성 따윈 처음부터 없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나.

이 방법은 정말 쓰고 싶지 않았지만, 나의 추방 라이프와 제국의 수많은 생명이 걸려있지 않은가.

좋고 싫고를 가릴 때가 아니다.

각오를 다진 뒤. 진지한 목소리로 이그나투스에게 물었다.

“이그나투스. 드래곤은 마법의 조종이지?”

“과장 조금 보태자면, 이 몸은 현시대 모든 마법사들의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겠구나.”

“그럼 처음 보는 마법이나, 원리는 모르고 눈으로 외운 마법도 금방 펼칠 수 있겠네?”

“무슨 마법이냐에 따라 다르겠으나, 어지간한 것은 될 것 같다만……대체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고 그러는 것이느냐?”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그나투스. 그런 그녀를 향해 쓸개를 토해내 씹어뱉는 듯한 거부감을 억지로 억누르며 말했다.

“혹시. 타나토스의 침상이라는 흑마법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나를 처음으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흑마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