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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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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율이 거주하는 도시의 이름은 카멜리아.

비록 다른 대도시들에 비해 규모는 작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예술을 사랑하는 그 열정만큼은 다른 도시에 비해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도 가장 유명한 살롱을 꼽으라면.

단언컨대 ‘살롱 드 블랑’을 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살롱 드 블랑의 바텐더, 사무엘은 분위기를 주도하는 카리스마와 더불어서, 문학에 대한 소양이 있기로 정평이 난 사내였다.

“사무엘! 여기 카미카제 한 잔!”

“예이.”

오늘도 하인즈 씨가 주문하는, 이름도 유래도 불분명하지만, 맛 하나만큼은 강렬하다고 평할 수 있는 칵테일을 한 잔 내어주고서.

주문이 멎음과 동시에, 그 또한 자신을 위한 술을 한 잔 말았다.

미모사Mimosa.

발포성 포도주에 오렌지즙을 섞어서 만들어 낸, 청량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의 칵테일을 준비한 후.

지금껏 탐독하고 있었던 책을 다시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그가 최근에 보고 있는 책은 이 살롱 드 블랑에서 가장 떠들썩한 신간, 헤라클레스 영웅담이었다.

벌써 네 번째 정주행 중이었다.

그가 소설의 세계로 다시 빠져들려는 순간.

짤랑──

또다시 살롱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경쾌한 소리에, 아쉬움을 삼키고 사무엘은 고개를 들어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내, 그 미소가 조금 더 진해졌다.

눈에 들어온 건.

최근 살롱에 드나들기 시작한 흑발흑안의 청년.

킴이었다.

본디 흑발흑안이라고 하면 제국에서 불길한 징조로 여겨지나, 몇 번 그와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꽤 유쾌한 친구였다.

“마스터, 장사는 잘됩니까?”

“요즘 화제의 신작 덕분에 아주 호황이지. 어때, 오늘도 락스 온더락, 젓지 말고 흔들어서?”

“이제 락스 끊었습니다. 오늘도 제일 싼 걸로 부탁드립니다.”

“접수.”

이따금 왔을 때는 영 죽을상만 쓰면서 허구한 날 락스인지 뭔지 정체불명의 이상한 것을 찾아대던 그였지만.

적성을 찾은 것일까, 꿈을 찾은 것일까.

최근에는 묘하게 밝아진 느낌이 참으로 기꺼웠다.

“자, 술 나왔네.”

“감사합니다, 마스터.”

꼬박꼬박 마스터라는 괴이한 별칭을 붙이는 것도, 이 괴짜의 매력이리라.

“그러고 보니, 자네도 그 책을 봤나?”

“무슨 책이요?”

“헤라클레스 영웅담. 아주 기가 막히더군.”

“히힉.”

빨대로 술을 쪽 빨아 마시던 킴의 어깨가 살짝 들썩이며,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흠? 벌써 한잔하고 온 건가?”

“히힉, 아닙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킴은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였기에.

사무엘은 뭐 젊은 친구가 기쁜 일이라도 있었겠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다시금 자신이 보던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가게의 문이 열렸다.

정장을 차려입은 초면의 사내가 들어와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김율의 맞은 편에 앉는 것을 바라보며.

킴이 유쾌해지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 같은 저 손님에게는 어떤 칵테일을 팔아야 하나, 하고 사무엘이 잠깐 고민에 빠진 순간.

“김율 작가님, 맞으시죠? 신문 연재에는 관심 없으십니까?”

“……?”

사무엘이 귀를 의심함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왁자지껄했던 살롱에 아주 묵직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혜성처럼 나타나서 신들의 전쟁으로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제우스의 연애담으로 파격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으며.

헤라클레스 영웅담으로 주인공 중심의 서사에 혁신을 써 내려간 작가.

그리고 단언컨대, 현재 살롱 드 블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의 이름이 오르내린 것이다.

사무엘은 자신도 모르게 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킴.

김.

……김율?

그리고.

“그, 혹시 실례지만 제가 여기에 있다는 건──”

“새싹과 가지 출판사의 편집자분께 전해 들었습니다. 최근에 여기 자주 오신다고, 특유의 흑발흑안을 보면 한 번에 알아볼 거라고──”

사내의 말이 채 끝맺어지기도 전에.

“김율! 김율이라고!”

“헤라클레스! 맞나? 자네가 쓴 게 맞아?”

“여기 서명 하나만 해주게!”

“왜 헤라클레스는 힘 줄 때 아자자잣이라고 외치나요? 시그니처 대사를 노리신 건가요?”

“그래서 헤라클레스가 저런 고초를 겪을 동안 도대체 제우스는 뭘 한 건가! 진짜 기간토마키아를 대비하기 위한 안배였던 건가?”

“히드라랑 백면귀룡은 무슨 관계에요? 혹시 마경에서 오신 건가요? 역시 흑발흑안! 불길함의 상징!”

살롱 안이 순식간에 광기에 휩싸였다.

.

.

.

광기가 가까스로 진정된 후.

김율이 마치 몇천 번 연습해 본 것처럼 능숙한 솜씨와 유려한 필체로, 살롱 멤버들이 각자 소장하고 있던 헤라클레스의 양장본에 모두 서명을 마쳤다.

이미 그의 앞에는, 살롱 회원들이 한 잔씩 사준 술잔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과연, 대작가는 주당이구만!”

“히힉, 힉, 대작가라뇨.”

“자네, 칭찬받을 때 꽤 간사하게 웃는군?”

마치 팬 미팅을 방불케 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그, 김율 작가님?”

“넵.”

“혹시 헤라클레스가 지옥에서 구해주었던 테세우스라는 영웅은, 어떤 사람인가요?”

질문을 받은 김율의 눈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그리고는, 마치 몽상에 빠진 것처럼 잠깐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헤라클레스를 가장 강력한 영웅이라고 꼽는다면, 테세우스는 가장 지혜로운 영웅이라고도 불리지요.”

이내.

천천히 노래하듯 테세우스의 일생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구부러트린 나무에 여행자의 사지를 결박한 후, 나무를 펼쳐서 여행자를 찢어 죽이는 시니스.

여행자에게 발을 씻겨달라고 부탁한 후, 발을 씻겨주는 여행자를 걷어차 절벽 밑으로 떨어트려 버리는 스키론.

여행자를 포박하여 침대에 눕힌 후, 침대의 길이에 맞추어서 몸을 늘이거나 잘라내는 식으로 죽이는 프로크루스테스 등.

다양한 괴인들을 맞서서 정의롭게 인과응보를 실현하는 청년 테세우스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그저 숨도 쉬지 못한 채 몰입하여 경청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하…… 실타래를 이용해서 미궁을……!”

아리아드네와 함께 누구도 살아나온 적 없었다는 크레타의 미궁에서 탈출하고, 그 과정에서 미노타우로스와의 사투에서 마침내 승리한 순간.

“……그렇게, 테세우스는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헤라클레스가 지옥에서 그를 구해내는 것은 조금 더 훗날의 이야기지만, 슬슬 제가 일어나볼 시간이 다 되었군요.”

마치 거리의 음유시인이 부드럽게 읊조리는 것처럼, 명징하게 직조된 김율의 이야기가 마침내 끝을 맺자.

차마 더 이야기해달라고 그를 붙잡을 사람은, 적어도 살롱 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과연…… 천생 이야기꾼이로군. 왜 지금까지 그 재능을 썩혔는지 모르겠어.”

사무엘이 숨기지 못한 감탄사를 내뱉었으며.

그 자리의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서 동의를 표했다.


크으…….

오졌다.

장례식장 매드무비로 틀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명장면이었다.

뭐, 진짜 힘숨찐 컨셉을 즐기고 싶었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좀, 작가인 티를 내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긴 하다.

원래 독자 커뮤니티에 작가는 출입 금지인 게 상식이잖아?

……아닌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의도치 않은 작가 커밍아웃을 해서 수많은 관심을 파밍한 건 기쁜 일이기도 했지만…….

  • 혹시 여장이 취미신가요? 그래서 그런 생생한 전개를?

……이건 좀 긁혔다.

고증입니다.

고증이라고요.

거, 헤라클레스 같은 대영웅도 가끔 에스트로겐이 터질 때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일부러 테세우스 이야기의 결말을 언급하진 않았다.

좀…… 많이 추하거든.

그 얘기까지 했으면 '또 드리프트를 박느냐'하고 바로 민심이 흉흉해졌을 가능성이 100%다.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까 받았던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 출간 소설의 시대는 점차 저물고 있습니다. 제국의 수도에는 이미 일간지에 소설을 연재하는 것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점차 도서 형태의 책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김율 작가님, 저희에게 작품을 내보실 생각은 없습니까?

이른바 스카우트 제안.

……살짝 투고에 가까운 형태인 것 같긴 했지만.

출간 소설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라는 말이 조금 내 심금을 울렸다.

생각해 보면 원래 역사에서도 그랬다.

인쇄 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차 완성된 한 편의 소설을 출간하기보다, 신문과 잡지 연재 형태로도 발전했다.

당장 셜록 홈즈가 연재된 스트랜드 매거진만 하더라도, 주홍색 연구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존버 또 존버하여 보헤미안의 스캔들로 보답을 받지 않았던가.

그렇게 머나먼 과거를 돌이켜보지 않더라도.

당장 교양 있는 한국인이라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장르 소설 또한, 대여점 시대를 걸쳐서 웹소설이라는 일일 연재 시스템으로 안착하지 않았던가.

스페인어 배울 시간에 웹소설 한 편 더 읽는 게 나았을 것이란 명대사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리고, 나로서도 나쁠 것은 없었다.

신문이라면 더 많은 사람이 더 쉽게 소설을 볼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지구의 역사를 알아가고, 거기에 흥미를 느낄 수 있다……!

“흐흐흐.”

물론 스킬 획득이나 판매량 메커니즘이, 일일 연재 환경에서 어떻게 바뀔진 모르겠지만.

상태창이라면 알아서 해주지 않을까?

어스름이 저무는 하늘 아래에서, 숙소로 향하는 골목으로 접어든 순간.

“오, 검은 머리. 요즘 인상이 피었어? 웃고 다니네?”

“돈 좀 만지니까 살만한가 봐?”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토마스?”

한때 공사판을 전전하면서 만났던 놈 중.

질이 좋지 않아 가급적 엮이지 않으려고 했었던 랭킨 패거리가 골목에 죽치고 있었다.

“없이 사는 놈들끼리, 조금 나눠 써야지?”

랭킨 패거리의 행동대장 격, 1티어 양아치 토마스의 입꼬리에 깃든 서늘한 미소를 보아하니.

이 새끼들.

작정하고 기다리고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