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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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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사랑하고 아낌없이 베풀어라.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

여신교의 교리에 따라.

성녀 로젤린은 사랑했다.

정확하게 목적어를 덧대자면, 사람과 사람의 사랑을 담은 모든 이야기를 사랑했다.

사랑을 주제로 한 연극이 상연될 때마다 가장 먼저 달려가서 앞줄에서 혼자 깨방정을 떨었으며.

그런 걸 도대체 왜 보냐는 의아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종류의 염정소설을 섭렵했다.

……조금은 수위가 높은 것까지도.

그런 그녀에게.

일주일 넘게끔 재입고를 기다리며 마침내 손에 넣은 화제의 소설, ‘제우스의 연애담’은 가뭄의 단비가 되어줄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이, 망측한……!”

일반적인 염정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노골적인 묘사는 참을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적나라해서 좋았다.

그게 바로 사랑이니까……!

그러나 주인공의 설정이 문제였다.

올림포스라는 곳의 열두 신 중 수장.

즉, 주신의 위치에 있다는 점.

여기서부터 이미 살짝 새콤한 이단의 향기가 솔솔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서로 상호 간에 이루어지는 사랑의 관계만 있으면 모르겠으나.

겁간, 근친상간, 불륜, 수간까지…….

이게…… 사랑인가……?

물론 작품 속 등장인물인 아르테미스, 아테네 등 다른 인물이 탄생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소위 세간에서 말하는 건국 신화와 크게 다를 바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건, 선을 넘었다.

아무리 여신님께서 사랑을 권장하는 관대한 신이라지만, 해석하기에 따라 신성모독에 가까운 표현이었다.

어찌 주신이라는 지위를 달고서 이렇게 망측한 행위를 스스럼없이 행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젤린은 이 작가의 글에 대해 깊은 호기심을 느꼈다.

이렇게 다채로운 발상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이 아닌 다른 이단심문관에게 걸려서 자칫 영구 출판 금지령이라도 당한다면?

극단적으로, 손목이라도 잘려버린다면……?

“회개, 회개시켜야겠어요……!”

국가적 손실.

염정소설의 거장이 될 새싹이 짓밟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옷매무새를 정돈하면서.

로젤린은 책의 제일 뒷장을 펼쳐 출판사의 이름을 확인했다.

다행히 바로 근교에 있는 도시였으니.

어린 양을 다시 여신의 품에 안길 시간이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고해성사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으흐흑, 흐흑, 불쌍한 히폴리테에에에……!”

신성모독 혐의로 압수당한 차기작의 초본을 보면서…….

성녀님께서 과몰입하고 있었다.

헤라클레스 이야기의 핵심은 역시 12과업.

판본에 따라 다르지만.

자기 가족들을 사자 혹은 다른 사람의 자식들로 착각해서 죽여버린 후, 이의 속죄를 위해 미케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가 내리는 열두 개의 과업을 완수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낭만 넘치는 모험담의 정수였지만…….

벽 너머의 성녀님께서는 모험담은 대충 스르르륵 넘겨 읽으시곤,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의 허리띠를 구하는 장면에서 과몰입하고 계셨다.

“아니이, 아니! 어떻게 동침까지 허락한 반려를 이렇게 쉽게 죽일 수 있습니까! 그러고도 당신이 사람이에요! 짐승, 짐승이야! 무엄해요!”

……불륜에는 관대한 건가?

“……소설입니다, 성녀님.”

성녀의 과몰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결말 부분에서는…….

“아흐흑, 흐어으, 흐어어어……!”

“……괜찮으십니까?”

“당신은…… 악마에요오……!”

그리스식 피폐 드리프트의 짭짤한 맛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시고야 말았다.

그 와중.

[‘올림포스 이야기 제우스의 연애담’의 판매량이 2,000권을 돌파했습니다! 특전 스킬이 부여됩니다!]

[C급] [헤르메스의 설득력]

[12 주신 중 하나인 헤르메스는 전령과 목동, 그리고 언어를 관장하는 신이다. 특히 아버지 주신인 제우스조차 언변으로 속여넘긴 적이 있었으니. 그처럼, 너는 불리한 상황 또한 언변으로 극복해 낼 수 있으리라.]

[(31일 남음) 다음 스킬 획득까지 앞으로 판매량 3,000권 필요]

[예상 획득 스킬: [C급] 헤르■스의 ■■■]

“오.”

“흐윽, 흑흑, 네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설득력, 언변이라.

내 말의 설득력이 수치로 측정되는 것도 아닌데, 능력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교성은 인생에 있어서 필수적인 역량 중 하나이니까, 분명히 도움이 될 것 같은 능력을 하나 획득했다.

혓바닥이 조금 더 말랑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크흠, 흠.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 소설 올림포스 이야기의 작가, 김율 씨 맞으시죠? 이름이 특이하시네요.”

“그냥 편하게 율이라고 불러주십시오.”

한바탕 주접을 떨어댄 후.

성녀님께서는 본격적인 취조를 시작하셨다.

“왜, 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나요? 그러한 표현이 신성모독, 나아가 이단으로까지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까요?”

아까까지 오두방정을 떨던 것과 달리, 꽤 진중한 목소리가 벽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아마도 스킬의 영향인 듯──

내가 원래 걱정했던 지점을 예리하게 찔러 들어온 저 질문에도, 어떤 식으로 답변해야 상대방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머리에 선명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 넘게 이어진 설교 끝에.

“……그래도, 너무 과도하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은 자제해 주세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로젤린은 김율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데 성공했다.

정확하게는…….

설득당했다.

  • 신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차용했지만, 이건 결국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주신 제우스 또한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신으로, 종족의 유지, 즉 교리로 본다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생육과 번성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고도 볼 수 있지요. 그런 행동이 없었다면 세계를 구축하는 12주신 중 몇 명이나 남았겠습니까.

생육하고 번성하라.

비록 그 과정이 근친상간을 포함한 온갖 만행이 저질러지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올림포스라는 배경을 독자님들께 설득하기 위해 만든 장치로, 이제부터는 방금 읽으신 헤라클레스 이야기처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펼쳐질 겁니다. 혹여 여신님의 권위를 해칠만한 이야기는 절대 담지 않도록 할 테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분명 처음 보았을 때는 굉장히 긴장한 듯 제대로 말을 이어 나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절대 다른 의도 없이, 순수하게 이단 혐의를 심문하기 위해 그의 초고를 읽어본 이후에 다시 이야기를 할 때는 굉장히 타당하고 합당한 말만을 입에 담는 김율이었다.

그런 그의 말에, 로젤린은 그저 페이스를 잃은 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논리는 정합성이 있었으며.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가급적 수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순순히 협조하겠다는 자세까지 보여주었으니.

성녀로서의 의무.

신앙심의 수호는 다 했다고 볼 수 있었다.

오늘도 길을 잃은 양을 여신님의 품에 안겨주는 데 성공했으며, 미래의 염정소설계 대작가의 손목을 지켜낸 것이다!

물론.

모든 이단과 흑마법사들, 마족 신봉자들이 쉽게 본색을 드러내지는 않는 데다가.

……검은 머리, 그리고 검은 눈동자.

외형적 특색만으로도 감시의 눈길을 거둘 순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무런 혐의점도 없었으니까.

“그, 율 님.”

“네?”

“재능 있어요. 앞으로도 더욱 풍부한 사랑 이야기를, 아니, 사랑 이야기만 열심히 써주세요. 비극은 안 돼요. 새드 엔딩도 절대 안 돼요! 행복하게! 행복한 결말로!”

“……하하.”

채찍이 있었으니 당근.

그리고 진심이 살짝 담긴 사리사욕이었다.

“어차피 사본 있다고 하셨죠? 그럼, 이건 제가 소장…… 아니, 압수하도록 할게요! 앗, 그 전에 여기, 작가님 서명 좀.”

자그마한 틈 사이로 아직 출간되지 않은 ‘헤라클레스 영웅담’의 초고에 사인까지 받아 챙긴 후.

성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일어섰다.

고해성사실을 빠져나가며.

“그림에도 소질이 있던데, 그림은 안 그리시려나?”

차마 글 쓰는 사람 앞에서 칭찬하기는 조금 애매한 재능에 대한 찬사를, 뒤늦게 입에 담았다.

물론.

그 삽화는 당연하게도 김율이 딸깍으로 뽑아낸 AI 일러스트였다.


인류가 미지의 적들과 맞서 싸우는 전선, 마경魔境.

세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짧고 강렬한 전투가 벌어지기보단,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의 소모전이 발생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마경에 파견된 용사들은 마력 분출에 따라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달 동안이나 마경에 장기 체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용사들의 적절한 심신의 안정은 필수.

심신의 안정이라고 한다면 자고로 달콤하거나 맛있는 먹을 것, 그리고 유흥거리가 최고인지라.

마경과 인간계 사이를 넘나들며 용사들의 서포트를 전담하는 짐꾼은 아카데미가 별도로 설립되어 있을 정도로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직종 중 하나였다.

“배달이요!”

“오! 왔다! 내 활력소!”

신출귀몰한 짐꾼의 보따리가 풀리고, 온갖 종류의 물건이 와르르 바닥에 쏟아져 나왔다.

탱커와 레인저는 보드게임을 집어 든 후 곧장 구석으로, 사제와 마법사는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간식을 와구와구 까먹기 시작했을 때.

용사는 물건 틈 사이에서 자신이 요청한 책들을 한 권씩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헤라클레스 영웅담?”

“지금 제국에서 조금씩 인기를 얻고 있는 신인 작가의 작품입니다. 꽤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후후.”

짐꾼의 너스레에 호기심이 동한 용사는, 책을 펼쳐서 목차를 살펴보았다.

“오우.”

한 개의 시련만 해도 벅찰 텐데, 열두 개의 시련을 극복한다니.

페이지를 촤라락 넘겨보며 대략 내용을 확인하던 중.

“어……?”

용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신인 작가치고는 꽤 통 크게 삽화까지 삽입한 장면이었지만, 삽화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들 집합. 빨리.”

나지막하지만 의지가 가득 찬 용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마자, 순식간에 파티원들이 용사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엇, 저건?”

“으으…….”

“뭔가요? 혹시 새로 출간된 마물의 생태집입니까?”

“나, 쟤 싫어…….”

삽화에 묘사된 것은.

최근 자신들의 발을 묶어놓은 채 더 이상의 전진을 허용하지 않는 강대한 마수.

백면귀룡百面鬼龍의 것과 거의 동일했다.

이윽고 삽화에 주목했던 모두의 눈길이 그 옆, 활자로 향했다.

“소설……인가요?”

“맹독을 가지고 있는 머리는 잘라내도 재생하고, 심지어 잘린 머리에서 새로운 머리가 두 개씩 돋아나는 뱀…… 특징도 비슷해요.”

“잘라내자마자 화염으로 불태운다라…… 이봐, 마법사. 가능하겠나?”

“으음…… 제 전공이 얼음 마법이긴 한데, 기초적인 화염 마법은 쓸 수 있어요. 아니면 스크롤을 공수해 와도 괜찮고요.”

“뭐 어차피 해독이야 사제가 계속 전담하고 있었으니까, 그 부분은 걱정할 필요 없겠군.”

소설에서 공략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면 누군가는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의 한 달 가까이 파훼법을 찾지 못했던 백면귀룡이었으니,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어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실험해 보자고. 사소한 단서라도 잡는다면, 우리가 아니더라도…… 우리 후임자들에게는 힌트가 될 테니까.”

.

.

.

일주일 후.

지금껏 용사 파티 세 개를 집어삼킨 극악의 마수.

백면귀룡의 최초 토벌 소식이 제국에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