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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은 확정적으로 진행합시다. 근데, 위쪽에서도 이 소설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요, 세부적인 조건은 일주일 뒤에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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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십시오.
호재인지 화재인지 모를 길포드의 말을 듣고 귀가한 후.
“핫하, 똑바로 서라!”
히스토리에에게 채찍을 때려가면서 조교하는 보람찬 나날을 보냈다.
물론 눈에서 레이저 빔을 발사하려는 흉참한 하극상 시도를, 재빨리 입에 초콜릿을 쑤셔 넣어 가까스로 막는 일도 벌어지긴 했다.
그 결과.
“깨달았습니다. 웹소설의 극의를.”
“드디어 봉우리에 올랐구나.”
“봉우리?”
“우매함의 봉우리.”
“이익.”
손으로 직접 타이핑하는 내용조차 LLM의 클리셰적 화법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던 때와 달리.
점차 나아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왔던 내 ‘몰귀정’이 연재된 신문 속 다른 작품들을 읽게 한 것이 꽤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소설을 잘 쓰는 방법은 딱 한 가지 길밖에 없다.
다독. 많이 읽고.
다작. 많이 쓰고.
다상량. 많이 생각하라.
사고 속도야 인류를 아득히 초월하는 초고교급 인공지능 출신이었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확실히 부족했으니.
이대로만 가면.
나를 위한 훌륭한 사료 공급원이 되어주리라.
“으흐흐.”
“제 빅데이터로 추론하면, 김율은 지금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부정하지 않을게.”
과연 버츄얼 아바타 출신답게, 히스토리에는 눈가에 검은색 이펙트를 드러냄으로써 경멸의 감정을 표현했다.
“어쨌든, 다녀오마. 열심히 쓰고.”
“올 때 초코빵.”
그놈의 초코빵은.
저번에 초코빵을 사러 갔다가 마경에 조난당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지만.
뭐, 맛있으니까.
“다섯 개 사 와서 내가 세 개 먹겠음.”
“그건 불공평함.”
시답잖은 소리를 주고받은 후, 혹시나 또다시 누렁이가 크르랑거리고 있을까 봐 문을 살짝 열어 빼꼼 밖의 동태를 점검했다.
안전함을 확인하고 연구실 밖으로 나왔다.
24시간 공기청정기가 돌아가고 있는 연구실과 달리, 다소 탁한 느낌이 드는 공기가 내 폐를 괴롭혔다.
“일주일만이네.”
계속 히스토리에와 수다를 떠는 게 습관이 되어서일까,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최근에 부쩍 수도의 공기 질이 저하되는 느낌이라, 산책 대신 사이클로 대체했더니 연구실 밖에 나올 일이 거의 없었다.
식료품이야 누렁이 디펜스를 마친 히스토리에가 사다 주니까.
아주 전형적인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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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롭게 주변 풍경을 눈에 담으며 광장에 도달한 순간.
“……?”
나는 눈을 의심했다.
원래라면 분명히 깐프 동상이 하나 서 있었던 광장의 한복판에.
동상은 온데간데없이, 유전자 조작이라도 가한 듯한 꽤 거대한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복숭아나무였다.
심지어 계절에 맞지 않게, 복사꽃까지 만개하여 흐드러지고 있는 꼴을 보니.
“에이, 설마.”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판타지 세계의 또 다른 품종이다, 하는 생각을 애써 삼키며 신문사에 들어가 길포드를 찾았지만.
“아, 보셨습니까? 윗선에서도 굉장히 만족해하셔서요. 종족 화합의 새 지평을 연 장면이라고.”
“……네?”
“그나저나, 작가님도 꽤 정치적 감각이 있으시군요? 주인공을 하이엘프로 잡다니.”
“혹시 곶감이랑 게장을 같이 드셨습니까?”
“게장이 뭐죠? 흠, 곶감은 저도 좋아합니다만.”
금단의 비밀 레시피를 섭취한 나머지 착란을 일으킨 건 아니고.
도대체 무슨 소리지, 하고 그냥 가만히 길포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 결론.
유비는 귀가 크니까 하이엘프.
장비는 수염이 특징적이니 드워프 혼혈.
관우는, 드워프가 수염을 그따위로 기를 리 없으니 인간.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네? 아닙니까?”
아니, 분명히 귀 큰 놈이 초미녀 거유 엘프 출신 소드마스터라는 괴담이야 종종 접해본 적 있었지만.
삼국지를 아는 사람들이 밈으로 향유한다면 모를까, 이렇게 진지하게 유비 엘프 설을 믿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어지러워졌다.
“아, 슈나이센 공작님께서도 흡족해하시면서 흥행에 따라 보너스 지급과 더불어 프로모션도 약속을──”
“암요. 유비는 하이엘프가 맞지요. 고귀한 혈통이니까요.”
오늘부터 유비는 엘프다.
어차피 연의 기반이잖아.
순간적으로 연의가 아니라 연희 기반으로 드리프트를 꺾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러면 조조 이야기가 붕 뜨니까.
“아, 그리고.”
“네.”
“그, 카이사르 그려주셨던 화백은 혹시 작가님 지인이신가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지인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무적의 동거인…….
아, 씨. 또 옮았네.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번에도 삽화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원고료는 아예 별도로 책정하겠습니다. 자, 여기 시안섭니다.”
“헉.”
그림의 고료 규모를 듣자마자.
나는 진지하게 우리 집 대학원생 겸 망생이의 테크트리를 글이 아니라 그림으로 비틀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도 역사학과가 아니라 미대를 나왔어야 했다.
그러면 망해도 콧수염 하나 붙이면 이세계에서 충분히 성공했을 텐데.
인간이 지배하고 다스리는 제국 속.
유일하게 하이엘프로 구성된 위스페라우드 공작가.
아무리 인간 세상에 섞여서 살고 있다지만.
그들은 엘프의 신성한 의무, 세계수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여야 한다는 그 의무를 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마도공학이 본격적으로 제국에 도입되면서, 그들의 입장이 굉장히 난처해졌다.
마도공학 기술의 남용은 필연적으로 주변의 마력을 집어삼키게 되기 마련이었기에 기술의 확산을 방해하려고 애썼지만.
결국, 그들은 실패했다.
덩달아 대중적 이미지 또한 추락에 추락을 거듭했다.
그렇기에.
“인간은 필멸이지만 예술은 불멸. 이 기회에, 엘프를 정의로운 이미지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겠군.”
가주, 슈나이센 공작의 한마디와 더불어.
“으음, 명작의 향기가 솔솔 나는 것이와요?”
진리일보의 실질적인 소유주.
슈나이센 공작의 장녀.
클로에 폰 위스페라우드 또한 그 계획에 적극 찬성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김율의 소설이 연재를 시작하기 3일 전.
통상적으로는 신문 1면은 정치 이야기로 장식되는 것이 관행이었지만──
오늘, 그 관행은 깨졌다.
“이게 뭐야?”
“연재 예고……?”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아침부터 진리일보를 받아 든 사람들은, 1면의 양옆에 장식된 사내들의 모습에 먼저 시선을 뺏겼다.
분명히, 카이사르의 최후를 묘사했었던 그림체와 흡사하면서도 뭔가 살짝 조금 더 현실적인 그림체.
김율이 지칭하기를, ‘코삼 그림체’로 그려진 미남자 둘의 모습.
푸른 옷을 입고서, 카리스마와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짓고 있는 인간 사내와.
초록 옷을 입고서, 부드럽고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하이엘프 사내.
그리고 그 둘 사이에는, 황톳빛 강이 흘러내리면서 글귀를 물결처럼 담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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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메마르고, 땅이 갈라지고.
사람들은 굶주리며 그저 울부짖었다.
인간의 하늘은 그저 그를 외면하고.
하늘은 너무도 드높아 아이의 비명조차 들리지 않으니.
이들을, 그저 배고플 뿐인 사람을 품지 못한다면.
그 어찌 참된 인간의 하늘이라고 할 수 있겠으랴.
천하가 나누어진 지 오래면 반드시 하나로 모이고.
하나로 모인 지 오래면 반드시 다시 나누어질 것이니.
지금 이 푸르른 하늘을 조금 더 낮은 곳으로.
구름을 걷어내어 인간의 소리가 닿는 곁으로.
그러면 비로소 그들은 들을 수 있으리라.
굶주린 자들의 아우성을, 그 슬픔을.
이처럼 시리도록 푸르고, 너무나도 차가운 세상에.
황금빛 태양이 떠오르는 그 순간이, 마침내 오리라.
그러니, 백성들이여.
엎드려 살지 마라.
일어나 죽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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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을 뇌에 받아들이는 순간.
그 파격에, 그 깊은 의미에.
사람들은 전율했다.
전에 없던 새로운 표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문학적 거대한 충격, 마치 시와 같은 울림.
그들은 홀린 듯이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신문의 두 번째 면에도 이야기가 조금 더 이어져 있었다.
마치 문학에 할애할 페이지를 통째로 도려와서 제일 앞에 담은 것처럼.
‘엎살일죽’이 시대와 세계를 초월해서 울린 강렬함 덕분일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홀린 듯이 그 뒷내용 또한 곱씹으면서 퍼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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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땅에, 오직 하나의 제국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제국의 하늘은 어두운 먹구름에 눈이 가리어지고, 백성들의 삶은 끝없이 무저갱에 침잠하는 것처럼 어려워만 가니.
여기, 한 사내가 깃발을 들고 노래했다.
그 뒤를, 수많은 굶주린 사람들이 따랐다.
그들은 모두 머리에 노란 두건을 쓰고 다녔으니.
사람들은 이를 일컬어 황건이라 지칭했다.
그 시작은 세상의 순리를 되찾자는 의미로 출발하였으나.
그 끝에선 결국 무분별한 파괴와 학살에 도달하였으니.
바야흐로 난세였다.
…….
…….
바로 여기에.
난세를 종결하고자 하는 사내가 있었다.
화려함이 맴도는 제국의 수도, 낙양에서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고, 교태로운 웃음과 신음만이 흘러넘치는 가운데.
“제국은, 이미 썩었다.”
창가에 불어오는, 흙 섞인 공기를 들이마시며 조조는 탄식을 삼켰다.
그리고.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또 여기에.
난세에 눈물겨워 하는 사내가 있었다.
제국의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아직은 황건의 위세가 닿지 않은 평화로운 촌락.
탁현에 사는 청년, 유비는 고개를 들어 시장에 붙은 방을 보고 있었다.
나라가 위급하니, 기개 있는 자들은 분연히 떨쳐 일어나 저 황건적들을 무찌르는 데 동참할지어다.
고개를 돌려보면.
“아이고, 아이고…….”
“여기도 더는 안전하지 않겠구나!”
황건적 때문에 가족을 잃고 떠도는 사람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불안함에 젖은 사람들의 모습이 그의 눈에 보였다.
“제국이, 이대로 무너지고야 마는가…….”
황실의 먼 후예로서, 아무런 힘도 없이 이 참상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갑갑한 기운을 채 털어내지 못한 채,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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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면에서 그들의 가슴을 두드렸던 충격적인 어휘는 사용되진 않았지만.
1면과 2면의 내용을 모두 종합함으로써,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에 관한 예고가 확실히 드러나 있었기에.
사람들은 기대를 품으며 소설이 실린 지면의 아래로 눈을 던졌다.
그곳에는.
[제국의 대문호, 본지의 자랑, 정치극의 전설.]
[율리시스 작가의 대망의 차기작. 3일 후 공개됩니다.]
김율이 보고 손발이 오그라들어버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무릇 대중이란 예술성을 한껏 가미해서 철학을 잔뜩 집어넣은 것보다, 즉각적으로 도파민을 공급해 줄 수 있는 표현을 더 좋아하였으니.
제국의 대문호!
본지의 자랑!
정치극의 전설!
대망의 차기작!
단어 하나하나마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개쩔길래?’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수식어에.
사람들은 조금씩 기대치를 높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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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대망의 당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정치 이야기나 주야장천 늘어놓던 진리일보의 1면이, 또다시 바뀌었다.
이번에는, 글자 하나도 없는 순수한 그림 한 폭이 담겨 있었다.
하이엘프 특유의 눈── 파란색 홍채에 노란색 별이 빛나는 듯한 비주얼의 하이엘프를 중심으로.
드워프라 보기엔 체구가 매우 건장한 편이었지만, 특유의 수염이 돋보이는 호탕한 사내와.
그리고 머리카락보다 훨씬 길게 늘어뜨린 수염이 인상적인, 차가운 인상의 사내가 있었다.
바로 그 세 명이, 세계수를 묘하게 닮은 듯한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술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이미지만으로도 사나이의 가슴을 울리게 할 뿐만 아니라.
반목하기 일쑤였던 엘프, 드워프, 그리고 인간이 함께 모여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은 신문의 다른 면은 다 제쳐두고, 소설 면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그들은 ‘황족이 혈통을 숨김’을 읽었다.
서로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 사내들이, 그저 작금의 개탄스러운 현실에 대한 성토 하나만으로 모여서, 의기로 똘똘 뭉쳐서 의형제의 결의를 맺는 장면을 보았다.
때로는 그림이 상상력을 제한시키기도 하지만.
잘 연출된 그림은 독자의 사고 흐름마저 휘두를 수 있었으니.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삼뽕이라는 것이 누적되기 시작했다.
물론, ‘아니, 1화부터 혈통 이야기를 하는데 왜 제목은 숨김임?’이라는 지적을 한 냉철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 또한 다음 장으로 넘기는 손길을 참아낼 순 없었다.
그렇게.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세계관을 함께 공유한다는 소설, ‘악당이 야망을 숨김’을 이어서 읽기 시작했다.
비록 복숭아나무 밑에서의 의형제 결의만큼의 임팩트는 없었지만.
- 백성들이 따르는 것은 장각의 요술이 아니라, 굶주림이다. 그들을 굶주리게 한 것은 저 성안의 탐욕스러운 돼지들이다.
제국의 구조적 모습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젊은 관리, 조조.
그리고 황건적을 토벌하라는 명과 더불어서 기도위 임명장을 두려움 없이 받아 든 그의 모습에서.
그들은 좋든 싫든, 작가의 전작──
‘몰락 귀족이 정치를 잘함’ 속 카이사르의 모습을 겹쳐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