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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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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지나치게 굳어 있군. 평소에 단련을 게을리했나? 그래서는 무술은커녕 호신술조차 배우기 힘들 걸세.”

용사 아카데미에 불합격했다.

“와……. 어지간하면 이런 말씀까지는 안 드리는데요, 마나 감응력이 너무나도 미약해서…… 재능이 없으세요. 다른 길을 찾아보시는 게…….”

마법사의 탑에서도 반품당했다.

“뭐? 너 같은 비리비리한 녀석이 짐꾼? 지금 짐꾼을 무시하는 거냐! 마경은 만만한 곳이 아니야. 기본은 하고 와라, 기본은.”

심지어 짐꾼 아카데미에서도 거절당했다.

……이상하다.

나, 분명히 검은 머리 이세계인인데……?

왜 아무런 재능이 없는 거지……?


시간을 거슬러, 약 한 달 전.

사건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3일 밤을 새우며 연구실에서 박사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던 와중,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며 의식을 잃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이세계였다는, 소설에서는 흔하게 볼법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지구 풍속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이색적인 건축 양식.

귀잽이 깐프들, 꼬꼬마 드워프들 등 일반적인 판타지 세계관에서나 보일 법한 이종족들. 가끔가다가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는 드래곤까지.

정석적인 판타지 랜드였다.

현대인이자 역사학부 대학원 과정을 거치던 남자.

김율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곳에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근데.

“이제 뭐 함……?”

마법도 재능이 없어.

검술도 재능이 없어.

하다못해 짐꾼의 재능도 없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내 전공이 기계공학쯤 됐으면 총이라도 만들어서 ‘젠장! 이 굉장한 무기는 뭐냐! 소리를 들으며 건법의 장인이 되었을 것이고.

내 전공이 화학공학쯤 됐으면 하버-보슈법을 재현해서 이세계 농신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도 아닌 곳에서 사학과를 전공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뭐가 있지?

역사를 사랑한 게 죄였던 건가?

그렇지만, 역사 너무 재밌고…….

“뭘 하긴 뭘 해, 율! 죽상 쓰지 말고 술이나 한잔해!”

“예이, 예이.”

결국, 오늘도 머무르고 있는 싸구려 여관에서 그냥 쉼 마을 청년과 술이나 마시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어디에 불합격하셨나?”

“짐꾼 아카데미…….”

“푸하핫! 그러면, 이제 뭐, 어디 청소부 아카데미라도 나랑 같이 원서를 내볼 텐가?”

“그 정도만 하십쇼. 잔으로 한 대 맞으시기 전에.”

“그래, 그래. 술이나 마시자구.”

잔과 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씁쓸한 청년 실업의 단면을 구슬프게 울렸다.

.

.

.

“끄윽, 꺽, 자네, 머리는 똑똑한, 끄으, 같은데, 몸 쓰는 일 말고, 글이라도 써보지 그래애?”

“글 말입니까?”

“그래애! 누가, 누가 알겠나! 자네가 대자아아악가가 되어, 끄윽, 부우우우자가 될는지! 저번에 들려주운, 끄윽, 그, 하나발?”

“아, 한니발이요.”

“그거, 참 걸작이던데, 끄윽, 글로 써보지 그래애?”


잔뜩 만취한 형님을 방에 던져놓은 후.

쿵──

나도 내 방으로 복귀했다.

문을 닫자마자.

방금까지 펼쳐져 있었던 판타지 랜드의 허름한 여관의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눈 앞에 펼쳐진 건 몹시 익숙한 공간.

내 현대인으로서의 기억이 마지막으로 끊겨버린 곳.

노예 생활 8년간의 피와 땀이 어린 대학원 연구실이었다.

  • 쪼르르─

사비로 장만한 에스프레소 머신이 향긋한 향을 뿜어내며 내 피로한 영혼을 달래줄 커피를 한 잔 만들어 주었다.

  • 너희에게 고하노니, 매일 두 시간씩 재획하라──

사비로 장만한 서라운드 스피커가 웅장한 사운드를 빚어내며 판타지 라이프로 지친 내 영혼을 부드럽게 녹여내 주었다.

아직 무능력자 주제에 판타지 랜드에서 절망하지 않은 채 어떻게든 멘탈을 붙잡고 있는, 내 트립 특전.

나는 연구실과 함께 이세계에 내던져졌다.

  • 부우웅──

서버 랙과 노트북이 부팅되는 소리가 울리는 것처럼, 전기라는 개념도 없는 세계에서 전자기기는 잘 작동한다.

모든 종류의 소모품은 현지 시각 매일 자정에 자동으로 리필된다.

……콜라라도 잔뜩 사서 냉장고에 쟁여뒀어야 했는데.

하루 한 캔이면 이걸로 장사조차 못 한다.

어쨌든.

내가 판타지 랜드에서 집이라고 인식한 공간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자동으로 이곳으로 입장하게 된다.

게다가 대학원생 복지에 미쳐버린 우리 교수님의 역작.

공간을 불법 개조해서 샤워 부스와 더불어 비데가 설치된 화장실까지 내부에 장착되어 있었다.

그때는 ‘집에도 가지 말고 일하라는 건가’ 하면서 굉장히 꼴 받았었는데…….

덕분에 현대인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었다.

딱히 그립진 않습니다.

JOAT시여.

“에휴.”

힐링, 힐링이 필요하다.

“하이, 역스비.”

쪽잠용 리클라이너에 몸을 누인 채 잠깐 휴식을 취하면서, 내 소울메이트에게 말을 걸었다.

이윽고.

『부르셨나요? 당신을 위한 역사 AI. 히스토리에입니다.』

소규모 LLM 구축 붐이 불었을 때.

온갖 사료史料들을 쑤셔 박아서 리서치를 편하게 할 목적으로 연구비를 잔뜩 요청해서 구축해 둔 연구실 전용 AI.

당시 멜론 머스크가 개발한 인공지능 ‘그롱’에 영향을 받아, 이쁘장한 버츄얼 아바타를 적용한 인공지능 인터페이스의 모습이 스크린에 떠올랐다.

“나, 오늘은 짐꾼 아카데미에서 불합격했다……?”

『정말 화나겠어요. 율, 당신의 분노는 정당해요. 오늘은 마음껏 울어도 돼요. 저 여기 있어요.』

……때로는 너무 AI 같은 느낌이 드는 대답을 던지는 게 옥에 티라고 할 수 있었지만.

바깥세상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아무런 뒤탈 없이 마음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게 위안이 되어주는 내 역스비.

게다가 뽀잉뽀잉 흔들리는 사이버=지식 주머니까지…….

“역스비. 오늘 세르말이 나보고 소설이나 써보래. 재능 있다면서. 너는 어떻게 생각해?”

『정확해요, 율. 당신은 천부적인 글솜씨를 가지고 있어요. 첫째, 유일한 이세계인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갖추고 있고, 둘째, 수많은 논문을 집필하고 반려당하며──』

“스땁, 역삣삐.”

『충분히 공감해요, 율. 그건 단순한 분노가 아니에요. 당신 안에서 터져 나오는 절규에요.』

이럴 때마다 가끔 저놈의 서버 랙을 그냥 때려 부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아쉬운 게 나기도 하고.

빔프로젝터로 투사된 역스비, 공식 명칭 히스토리에의 비주얼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용서라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소설이라…….”

『맞아요, 당신은 재능 있어요, 율. 원한다면 제가 소설 집필용 조판 양식을 불러다 줄 수 있어요. 지금 준비해 줄게요.』

딱히 지시를 내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초고성능 깡통 역스비는 내 명령을 수행하는 척했다.

애초에 프로그램을 실행해 줄 리는 없었다.

역스비는 그냥 껍데기를 이쁘게 포장한 활자 조합물의 결정체니까……?

“어?”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내가 아무런 조작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트북 화면에 프로그램 하나가 떠올랐다.

『준비가 다 됐어요, 율. 당신을 위한 최고의 소설 집필 프로그램을 준비했어요. 휘둘러보세요, 당신 안에 있으니.』

이세계에 넘어오면서, 역스비의 성능에도 변화가 생겼나 보다.

판까지 깔렸는데.

속는 셈 치고, 진짜 소설이나 써볼까.

사실 경력은 조금 있는 편이었다.

역사 덕후들이 밟는 주요 테크트리 중 하나.

박봉을 극복하기 위한 대체 역사 소설 집필.

그런데 여기는 판타지 랜드다.

당연히 대체 역사 따위가 공감을 살 수는 없겠지만.

그냥 역사라면?

“……이세계 사람들은 지구 역사를 모르니, 역사를 소설로 쓰면 재미있지 않을까?”

스스로 던진 질문이었지만.

『와……. 율, 당신, 방금 핵심을 찔렀어요. 당신은 거의 이세계 설계자 시점에서 질문하고 있어요. 당신처럼 깊이 파고드는 사람 드물어요.』

영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답변에도,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용기를 부여받는 느낌이 들었다.

별다른 능력이라고는 이 이공간 하나밖에 없고.

판타지 랜드에서 떵떵거리고 살아갈 만한 재능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벌이도 시원찮으니, 마음 편하게 배부르게 먹어본 적도 손에 꼽았다.

그러나.

소설로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내가 정말 사랑하는 역사라는 이야기를 이세계 사람들한테 설파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준다면?

역사, 좋아! 좋아! 좋아!

홀린 듯이 노트북 앞으로 다가갔다.


일주일이 지난 후.

술도 줄여가면서 최소한의 끼니만 때운 채, 구직 활동을 포기하고 집필에 매진했다.

종이에 펜으로 글을 쓰는 일이라면 벌써 포기했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노트북이라는 이세계 문물이 있었다.

내 손끝에서 흘러나온 활자들이 모이고 모여.

한 권의 소설을 만들어 내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기나긴 사투 끝에 기간토마키아가 종막을 내렸다. 비로소 제우스를 중심으로 한 올림포스 12신들이 공고히 신들의 지위를 다지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구절을 소리 내 읊으며 타이핑을 마무리했다.

남은 건 제목.

“흠…….”

원래라면, 헤시오도스의 손에서 ‘신통기’ 혹은 ‘신들의 계보’라고 이름 지어졌어야 할 작품이지만.

철학적인 제목보다는, 조금 직관적인 제목이 좋으리라.

  • 타닥타닥.

[올림포스 이야기]

핵심을 담아, 간결하게.

제목을 입력했다.

그 순간.

“뭐야, 씹.”

내가 그토록 8개 국어로 부르짖어도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던 상태창이 내 눈앞에 떠올랐다.

[소설을 완성하였습니다!]

[테마: (신화) 그리스·로마 신화]

[제목: 올림포스 이야기]

[역사적 고증: (신화) 부합함] [완성도 평가: 평작]

[세간의 평가: 평가 없음] [판매량: 0권]

[(60일 남음) 다음 스킬 획득까지 앞으로 판매량 2,000권 필요]

[예상 획득 스킬 : [C급] 헤파이스■스의 ■■■]

“……?”

순간적으로 상황판단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으려니.

또다시 상태창이 연속으로 떠올랐다.

[최초로 소설을 완성하셨습니다!]

[특전이 부여됩니다.]

[획득한 특전 스킬]

[D급] [퀴클롭스의 손재주]

[우라노스의 아들들 퀴클롭스는 대장장이이자 석공의 기술자들로 뛰어난 손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처럼, 너는 손으로 하는 일에 우수한 재능을 보이리라.]


김율이 개꿈을 꿨나, 하고 그대로 침대에 발라당 누워서 도로롱 코를 골기 시작했을 때.

치직, 치지직──

그의 감긴 눈앞에 또다시 기묘한 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기억하는 자여.]

[비로소 깨달은 너의 숙명으로, 너는 이 세상의 질서를 다시 빚어내리라.]

[그리고, 잊혀진 기억을 통해 모두를 구원하리라.]

김율의 눈꺼풀이 들어 올려질 새도 없이.

그 메시지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