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2 KiB
정연을 치료하겠다는 유성을 순순히 두고 볼 방혁이 아니다.
“안 됩니다. 백의원님은 소옥과 함께 계셨지 않습니까? 그때 이후로 문주님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성은 이 자리에 모인 장로들의 기색을 살폈다.
그들 중 일부는 방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고 일부는 망설이는 눈치다.
장로들을 끌어들여야 평화롭게 정연을 만날 수 있다.
“혹시 저를 의심하고 계십니까?”
“소옥과 함께 계셨으니 당연히 백의원님도 일말의 의심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림맹과 관계를 생각해 억류하지는 않겠습니다. 문주님은 저희 쪽에서 치료해볼 테니 백의원님은 이만 돌아가십시오. 추후에 조사가 필요하면 무림맹을 통해 정식으로 요청하겠습니다.”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우며 단호하게 막아서는 모습.
“저는 제 이름을 걸고 그날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함이니 제가 치료하게 해주십시오.”
장로들 몇 명이 유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백의원의 명성은 들었지. 방혁, 정말 백의원이 이름까지 건다는데 한번 치료를 맡겨봐도 될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일부 장로들이 유성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다.
방혁이 이를 갈았다.
정연이 쓰러지고 아직 모든 장로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기에 지금이 가장 정치적으로 취약한 시기였다.
‘이런 줏대없는 자들. 내가 말할 때는 다 백유성을 직접 만나게 하는 건 위험하다는데 동의 했으면서….’
며칠만 기다리면 아무 의심 사지 않고 정연을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다.
그때까지 무조건 시간을 끌어야 하는 방혁은 오늘 유성을 돌려보낼 생각으로 강하게 나갔다.
“비록 약간의 명성을 얻고 있기는 하나 그대의 이름값이 문주님의 목숨을 걸고 도박할 정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 문주님이 잘못될 수 있으니 다른 의원분들께 맡겨본 후 그때도 안 되면 백의원께 부탁하겠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십시오.”
“….”
소옥의 심복으로부터 내부 사정을 어느 정도 들은 유성은 방혁의 수작을 짐작하고 있지만 정연쪽 장로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그들이 방혁에게 설득당하면 곤란하다.
다시 한번 유성이 입을 열려는 순간.
“그럼 내 이름값은 어떻소?”
내공까지 실린 묵직한 음성이 접객실을 가득 채웠다.
장로중 하나가 의문을 표했다.
“그대는 누구기에 그런 말을—”
이야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정립이 죽립을 벗었다.
‘어차피 끝까지 숨길 생각은 없었다. 그저 대화에 방해되지 않도록 이목이 끌리는 걸 피했을 뿐.’
사람들의 시선이 죽립을 벗은 그에게 쏠렸다.
“척마대주!”
“아니, 그대가 여기까지에 무슨 일이오? 그 모습은 뭐고?”
장로들이 놀라 몸을 일으켰고, 방혁도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당황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였으나 내 부하들을 제압했다는 자가 척마대주 정립이었다고? 무림맹이 개입한 건가? 도대체 왜?’
정신을 차린 그는 얼른 앞으로 나섰다.
정립의 등장은 변수지만 명분을 따져 물으면 무림맹은 나서지 못할 거라는 계산이 섰다.
무림맹은 명분에 집착하는 꽤 고리타분한 집단이 아닌가.
정사지간이며 요즘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하오문을 적대할 이유가 없다.
“척마대주님. 무림맹에 도움을 요청드린 적이 없는데 설마 본문의 일에 무림맹이 개입할 생각이십니까? 이는 원칙에 어긋난 행동이 아닙니까?”
정립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것은 유성도 마찬가지. 하지만 오해를 사게 둘 수는 없다.
“정립님은 오늘 탈맹하여 낭인 신분입니다. 이제 무림맹과 연관이 없습니다. 제가 고용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사실이오. 그러니 내 고용주인 백의원님과 이야기하시오. 백의원님의 말은 내가 보증하겠소.”
척마대주라는 신분이 없어도 정립은 그 자체로 화경의 고수다.
강호에서도 절대 흔하지 않은 경지.
그가 자기 이름을 건다는데 거기다 대고 이름값이 충분하지 않다는 소리를 할 수 없다.
무림맹이라는 제약을 벗어 던졌으니 조금 험하게 나올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방혁은 끈질겼다.
“설마 무림맹에서 하오문에 개입하기 위해 수를 쓴 것은 아니겠지요? 임시로 탈맹하는 시늉만 했다거나….”
어떻게든 그를 떼어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 부분은 맹주님께 확인하시오. 나는 분명히 탈맹했다고 밝혔소. 설마 내 말을 의심하는 것이오?”
이제 정립에게서 날카로운 기세까지 뻗어 나왔다.
그 기세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방혁의 다리가 달달 떨리는 것을 보며 유성은 생각했다.
‘조의원과 모용림에게 들이 박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꽤 터프하신 분이네. 하지만 내 편이라 든든하다.’
“그, 그래도….”
이야기가 이렇게 되었는데도 망설이는 방혁은 누가 봐도 수상해 보였다.
“방혁. 척마대주, 아니, 정립님도 보증하는데 백의원의 말을 믿어야 하지 않겠나? 맹주님까지 거론되었으니.”
“맞다. 이제 무림맹 소속도 아니라지 않나? 그의 이름값이라면 믿을 수 있다. 자꾸 막아서는 다른 이유가 있느냐?”
의심의 눈초리와 함께 반대파 장로들이 압박하자 방혁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의 편을 들어 주기로 했던 장로들도 몸을 사리는 판에 혼자 모두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장로님들 말씀이 맞습니다. 정립님의 이름값이라면 믿을 수 있지요.”
억지로 정연과 백유성의 만남을 막으려다가는 큰 의심을 사게 생겼다.
이제 그가 기댈 곳은 하나뿐.
암시장에서 정말 우연히,
언젠가 써먹을 날이 올 거로 생각해 큰돈을 주고 구한 독.
출처가 불분명했으나 효과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서서히 중독시켜 놓으면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기절시킬 수 있고, 며칠 안에 사망에 이르게 하는 독이다.
‘은밀히 여러 의원들에게 의뢰해 봤으나 아무도 그 독의 해독법은커녕 정체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아무리 백유성이라고 해도 알아낼 수 없을 거다.
차라리 잘 됐다. 그가 고칠 수 없다고 선언하면 소옥에게 모든 걸 뒤집어 씌우면 된다. 그럼 하오문은 내 차지다.’
계산을 끝낸 방혁은 유성에게 포권지례를 취했다.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그저 사부님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만전을 기하기 위함이었으니 용서하십시오. 꼭 문주님을 치료해주십시오.”
유성이 그의 표정을 살폈다.
꼭 치료해 달라는 말과 달리 눈동자에는 약간의 차가움이 느껴진다.
“제가 기필코 치료해낼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방혁님도 만족하실 겁니다.”
“….”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허공에서 시선이 부딪힌다.
장로들과 방혁이 유성과 정립을 정연이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하인 하나가 그곳을 지키고 있다가 문을 열어 주었다.
‘은밀한 곳으로 옮겨 놨군. 무작정 들이닥쳤으면 하오문주를 찾아다니는 사이 빼돌렸을지도 모르겠네. 정식으로 요청하기를 잘했다.’
방 안에는 은은한 약초향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정연은 침상 한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얼굴이 창백하고 경직되어 있다.
“문주님은 소옥과 만난 후 노망 증상이 나타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잃으셨습니다. 살펴 보시죠.”
유성은 정연의 안색을 살피고 진맥을 시작했다.
방혁이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미 몇 명의 의원들이 다녀갔다. 하지만 그들 중 독에 조예가 깊은 한 명만 독이 쓰인 것 같다고 의심했을 뿐, 확신하지 못했다. 비록 백유성이 운이 좋아 무림맹 무사를 해독한 적이 있어도 이 독을 밝혀내지는 못할—’
“독이군요. 문주님은 지금 중독되셔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이라니요. 겉으로 아무 낌새가 나타나지 않습니다만. 다른 의원들도 다녀갔지만 독이라고 단언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건 독이 맞습니다.”
진맥중 은밀하게 해독스킬을 사용해 본 유성이 단번에 독이라고 단언하자 방혁은 당황했다.
게다가 자신만만한 표정까지.
방혁은 꽤 불안해졌다.
‘영술이라고 했지? 그걸 이용한 해독 능력의 한계가 어떻게 되는 거지? 그저 간단한 독만 해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잘못된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유성은 무림맹 의각 시험 당시 암각 무사를 치료할 때 독을 억제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약간의 독성만 남겨두고 해독을 마친 상태였다.
양의원이 독이 억제된 무사를 손쉽게 해독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방혁은 유성의 영술이 강력한 독을 해독할 능력은 되지 않는다고 오판한 것이다.
유성이 기다란 침을 하나 꺼냈다.
“그럼 해독부터 하겠습니다.”
“일침신의….”
장로중 하나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유성이 정연의 심장 부근에 침을 찌르고 스킬을 발동시켰다.
[해독]
이번에는 힘 조절하지 않았다.
완전 회복시켜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은밀한 독에 잠식당해 서서히 죽어 가고 있던 정연의 표정이 사르르 풀렸다.
장로 하나가 그걸 보고 안색이 밝아졌다.
“오! 백의원, 문주님 표정이 편안해지셨군. 잘되고 있는 건가?”
“잠시만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유성은 해독을 마친 침을 뽑아내고 곧바로 짧은 침을 들었다.
정연이 깨어나 또 헛소리 하면 곤란하기에 내친김에 치매까지 치료하기 위함이다.
해독과 달리 유성이 완치를 장담하기 힘든 부분이다.
‘내가 치매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별로 없다. 하지만 분명 효과는 있을 거야. 모든 기억이 복구되면 좋겠지만 제정신만 차려도 충분하다.’
짧은 침이 정연의 백회혈로 향했다.
“어허, 그 위험한 곳에 어찌…!”
백회혈에 침을 놓는 모습을 처음 본 장로가 살짝 당황했으나 유성은 신경 쓰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정립이 지켜 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제발 잘못돼라!’
방혁이 속으로 간절히 소리쳤으나, 제갈영영을 통해 숙달된 유성이 백회혈 시침에 실수할 리 없다.
[치유]
유성만 느낄 수 있는 신성력이 백회혈을 타고 머리로 스며들어 정연의 뇌를 감싸 안았다.
그런데.
‘이런, 치유스킬의 한계인가? 이미 소실된 부분이 있다.’
신성력이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쏟아부어도 더 이상 좋아지지 않았다.
유성은 문제가 크지 않기를 바라며 치료를 마무리했다.
백회혈에서 침을 회수하자.
“으으음….”
정연이 침음성을 흘리며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