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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은 현실 세계와 이곳을 통틀어 집에 외간 여자를 들인 적이 없다.
그래서 자신도 이 상황이 무척 신기했다.
너무 편안하지 않은가.
아마 제갈영영의 망가진 모습을 봐서 친근함이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뒤늦게 옷이 많이 흐트러진 것을 알아차린 제갈영영이 뒤로 돌아 옷매무새를 고친 후.
유성은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왜 그런 수상한 복장으로 찾아오신 겁니까? 저는 처음에 살수라도 찾아온 줄 알았습니다."
"하... 말도 마세요. 누가 저한테 이상한 소리를 해서 정말..."
"어떤 이상한 소리 말씀이신지요?"
제갈영영의 입이 꾹 담겼다.
'내 입으로 모용림 장로가 한 말을 당사자에게 전하라고? 절대 못해!'
그녀가 유성에게 마음을 품고 매일 치료를 핑계로 만나러 가더라, 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한동안 눈싸움이 이어졌으나 유성은 그녀의 입이 절대 열리지 않을 기세라 물러섰다.
"그렇군요. 어쨌든 이상한 소리를 들어서 그런 옷차림을 했단 말씀이시군요."
"말 못 하는 이유가 있으니 이해해 주세요. 아무튼 더 오해 사면 곤란해서 정체를 숨기려고 그런 거예요. 만약 누군가 제가 여기 찾아왔다는 걸 알아채기라도 했다면 정말 끔찍했을 거예요."
"..."
철권개 분타주가 부리는 개방도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거지는 어디에나 있다.
낙양이 대도시라고 해도 거지의 숫자가 더 적은 것은 아니다.
비율은 적을지라도 인구가 많으니 숫자는 오히려 더 많을 수도 있다.
과연 이 비밀이 끝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큰 의문이 들었으나 유성은 굳이 제갈영영에게 개방도들에 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지금 말한다 해도 바뀌는 건 없을 테니까.
"잠깐, 그런데 조금 서운하네요."
"뭐가 말씀이십니까?"
"살수라도 찾아온 줄 알았다는 말이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그렇게 수상하게 보였나요? 조금 펑퍼짐하게 입고 얼굴만 감춘 것뿐인데요."
사실대로 말한 것이지만 서운한 기색을 드러내는 그녀를 보고 유성은 잠시 고민했다.
'어차피 조력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굳이 숨길 필요는 없지. 게다가 어디서 그자가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는 바깥보다는 여기가 사정을 털어놓기 제격이야.'
마음을 굳힌 유성이 진지한 눈빛으로 제갈영영을 응시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실 제가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감시당하고 있거든요. 살수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뭐, 뭐라구요? 살수? 도대체 누가 우리 백의원님을 해치려고 한다는 말이죠? 절대 안 돼요!"
펄쩍 뛰는 그녀의 태도가 유성을 흡족하게 했다.
우리 백의원님이라니, 마치 소중한 사람이 된 것 같지 않은가.
그 생각은 착각이 아니었다.
"의원님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나는... 아, 안 돼...!"
마치 무슨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제갈영영이 얼굴을 감싸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꼭 살수라는 게 아니고 단순 감시일 수도 있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개방에서 저를 도와주고 있으니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해도 그녀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무슨 생각하는지 시시각각 심각해지기만 했다.
잠시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
"혹시 진법 한번 배워 보시지 않을래요? 저희 가문의 것은 가르쳐드리지 못하지만 기본 진법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진법이요? 갑자기 그게 무슨... 총군사님이 저에게 왜 진법을 알려주신단 말입니까?"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네?"
제갈영영이 잠시 뜸을 들였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치료비죠, 치료비. 오늘 휴가신데 저를 치료해주셨으니 치료비를 넉넉히 드려야 마땅해요. 저는 마침 돈을 안 가져 왔으니 의원님이 몸을 지킬 수 있는 진법을 가르쳐드리는 것으로 치료비를 대신하고 싶군요."
치료비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지 몹시 수상쩍었다.
그리고.
유성은 조금 전 제갈영영이 장포를 훌러덩 벗어 던지고 옷이 흐트러져 있을 때 그녀의 허리춤에 달린 전낭을 목격했다.
물론 그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진법을 가르쳐 준다는 말에 혹했으니 괜히 민망하게 만들 필요 없다.
내공을 익히지 못하는 몸으로 진법을 사용할 수 있다면 몸을 지킬 무기가 하나 늘어나는 셈이다.
이건 좋은 기회였다.
"제가 훨씬 과한 대가를 받는 것 같기는 하지만 거절할 수 없군요. 그런데 제가 진법에는 문외한인데 내공이 없어도 진법을 쓸 수 있습니까?"
"익히기 훨씬 어렵지만 내공이 없어도 쓸 수 있기는 해요. 추천드리지는 않지만요. 내공 심법은 이제부터 익히면 돼요. 기본 심법들은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요. 적은 내공만 있어도 진법을 펼치기 훨씬 쉬워요."
제갈영영은 내공이 없으면 훨씬 복잡한 계산을 필요로 해서 진법 설치 난이도가 어렵다는 설명을 늘어놓았다.
유성이 쓰게 웃었다.
"저는 지금 단전이 다쳐 내공을 익히지 못합니다."
"앗... 죄송해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괜찮습니다."
제갈세가가 아무리 두뇌로 널리 알려진 가문이지만 기본적으로 무가다.
제갈영영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다 해도 내공을 잃은 무인의 심정을 빙산의 일각이나마 깨닫지 못할 리가 없다.
그가 괜찮다고 말했지만 씁쓸한 표정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도 보았다.
'정말 안 됐잖아? 설마 의술이 이렇게 뛰어난 것도 스스로 단전을 고치기 위해 정진해왔기 때문일까?'
유성이 무사해야 지속해서 두통을 치료받을 수 있다.
그의 안전을 위해 내공을 익히게 하고 몇 가지 간단한 진법을 가르쳐 주려던 그녀는 너무 미안한 마음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괜찮으시다면 어려울 수 있지만 내공 없이 진법을 펼칠 수 있도록 제가 직접 진법 공부를 시켜드릴까요?"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지만... 많이 어렵습니까?"
"내공을 이용하면 변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설치 난이도가 급감해요. 그렇지 않으면 모든 변수를 고려하고 다 계산해야 해서 설치 난이도가 확 올라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부지런히 익히면 간단한 진법은 한, 둘 정도는 배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군요."
"여기까지 온김에 오늘부터 시작해요. 이번에는 기초만 조금 봐 드릴 거예요. 그리고 제가 매일 치료받으러 의방에 들를 때 혼자 공부하실 수 있을 만큼의 내용을 적어드릴게요."
"좋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뭐든지 배워두면 다 피가되고 살이 되는 법이다.
진법책이 귀하기는 하지만 어찌어찌 구해 익힐 수도 있다.
하지만.
무려 무림맹 총군사, 게다가 진법으로 유명한 제갈세가 사람이 직접 가르쳐 주는 기회를 마다할 필요는 없다.
"그럼 먼저 진법의 개념에 대해 설명해 줄게요. 진법은 자연물 또는 인공물을 특정한 방식으로 배치하여 특수한 효과를 발생 시키는 거예요.
진법에 들어선 사람이 길을 잃고 헤매게 만들 수도 있고 그 안에 들어가 몸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죠.
집이나 특정 장소에 미리 설치해 놓으면 유사시 큰 도움이 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집에 침입했는데 진법에 걸려 길을 잃고 제자리를 빙글빙글 돈다거나, 또는 감당하기 힘든 고수가 쳐들어 왔을 때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자연물이나 인공물을 특정한 방식으로 배치한다고 했죠? 이 부분이 문제가 돼요.
내공이 없다면 기를 불어넣어야 하는 인공물은 사용할 수 없어요. 자연물을 이용해야 하는데 자연물을 배치하는 건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수많은 변수들을 계산해야 하거든요."
"변수 계산이 어렵나 보군요."
"변수는 한, 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모든 변수들의 교집합을 찾아야 하니 정말 까다로운 작업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군요."
"자, 그럼 제가 변수를 계산하는 방법들을 설명해드릴게요. 한 번에 잘 안 될 테니 지금은 이런 게 있다 정도로만 듣고 잊어버리세요. 하나씩 차근차근 익혀나가면 돼요."
제갈영영이 단단히 겁을 주었다.
유성은 변수 계산이라는 것이 꽤 어렵겠다는 각오를 다졌으나.
"아,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정말요?"
"물론입니다."
"솔직하게 말씀해주셔도 돼요. 지금 기초를 확실하게 다져두지 않으면 다음에 공부할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거든요."
"정말 다 이해했습니다만."
"..."
제갈영영이 가르쳐 준 기초를 공부하는데 그녀의 반응이 이상하다.
반응을 보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여기는 듯한데, 한번 설명을 듣자 쉽게 이해가 됐다.
선천오성의 힘도 있지만 현대 수학도 큰 도움이 되었다.
어찌 되었건 고등 과정까지 마친 유성이다.
변수 계산에 필요한 여러 계산 방법들을 듣자 그것들에 현대 수학을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로 공간을 파악하는 계산이 주를 이루었고 그건 현대 수학에서 공식화가 잘되어 있었다.
머리가 팽팽 굴러가며 몇 가지 공식을 적용하자 변수 계산이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했을 뿐인데 제갈영영이 믿기 힘들다는 시선을 보내왔다.
"시험이라도 해 보시겠습니까...?"
진도 빼기도 바쁜 와중에 아는 내용으로 괜히 시간 낭비할 필요 없다.
제갈영영은 유성의 말을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정확히는 전혀 믿지 않았다.
그녀 역시 유사시를 대비해 자연물과 인공물을 이용하는 방법을 모두 공부한 것일 뿐, 진법은 인공물을 이용해서만 펼친다.
가장 간단한 진법을 설치하는 것만 해도 자연물이 최소 열 개 이상 필요한데 모든 변수를 계산하는 것은 너무 많은 수고가 드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탁-
유성이 열 번째 돌멩이를 내려놓자 순간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방금 알려 준 은둔진이 유성의 손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펼쳐진 것이다.
처음 설명해 준 것 외에 그녀의 도움 하나 없이.
"...말도 안 돼."
마치 귀신에 홀린 것만 같았다.
유성이 은둔진에 대해 배우고 나서 실제 설치까지 걸린 시각은 촌각.
솔직히 그녀도 자연물을 이용해서는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은둔진을 펼칠 자신이 없었다.
제갈영영이 어릴 적, 그녀의 아버지이자 제갈세가의 가주는 이런 말을 해준적이 있다.
"영영아, 세상은 정말 넓단다. 천하인들이 인정하는 두뇌로는 우리 제갈세가와 사마세가가 있으나 우리보다 뛰어난 사람이 어딘가는 존재할지 모른다. 항상 겸손하고 정진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넌 우리 가문의 역사에서도 대단히 뛰어난 아이니 중원 최고가 될 수 있을 거다."
그녀는 아버지의 말씀을 잘 따랐고 집안에서 기대한 것처럼 훌륭하게 자라났다.
마침내 무림맹 총군사 자리까지 꿰찼다.
20대 초반인 그녀가 지혜가 물이 오른 40대의 사마천을 꺾어냈을 때, 사마천의 승리를 예상한 무림맹 사람들이 얼마나 뒤집어졌던지.
그 장면은 제갈영영에게 있어 가장 통쾌한 기억으로 꼽혀왔다.
중원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은 아마 자신이지 않을까 생각한적도 있다.
그런데.
"제 말이 맞죠? 정말 제대로 이해한 거 맞다니까요. 그나저나 진법이란 정말 신기하군요. 혹시 다른 진법도 배울 수 있습니까? 재밌네요. 당장에라도 써먹을 수 있겠습니다."
신기한 듯 자연물을 다 흩어 버리고 다른 위치에 다시 한번 은둔진을 설치하는 유성.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은둔진이 펼쳐졌다.
다시 한번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녀는 마치 어린아이라도 되는 듯 신이 나 진법을 해체하고 설치하는 유성을 보며 낯선 감정을 느꼈다.
'사실 나는 똥멍청이인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