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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을 끝내고 주루 밖으로 나온 팽지산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3층을 올려다보았다.
"와하하하하!!!!"
백호단주가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1층인 여기까지 들려왔다.
'설마 날 조롱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헤어질 때까지 유성이 딱히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기에 금방 의심을 접은 팽지산은 진영호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괜히 이 녀석이 유성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제대로 축하 자리를 즐기지도 못한 것이다.
시켜 놓은 음식들의 대부분은 아직 손도 대지 못한 상태로 위에 그대로 놓여 있을 것이다.
"진형,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맞소? 백호단주님이 백의원이라고 부르며 저렇게 친근하게 굴지 않소?"
"팽형, 저 녀석은 백가장의 둘째가 맞소. 그런데 백의원이라면..."
진영호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백호단주가 친근하게 굴만한 백의원이라면 한 명 떠오르는 자가 있었다.
"백유성이 설마 그 백의원이라고...? 아니, 의술을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텐데. 설마 무공을 익히기 전에 의술을 먼저 익히고 있었나?"
"혼잣말만 하지 말고 아는 게 있다면 말해 보시오."
"아, 팽형. 혹시 아까 백유성 그놈... 아니, 그 의원이 낙양 의방의 백의원이 아닌가 해서 그렇소."
"낙양 의방의 백의원이라면... 척마대주님이 싸고 돈다는 그 의원말이오? 아까는 호남 백가장의 자제라고 하지 않았소?"
"백가장의 자제도 맞소. 아무래도 동일인인 듯하오."
이용해 본 적은 없으나 팽지산도 낙양 의방 백의원의 소문을 들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의원으로, 내상을 입은 무림맹 무사들도 그의 치료받고 나면 금방 떨쳐 내고 일어나게 할 정도로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단다.
조심스럽게 낙양 의방 제일 의원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흥, 무공에는 재능이 없어도 의술에는 꽤 재능 있나 보군.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그러게 말이오.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번 술은 내가 살 테니 다른 곳으로 갑시다."
진영호의 말에 팽지산도 정신을 차렸다.
약간 체면을 구겼지만 더 이상 백유성이 화제가 되어 좋을 일은 없다.
팽지산은 무림학관 후기지수들을 데리고 다른 장소로 향했다.
남궁유린은 맨 뒤에서 따라가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녀는 백유성의 이름을 듣자마자 그가 낙양 의방의 백의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듣던 대로 아주 잘생겼고 젊어. 백유성이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 중 낙양에 있을 사람은 그밖에 없을 거야.'
남궁유린은 얼마 전 그에 대한 소식을 듣고 낙양 의방에 한번 찾아가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와중 우연한 기회에 그를 먼저 보게 된 것이다.
'백호단주님도 큰 덕을 봤다더니. 오늘 보니 그를 많이 아끼는 모양이야. 실력이 대단한가 보네. 어쩌면 그 사람이 오라버니를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
백 년 기재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떠들석 하게 만들었던 남궁유현의 여동생이 바로 그녀였다.
"유린. 앞으로 오지 그래."
"잘 따라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뒤로 가지. 진형, 앞장서주시오."
"아, 물론이오."
진영호가 몰래 팽지산에게 주먹을 불끈 쥐며 웃었다.
짝사랑녀와 잘해 보라는 의미다.
유성은 해가 뜨기 직전 스르륵 깨어났다.
백호단주, 차의원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으나 숙취는 전혀 없었다.
애초에 취하지를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물로 목을 한번 축이고 마당으로 나가 목검을 집어 들었다.
유성은 내공심법을 운용할 수는 없으나 매일 아침 검법을 수련하고 있었다.
휙- 휙-
목검이 흐물흐물 움직였다.
찌르고 베고, 변화하고.
어지럽게 초식이 펼쳐진다.
백가장의 가전무공 참환검법에서 시작했으나 지금은 그 뿌리조차 알아볼 수 없게 변형이 되어 있다.
다른 무공을 견식할 때 얻은 깨달음이 접목되고 있는 것이다.
'참환검법은 베기 위주의 제법 쓸 만한 검법이다. 그러나 분명 상승무공이라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난 가문에서 나온 몸이니 그대로 사용해서도 안 되고. 나만의 무공이 필요하다.'
내공이 실리지 않았기에 큰 위력은 보이지 않았으나 언젠가 내공을 회복한 후에는 흐물흐물한 움직임에 강맹한 힘이 실릴 것이다.
그때 되면 검법의 진가가 드러날지 모른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새로운 검법은 조금씩, 하지만 꾸준하게 변화해나갔다.
'후, 오늘은 이쯤 할까.'
검법에 이어 권각법, 보법을 얼마간 수련한 유성은 몸을 씻고 식사한 후 의방으로 출근했다.
낙양 의방에 방문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삶의 여유가 있는 자들이다.
조금 더 여유가 없는 자들을 위한 의방은 또 따로 있다.
그러나 유성은 그날 오후 허름하고 여기저기 흙범벅된 옷을 입고 있는 남자를 환자로 받게 되었다.
그는 사십 대 정도로 얼굴이 타서 시커멨으나 눈이 쳐져 순박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어깨에 낡은 망태기를 메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약초꾼으로 보였다.
하인이 절뚝거리는 그를 데리고 들어왔다.
"의원님, 제가 약초를 캐다가 산에서 굴렀는데 발목을 접질렀습니다. 의원님이 용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왔는데 혹시 이거 오래 쉬어야 할까요? 꼭 캐고 싶은 약초가 있어서 무리했더니 그만..."
혹시 일을 못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스러움이 표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번 봅시다."
과연 혼자 걷기 힘들 만 했다.
오른쪽 발목이 시퍼렇게 멍들고 퉁퉁 부어 있어 까딱 잘못했으면 산에서 내려오지도 못했을 수준이었다.
최소 몇 주에서 길게는 한 달 이상 쉬어 줘야 할 수도 있다.
유성은 그의 행색을 살폈다.
약초꾼은 몸으로 먹고 사는 직업. 오래 쉬게 되면 먹고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신경 써서 치료해 줘야겠는걸. 신성력이 조금 소모되겠군.'
열심히 쌓아온 덕에 그 정도는 여유가 있다.
"침을 잘 맞으면 될 것 같군요. 잠깐 다른 곳을 보고 있으십시오."
"네? 네."
영문 몰라 하는 약초꾼이 천장을 쳐다보았다.
유성이 시침을 하며 치유 스킬을 발동하자 시퍼런 멍이 빠지며 붓기가 스르륵 가라앉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이런 현상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잠시간 시선을 돌리는 편이 둘러대기도 좋다.
부은 위치에 침을 찌르자 약간 이마를 찡그렸던 약초꾼의 표정이 갑자가 사르르 풀렸다.
"어?"
통증이 빠져 의아해하는 약초꾼에게 말했다.
"다행히 겉만 요란하고 속은 별거 없었으니 하루 이틀쯤 푹 쉰 후에 괜찮으면 산행을 나가도 좋습니다."
"아니, 붓기가 벌써 빠졌답니까?"
"운이 좋으셨습니다. 다음에 또 다치시면 위험하니 약초를 캐려거든 조금 더 안전한 곳에서 캐십시오."
약초꾼은 신기한지 손으로 발목을 주물러보다 깜빡 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의원님. 제 이름은 초산이라고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거푸 감사 인사를 한 초산이 사라진 후, 유성은 잠시 후 또 다른 약초꾼을 환자로 받게 되었다.
그는 아예 산에서 굴러 여기저기 타박상이 생겼고 마찬가지로 발목도 조금 부은 사람이었다.
'또 약초꾼 환자가? 오늘은 무슨 날인가 보구나.'
원래 환자가 원치 않으면 일부러 캐묻지 않으나 유성은 궁금해져 이유를 물어보았다.
"오늘만 약초꾼 환자들을 두 명째 받는데 무슨 일 있습니까?"
"아, 저 말고 또 있었답니까? 에휴, 경쟁자가 늘어서 큰일입니다. 사실 소림사에서 약초 수배를 내렸거든요. 다들 그거 찾는다고 뛰어들어서는... 그런데 발목이 이래서야..."
한탄하는 약초꾼의 발목을 치료해 주자 그는 연신 감사 인사하고 떠나갔다.
찾아오면 치료는 해 줄 수 있으나 산에서 다치면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유성은 소림사에서 수배했다는 약초가 뭔지 모르겠으나 더 이상 약초꾼들이 다치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후.
"죄송합니다, 의원님. 저 또 왔습니다!"
처음 그를 찾아왔던 약초꾼 초산이 또 찾아왔다.
벌써 네 번째 방문이다.
"또 다치셨습니까?"
"그래도 이번엔 조금 덜합니다. 이번에도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직접 캔 것들인데 귀한 겁니다. 건강 챙기시라고 조금 챙겨 왔습니다."
주섬주섬 약초들을 꺼내놓으며 쓸데없이 씩씩한 초산을 보고 유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초산이 두 번째로 찾아온 날, 유성은 그에게 소림사에서 수배 중인 약초 때문이냐고 물었고 그는 그 일을 포함하여 잡다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진료중에 일어난 일이라 크게 시간을 뺏지 않았으나 그는 꽤 수다스러웠고, 네 번째 진료인 오늘 나머지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약초꾼들이 온 산을 헤집고 다니는 내막은 이렇다.
소림사에는 대환단이라는 대단한 단약이 있다.
먹으면 무림인에게는 1갑자의 내공을, 그리고 일반인에게는 무병장수를 보장한다는 진귀한 보물이다.
그러나 단약을 만드는 과정이 극히 까다로워 거의 30년이 걸린다고 한다.
제조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대환단이 항상 부족한 것은 그런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 도달해 있는 지금 대환단 제조에 큰 차질이 생겼으니, 마지막 단계에 필요한 50년 이상 된 화령초가 도무지 구해지지 않는다고.
자칫 잘못하면 30년간 들인 공과 지금껏 쏟아부은 진귀한 영약들이 모두 무용지물이 될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곧 약초를 구할 수 있겠지, 싶어 느긋하던 스님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 최근에는 전국의 약초꾼들에게 수배를 내린 상태라고 하고.
"어찌 그런 내부 사정까지 알고 계십니까?"
"사실 제 목숨을 구해주신 소림사 승려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때 그분과 인연이 생겨 자세한 내막을 들은 것이지요. 어차피 마지막 약초 말고는 제조 방법을 모르니 남들에게 알려주어도 상관없는 내용입니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큰일입니다. 저는 절 구해주신 소림사 승려님께 생명의 빚을 갚고 싶습니다. 그런데 약초꾼들끼리 정보 교류를 해 보니 전국의 진귀한 약초들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과거였다면 50년 된 화령초는 몇 년에 한번 꼴로 발견 되었으나 최근에는 눈을 씻고 찾기 힘들다더군요. 고작해야 2~30년 산이 끝이랍니다. 아무튼 치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발 다음에는 오지 마십시오."
이제 정이 들 지경이다.
초산이 돌아간 후 유성은 진료를 끝내고 신성력을 가늠해 보았다.
'아직 다음 스킬을 배울 정도는 안 되는 것 같은데 괜히 초산의 말을 들어서 신경만 더 쓰이는구나.'
다음 예정된 스킬은 [촉진]과 [해독].
유성이 모시던 여신 가이아는 대지와 치유의 여신이다.
하급 신관은 신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전념해야 했고 밑바닥부터 시작한 유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촉진을 사용한 약초 재배 역시 질리도록 해 보았다.
제때 스킬을 배울 수 있다면 화령초를 급속으로 키워내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는데.
그럼 항상 다리를 절뚝이며 나타나 민망한 웃음을 흘리는 초산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벌써 정이 들었나.'
백호단주는 다르게 생각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람이 소화기능 좀 떨어지는 건 별일 아니다.
하지만 초산과 같은 약초꾼이 약초를 캐다가 잘못 다치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다.
며칠 후, 모산파로 떠난 진은선으로부터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유성님, 제가 해냈어요!]
얼마나 신이 났는지 첫 마디에는 인사도 생략하고 그렇게 적혀 있었다.
유성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