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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진가장은 작은 무가다.
강호에서 변방으로 취급되는 호남. 그곳에서 거대 문파도 아닌 진가장의 장주는 작은 뱀의 머리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무림맹에서 작은 무력 단체라도 이끄는 자는 용의 몸통 정도는 된다.
비록 몸통의 위치가 꼬리쪽에 가깝더라도.
진영호는 뱀의 머리가 예정된 진가장의 적자다.
그는 용의 몸통과 뱀의 머리 중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할 필요 없다.
둘 다 하면 되니까.
그의 목표는 일단 무림맹의 무사가 되어 높은 자리를 노리다가, 아버지가 늙으면 진가장을 물려받는 거다.
그러면 무림맹 무사, 그것도 꽤 괜찮은 자리에 있었다는 명성으로 호남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무림학관 후기지수들 중 별로 특출나지 않은 그가 무림맹에서 괜찮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방법은 역시 한 가지뿐이다.
“팽형, 백유성 그놈이 이번에 태정헌 부군사님을 살렸다는 소문 말이오, 내가 진실을 알아왔소.”
“진실 말이오?”
팽지산이 흥미를 보이자 진영호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가 찾은 해법은 역시, 미래에 높은 자리에 오를 사람에게 달라붙는 것.
다른 후기지수들에 비해 자신이 특히 잘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부분이다.
그러면 팽지산이 자신을 이끌어 줄 거다.
“처음에 태정헌 부군사님 목이 절반쯤 베여 죽어 가던 중, 총군사님이 지니고 있던 신비한 약으로 이미 위기를 넘긴 상태였다지 뭐요? 백유성은 뒤늦게 상처 조금 꿰매고 그런 명성을 얻은 거요.”
“흥, 그럼 그렇지. 무슨 약인지 몰라도 그것 덕분이었군. 그런데 왜 그놈이 다 고쳤다고 소문이 난 거요?”
“그야 그놈이 평판 관리를 잘했으니 사람들이 알아서 오해해준 것이 아니겠소?”
유성은 제갈영영과 이야기 후, 너무 뛰어난 약효에 잠시 그 정체를 숨기기로 결정했다.
치유 스킬의 존재를 모르는 제갈영영이 보기에, 유성의 의술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약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했다.
유성도 동의했다.
그는 어차피 명성이 필요한 게 아니라 신성력을 얻을 수단이 필요했을 뿐이니까.
꼭 필요한 상황에 사용하기 위해 성수는 잘 모아두기로 결정.
그런 이유로.
처음 태정헌의 곁에 있던 무사들은 성수에 대해 정확히 모르기에 두리뭉실하게 소문이 난 것을 진영호가 주워 온 것이다.
“그놈의 평판. 앞으로 내 명성이 훨씬 높아질 테니 두고 보시오!”
“물론이오, 팽형. 지금은 흑도들이 활개 치고 있는 난세. 영웅이 나타나기 딱 좋은 시기 아니겠소?
팽지산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하긴, 맹주님도 평범한 무가 출신이고 전 척마대주님은 백정 출신이지. 게다가 그분들보다 훨씬 빨리 절정 고수가 되었으니 내가 모자랄 게 없지. 그렇지 않소?”
진영호는 흠칫 주위를 둘러보았다.
맹주님은 그렇다 치고 전 척마대주님의 출신까지 거론하다니.
누군가 듣고 있었으면 어쩌려고 그런단 말인가?
나중에 무림맹에 들어가겠다는 자가 척마대의 눈 밖에 나서 좋을 일이 없는데 말이다.
아무리 하북팽가의 위세를 업고 있다지만 정말 생각 없는 녀석이다.
그리고.
‘자기는 온갖 영약 처먹고 상승 무공을 익혔으면서. 변변한 영약 하나 못 먹고 화경의 고수가 된 맹주님과, 본격적으로 무공을 배운 것도 한참 늦었던 척마대주님을 단순 비교하는 건 좀…’
물론 진영호는 속마음을 모두 겉으로 꺼내지 않을 정도의 지혜는 있었다.
“물론이요, 팽형이 절대 모자랄 것 없소.”
팽지산은 망상을 키워나갔다.
망상은 어느새 천마의 목을 베고 천하제일인이 된 자신과, 그 옆에 달라붙어 있는 다섯 명 정도의 여자들까지 진행되었다.
한 여자의 얼굴은 그의 짝사랑이다.
‘지난 일로 사이가 좀 소원해졌지만 그쯤 되면 유린이 오히려 내게 달라붙을 것이다.’
기분이 좋아진 팽지산은 남궁유린을 찾아갔다.
지대한 관심으로 그녀가 어디에 있을지 잘 알고 있다.
‘분명 숲 안쪽 공터에 있겠지? 종종 거기서 혼자 시간을 보내곤 하니까 말이야.’
언젠가는 함께 시간을 보낼 상상을 하며 팽지산은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온다.
곧 팽지산은 그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남궁유린은 평평한 바위 위에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풀잎을 불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을 떠난 풀잎 소리는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눌린 듯 허공에 사그라졌으나, 음악에 조예가 없는 팽지산이 보기에도 꽤 그럴듯했다.
짝짝짝.
박수를 치자 남궁유린이 흠칫 돌아보았다.
“아름다운 연주다, 유린.”
“여기까지 무슨 일이시죠?”
“나는 천하제일인이 될 거다. 머지 않아 초절정 고수가 된다면 내가 달리 보이겠지. 하하!”
“...”
미친 사람인가 봐.
갑자기 혼자 있는 곳으로 찾아와 맥락 없이 잔뜩 헛소리를 늘어놓는 팽지산에 대한 소감이다.
남궁유린의 속도 모르고 팽지산은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그럼 초절정 고수가 되기 위해 수련해야 하니 이만 가 보겠다.”
조금 전 남궁유린이 풀잎으로 낸 소리를 어설프게 콧소리로 흥얼거리며.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해꾼의 등장으로 중단되었던 연주를 이어 나갔다.
‘무공은 나와 맞지 않아. 이렇게 여유롭게 살고 싶은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오라버니 남궁유현이 방 안에 틀여박혀 한 발자국도 나서지 않고 있기에.
가문 어른들은 오대세가의 수좌 자리를 뺏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남궁유린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려한다.
기댈 곳이 있긴 하다.
백유성이 다 죽어 가던 사람을 살려냈다는 소식을 들은 것.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오라버니를 치료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백의원님 뿐이야. 그런데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하루하루가 버겁다.
전해 듣기로, 가문의 어른들은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배우는 제왕검형을 자신에게 전수하는 일로 논의중이라고 들었다.
자신은 무공에 흥미도 없는데 말이다.
당연히 무림맹에 입맹을 희망하지도 않는다.
무림학관 후기지수들에게 공문이 내려왔다.
-지원자들에 한해서 무림맹 임무에 투입될 수 있다!
앞으로 무림맹에 입맹하기를 희망하는 자들에게 실적으로 반영될 수 있단다.
여러 후기지수들이 눈을 반짝였다.
남궁유린과 달리 그들은 입맹에 관심이 많기 때문.
동시에 후기지수들 사이에 은밀한 소문이 하나 돌았다.
-의각주 백유성과 팽지산의 사이가 좋지 않더라. 굳이 팽지산과 척 지고 싶지 않으면 의각 경계 임무에는 지원하지 않는 게 좋겠다!
무림에서는 무공이 뛰어나거나 뒷배경이 뛰어난 자가 최고다.
오대세가중 하나인 하북팽가의 자제이자 당대 최고의 후기지수, 팽지산과 '굳이' 불편한 관계가 되고 싶은 자들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다음은 의각이다. 경계 임무에 지원하는 자는 손을 들어 보거라.”
무림학관 교관은 종이에 기록할 준비를 하며 그렇게 외쳤다.
입맹하여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후기지수들은 약간 위험성이 있는 임무라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훨씬 안전한 경계 임무 역시 인기가 많았다.
당연히 의각 경계 임무도 마찬가지라고 여겼는데.
“아무도 없나?”
의각만 지원자가 없다.
교관이 한 번 더 묻는 사이, 진영호는 팽지산을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
팽지산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영호, 쓸모가 있구나. 별거 아니지만 백유성이 약간이라도 자존심 상해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때.
가녀린 손 하나가 위로 살며시 올라왔다.
‘누가 감히 내 말을 어기고?’
고개를 휙 돌려본 곳에는 그의 짝사랑이 손을 들고 있었다.
‘유린, 어째서…! 분명 내가 천하제일인이 되어 청혼하겠다고 말했는데 내가 싫어하는 일을!’
절대 그렇게 말 한 적은 없으나 팽지산은 축약하여 그런 의미로 말 했기에 꽤 서운했다.
“그래, 남궁유린 한 명. 그럼 의각은 남궁유린만 지원하는 거로—”
“저, 저도 의각에 지원하겠습니다!”
팽지산이 다급히 교관의 말을 끊었다.
“쟤가 왜 의각에 지원해? 의각주님이랑 사이 안 좋다던 거 아니었어?”
주변 후기지수들이 속닥였으나 그는 꿋꿋했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이 정도 철면피는 아무렇지도 않다.
어차피 소문도 진영호가 냈고.
그러나.
“불가하다. 처음 말했듯이 무림맹의 임무는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을 수 있는 게 아니니 신중히 결정하라 하지 않았더냐? 팽지산 넌 이미 외부 임무를 맡았으니 변경할 수 없다.”
“그럼 외부 임무가 끝나면 그때는 다시 임무 배정이 됩니까?”
“물론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남궁유린은 의각 경계 임무의 유일한 지원자가 되었다.
“남궁소저, 오랜만입니다.”
유성은 내심 그녀가 반가웠다.
오라버니를 치료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나중에 얼마나 많은 신성력 상승으로 돌아올지 기대되는 점도 좋았고,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운 미녀가 의각 내부 경계조에 속했기에, 칙칙한 남자들만 있던 근무 환경이 화사해진 점도 좋았다.
남궁세가의 유력한 후계자이고 검왕의 손녀이니 간자일 리도 없고.
“아, 네. 서점에서 뵙고 처음이네요. 소식은 전해 들었어요. 이번에 놀라운 솜씨로 태정헌 부군사님을 살리는 공을 세우셨다고요.”
여전히 목소리가 작았지만 의술에 대한 칭찬이 의미 심장하다.
유성은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말을 들려주었다.
“그게 제 일인걸요. 그리고 언젠가는 약속도 지킬 겁니다.”
실력을 키워 남궁유현의 눈을 치료해주겠다는 약속을 언급했다.
희망 고문이 아니다.
결국 남궁유현을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줘 틈틈이 감사한 마음을 얻어내기 위함.
일종의 신성력 파밍이랄까.
“네, 기다리고 있어요.”
유성이 약속을 잊지 않아 한결 마음이 편해진 남궁유린의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이야기 중이세요? 제가 알아도 되는 이야기일까요?”
남궁유린은 뒤를 돌아보았고, 답했다.
“아, 총군사님이시군요. 죄송해요, 비밀 이야기라서요.”
유성은 오랜만에 제갈영영의 서늘한 시선을 받고 가볍게 몸을 떨었다.
‘다른 건 다 멀쩡한데 한서불침 특성은 불량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