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1 KiB
안휘성의 패자이자 오대세가 중 첫 손가락에 꼽히는 무림세가.
수많은 상인들과 중소 문파들이 줄을 대기 위해 찾아오는 곳.
겉으로 보기에, 안휘성에서 만큼은 황제 부럽지 않은 위세를 떨치는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환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을 맞이했다.
가주는 어른에게 혼나는 어린아이처럼 얌전히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앞에 앉은 노인은 잘 벼린 검처럼 날카로운 기도를 가진 자였다.
노인이 입을 열었다.
“유린이 복귀하지 않겠다고 했다지?”
“그렇습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아버지.”
노인은 바로 가주의 아버지이자 당대의 검왕 남궁진이다.
무표정한 검왕이 차를 들이켰다.
가주는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무림학관에 가 있는 남궁유린이 복귀하라는 말에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자식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가주는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 숙였다.
대대로 검왕을 배출해 온 남궁세가.
가주는 벌모세수부터 시작해 온갖 지원을 받았음에도 아버지처럼 대단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항상 죄송한 마음을 품어 왔던 가주는 아들 남궁유현이 태어나 한시름 놓았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무재를 보인 아들이 순조롭게 성장하며, 검왕이 많이 유해졌던 탓이다.
남궁유현은 바짝 쫓아오는 하북팽가를 뿌리치고 남궁세가가 여전히 최고의 무가로 남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였다.
오대세가 중 다섯 번째만 필사적인 게 아니다.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
그런데.
아들 남궁유현마저 그런 꼴이 되어 집 안에 틀어박혔다.
이제 믿을 구석이라고는 딸 남궁유린 뿐인 상황에서, 딸이 갑자기 말을 안듣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사람을 보내 데려오겠습니다.”
가주가 조심스럽게 입을 떼자,
검왕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됐다. 내가 직접 무림학관에 들려 데려오겠다.”
가주는 입을 다물었다.
검왕이 한번 선언하면 그의 말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
남궁유현을 최고로 키워내기 위해 가주 자리를 넘겨 주고 태상가주의 위치로 물러났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남궁세가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검왕은 호위를 꾸리겠다는 가주의 말을 물리치고 홀로 남궁세가를 떠났다.
얼마 전 도왕이 정체불명의 무리에게 습격 당했다고 전해 들었으나, 검왕은 그런 도왕을 비웃었다.
그는 자기 무위에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낙양으로 향하며, 여러 소문을 들었다.
최근 큰 명성을 얻은 신의가 눈이 먼 사람을 치료해냈다던가, 하는 소문.
손자 남궁유현이 떠오르며 귀가 솔깃했지만, 내막을 전해 들은 그는 관심을 접었다.
이미 눈에 상처를 입은 봉사 하나가 신의를 찾아간 적이 있단다.
그리고 그자는 여전히 봉사다.
‘단순히 시력이 좀 나빠진 자를 고쳤을 뿐, 유현이처럼 눈에 검상을 입은 사람까지 치료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검왕은 자기 판단을 굳게 믿었다.
그리고.
손녀 남궁유린 역시 그의 지도 아래 있을 때 가장 큰 성취를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림학관 생도들이 술렁거렸다.
화경의 고수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검왕을 실제로 보게 되었으니, 무림인인 그들은 동경의 눈빛을 보냈다.
남궁유린과 검왕의 만남 역시 주목을 받았다.
‘과연 검왕이 왜 남궁유린을 찾아온 걸까?’
검왕은 남들이 지켜보는 것도 개의치 않고, 남궁유린과 대화를 나누었다.
“오랜만이구나.”
“오랜만에 뵈어요, 할아버지.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널 데리러 왔다.”
“...”
검왕이 탐색하듯 남궁유린을 살폈다.
여전한 기도와 자세.
그렇다고 손에 굳은살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편지에 쓴 것과 달리 전혀 성취가 없는 것 같은데 어찌 된 일이냐?”
“그건...”
남궁유린은 무림학관을 그만두고 남궁세가로 복귀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오라버니가 건재할 때는 가기 싫다고 해도 무림학관에 가라더니, 이제 와서 오라버니가 다치자 그녀에게 복귀를 종용했다.
가문으로 돌아가면 후계 수업을 받으며 검왕에게 직접 무공을 배우게 될 거다.
남궁유린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남궁세가로 전서구를 띄웠다.
-여기서 수련에 성취가 있어서 아직은 돌아갈 수 없어요. 때가 되면 돌아갈 테니 기다려주세요.
원치 않아 오게 된 무림학관이었다.
하지만 이곳으로 와서 좋은 점도 있었다.
그건 바로, 어릴 적 친하게 지내던 시녀를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항상 옆에 두고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들어왔었는데, 막상 떨어져 보자 약간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가문으로 돌아가면 다시 그녀를 마주해야 한다.
아직 남궁유린은 스스로 극복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더 지켜보고 싶은 사람도 있어.’
생각을 끝내고 고개를 들었다.
할아버지가 여전히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엄한 할아버지의 말을 거역해 본 적 없지만, 남궁유린은 문득 유성이 떠올랐다.
단전을 잃은 몸으로 도왕 앞에서 그의 핏줄 팽지산을 두들겨 패던 패기!
하물며 남궁유린 자신이 핏줄 앞에서 못할 소리가 뭐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불쑥 용기가 솟아올랐다.
감히 아버지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검왕과 빤히 시선을 맞췄다.
“그건 죄송해요. 하지만 전 아직 돌아가지 않겠어요.”
“...”
검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림학관 생도들이 이쪽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다.
절대 거절당할 리 없을 거로 생각해 당당하게 이야기 꺼냈지만,
소극적일지언정 자신을 거역해 본 적 없는 손녀가 처음으로 거역한 거다.
단번에 이야기가 끝날 것 같지 않다.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자꾸나.”
장소를 옮기면서, 검왕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손녀에게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너무 유약해 걱정했더니, 어느새 내 앞에서 자기주장도 할 줄 알게 되었구나. 긍정적인 변화다.’
가문의 중심으로, 일부러 권위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아들도, 손자도 자기 말을 거역하지 못했다.
남궁유린도 마찬가지였는데, 무공 실력은 정체되어 있으나 내면의 성장이 있었던 듯하다.
언젠가 가주가 되어야 함에도 유약한 성정이 아쉬웠는데, 그 부분이 채워지고 있는 모습이 기껍다.
접객당 한 곳에 자리 잡고 검왕이 물었다.
“돌아가지 않겠다는 건 그 시녀 때문에 그러느냐?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셈이냐?”
“물론 그 이유도 있어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에요. 지금은 밝힐 수 없지만 절 믿어 주세요.”
의각주님이 오라버니의 눈을 고쳐주신다고 했어요.
물론 이건 유성과 비밀로 한 약속이라 공개하지 않았다.
검왕은 억지로 끌고갈 수 있었지만, 처음으로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밝힌 남궁유린을 존중하기로 했다.
어차피 목적도 무공을 전수하기 위함이었으니까.
“좋다. 정 그렇다면 당분간 여기 머물면서 제왕검형을 가르쳐 줄 테니 이건 열심히 수련하겠다고 약속해라. 그럼 당분간 복귀하라고 하지 않겠다.”
남궁세가의 후계자에게만 전수되는 제왕검형.
남궁유현이 익혔던 절기가 이번에는 남궁유린에게 차례가 돌아왔다.
유성은 환자들을 보면서 자꾸 남궁유린이 떠올랐다.
‘검왕이 와서 데려가려고 한다라…’
사정도 모르는 남궁세가 내부의 일이다.
장칠의 짐작과 달리 둘은 남녀 간의 사이가 아니기에, 유성이 끼어들 여지는 단 하나도 없다.
단지, 유성은 떠나기 전 그녀를 한번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진료도 못 봤으니까.’
그런 핑계를 대며, 진료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오늘따라 환자가 많군.’
의각의 의원이 세 명으로 늘어나 조금 일찍 끝나는 날도 많았으나 오늘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아직 환자가 많이 남았습니까?”
진료실로 들어온 장칠에게 물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장칠은 유성에게 양해를 구하고 종학진을 찾아갔다.
아직 환자들이 열 명 이상 남아 있다.
“형님, 위중한 환자 있습니까?”
위중한 환자는 유성에게 가야 하는 수준의 환자를 뜻한다.
종학진이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아니? 왜?”
“그럼 양의원님이랑 차의원님한테 좀 몰아주실 수 있어요?”
“아, 의각주님 일 있으시대?”
“의각주님이 그런 말씀 하신적은 없고요. 그냥 제가 보기에 좀 피곤해 보이셔서요.”
“아이쿠, 그럼 안 되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의각주님 환자는 더 없다고 전해드려.”
“고맙습니다.”
오늘은 차의원이 당직.
장칠의 말을 듣고 짐을 챙겨 진료실을 나선 유성은 아직 환자가 꽤 남아 있는 걸 보고 그의 배려를 눈치챘다.
일반 환자들을 치료해 신성력을 쌓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오늘이 아니면 오랫동안 남궁유린을 더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유성을 무림학관 쪽으로 이끌었다.
“의각주님, 남궁유린님은 지금 무림학관 네 번째 접객당에 있답니다.”
슬쩍 장칠이 전해준 말을 듣고서.
잠시 후.
유성이 네 번째 접객당 앞에 도착했을 때는 접객당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검왕과 함께 있으리라 예상했는데 안에는 남궁유린 혼자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그녀의 초점 없는 눈이, 유성을 발견하고 초점을 되찾았다.
“의각주님?”
벌떡 일어난 그녀가 다가왔다.
“아직 계셨군요. 전에 못한 말을 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지, 지금요? 이, 일단 들어오세요.”
남궁유린이 왠지 허둥대며 유성을 접객당으로 이끌었다.
누가 주시하고 있지 않은지 주위도 살피고 문도 꼭 닫았다.
“여기 앉으세요.”
유성이 그녀가 권한 자리에 앉자, 남궁유린이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옆자리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손이 가지런하다.
꿀꺽.
남궁유린이 침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전에도 그러더니, 인후 쪽에 무슨 문제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