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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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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이 가진 마도서 2권. 재창조의 손길과 심해견문록.

둘 중 평범한 마도서는 하나도 없었다.

재창조의 손길은 만물의 재구성이라는 이름의 외신이 작성했다.

심해견문록은 외해의 주인이라는 이름의 외신이 작성했다.

둘 중 먼저 만난 것은 재창조의 손길이다. 마법사가 된 계기와 마찬가지인 마도서인 만큼, 이안도 개인적으로는 재창조의 손길에 더욱 애착을 지니는 편이다. 심해견문록이 싫다는 게 아니라, 둘 중 선호하는 걸 꼽자면 그렇다는 뜻이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소유주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 재창조의 손길과 배고프면 먹어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심해견문록. 제대로 된 정신머리가 박힌 사람이라면 둘 중 누구의 손을 들어주고 싶겠는가?

물론 재창조 마법이라고 아예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다. 오래 사용하면 두통이 느껴지고, 메스꺼움이나 어지러움도 동반된다.

하지만 그게 죽음의 위기보다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무렴. 약만 먹으면 싹 가라앉는 병이 산 채로 먹어 치우겠다고 협박하는 심해 괴물들보다 나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안이 재창조의 손길이 아닌 심해견문록을 선택한 것은, 외신의 형태가 어렴풋이나마 나타난 게 심해견문록뿐이기 때문이다.

‘감시자에 비쳤던 그 모습.

요한종합병원에서 탈출하던 당시 소환했던 감시자의 하나뿐인 눈동자에 비쳤던 검은 머리카락의 소녀를, 이안은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정확한 외모를 떠올리는 건 불가능하다. 얼굴이 완전히 드러났던 것도 아닐뿐더러, 목 아래로 보이는 것은 새까만 그림자가 전부였다.

자그마한 어깨와 긴 머리카락, 그리고 마도서에 적힌 ‘그녀’라는 대명사 덕분에 외해의 주인이 여성체라는 걸 아는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이안도 정확히 그녀의 성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만물의 재구성은 어떤가?

재창조의 손길에 적힌 만물의 재구성에 대한 명칭은, 심해견문록에 적힌 것처럼 ‘그녀’였다. 그러니 재구성 또한 여성체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외모를 모른다. 자그마한 흔적조차 아는 게 없었다.

눈? 코? 입? 애초에 달려있기는 하나? 머리카락 색깔은? 눈은 어떻지? 몸은 인간과 비슷한 형태인가?

“…….”

그 어느 것 하나 아는 게 없다. 그런 상태에서 대뜸 만물의 재구성은 만들어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생긴 것도 모르는데 만들기는 뭘 만든다는 건가. 아무리 피그말리온이 대단한 조각가라고 한들,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를 조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강제로 뭘 만들어도 그게 수박을 보고 사과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라고, 이안이 재창조의 손길을 달래주었다. 재창조의 손길은 가방 속에서 그의 쓰다듬을 받으며 작게 칭얼거렸다.

[우웅.]

마치 이번 한 번만 봐준다고 하는 것 같은 울림.

어째서인지 바람피우는 남편을 봐주는 조강지처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안은 애써 생각을 밀어냈다.

‘당분간은 재창조의 손길도 잘 관리해 주자.

그가 그리 생각하며 다리를 까딱거리던 순간이었다. 세심하게 조각을 깎던 피그말리온이 망치와 못을 내려놓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끝났다, 마법사.”

“벌써? 빠르군.”

조각을 부탁한 게 5분 전인데,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조각을 완성하다니.

누가 장인 아니랄까 봐 손이 굉장히 빠른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신비다운 힘을 사용해서 빠른 것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이안은 가방을 닫고 정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은 대충 3분 정도인가.

그리 여유가 많은 건 아니지만, 조각상을 확인할 정도는 충분히 되었다. 이안은 계속해서 마도서를 쓰다듬느라 뻐근한 손목을 돌리며 피그말리온의 뒤쪽을 응시했다.

피그말리온의 회색빛 몸뚱이 뒤.

자그마한 진열장 위에 올려진 어떤 소녀의 조각상이 보인다.

표정은 무표정이었고, 길게 뻗은 머리카락은 검은색으로 찰랑거린다. 붉은 눈동자는 피 웅덩이가 고여있는 것처럼 스산하게 반짝거린다. 새하얀 피부는 천장에 있는 전등 빛을 받아 더욱 창백하게 일렁거린다.

“……허.”

조각상보다는 살아있는 생명에 더욱 가까운 모습이었다. 있는 거라고는 허벅지 윗부분과 골반, 상반신, 팔과 머리가 전부였지만, 그럼에도 조각상은 생기를 얻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작게 들썩거리는 그녀의 가슴팍이 호흡의 증거가 되었다.

“내장과 신경, 혈관, 힘줄 등. 인간에게 필요한 부분은 모두 조각해 두었다. 다리를 만들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래도 뭐. 의뢰자의 부탁이니 들어줘야겠지.”

피그말리온이 말했다. 그는 옆으로 한 걸음 물러나, 이안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확인해 봐라. 이제 이게 네 아내다.”

“…….”

딱히 피규어나 조각상을 아내로 삼을 생각은 없지만, 이안은 반박하는 대신 천천히 조각상을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서 확인해 본 조각상은 실제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 모공이나 털 같은 것들도 자세히 구현되어 있었다.

“다리 없는 장애인 여성이 취향인 줄은 몰랐지만…… 뭐,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아름다움이 있는 법이니까. 난 존중한다.”

옆에서 떠드는 피그말리온의 개소리는 무시한다.

이안은 조각상의 정면에 서서, 그녀의 붉은 눈동자를 마주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이게 외해의 주인인가.

완전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실제 그녀의 모습과 다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감시자에 비쳤던 그녀의 모습과, 지금 눈앞에 있는 조각상의 형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겉모습 자체만 두고 비교하자면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때 느꼈던 압도감 같은 건 없지만, 그건 어쩔 수 없지.

당시 외해의 주인은 감시자의 눈을 빌려 잠깐 본모습을 드러냈다.

반면 지금은 그저 단순한 조각상일 뿐이다. 생명을 부여받고, 겉모습이 똑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근본은 무기물이다. 외신과 같은 현상을 일으킬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뭐, 외모 자체를 제대로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앞으로 대충 이런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우응?”

이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조각상과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안이 손에 잡힌 마도서가 짧게 진동했다.

[우웅.]

마도서는 이안이 반응하기도 전에 스스로 움직여 조각상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대처할 틈도 없었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피그말리온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눈썹을 치켜뜨는 순간.

푸욱!

마도서가 조각상의 가슴팍을 그대로 파고들어 상아를 박살 냈다.

“……!”

“이런 시발!”

이안이 경악하고, 피그말리온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도서는 상아를 무너뜨리며 심장이 있던 자리 깊숙이 몸체를 들이밀었다.

그렇게 완전히 심장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과 동시에 마도서의 표지를 타고 검은 해수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꾸르륵……!

익숙한 외우주의 바다에 이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고,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공포감에 피그말리온의 움직임이 멈췄다.

“…….”

“……으아으. 아, 우으아아…….”

이미 여유 시간이던 3분은 진즉에 넘어간 시점. 그러나 피그말리온은 이안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전신을 떨어댔다. 마치 항거할 수 없는 무언가를 목도한 것처럼 말이다.

반대로 이안은 멀쩡했다. 그는 아무런 정식적 착란도, 육체적 떨림도 없이 검은 외해로 뒤덮인 조각상을 응시했다.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흘러넘치는 검은 해수. 이안을 제외한 다른 이들, 특히 신비의 두렵다는 듯한 반응.

익숙한 기시감이 들었다. 분명 병원에서 처음 외해의 주인이 자신의 편린을 드러냈을 때도 이랬던 것 같은ㅡ

“아하하.”

생각하는 순간, 조각상이 있는 방향에서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안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홱 돌리자, 뻗어온 자그마한 손이 그의 양쪽 뺨을 가볍게 짓눌렀다. 저절로 뺨이 악력을 따라 움푹 파이고,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우스꽝스러운 모습. 그러나 상황은 전혀 우습지 않았다.

“우웁?!”

이안이 당황하며 눈동자를 굴려 뻗어온 손의 주인을 보았다. 마도서에 가슴팍이 꿰뚫린 조각상이, 장난기와 애정을 잔뜩 담은 시선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내 사랑.”

그것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붉은 입술 사이로 붉은 혓바닥이 보이고, 한마디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지 몸뚱이가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조각상, 아니, 조각상의 몸을 빌린 무언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싱긋 미소 지었다.

“이 몸은 나를 버티기엔 너무나도 격이 낮네.”

“…….”

“인간 기준에서 고작 손톱만큼의 의식만 담았는데. 이래서야 쓸 수는 없겠어.”

그녀가 이안의 얼굴에 숨을 후우 토해내더니, 그의 콧잔등에 쪽 입을 맞췄다. 그러곤 수줍게 웃었다.

“하지만 기회를 굳이 무시할 이유도 없겠지?”

“……너.”

“나의 지아비. 외해의 부군. 나의 첫사랑.”

‘그녀’가 싱긋 웃으며 이안의 입을 엄지를 통해 강제로 벌렸다. 그러곤 손가락으로 혀를 잡아 쭉 빼냈다.

“널 기다리고 있어.”

“우읍……!”

“다만 난 인내심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니거든. 하물며 경쟁자가 있다면 더더욱 그렇지.”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붙잡은 이안의 혀를 자신의 이빨로 강하게 깨물었다. 상처에서 피가 살짝 흘러나오고, 그녀가 피를 마시며 해맑게 웃었다.

“널 탐하고 싶어. 구석구석, 모든 곳에 나의 것이라는 마킹을 새기고 싶어.”

“…….”

“하지만 참을게. 네가 싫어할 테니까.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있어.”

“……윽.”

“잘 지내. 언제나 지켜보고 있어.”

그녀가 이안의 혀끝에 달린 핏방울을 빨아 먹으며 배시시 웃었다.

다음 순간, 조각상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마도서가 바닥에 쓰러졌다.

[…….]

마도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마치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표지에 적혀있던 제목이 흐려진 걸 보면, 아무래도 마도서 입장에서도 다소 무리를 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당분간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

심각한 일이지만, 당장은 그런 걸 걱정할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이안은 입술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고, 마도서를 주우며 털썩 주저앉았다.

‘……사랑이 무겁군.

우습게도, 처음 든 생각은 그게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