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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과 김이서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제법 넓은 공간. 환자를 이송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정도의 승강기 내부에서, 그녀가 버튼을 조작했다.
단순히 지하로 가는 버튼을 누르지는 않았다. ‘다른 세계로 가는 엘리베이터’라는 이름의 괴담처럼, 매우 많은 버튼을 동시에 조작했다.
실제로 괴담을 사용하는 건 아닐 것이다. 신비를 배척 및 척살하는 바티칸과 다르게 연구와 착취에 초점을 둔 관리국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건물 내부에 괴담을 방목 해두지는 않았을 터.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세계로 가는 엘리베이터라니. 실제로 잘못되기라도 하면 안쪽에서 뭐가 튀어나올 줄 알고 남용하겠는가.
신비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악의적이며, 카테고리가 비슷하다면 같이 등장하는 경우가 잦다. 당장 이안이 찾아갔었던 도서관에도 도서관 괴이를 제외한 다른 눈깔 괴물 같은 것들이 문밖에서 서성거리지 않았던가.
조건이 맞고, 통로가 있으면 그들은 현실로 넘어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라는 확실한 입구가 열리는 순간, 그곳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할 것이다.
탑승자가 넘어가는 형태라면 또 모르겠지만, 신비는 그리 친절하지 않으니까.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다.
[입력 확인. 격리실로 내려갑니다.]
생각하는 사이, 김이서가 조작을 마치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자 엘리베이터가 안내음을 내며 알아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짧은 부유감이 순간 몸을 스치고, 김이서가 흐트러진 넥타이를 바로 하며 이안을 돌아보았다.
“격리실은 관리국 내부에서도 보안이 엄격하게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가시 전에 매뉴얼은 읽어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는 제안이었다. 이안은 머리를 묶기 시작하는 그녀를 뒤로하고, 벽에 기대어 서서 건네받은 매뉴얼을 꺼내 펼쳤다.
자그마한 수첩 형태의 안내서.
첫 페이지에 적힌 건 소개글이 전부였다. 관리국의 역사와 한국 지부가 세워진 시기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중요한 정보는 아니지만, 개인적인 흥미가 동했기에 천천히 읽어보았다.
[관리국이라는 세계적인 기관이 생겨난 것은 정확히 1872년이다. 2차 산업혁명이 이루어지던 시기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세계 대전이 벌어진 틈을 타 각국에 지사를 설립했다. 당연히 정부의 허락은 받아냈다.]
[19세기와 20세기 초는 아직 신의 이름을 부르짖은 이들이 한창 많을 때였다. 하지만 당시 세상의 정세가 좋진 않았기에, 대부분의 시민들이 신비라는 알 수 없는 존재들보단 현실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덕분에 정보 은폐와 조작을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타이밍이 좋았다고도 말할 수 있으리라.]
[한국에 관리국이 들어온 것은 20세기 초다. 역사가 그리 깊지는 않지만, 그래도 타국에 비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유럽 연합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동양 쪽에서는 그나마 제일 훌륭하다고 할 수 있었다.]
자화자찬이 가득한 말이지만, 이안은 그러려니 하며 넘겼다.
보통 회사들도 자기 회사가 어떤 곳이고 어떤 장점이 있는지 알려주면서 시작하지 않나.
굳이 방금 막 입사한 신입에게 단점부터 들이밀 필요는 없다. 물론 이안에겐 관리국에 입사할 생각이 없어서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흐음.”
그는 매뉴얼을 넘겨 격리실 파트를 훑어보았다. 그 순간,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내부로 차단벽이 슬며시 내려오며 거울을 가려버렸다. 이안이 스산한 쇳소리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거울은 왜 가리는 거지?”
“거울은 이면 세계와 이어지는 통로입니다. 현실에선 그리 엄청난 힘을 가지진 않지만, 신비가 가득한 격리실에선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나’라는 인물이 다른 무언가로 대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영혼이 거울 속에 갇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이서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같은 이유로, 격리 구역에는 특정 격리실을 제외하면 거울이 없습니다. 만약 복도나 화장실 등. 신비가 갇혀있지 않은 곳에서 거울을 발견했다면 즉시 파괴하거나 자리를 피하십시오.”
“…….”
“마법사님이 쉽게 당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보통 거울에 반사되어 투영된 존재는 원본과 같은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혹여라도 마법사님을 복사한 존재가 마법을 사용하지 않을까 걱정되는군요.”
나름 합당한 걱정이었다. 다만 이안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그들이 자신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썩어도 준치라고, 이안이 사용하는 모든 마법은 기본적으로 외신에게서 파생되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마법, 양이 나오는 꿈을 꾸는 마법, 강제로 편한 수면 자세를 취하게 만드는 마법 등. 효과만 보면 그리 대단하지 않은 마법들도 당장 외신이 직접 마법진을 설계하고 흐름을 통제하는 것들이다.
고작 신비 따위가 그걸 똑같이 따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마 마법을 쓰려다가 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사망할 것이다.
다만, 똑같은 외형을 지닌 존재가 거울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도, 거울 속에 갇히는 것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기에, 굳이 거울을 보고 객기를 부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나타나면 부순다. 그뿐인 이야기다.
이안은 김이서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고, 매뉴얼의 내용을 들여다보았다.
격리 구역에 관한 설명. 제법 장황했지만, 축약하자면 이랬다.
‘1구역부터 5구역까지 나누어져 있고, 5구역에 가까울수록 위험한 신비들이 포진되어 있다. 1구역과 2구역은 대부분이 도구형 신비들로 구성되어 있고.’
신비는 제법 많은 유형으로 나뉘지만, 직접 격리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다. 타인을 홀리는 도구와 살아 움직이는 생물. 이 두 가지가 대표적이었다.
도구라고 생물보다 약한 것은 아니다. 생물이라고 도구보다 강한 것은 아니다.
쉽게 생각해서 인간과 맹수의 관계를 떠올리면 된다. 사자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미간에 더블 배럴 샷건을 처박으면 그대로 죽는 것처럼, 도구형 신비는 사용자가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생물형 괴이도 쉽게 죽여버릴 수 있다.
다만 사용자가 없으면 도구는 말 그대로 도구일 뿐이다. 샷건에 갑자기 자아가 생겨서 ‘널 죽여버리겠다’ 선언하며 혼자 방아쇠를 당기는 경우는 없었다. 결국 다 상황과 상성에 달린 것이다.
‘도구들을 입구 근처에 배치한 건 필요할 때 사용하기 위함이군. 신비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것에 망설임이 없는 모양이야.’
대담하다면 대담하고, 무모하다면 무모한 설계. 그러나 지금까지 기조가 변하지 않은 걸 보면, 딱히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거겠지.
앞으로도 그럴 거란 보장은 없지만, 굳이 벌어지지 않은 미래를 가지고 불안감에 떨 필요는 없었다. 이안은 매뉴얼을 덮고 김이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격리 구역은 어딜 어떻게 돌아다닐 예정이지?”
“일단 3구역 밑으로 내려가진 않을 겁니다. 그 아래는 격리팀만 출입이 허가되었기에 저희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3구역만 해도 위험한 놈들이 포진되어 있지 않나? 매뉴얼에는 그리 적혀 있던데.”
“맞는 말씀이지만, 3구역까지는 규칙을 지키면 크게 위험한 일은 없을 겁니다. 격리팀 업무 체험 같은 건 할 예정이 없으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김이서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녀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장갑을 착용하며 이안을 돌아보았다.
“지금부터 딱 붙어서 이동하겠습니다. 제게서 한 뼘 이상 멀어지지 마십시오.”
“……너무 가까운 거리 아닌가?”
“호위를 위한 일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둘 중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그건 저인 게 나으니까요.”
분명 안전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왜 누군가 죽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다만 굳이 희생해 주겠다고 하는데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이안은 마도서를 손에 쥐고, 김이서의 뒤에 바짝 붙었다.
[우웅.]
두 사람의 거리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심해견문록이 짧게 진동했다. 이안은 마도서를 달래주듯 표지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따라 걸었다.
“1구역은 그리 대단한 신비가 없습니다. 대표적인 괴이만 간략하게 소개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녀는 이안이 쥐고 있는 마도서를 흘깃 보았다가, 새하얀 복도를 걸어 끝에 달린 문 앞에 섰다. 문 위로 달린 자그마한 조명 장치가 그녀의 전신을 한 차례 훑는다.
[신원 확인 완료. 요원 김이서. 입장을 허가합니다.]
짧은 스캔이 끝나자 무미건조한 안내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그 너머로 비친 풍경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길게 뻗은 복도. 그 옆으로 달린 다양한 문들과 창문. 격리된 신비의 이름이 적힌 팻말과 방호복 등을 입고 돌아다니는 격리팀 직원들 등.
전체적으로 새하얗다는 것만 제외하면 크게 이질적이지는 않았다. 격리 시설보단 연구실에 더욱 가까운 형태다. 두 사람은 열린 문 너머로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아, 김이서 요원.”
그때, 바쁘게 돌아다니던 직원 한 명이 김이서를 보며 말을 걸어왔다. 김이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반갑습니다.”
“네네, 그보다 대응과에서 격리 구역에는 갑자기 왜……?”
“현재 마법사님을 안내하는 중입니다. 미리 연락이 갔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아아! 맞아요. 편하게 돌아다니시면 됩니다. 당연히 격리팀 외 출입 금지 구역에는 가시면 안 되고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없겠군요. 매뉴얼대로 행동해 주시고, 위험한 일이 있으면 즉시 격리팀과 대응팀을 호출해 주십시오.”
김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은 허허 웃으며 이안에게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떠났다.
두 사람은 다시 새하얀 복도를 천천히 걸어 격리실을 둘러보았다.
이안은 김이서와 같이 움직이면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투명한 창문 너머, 진열장 위로 전시된 곰 인형을 응시하며 침음성을 흘렸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느낀 김이서가 입을 열었다.
“사랑의 테디베어라는 이름의 괴이입니다. 소유주에게 강한 애착을 느끼고 위험할 때 구해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이지만, 다른 인간, 인형, 동물에게 관심을 주면 그대로 내장을 파헤쳐 소유주를 살해합니다.”
“……이름 참 누가 지었는지.”
“신비 대부분은 이미 이름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없으면 첫 발견자가 작명하는 편이고요.”
김이서가 격리실 내부로 들어가는 직원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사랑의 테디베어는 그리 강한 신비가 아닙니다. 무력으로 충분히 제압이 가능하고, 머리가 날아가면 움직이지 못합니다. 봉합하면 다시 움직이고요.”
“강도는?”
“평상시에는 그냥 인형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피를 먹이거나 질투를 품으면 모습을 짧게나마 곰처럼 바꾸는 게 가능합니다. 대부분의 사상자는 이때 발생합니다.”
“곰은 사람을 찢으니까.”
이안은 괜히 담뱃갑을 툭툭 두드리며 고이 앉아 있는 곰 인형을 보았다.
생기 하나 없이 축 늘어진 모습. 그러나 직원이 가까이 다가가자, 단추 눈깔을 움직이며 그녀의 얼굴을 시야에 담았다.
인형이 움직인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모습이지만, 이제는 보고도 크게 놀랍지 않았다. 솔직히 근처 길고양이가 다가와서 사람 말로 나불거려도 그러려니 할 것 같았다.
“계속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더 지켜보시겠습니까?”
김이서가 물었다. 이안은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계속 가자.”
“알겠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1구역에서 가장 유명한 신비만 알려드린 뒤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뭐 하는 놈이지?”
이안이 마도서를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김이서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피규어입니다.”
“……피규어?”
그의 되물음에 김이서가 작은 웃음을 머금었다.
“피그말리온이라고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