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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풀이가 끝난 저녁. 이서아는 바로 부산으로 돌아가는 대신, 이안의 집에서 하루 머무르기로 했다. 크루즈에 있던 짐을 아직 찾지 못했기도 하고, 딱히 급한 일정이 없어서 서둘러 돌아갈 이유가 없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자랑 단둘이 있으면 좀 그렇지 않냐고 이안이 말했지만, 그녀는 생각보다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뭣하면 수호령이 날 지켜줄 텐데 뭐. 그리고 지금까지 봤을 때, 넌 그럴 사람이 아니야.”
“……대체 뭘 믿는 건지 모르겠네.”
“직감이지, 직감. 마법사의 직감은 제법 신뢰성이 높다고.”
그녀가 그리 나오니 이안도 포기하고 이서아를 집에 들였다.
자그마한 원룸. 있는 거라고는 투박한 메트릭스 하나와 테이블, 그리고 상자들이 전부인 협소한 장소.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약한 이안의 체취가 디퓨저 향과 어우러져 제법 기분 좋은 향기를 흩뿌렸다. 이안에겐 일상적인 냄새였지만, 살면서 남자 집이라곤 가본 적이 없던 이서아에겐 제법 자극적인 향이었다.
‘남자들은 다 이런 냄새가 나나.’
이서아는 자기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리며 거실을 둘러보았다. 이안이 그녀를 내버려두고 창문을 열었다.
방충망을 뚫고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방 깊숙이 침투했다. 코끝을 스치고 겨울 특유의 냄새가 희미하게 번져왔다.
이안은 잠깐 창문 너머로 비치는 차가운 도시 풍경을 응시하다가, 담배가 다 떨어졌었다는 걸 깨닫고 탄식을 흘렸다.
“담배 좀 사 올게. 기다리고 있어.”
이안의 말에, 가만히 앉아서 코를 킁킁거리고 있던 이서아가 몸을 일으켰다.
“편의점 가는 거지? 같이 가자.”
“뭐 살 거 있어?”
“일단 가보는 거지. 가자, 가자.”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기에 이안은 이서아를 데리고 집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피곤한 인상의 알바생이 두 사람을 반기고, 이안이 익숙하게 평소 피우던 담배를 구매했다. 이서아는 뒷짐을 지고 편의점을 둘러보았다.
“어?”
그러던 와중, 자그마한 주류 냉장고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소주와 맥주 등, 각양각색의 술들이 들어있는 냉장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생이었던 그녀에겐 별로 신경 쓸 필요도 없던 것들이지만 지금은 다르다. 합법적으로 마셔도 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성인이 되고 술도 안 마셔봤네.’
새해가 밝고 벌써 2달이나 지났다. 그녀의 반 친구들은 진작에 클럽도 가고, 술도 마시면서 지내는 중이지만 그녀는 딱히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서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었다.
가족이 있었다면 또 모르겠으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고아였다. 술을 가르쳐 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늘 한번 시도해 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내심 술이 어떤 맛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남자랑 단둘이 마시는 게 그림이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둘 다 마법사라는 전재가 붙으면 사실 별 의미는 없었다.
마법사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좀 아니기는 한데, 모든 마법사는 사실 또라이들이었다. 성욕이 없지는 않지만, 적어도 술을 마셨다고 개가 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서아는 자신 또한 그러한 부류에 속하는 인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짤랑.
고민은 길었고, 행동은 짧았다. 이서아는 소주 2병과 맥주 2캔을 들어서 계산대 위로 가져갔다. 별다른 생각 없이 담뱃갑을 뜯고 있던 이안이 그녀가 가져온 것들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술?”
“마셔보고 싶어서. 걱정 마, 나 이제 성인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후우, 됐다. 알아서 어련히 잘하겠지.”
이안은 그리 대답하고, 편의점 밖으로 나가면서 덧붙였다.
“살 거면 안주도 사. 적당히 먹고 싶은 걸로.”
“여기 사지 말고 집에서 치킨 시키자.”
“뭐, 그래도 되고.”
이안은 계산하는 이서아를 뒤로하고 재떨이가 있는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희미한 연기가 허공으로 올라갔다가 이내 흩어졌다.
잠시 후, 계산을 마친 이서아가 술이 든 봉투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안은 담배를 마저 피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응. 근데 담배는 뭔 맛으로 피우는 거야?”
“담배 맛. 넌 이런 거 하지 마라…….”
“하라고 해도 안 할 거야. 너도 끊어.”
“고민해 보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안은 아직 금연 계획이 없었다. 이서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사람은 다른 곳으로 새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이서아가 사 온 술들을 세팅하고, 이안이 배달 어플을 켜서 치킨을 주문했다.
30분 뒤 주문한 음식이 도착했다.
봉투를 가지고 와 테이블 위로 상자를 올려두자 고소한 기름과 양념 냄새가 진하게 퍼져 나왔다. 순살로 시켜서 다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다리 살을 사용한 건지 퍽퍽한 부위는 따로 없었다. 맛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치킨을 뜯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각자 맥주 한 캔을 쥐고 마시기 시작했다.
이안에게 있어선 익숙한 맛이었다.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더라도, 이따금 심심할 때마다 홀짝이곤 했으니까. 다만 이서아에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미지의 맛인 듯했다.
“으엑.”
보리 주스를 입에 댄 그녀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더럽게 맛없네. 이걸 왜 마시는 거야?”
“그 맛에 마시는 거다.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거야.”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게 무슨. 그보다 이거 진짜 맛없는데? 아, 괜히 샀다.”
이서아는 툴툴거리며 맥주 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녀의 시선이 초록색 소주병으로 옮겨갔다.
“이건 맛있나?”
“맥주보다 더 맛없을걸. 나도 개인적으로 소주는 안 좋아해.”
“미리 말하지!”
“네가 먹고 싶다고 샀으면서 왜 내 탓이야?”
“아무튼 내 탓은 아니니까.”
실로 마법사다운 언행이었다. 이안이 픽 웃으며 치킨 한 조각을 먹고, 맥주를 홀짝거렸다. 이서아도 일단 깐 맥주는 다 마실 생각이었는지, 오만상을 지으며 맥주와 콜라를 동시에 들이켰다. 그러다가 무의식적으로 작게 트림하며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들었어?”
“난 뱃고동 소리밖에 못 들었다.”
“죽어!”
술자리는 제법 길게 이어졌다. 마시는 술이라고 해봐야 각자 쥐고 있는 맥주 한 캔이 전부였지만, 둘 다 마시는 속도가 그리 빠른 편이 아니라서 오가는 대화에 비해 줄어드는 술의 양은 현저히 적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그걸 딱히 나쁘게 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저절로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각자 페이스에 맞춰 술을 홀짝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서아도 맛에 적응했는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맥주를 마셔댔다.
그렇게 치킨과 맥주, 이야기라는 삼박자가 이루어진 곳에서 대작을 나누던 어느 순간.
이서아가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다소 알딸딸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곧 설이네. 본가 내려가?”
“나 고아야.”
이안이 즉답했다. 이서아가 의외라는 듯 퓨, 하고 숨을 짧게 내뱉었다.
“아, 진짜? 나도 고아야. 자발적 고아.”
“……자발적 고아는 또 뭐야.”
“부모님 죽고, 할머니랑 살다가 집 나온 고아. 무당 되기 싫어서 마법사로 전직했지요.”
“그래도 부모님이 있기는 했군. 나 같은 일반 등급 고아랑은 다르니까, 특별히 프리미엄 고아라고 부르도록 하마.”
“예이, 고마워요.”
이서아가 킥킥 웃으며 고개를 위아래로 까딱거렸다. 그녀의 검은 단발머리가 고갯짓을 따라 흔들렸다.
“아무튼 그럼 설에도 어디 가지는 않는다는 거지? 잘됐네. 용돈 뜯길 일은 없겠어.”
같은 고아 출신이기에 할 수 있는 블랙 코미디. 이안은 픽 웃으며 마지막 남은 맥주 한 모금을 쭉 들이켰다.
반쯤 취한 이서아와 다르게 그의 정신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얼굴도 붉어지지 않은 상태였고.
반대로 이서아의 얼굴은 붉은색까지는 아니더라도 홍조가 제법 선명하게 피어올라 있었다. 술에 약한 편인 모양이다.
하긴, 취했으니까 갑자기 본인 가정사를 말하는 거겠지.
딱히 궁금한 사안은 아니었기에, 이안은 대충 그녀의 말을 넘기고 다 마신 캔을 봉투에 집어넣었다. 이서아도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켠 후 봉투에 쓰레기를 집어넣었다. 두 캔이 부딪히며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후하! 잘 마셨다. 앞으로는 절대 술 같은 건 안 마셔야지…….”
“대학교 가면 네가 싫어도 마시게 될걸.”
“대학을 왜 가, 시간 아깝게. 이제 여유도 많으니까 마법사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야지.”
이서아가 그리 말하며 이안을 응시했다.
“졸업식 끝나면 바로 서울로 올라갈 거야. 돈은 충분히 있으니까 집이랑 공방을 바로 만들고, 자가용 차도 하나 사야지. 아, 그전에 면허가 먼저려나.”
“봐둔 집은 있어?”
“없는뎅.”
그녀가 히히 웃었다.
“그냥 여기 근처로 하지 뭐. 적당한 매물 있으면 바로 계약할게. 이웃사촌으로 잘 지내보자.”
“후우, 강령술사가 이사 온 동네라니. 집값 내려가겠네.”
“아, 부동산 주작. 그거 내가 잘하는 짓인데.”
“…….”
“농담이야, 농담. 정색하지 마. 한 번밖에 안 했어.”
이서아는 뒤로 벌러덩 누우며 킥킥 웃었다. 이안이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술자리를 정리했다.
“아, 나도 도와줄 ㅡ으엑!”
이서아가 그를 돕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가, 취기 때문에 휘청거리며 침대 위로 철퍼덕 쓰러졌다. 정확히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가 꿈틀거리며 편안한 자세를 잡았다.
“너 무슨 향수 써. 냄새 좋은데…….”
“향수 안 쓴다. 그리고 취했으면 빨리 씻고 잠이나 자. 땀투성이 옷으로 내 침대 위에 눕지 말라고.”
“싫은뎅. 나 그냥 여기서 잘래. 잘자.”
“뭐라는…… 허.”
이안은 그녀를 끌고 내려오려다가, 진짜 잠든 것을 확인하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눕고 싶을 때 눕는 게 아주 그냥 짐승이 따로 없었다. 맥주 한 캔으로 저러는 게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아…….”
이안은 고개를 젓고, 테이블을 대충 정리한 뒤 바닥에 이불을 깔아두었다. 그렇게 씻고 나와 이불 위로 몸을 눕혔다.
아직 자기에는 이른 시간이라서, 그는 불을 다 끄고 휴대폰를 꺼내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익숙한 개소리들이 반갑게 그를 맞이해주었다.
딱히 영양가 있는 글은 없었다. 이안은 몇 개 없는 개념글을 쭉 정독하고, 글 하나를 작성했다.
[얘들아 나 오늘 많은 일이 있었어.]
[ㅇㅇ]
이제 잘 거니까 잘자 콘 달아줘.
[추천0][비추천0]
[댓글]
-테이밍마스터: (우리 마을에서 꺼져라! 콘)
-심해아귀: 잘자.
-★대모: (마법사 잘자 콘)
빠르게 올라오는 커뮤니티 망령들의 댓글. 이안은 픽 웃으며 휴대폰을 옆에 내려놓고, 눈을 감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다음 날.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아아……! 끄힝!”
이서아가 숙취에 휘청거리다가 모서리에 새끼발가락을 찧었다.
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