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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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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상반신이 수면을 뚫고 나와 허공을 날아간다. 핏물이 비처럼 떨어지고, 순식간에 온몸을 붉은색으로 흠뻑 적신 이안이 얼굴을 닦아내며 날아가는 무언가의 형상을 똑바로 확인했다.

“…….”

그건 아귀였다. 거대한 아귀 대가리가 달린 인간의 상반신이 피를 흩뿌리며 중력을 거슬러 솟구친다. 벌어진 놈의 아가리에서 천지가 울릴 정도의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오오오!!]

[정숙하라.]

그 순간, 바닷속에서 솟구친 검은 가시들이 아귀의 상반신을 꿰뚫고 바닷속으로 끌고 내려갔다.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터져 나오고, 아직 해적선에서 내리지 않았던 해적들이 황급히 갈고리를 잘라내며 도주했다.

[괴수 대전이다! 다 튀어, 시발!]

[앰씹! 크라켄이냐?!]

[그보다 더한 놈들이다! 빨리 닻 올려!]

콰르르르!

해적선에서 내려놓았던 닻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올라갔다. 접었던 돛이 펼쳐지며 검은 해적선의 깃발이 펄럭인다.

하지만 그들은 도주하지 못했다. 바다 위로 피어난 붉은 눈동자들이 마치 피라냐처럼 움직여 해적선과 그 위로 올라탄 해적들을 순식간에 먹어 치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1초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어이가 없네. 저게 그리 약한 놈들은 아닌데.”

이안처럼 피를 뒤집어쓴 이서아가 중얼거렸다. 이안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마도서를 꽉 쥐며 수면 아래를 노려보았다.

보이는 건 없다. 검은 바닷물 위로 피어난 눈동자들만 시야에 들어올 뿐이다. 저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아아아악!!!]

생산자가, 외신의 닻을 도륙 내고 있다.

[물지도 못하는 개가 짖는 법이지.]

사아아아……!

바다가 한 차례 요동칠 때마다 사방으로 피와 장기가 흩뿌려진다. 나지막한 생산자의 목소리와 대비되는 끔찍한 비명이 공기를 진동시키고, 그 소리를 감지한 자그마한 아귀들이 사방에서 몰려든다.

의미 없었다.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그대로 고깃덩어리가 되어 바닷속으로 수장되었다. 무엇이 놈들을 죽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눈동자가 움직였을 뿐이고, 사지와 상반신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분해되었을 뿐이다.

의문사.

그게 놈들의 사인이었다. 이안은 헛웃음을 내뱉으며 피로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바다라서 그런가, 포텐셜이 더욱 올라간 것 같은데.”

[그러합니다.]

생산자가 이안의 혼잣말에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바다 깊은 곳에서 울려 퍼졌다.

[이곳의 바다는 외해보다 훨씬 덜떨어진 곳이지만, 그럼에도 바다는 바다이지요. 육지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다른 생물들도 똑같나?”

[그렇습니다.]

촤아아악!!

아귀의 팔 하나가 찢어져 허공으로 날아갔다. 정확히 크루즈의 끄트머리에 처박힌 팔이 꿈틀거리다가 이내 축 늘어진다.

[그러니 바다에서 싸울 기회가 생긴다면 그들을 한번 풀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아마 좋아서 날뛸 확률이 높습니다.]

“……그게 나에게 좋은 일인가?”

[바다는 넓으니까요. 풀어놓으면 알아서 헤엄치며 이곳의 해양 생물을 잡아먹을 겁니다.]

“인간을 공격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음. 아쉽지만 대리자님을 제외한 인간은 제게 고려 사항이 아니군요.]

생산자가 그리 대답하며 수면 위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옆에는 혀를 쭉 내밀고 죽은 아귀의 대가리가 달려 있었다. 붉은 핏물을 뚝뚝 흘리는 머리가 징그럽게 찢어져 마치 꽃처럼 변해 있었다. 붉은 살점이 꽃잎을 이루고, 뇌가 꽃술 자리를 대체한다.

[처리했습니다.]

생산자가 아귀의 머리를 이안에게 보여주듯 내밀면서 말했다.

[혹 괜찮다면 이것을 먹어도 되겠습니까?]

“……먹으라고 명령했으니까. 먹어도 괜찮다.”

[감사합니다.]

생산자는 고개를 살짝 숙인 후, 입을 벌려 아귀의 머리를 우적우적 씹어 넣었다. 뼈와 살이 분쇄되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의 비명소리가 선명히 울려 퍼졌다.

[죄송합니다. 제게 먹히는 생물은 늘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지르곤 합니다. 인간이 듣기에 그리 좋은 소리는 아닐 겁니다.]

“……난 괜찮다. 그보다 이제 끝난 건가?”

[그렇습니다. 공간의 붕괴가 느껴지는군요.]

생산자가 그리 말하는 것과 동시였다. 지평선 끝부터 하늘과 바다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흩날리는 재처럼 사라지는 공간. 생산자가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가 바닷속으로 몸을 반쯤 담갔다.

[아마 붕괴가 끝나면 이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이 해결될 겁니다. 위치는 그대로 이곳이겠지만, 그래도 신비로부터 벗어난 상태겠지요.]

“…….”

[부디 무사히 귀환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여기서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생산자는 모든 눈동자를 감으며, 마치 인사하는 것처럼 상체를 수그렸다. 이안이 숨을 토해내며 알겠다고 대답하려던 찰나, 생산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그분의 전언입니다.]

“뭐?”

[기다리고 있어, 라고 하시는 군요.]

뚝.

그 말을 끝으로 생산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안은 가만히 놈이 서 있던 자리를 응시하다가, 얼굴을 쓸어내리며 난간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멍하니 생산자를 쳐다보고 있던 이서아도 슬금슬금 그의 곁으로 다가와 옆에 섰다.

“……너 혹시 그 마도서도…….”

“…….”

“……음, 못 들은 걸로 해줘. 나도 궁금해하지 않을게.”

“고맙다.”

이안은 쓰게 웃으며 마도서를 품에 집어넣고, 평소 담배를 넣어두던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잡히는 게 없었다. 생각해 보니 부서진 담뱃갑은 진즉에 버렸었고, 마지막 남은 돛대도 전투가 끝난 후 피웠었다.

아껴 피우고 있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공간의 붕괴는 어느새 크루즈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영화에서 자주 쓰는 기법인 아이리스 아웃처럼, 크루즈를 제외한 다른 곳은 시꺼먼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이걸로 크루즈에서의 일도 끝이었다. 그리 뒷맛이 깔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진 않았다. 외해의 생물들이 자신을 먹으려고 하는 이유도 알아냈고, 크툴루 신화와 관련된 교단이나 외신의 존재도 깨달았으니. 수확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신비를 제공한 제공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좋은 의도가 아니라는 건 알겠네.

신비를 타인에게 나눠준다는 기괴한 짓거리를 일삼는 괴인. 신비랑 관련된 인원 중 선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니 기분이 제법 이상했다.

잠깐이었다. 이안은 곧바로 생각을 정리한 뒤, 어두워지는 공간을 시야에 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제공자를 직접 추적할 필요는 없었다. 의도치 않게 엮이기는 했지만, 딱히 원한도 없을뿐더러 크게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으니.

관리국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 그쪽에서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의뢰 끝내고, 당분간은 쉬면서 회복에 전념하는 게 낫겠어.

이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호흡을 골랐다.

잠시 후, 코끝을 스치는 바다 내음과 함께 공간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의뢰는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공간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동시에 신비가 작동을 종료하고, 두 사람이 현실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크루즈 내부에 널브러진 정신을 잃은 생존자들을 한 곳에 대충 모아두고, 카르텔을 호출했다. 그들은 그 호출을 거절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카르텔엔 바다 한가운데에 고립된 고객을 위한 서비스도 존재했다. 벤이 아니라 요트를 이용한다는 것만 빼면 인뎀니스와 별반 차이는 없었다.

아, 비용은 조금 더 비쌌다. 그래도 서비스는 나쁘지 않았다. 충분히 돈값은 했다.

“여기 USB다. 이게 실종 사건의 원인이었어. 생존자들은 아직 크루즈 안에 있을 거다.”

의뢰 완수의 증거품인 USB도 그들에게 넘겼다.

공간의 붕괴 후 눈앞에 나타난 검은색 USB. 딱히 외형이 특이하지는 않았지만, 기운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허공에 꽂아도 단자에 들어간 것처럼 고정되는 특성이 있었기에, 카르텔은 별다른 의심 없이 USB를 챙겨갔다.

확실한 증거품 덕분에 1차 보수는 그 자리에서 입금되었다. 2차 보수는 생존자들의 상태를 파악한 후에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돈이 급한 건 아니라서 그들의 선택에 큰 불만을 품지는 않았다. 입금 시기야 아무래도 좋았다.

그렇게 요트 위에서 하루를 보낸 후, 두 사람이 다시 한국의 땅을 밟았다.

“의뢰 고생하셨습니다. 기회가 되면 다시 뵙겠습니다.”

카르텔 직원은 두 사람을 인천 항구에 내려주고 돌아갔다. 두 사람은 하품을 내뱉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육지에 땅을 디디는 게 왜 이렇게 오랜만인 것 같지…….”

“실제로 오랜만이니까. 배는 안 고파?”

“아, 괜찮았는데 그 말을 들으니까 배고파졌어.”

“그럼 밥이나 먹자. 뭐 먹고 싶은 건?”

“뷔페 가자, 뷔페. SNS에서 봤는데, 인천에 되게 분위기 좋은 뷔페가 하나 있다고 하더라. 한번 가보고 싶었어.”

“그럼 거기로 가자.”

다행히 주차장에 세워 두었던 바이크는 그대로 주차되어 있었다. 이안은 익숙하게 헬멧을 착용하고, 뒷좌석에 그녀를 앉혔다. 이서아는 처음 타보는 바이크에 호기심 반, 두려움 반 섞인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거 안전한 거 맞아?”

“대모의 마법이 걸려 있으니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야. 헬멧은 여분이 따로 없어서 일단 그냥 가야 할 텐데, 문제없지?”

“안전하다면야 뭐. 근데 이거 불법 아니야?”

“안 걸리면 괜찮아.”

이안이 픽 웃으며 시동을 걸었다. 이서아도 웃으면서 이안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오빠 달려!”

부우우웅!

그녀의 말에 맞춰 스로틀을 당겼다. RPM이 빠르게 올라가고, 바이크가 주차장을 빠져나와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곧장 바람을 맞으며 이서아가 말했던 뷔페를 향해 달려갔다.

안타깝게도 뷔페는 유명세에 비해 별로 맛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