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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엘리베이터 사이로 보이는 풍경.
길게 뻗은 복도 위로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마치 무언가 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그들이 식당 입구에 서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일이야?”
“사람이 죽었다는데. 방에서 끔찍한 몰골로.”
“뭐? 그게 정말이야?”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마치 게임 속 주민들이 서로 어색하게 주고받는 듯한 대화가 얼핏 들려왔다. 그는 떠드는 시민들의 머리 위에 새겨진 다양한 역할들을 흘깃 응시하다가, 이서아와 함께 식당 쪽으로 걸어갔다.
“아, 신이안 탐정님이다.”
“유명한 분이야? 이 분야에선 최고일 걸.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 없다고 하더라.”
“그래? 옆에는…… 타짜잖아. 조수인가?”
“모르지. 어쩌면 잡힌 걸 수도.”
대놓고 들려오는 속닥거림을 무시하고, 두 사람이 굳은 표정으로 식당 내부로 진입했다.
식당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이안이 그들을 파고들어 안쪽으로 향하려는 순간, 누군가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이안은 반사적으로 코트 안쪽에 손을 넣으며 고개를 홱 돌렸다.
“탐정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손의 주인은 제법 살벌하게 생긴 어느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굳은 이안의 표정을 보며 머쓱하게 웃더니, 뒤로 한 걸음 물러나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놀라게 해드릴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죄송합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
“아, 저는 강력반 형사입니다. 이름은 배도현이라고 합니다.”
그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이안에게 인사했다. 이안은 곧바로 답하는 대신, 그의 머리 위로 떠오른 역할을 슬쩍 확인했다.
[형사 배도현]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설명과 정확히 일치하는 단어들. 이안은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 후, 잠깐 할 말을 차분히 골랐다.
‘한국에서 탐정의 지위는 그리 높지 않다. 형사가 저리 저자세로 나올 이유는 없어.’
신비가 이 역할극에 얼마나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한 사전 지식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긴, 이놈들은 인간을 죽이는 방법에만 열을 올리는 편이지 짜임새 있는 구조를 만드는 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허점이 존재하는 거고, 공략법을 작성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신비가 주도면밀하고 지능이 뛰어났다면, 이미 인류는 그들의 손에 떨어졌겠지.
아무튼.
저쪽에서 이리 먼저 허점을 드러낸 이상, 굳이 그것을 파고들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강력반 형사가 사설 탐정에게 먼저 고개를 숙이는 이상한 상황.
이용할 가치는 충분했다.
“무슨 일입니까.”
생각을 마친 이안이 짐짓 이지적이고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순식간에 바뀐 그의 태도에 이서아가 순간 눈을 찌푸렸지만, 그녀 또한 빠르게 도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머, 형사님. 저희 탐정님이 얼마나 비싼 몸인지는 알고 계시죠? 별것도 아닌 일로 이렇게 시간을 잡아먹으시면 저희도 곤란해요.”
“……도박꾼은 조용히 하십시오. 저는 탐정님에게 말하는 중입니다.”
배도현이 이빨을 으득 갈며 읊조렸다. 노골적인 적대감. 그러나 이서아는 어깨를 으쓱거릴 뿐, 크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그럼 빨리 말하세요. 나 배고파.”
“……태도가 무슨.”
“형사님.”
짜증을 내기 시작한 형사의 말을 이안이 끊어냈다.
“용건만 빨리 말씀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배도현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그를 식당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이안은 이서아에게 식당에서 잠깐 가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언제든지 대응할 수 있도록 한쪽 손을 허공에 내놓으며 그를 따랐다.
“살인 사건입니다.”
배도현이 말했다.
이미 선상 살인 사건이라는 챕터 제목을 통해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이안은 심각한 표정을 연기하며 침음성을 흘렸다.
“……살인 사건이요.”
“네. 20대 여성 한 명이 끔찍한 몰골로 사망했습니다. 현장은 보존 중입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안내해 주십시오.”
이안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서서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잠시 후, 크루즈의 3층에 있는 작은 방 앞에 도착한 그가 이안을 돌아보았다.
“여기입니다.”
“현장을 지키는 경찰은 없군요.”
“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경찰들이 여기까지 들어올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크루즈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인데, 어떻게 경찰들이 순식간에 현장을 장악하고 통제하겠는가.
대한 영해에서 발생한 일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여기는 대서양이었다. 한국 경찰이 들이닥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들어가십니까?”
배도현이 방 문고리를 잡으며 말했다. 이안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끼이익.
불길한 소리를 내며 열린 문틈 사이로 짙은 피비린내와 바다 특유의 소금 향이 풍겨왔다. 슬며시 보이기 시작한 바닥에 핏물이 흥건히 고여 있다.
“언제 봐도 좆같군.”
배도현이 그리 속삭이며 문을 완전히 개방했다. 이안은 담배 끝에 불을 붙이며 안으로 진입했다.
탁.
불을 켜자 방에 빛이 들어온다. 그리고 방의 전체적인 풍경 또한 시야에 들어왔다.
“…….”
붉다. 첫 감상은 그게 전부였다.
벽과 바닥, 그리고 천장 구분 없이 사방에 피가 가득했다. 마치 붉은 페인트로 덧칠을 해놓은 것만 같았다.
천장에 묻은 핏물은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아 뚝뚝 떨어져 내렸고, 바닥에 널브러진 살점과 장기는 시체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축 늘어져 있었다.
역겹기 그지없는 공간. 그러나 이안은 당황하는 대신, 차분히 현장을 살폈다.
“사인은 과다 출혈입니까?”
그가 물었다. 배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중입니다. 피가 너무 많으니까요.”
“음.”
이안은 대답하는 대신, 시체 옆으로 걸어가 그녀의 상태를 조심스레 확인했다.
벗겨진 흔적은 없다. 구타의 흔적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텅 비어버린 눈구멍을 보면 안구를 적출당한 것 같은데, 저항한 듯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발견한 흔적 1. 사라진 안구]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상태창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안은 미간을 콱 찌푸리며 상태창을 밀어냈다.
시체의 복부에는 자그마한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그 안에서 흐른 장기가 길게 뻗어 나와 현관까지 이어져 있었고, 구멍 너머로 찢어진 내부 장기들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였다.
‘내상이군.’
아무런 구타의 흔적이 없음에도 발생한 장기 파열.
적어도 인간의 소행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이안은 숙였던 몸을 일으키며, 시체의 벌어진 입속, 잘려 나간 혓바닥을 응시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선장은 지금 뭐 하고 있습니까?”
“가까운 항구를 찾아 배를 세우려 하는 중입니다. 다만 아직 바다 한가운데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하더군요.”
“직접 대화를 나눴습니까?”
“예. 잠깐이기는 했지만요.”
이안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왔다. 배도현이 그의 뒤를 따랐다.
“어떻게, 탐정님. 뭘 좀 아시겠습니까?”
이안은 그의 물음에 곧바로 대답하는 대신 담배 연기를 후욱 내뿜었다.
뭘 알겠냐고? 아니, 전혀 모르겠다.
애초에 진짜 탐정도 아닌데 현장만 보고 뚝딱뚝딱 답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있나.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안은 마치 추리라도 하는 것처럼, 가만히 벽에 기대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분위기가 제법 살았는지, 형사는 그를 방해하지 않고 조금 물러났다.
이안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그는 품속에 넣어둔 마도서의 표지를 쓰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굳이 신비가 짜놓은 시나리오를 따를 필요는 없다.’
이안은 관리국 요원이 아니다. 신비의 특성을 조사하고, 파헤쳐 공략법을 알아낼 이유 따위 하등 없었다. 해야 할 일은 처음부터 명확했다.
찾아서 죽인다.
마법사들이 가장 잘하는 짓이자, 가장 좋은 해결 방법.
신비의 본체가 뭔지, 무엇이 이런 현상을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신비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이상 찾는 건 시간문제였다. 크루즈 전체를 뒤져보면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 터.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보았던 그 여자.
다리가 세 갈래로 찢어져 살점 사이로 촉수를 꿈틀거리던 그 모습은, 평범한 선상 추리 게임에 등장한다고 하기엔 시각적으로 문제가 광장히 많았다.
괴물이 등장하는 추리 게임이 더 이상 추리 게임으로서 작동할 수 있겠는가? 그건 그냥 괴물 피하기 게임이다.
그러니 다른 무언가가 더 있다고 보는 게 옳은 일이었다. 이안은 그리 생각하며 다 피운 담배를 대충 벽에 비벼 꺼트리고 던졌다.
“앗, 꽁초는…….”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입니까.”
그가 형사의 핀잔을 대충 무시하며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이서아랑 대화 좀 하겠습니다. 형사님은 크루즈에 탑승한 인원들을 전부 모아서 극장으로 보내 주십시오.”
“전원…… 말씀이십니까? 저 혼자서요?”
그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안은 긍정의 표시로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후, 이서아가 기다리고 있을 식당으로 향했다.
승강기에 탑승하니, 여전히 격렬하게 입을 맞추는 중인 신혼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불어 터진 입술에서 피가 질질 흘러나왔지만, 그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아랫입술을 쉬지 않고 깨물거나 빨아댔다.
가만히 놔둔다고 해서 생명의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기에, 이안은 그들을 무시하고 승강기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안은 웅성거리는 시민들을 뒤로하고 이서아가 앉아 있는 자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무런 음식도 입에 대지 않고 있던 그녀가 이안을 발견하고 입술을 달싹였다.
“어땠어?”
“좋진 않아. 신비에게 살해당한 것 같다.”
드르륵.
이안이 의자를 빼서 자리에 앉았다.
“방은 피범벅에 혓바닥은 소실. 눈도 파였고, 장기는 파열에 밖으로 튀어나와 있더군.”
“……제법 난폭하게 죽였네. 그래도 증거를 숨기지는 않아서 다행이야. 혓바닥이라니. 너무 큰 힌트잖아.”
이서아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이안이 창밖으로 펼쳐진 어두운 바다를 응시하면서 물었다.
“짐작 가는 게 있나?”
“대충은. 아마 ‘피 흐르는 혓바닥 교단’인가 뭔가 하는 놈들 짓인 것 같은데.”
“피 흐르는 뭐?”
전혀 들어보지 못한 종교의 이름에 이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서아는 별거 아니라는 듯, 턱을 괴며 뼛가루 병을 꺼내 들었다.
“피 흐르는 혓바닥 교단. 크툴루 신화에 나오는 종교인데 현실에도 있어. 인신 공양으로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고 혀를 잘라서 가져간다는 특징이 있지. 역사적으로 유명 사람 중에도 여기 속한 사람이 몇 명 있었어. 대표적으로 히틀러랑 괴벨스, 그리고 나머지 나치 장교들 정도?”
예상보다 더한 거물의 등장에 이안의 말문이 턱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