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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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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경계선은 어디인가. 대체 어디까지가 병원의 영역이고, 어디가 현실로 이어지는 통로인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기에 쉬지 않고 달려야만 했다. 이안은 뒤에서 싸우는 두 거대한 괴물을 무시하고, 남은 기름의 양을 살폈다.

‘얼마 안 남았는데…….

처음 바이크에 탔을 때부터 그리 많지는 않았던 기름이지만, 속력을 미친 듯이 뿜은 탓인지 벌써 동나기 직전까지 떨어져 버렸다.

어쩌면 이 공간의 시간의 흐름이 어긋난 탓일 수도 있고, 단순히 이 바이크의 연비가 좋지 않은 탓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시간이 촉박하다는 건 매한가지였다. 이안은 더 이상 자신을 따라오는 이들의 안위조차 신경 쓰지 않은 채 뻥 뚫린 도로를 내달렸다.

“캬아아악!”

이따금 도로의 끝에서 괴이가 튀어나오는 일도 있었지만, 김이서가 모조리 저격해서 머리를 터트려버렸다.

차를 탄 상태로 이루어지는 정밀한 사격술.

압도적인 집중력과 사격 능력이, 그녀를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게 만든 힘이겠지.

아군일 때는 든든하지만, 적일 때는 무서운 능력이었다. 이안은 머릿속에 분홍 머리카락을 새겨 넣으며 악셀을 풀로 당겼다.

부아아앙!!

흡사 공기를 찢어버리는 듯한 소음이 귓가를 연신 때려댔다. 뒤에서 이루어지는 혈투에 세상이 흔들렸고, 천지가 진동하며 균형을 무너뜨렸다.

억지로 버틴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피를 무시하며, 오롯이 탈출이라는 목표 하나만을 두고 내달린다. 옆에서 나란히 움직이는 체칠리아와 뒤에서 따라오는 관리국의 엔진 소리를 들으며 질주한다.

그러길 한참, 뻥 뚫린 도로 너머로 안개처럼 흐릿한 도시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을 뚫을 것처럼 높게 솟은 마천루. 그리고 빌딩들의 숲.

한국의 수도인 서울이었다.

박희수가 실루엣처럼 흐린 도시를 보며 소리쳤다.

“아! 저기다! 저기로 달려!”

끼기긱!!

이안은 그대로 방향을 돌려 도시로 이어지는 도로에 몸을 실었다. 체칠리아가 그를 따르고, 관리국 요원이 신들린 드리프트를 보이며 두 사람을 따랐다.

“공간이 깨지는 곳이 있을 거다! 거기로 들어가!”

공간이 깨지는 곳.

이안은 몸을 숙인 채, 고개만 살짝 들어 공간이 일그러진 곳을 찾아 눈동자를 돌렸다.

시속 15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며 공간의 미세한 일그러짐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해내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는 눈을 쿡쿡 찔러대는 바람을 어떻게든 버티며 주변을 살폈다.

“……!”

그러길 한참, 이윽고 유리처럼 깨져 있는 허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안은 말로 하는 대신, 손을 뻗어 경로를 알려주고 앞바퀴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두 차량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콰아아아앙!!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감시자가 도로 한복판으로 추락했다. 온몸이 으깨진 감시자는 잠깐 바닥에 누워있다가, 이안을 발견하고 가볍게 촉수를 흔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반갑게 인사하는 것만 같아서,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꾸드득……!

길을 막고 있던 감시자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는 대신, 촉수를 마치 길처럼 만들어 세 차량을 통로로 이끌었다.

본능보다 이성이 더욱 앞서는 모습. 전달자에 비해 지능이 확실하게 높은 개체였다. 무력이 강할수록 지성도 올라가는 건지, 감시자가 유난히 특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만한 지능이라면 의사소통 또한 가능할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무차별적인 폭식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은 시도할 수 없겠지만, 나중에 기회가 생긴다면 실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싶었다.

그래, 나중에.

지금은 탈출이 우선이다.

부아아앙!!

촉수로 이루어진 도로를 굳이 거부하지 않고 올라타 나아간다. 체칠리아는 잠깐 머뭇거렸지만 이내 이안을 따라 달려갔고, 관리국 요원들도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을지언정 거부하지는 않았다. 세 차량은 미끈거리면서도 날카롭고 단단한 촉수를 바퀴로 밟으며 탈출구로 질주했다.

콰가가각!

길을 만들지 않은 다른 촉수들은 마치 작살처럼 꿈틀거리며 어딘가를 미친 듯이 찌르고 있었다.

아마 그쪽 방향에 병원장이 있을 터.

피가 터지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걸 보면 그리 멀리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안은 잠깐 감시자를 응시하다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공간의 일그러짐을 향해 악셀을 당겼다.

바람을 찢으며 쏘아진 바이크가 이내 깨진 공간에 닿는다. 그 순간, 유리가 부서지는 듯한 깨끗한 소리가 들려옴과 함께 일그러진 공간의 크기가 더욱 커졌다.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징그러운 새하얀 풍경이 시야를 뒤덮고, 이안이 부서진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졌다. 체칠리아와 관리국 요원들이 그를 따랐다.

일그러진 공간은 일행이 모두 사라진 후에도 복구되지 않고 그대로 모습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미 공간의 일부가 된 괴이는 넘어가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미련이 남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킥.]

감시자는 멀리서 달려와 공간에 머리를 들이미는 병원장을 보며 혼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길 잠시, 그가 피안개로 변해 사라졌다.

이미 배는 진즉에 채운 상태였다. 지금까지 남아있던 건 단순한 호기심이 원인이다.

그 ‘창조주’께서 흥미를 지닌 인간. 그분이 동반자로 삼고, 깊은 애정과 욕망, 흥미를 드러내게 만든 창백한 푸른 점의 생물.

일신의 무력은 보잘것없지만, 창조주의 의지 때문인지 제법 마음에 드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다음으로 소환될 동족이 자신일 거라 확신할 수는 없으나, 기회가 된다면 다시 얼굴을 보고 소통해 보고 싶었다.

다만…… 다음에 먹는 건 신비가 아니길 바랐다.

역시 인간을 비롯한 깨끗하고 순수한 생명이 가장 별미였다. 대충 천 명만 먹어도 적당히 배가 찰 테니, 필요할 때 다시 현실에서 불러줬으면 좋겠다.

감시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완전히 흩어졌다. 이제 도로에는 병원장밖에 남지 않았다.

피를 줄줄 흘리며 사족보행 하던 병원장은, 아무도 남지 않은 곳에서 홀로 팔을 미친 듯이 휘저었다.

노골적인 분노 표현이었지만, 그것을 받아줄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공간을 넘어온 순간, 이안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눈을 부릅 떴다. 그는 곧장 몸을 벌떡 일으키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여긴.”

굳이 자세히 둘러볼 필요도 없었다. 자그마한 사각형 공간. 옆에 있는 두루마리 휴지와 ‘휴지를 변기에 버리지 마세요’라는 문구만 봐도 이곳이 화장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안은 잠깐 멍하니 휴지를 만지작거리다가, 숨을 길게 토해내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돌아온 건가…….

마지막 기억은 바이크를 타고 공간을 넘어온 장면이었다. 대뜸 도로에서 다시 눈을 뜨는 것 아닌가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후우.”

이안은 잠깐 마른 세수를 하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가방을 주워들었다.

내용물을 살펴보니 딱히 사라진 건 보이지 않았다. 마도서 두 권도 그대로 들어있고, 다른 연금술 물품들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중이었다.

‘설마 아직 병원 내부인 건 아니겠지?

순간 머리가 아찔해지는 상상이 떠올랐지만, 이내 밀어두었다. 피 냄새가 번지지 않는 걸 보면 탈출은 무사히 한 게 틀림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안은 변기에 앉아 차분히 리볼버를 장전하고 해머를 미리 당겨놓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달칵.

칸의 문을 열자 새하얀 병원 특유의 화장실이 눈에 들어왔다. 소변기 앞에 선 평범한 모습의 남자 또한 보였다.

‘돌아왔군.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세면대에서 가볍게 손을 씻으며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푸르고 붉은 혈액이 검은색 머리카락에 들러붙어 굳어있지만, 대충 봐서는 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꺼림칙하기는 해서, 이안은 화장실에 사람이 거의 없는 틈을 타 머리카락에 물을 잔뜩 끼얹었다.

“아빠, 저 형아 여기서 머리 감아!”

“무시하렴…….”

들려오는 목소리는 무시하고, 얼굴이나 목에 묻은 핏자국도 깨끗하게 지워낸다. 옷에 묻은 피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원래 검은색 옷이라 티가 그리 많이 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더러운 건 매한가지라 찝찝하기는 했다.

‘……일단 돌아가서 샤워하고 옷부터 갈아입어야 하려나.

입을 한 차례 헹구고, 대충 머리에 묻은 물을 털어내며 화장실 밖으로 나간다. 그때,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거지꼴인 체칠리아가 눈에 들어왔다.

“…….”

“…….”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옷이 거의 다 찢어지고, 핏자국이 흥건한 상태인 체칠리아를 보며 사람들이 수군거리지만, 그녀는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으며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이안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저기…… 혹시 응급 환자신가요? 아, 그치만 상처는 없으신데…….”

침묵은 조심스레 다가온 간호사의 목소리로 막을 내렸다. 체칠리아는 간호사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멀쩡해요. 이거 주운 옷.”

“아…… 혹시 노숙자……?”

“……네.”

마땅한 변명이 생각나지 않는 건지, 그녀가 그리 얼버무리고 이안의 손목을 콱 붙잡았다.

“가자. 일단 샤워랑 옷이 먼저야.”

“……누구신데요?”

“그게 통할 거라고 생각해?”

체칠리아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이안을 질질 끌고 병원 밖으로 향했다. 이안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본 말이라 그냥 그녀를 따라갔다.

두 사람은 근처 옷 가게에서 빠르게 옷만 사서 나오고, 모텔로 들어가 샤워한 후 환복했다.

남녀가 같은 방에서 씻고 나왔지만, 이상야릇한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느라 불편한 따끔거림이 느껴질 뿐이었다.

이안은 그녀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았다. 체칠리아는 침대 끝에 앉아 그를 응시했다.

다시 한번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병원 안에서는 대화를 나누고 협력까지 했지만, 탈출한 지금까지 그 관계가 유지될 거라 믿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친분이 생겼을지언정, 친애의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직은 그렇게까지 서로를 신뢰할 수 없는 관계였다. 적어도 이안은 그리 생각했다. 체칠리아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녀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단.”

잠시 후, 체칠리아가 먼저 침묵을 깨트렸다. 그녀는 잠깐 할 말을 고르는 듯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열고 말을 이었다.

“내가 한국에 온 이유는ㅡ”

띠링.

그녀의 말이 이어지려던 순간, 이안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그는 잠깐 체칠리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수녀님: 이안, 소연이 상태는 확인했니? 어떻다고 하니?]

“아.”

메시지를 읽은 그가 탄식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 병원으로 갔던 원래 목적이 이거였지.

워낙 상황이 급박했던지라 망각하고 있었다.

이안은 머쓱한 표정으로 수녀님이 보내준 메시지를 체칠리아에게 알렸다. 체칠리아도 아, 하고 탄식을 흘리며 뺨을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