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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짐은 거의 없다.

침대 하나. 사계절용 옷 몇 벌. 그리고 고성능 컴퓨터.

아, 화분도 하나 있었다.

초호기의 침대 역할을 하고 있는 화분.

마지막으로 내 지팡이를 담은, 무척이나 길고 커다란 박스가 하나 있었다.

사실 이삿짐센터를 부를 것도 없이 나 혼자서도 충분히 옮길 수 있는 짐들이었다.

아무래도 눈에 너무 띄니까 그만두었지만.

작은 용달차 하나를 부르자 모든 짐이 실리고도 공간이 넉넉하게 남았다.

새집에 도착했을 때 나를 맞이한 것은 브로커였다.

브로커의 손에는 두루마리 휴지 한 세트가 들려 있었다.

“그거 혹시 집들이 선물?”

“….”

나는 황당한 눈빛을 담아 그를 쳐다봤다.

브로커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집은 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1층짜리 단독주택이었다.

주변으로는 높은 담장이 둘러쳐져 있어,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구조였다.

나는 이 점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좁지만 아담한 마당도 있었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하실이었다.

“어지간한 길드 훈련 시설이랑 비슷하다더군.”

“비싼 값은 하네요.”

브로커의 말에 따르면 방음과 방진 설비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는 지하실.

이 지하실은 훈련장으로 쓸 생각이었다.

이제 새 마법을 얻을 때마다 초등학교 운동장이나, 놀이터에 갈 필요가 사라졌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구 배치는 순식간에 끝났다.

워낙 짐이 적었기 때문이다.

배치를 마치고 보니 넓은 집에 비해 가구가 너무 적었다.

텅 빈 거실에는 컴퓨터 책상과 의자, 그리고 구석에 놓인 침대가 전부였다.

집이 아니라 창고처럼 보일 지경.

“이렇게 황량한 집에서 어떻게 사람이 혼자 살아?”

브로커는 텅 빈 집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나는 그의 목소리에 담겨있는 걱정을 읽을 수 있었다.

브로커는 소파와 책상이라도 하나 들여놓으라며 잔소리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나에게 필요한 것은 컴퓨터 한 대와 침대뿐.

다른 가구는 공간만 차지하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이다.

책장이나 옷장 따위가 있어도 그 안에 채워 넣을 물건은 없다.

손님 접대할 일도 평생 없을 테니, 거실에 소파나 테이블도 필요 없을 거고.

“좀 비어 보이긴 하는데…. 뭐, 적응되겠죠.”

“하긴, 네가 이런 집에 처음 살아봐서 그러겠지.”

내 무심한 대답에 브로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내게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필요한 거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해. 내가 알아봐 줄 테니.”

브로커는 그 말을 남기고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나는 텅 빈 거실에 서서 그가 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문이 닫히자, 집 안에는 완벽한 정적만이 남았다.

문득, 며칠 전 풍뎅이가 했던 메니저의 일이 떠올랐다.

나중에 공식 A급 헌터 직함을 달고 활동하게 된다면, 분명 처리하기 힘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터.

매니저를 맡긴다면, 저 아저씨가 그나마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닐까?

불법 브로커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내게 보여준 모습은 단순한 사업 파트너를 넘어선 것처럼 보였다.

“뭐, 아직 한참 남은 이야기니까….”

나는 고개를 저어 잡생각을 떨쳐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같은 건 머리만 아프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생각해도 될 일.

나는 지하실로 내려가 보았다.

묵직한 방음문이 열리자, 눈앞에 펼쳐지는 깔끔한 훈련실.

충격 흡수에 탁월한 특수 소재로 마감처리 된 벽.

한쪽에는 각종 무기와 훈련용 허수아비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훈련실 바닥이 모래가 아니라는 것.

내게는 모래가 없는 공간은 무의미했다.

“잠깐 놀이터 나가서 좀 퍼 올까….”

하지만 나는 곧 고개를 저었다.

이제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런 도둑놈 심보를 가질 필요는 없었다.

이제는 사서 써야지. 그것도 아주 질 좋은 모래로.

나는 곧장 핸드폰을 꺼내 최고급 가는 모래를 대량으로 주문했다.

헌터들을 위한 로켓배송 서비스를 사용한 덕분에, 저녁이 되기도 전에 집 앞에 거대한 모래 포대 몇 개가 배달되었다.

나는 지하실 바닥을 가득 채울 만큼의 모래를 옮겼다.

훈련실은 순식간에 아늑한 모래사장으로 변했다.

물만 있으면 바다에 온 것 같았다.

맨발로 걸어보자, 발가락 사이사이로 기분 좋게 부드러운 촉감의 모래가 삐져나왔다.

나는 화분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초호기를 꺼내 모래 위에 내려놓았다.

“이제부터 여기가 네 방이야.”

내 말에 초호기는 잠시 어리둥절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내 발밑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낀 녀석은 즐거운 듯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까지도 웃음이 나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지하실을 초호기 전용 공간으로 세팅해 줘야겠다.

나는 지팡이를 훈련실 한가운데에 깊숙이 꽂아 넣었다.

지팡이 끝에서부터 은은한 마력이 퍼져나가더니 지하실을 가득 채운 모래에 스며들었다.

초호기가 더욱 좋아하는 것이 느껴졌다.

녀석은 지팡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야, 그거 뽑아서 휘두르고 그러면 안 된다.”

나는 초호기에게 단단히 경고했다.

지팡이를 꽂아두니, 지하실 전체의 마나 순환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탁한 방에 공기청정기를 틀어놓은 느낌이랄까.

어쨌든 이제 지하실은 초호기가 훈련하기 위한 방이다.

어차피 나 자신에게는 단련 같은 것이 필요 없었다.

사자가 단련을 하던가…?

강자가 단련을 하는 것은 비열한 일인 법.

나는 주변의 훈련용 장비들을 훑어보았다.

목인장과 샌드백. 다양한 무게의 덤벨, 그리고 각종 무기들.

이런 것들은 초호기가 창술이나 근접 격투를 연습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요즘 탑에 데려가지 못해 성장이 정체된 것 같아 마음에 걸렸지만, 언젠가 무한의 모래 군세로 탑을 클리어하겠다는 나의 원대한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꿈의 선봉에 설 것이 바로 이 녀석, 초호기였고.

“비싼 거 사줬으니까 열심히 해야 한다?”

초호기는 내 말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린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휴대폰 사용 시간을 1시간 늘려주겠다는 말에 순순히 훈련용 창을 쥐었다.

역시 당근과 채찍이 최고다.

나는 지하는 초호기에게 맡기고, 위층으로 올라왔다.

“후우. 이걸로 이사 끝인가….”

몸을 쭉 펴자 뻐근했던 등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나는 텅 빈 거실 한가운데에 섰다.

“확실히 집이 좀 비어 보이긴 하네.”

벽에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았고, 가구라고는 달랑 컴퓨터 책상과 침대뿐.

내 발소리가 텅 빈 공간에 울려 퍼졌다.

“혼자 살기 너무 넓은 집을 골랐나?”

인생에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미묘한 감정이 가슴 한구석에서 피어올랐다. 적적함과 묘한 쓸쓸함.

나는 곧 생각을 비웠다.

필요하면 지하실에 있는 지팡이를 가져와서 대리석 가구라도 만들면 그만이었다.

소파, 테이블, 장식장.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 집을 궁전처럼 꾸미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는 인터넷이 있었다.

그것만 있으면 이런 텅 빈 집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에이, 탑이나 들어가야지. 이번엔 진짜 레벨업 할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감상적인 생각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어차피 곧 레벨 업할 때도 되었겠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었다.

그때였다.

띵동-.

현관벨 소리가 정적을 깼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인터폰 화면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어울리지 않는 정장을 입은, 덩치 큰 남자가 서 있었다.

나는 낯선 사람을 마당 안으로 들이고 싶지 않아, 직접 대문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 남자의 뒤로 번쩍이는 고급 검정 세단이 눈에 들어왔다.

피곤하면서도 사나워 보이는 조폭 같아 보이는 그 얼굴.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내가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였다.

남자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날카로운 말투로 물었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냐?”

젠장. 언제까지 이렇게 얕보이며 살아야 하는 거지.

이놈의 지긋지긋한 레퍼토리는 끝이 없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없는데요?라고 대답하려다가 참았다.

“여행 가셨는데요.”

“여행? 이삿날에?”

남자는 미심쩍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가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언제쯤 돌아오시는데? 내가 두 분을 꼭 좀 뵈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다.”

“아저씨가 누구신데 그러세요?”

“하, 내가 누군지 몰라? 하긴 애니까 모를 수도 있나….”

내 되물음에 남자의 미간에 희미한 주름이 잡혔다.

남자는 자신을 모른다는 사실이 불쾌하다는 듯, 헛기침을 한번 하고서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철혈단의 길드장이자, 이 대전의 지배자인 정만호라고 한다.”

정만호는 마치 왕이라도 된 것처럼 말했다.

자기 입으로 대전의 지배자라고 말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이 구역의 책임자야. 새로운 헌터가 이사 왔으면, 내가 반드시 알아야 해. 혹시 부모님 헌터 등급이 어떻게 되시지?”

정만호.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흐릿했던 기억의 조각이 맞춰졌다.

유니크 도끼 경매에서 정태연과 맞붙은 남자.

그리고 김수호가 말해주었던 대전의 지배자.

분명 27층에 주차 중이라고 했었지?

나는 대충 둘러대고 이 귀찮은 상황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어….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아무튼 고생이 많으시네요.”

“그래, 뭘 좀 아는구나. 이 자리를 지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어, 음, 네.”

내 대답에 정만호는 만족스러운 듯한 얼굴을 했다.

정만호는 내가 자신의 권위를 인정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여긴 내가 별장처럼 쓰던 집이거든…. 갑자기 누가 이사 와서 깜짝 놀랐다고 부모님께 전해드려.”

“아, 전 집주인 분이셨구나?”

“아니, 집주인은 따로 있었지. 하지만 빈집이라서 내가 쓰곤 했어.”

“네? 그게 무슨 말….”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럼 주인이 버젓이 있는 집을 그냥 빈집이라는 이유로 마음대로 썼다는 말인가?

“이 대전 땅에서 내 허락 없이 되는 일은 없다. 비어있는 집 하나 쓰는 게 뭐 대수라고?”

내 표정을 본 정만호는 마치 세상 이치를 가르쳐주는 것처럼 말했다.

“대전의 모든 것은 내 것이나 다름없거든. 잘 알아둬라.”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동네 조폭 두목이 따로 없었다.

정만호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몸을 돌려 세단에 올라탔다.

“무슨 대전의 지배자 같은 말을 당당하게 하고 다니냐….”

차라리 인천의 지배자라고 하면 멋이라도 나지.

대전의 지배자는 멋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뭐야. 바로 옆집이네. 차는 왜 타고 왔어?”

나는 얼마안가 정차하는 세단을 보며 중얼거렸다.

여러모로 어처구니가 없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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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히며 바깥의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차 안에서, 정만호는 굳어 있던 어깨를 풀었다.

‘설마 이사 온 사람이 A급은 아니겠지? 저만한 아이가 있을 사람은 없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로 곤란해진다.

정만호는 스스로를 잘 알았다.

자신은 A급 헌터 중에서 약한 편.

어쩌다 보니 운 좋게 27층까지 등반하긴 했다. 턱걸이로 A급도 달았다.

하지만 그 이상을 오를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만약 다른 A급이 자기 영역에 깽판을 치러 온 거라면?

막을 방법이 없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

‘안 돼. 그렇게 둘 수는 없어.’

정만호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A급 헌터들만 모여있는 단체 채팅방에 들어갔다.

방금 옆집에 들르기 전에 보낸 채팅을 확인했다.

[혹시 최근에 대전으로 이사 오신 분 계십니까?]

메시지 옆의 숫자가 전부 지워졌지만, 채팅방은 여전히 조용했다.

완벽한 읽씹.

하지만 정만호는 오히려 안심했다.

‘이러면 진짜 날 먹으러 온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그때였다.

알림이 울렸다.

단 한 명, 정태연만이 답장을 보냈다.

[정태연: 대전 탑 붕괴 카운트다운 20일 남았던데? 언제 오를 거야?]

“아니, 진짜 씨-.”

정만호는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을 뻔했다.

‘이 여자는 진짜 탑에 원수라도 졌나?’

왜 숨만 쉬면 저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탑 붕괴 카운트다운.

탑은 일정기간 동안 최고층을 갱신하지 않으면 무너진다.

정만호는 그 단어만 들어도 속이 울렁거렸다.

상식적으로 당연히 마지막 날까지 꽉꽉 채워서 오르는 게 안전하지 않은가?

그 당연한 걸 왜 묻는단 말인가?

물론 레벨을 올리고 더 강해지고 싶다면 빨리빨리 오르는 것이 맞지만, 정만호에게 그 정도 야심은 없었다.

자신에게는 이 자리가 딱 적당했다.

‘아, 탑 들어가기 싫다. 진짜 싫다.’

평생 27층에 주차해 놓고, 대전의 왕으로 꿀이나 빨면서 살고 싶다.

망할 놈의 카운트다운.

정만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

다음날이 되자마자 나는 22층으로 향했다.

이사 후 처음으로 가보는 탑.

탑과 집이 이제 5분 거리에 불과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들킬 걱정도 확실히 줄었다.

만약 탑이 붕괴하면 가장 먼저 박살날 집이긴 하지만.

내가 있으니까 앞으로도 여기 탑이 붕괴할 리는 없다.

22층에 도착하자 익숙한 폐광의 풍경이 나를 맞이했다. 그리고 익숙한 적들도.

위이이잉!

폐광 저편에서, 굉음을 울리며 나타난 것은 21층에서 만났던 그 거대한 드릴이었다.

이번에는 한 대가 아니었다.

두 대의 드릴이 양쪽에서 나를 협공하듯이 나타났다.

한편 그 사이사이로는 저번에는 보지 못했던 코볼트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저번과 같은 방식으로 놈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우선은 귀찮은 잡몹부터.

나는 지팡이를 가볍게 땅에 쿵, 하고 찍었다.

내 의지에 따라 지축이 가볍게 흔들렸다.

코볼트들이 서 있던 바로 위의 천장에서 거대한 바위들이 쏟아져 내렸다.

“끼에에엑!”

코볼트들은 순식간에 그대로 납작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기계뿐.

나는 다시 지팡이에 힘을 불어넣었다.

내 의지에 따라 동굴의 벽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동물의 위장처럼 꿈틀거리던 동굴의 벽이, 두 대의 드릴을 단단히 붙잡았다.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나는 제자리에서 공회전하는 드릴에 다가갔다.

손가락을 그 끝에 가져다 댄다.

풍화.

이 녀석들을 통채로 모래로 만들어버리면 코어를 얻을 수 없다.

오직 겉의 장갑만을 정밀하게 깎아내야 했다.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마치 굴착기의 억센 팔로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과 같은 작업.

촤라라락-.

하지만 나는 성공했다.

손 끝이 닿은 부분부터 단단한 장갑이 껍질처럼 벗겨져 나가, 고운 모래가 되어 흩날렸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복잡한 기계 장치들과 엔진.

그리고 그 중심에서 붉은빛을 내며 박동하는 코어.

“닮았네.”

이 코어, 분명 산의 심장과 비슷하게 생겼다.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코어를 떼어냈다.

다른 한대의 드릴에도 마찬가지 작업을 시행.

총 두 개의 기계 코어가 내 손에 들어왔다.

품속에서 산의 심장을 꺼내 그 위에 가져다 댔다.

코어가 액체처럼 스르르 녹아내리더니, 아이템의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흘러 들어갔다.

코어를 흡수할 때마다, 심장의 군열에서 새어 나오던 붉은빛이 한층 더 선명하고 강렬해졌다.

확실히 강화를 성공했다는 느낌.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탑 22층(EXTREME) 클리어를 축하합니다.]

마침내 기다리던 클리어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 눈앞에 세 권의 스킬북이 나타났다.

색깔은 세 권 모두 은은은한 은빛.

곧 그중 한 권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최초 클리어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랭킹 1위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은색 빛이 순식간에 찬란한 황금빛으로.

황금빛은 이내 백금색으로 한 단계 더 진화했다.

플래티넘 등급의 스킬북.

“이번에야말로 공격기겠지?”

나는 은근한 기대를 품었다.

나 이제 바위도 쓸 수 있게 됐는데.

그럼 바위 관련 스킬도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메테오라던가, 지진이라거나.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플래티넘 스킬북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공격 스킬이 아니었다. 패시브였다.

[패시브 스킬 : 광물 포식]

[당신의 위장과 이가 튼튼해집니다.]

[광물을 섭취하여 체내에 깃든 권능을 키울 수 있습니다.]

[광물의 고유한 특성을 마법에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