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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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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의 무한에서부터 낙양까지 올라가는 길.

웬만한 나라보다 거대한 땅이었다. 거쳐야 할 도시가 한둘이 아니었다.

겨울의 끝자락에 닿았을 무렵, 제자들은 비연천공을 펼치며 달릴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완숙의 경지에 올랐음을 의미했다.

예로부터 호북과 하남은 천하의 풍문이 모이는 곳이었다. 길목마다 정세를 논하는 이들이 넘쳐났다.

“동호에 선녀가 나타났다던데?”

“차라리 팔가주가 하나 더 객사했다고 하지 그러나? 무슨 그런 해괴망측한 헛소리를.”

“허언이 아니네. 동호에 살던 내 지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야. 유람선도 같이 탔다는데,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벌써 신당을 짓는다고 하더군.”

“요즘 선녀는 유람선도 타는 모양이군. 잘 들었네.”

“허어, 이 사람이 정말! 참말이라니까!”

성과 성 사이의 거리가 워낙 멀어 소문이 와전되는 일은 흔했다. 무림인들의 이야기는 본디 과장이 섞이기 마련이었으니, 민초들 또한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허나 하남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운남에서 신녀문주가 보인 이적이 하나둘씩 퍼져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신녀문주가 글쎄, 단칼에 재해를 참했다더군! 믿지 못하겠거든 운남으로 직접 가보게. 채석장의 광부들이 당시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두었다고 하니.”

“동호에서 나타난 선녀가 신녀문주라는 소문이 있네. 그런 복식은 흔치 않지. 예전에야 신의 타령하던 여식들이 비슷하게 행세하고 다녔지마는…….”

“대수림의 왕족 중 하나라는 소문이 있소. 머리색깔이 인세의 것과는 거리가 멀다던데. 몇몇 권세가에서 온갖 염색약을 써도 그 빛깔을 흉내낼 수 없다고 하더군.”

“개방의 거지들도 같은 말을 하더군. 허공답보라면, 구파의 장문인들과도 동일 선상에 놓을 만한 경지 아니오?”

“보기 드문 강자이기는 하나, 어찌 구파가 쌓아온 세월에 비할 수 있겠소? 당장 무당파만 해도 개파 이래로 배출한 절세고수가 몇인데.”

“……틀린 말은 아니오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오. 대월국의 제일고수가 반으로 갈려 죽었다는 풍문이 있소. 전투의 여파로 일대가 사람이 살 수 없다는 불모지가 되었다는데…….”

“소림의 방장대사께서 마침내 폐관을 깨고 나오셨다는군. 필시 더없는 성취를 이루셨겠지.”

서연은 행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천하의 정세를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뭇 강자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풍문을 몰고 다닌다고 하였다. 자신 역시 그만한 반열에 올랐다고 보아도 좋으리라.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아야 제자들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을 터.

패검대주에게서 한 단체의 수장이 가져야 할 태도를 배웠다. 명목상이나마 일문의 문주가 되었으니, 그에 걸맞는 행실을 보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전쟁은 끝날 줄 몰랐고, 민심은 예년보다 더욱 흉흉했다. 제자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귀를 열어두어야 마땅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도시에 당도했다.

낙양. 긴 여행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스승님.”

“말하려무나.”

“예전에 사저에 듣기로, 용문석굴의 노사나불을 복원하셨다 들었습니다. 천하에서 견줄 작품이 드물다던데, 이번 기회에 한 번 견식하고 싶습니다.”

서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꾸나.”

기왕이면 최대한 늦게 복귀하고 싶은 것은 서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소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근처에서 주전부리를 사들고 용문석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원의 4대 석굴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인파가 운집해 있었다. 과거에도 사람이 많은 편이었으나, 지금은 그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당연히 무지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어찌하여 관람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냐! 내 부친이 무려 현승(縣丞)이시다!”

“예외는 없소. 낙양 부윤께서 세우신 원칙이외다. 정 불만이면 그분께 가서 직접 말씀하시오.”

“쯧, 그깟 불상이 뭐가 대수라고! 형편없기라도 하면 네놈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노발대발하며 석굴 내부로 들어갔던 사내는 일 각이 지나기도 전에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듯한 얼굴로 되돌아왔다.

비척이는 발걸음이 느릿했다.

“…….”

수행원들의 손길마저 뿌리친 채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모습이, 혼백이라도 빠져나간 듯했다.

실제로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늦겨울의 추위를 생각하면 믿기 힘든 일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런 얼굴을 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석굴로 막 들어가는 사람들과 빠져나온 사람들의 면면이 확연히 달랐다.

견문이 넓을수록 깨닫는 바가 큰 것일까. 이름난 석공들은 아예 넋이 나간 채 병사들에게 질질 끌려 나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석 장인은 또 끌려가는군. 올해에만 저 꼴을 스무 번도 넘게 본 것으로 기억하는데.”

“……안목이 모자라서 그런가, 나는 노사나불이 그 정도로 대단한지는 잘 모르겠더군.”

“사실 노사나불의 모습 자체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네. 진짜는 그 배경에 피어오른 만다라에 있다네. 얄팍한 견식으로 만다라를 살핀 이들은 그저 단순한 실선으로 알고 넘기는 경우도 허다하지.”

낯 뜨거운 찬사들이 서연의 귓가를 스쳤다. 서연은 괜히 죽립을 깊게 눌러쓴 후에야 석굴로 향했다.

노사나불의 전신에서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중후한 파동이 감돌았다.

‘어쩌면 당장은 무공보다 각예의 경지가 높을지도 모르겠다.

바닥과 벽에 새겨진 만다라를 타고 흐르는 기운을 보며 그리 짐작했다.

만다라를 매만지려는 순간, 코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쿵!

창대를 바닥에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체구가 몹시 작고 다부진 사내가 서 있었다.

‘산정?

작달막한 풍채에 근육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다. 돌덩이에 가까웠다.

사천당문에서 만났던 산정들과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그쪽이 장인의 기운에 가까웠다면, 눈앞의 사내는 영락없는 무인에 가까웠다.

“함부로 만지지 말도록.”

“……?”

목소리가 단호했다. 처음에는 관병인 줄 알았으나, 복식에서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관병이라기에는 과할 정도로 고풍스러웠다. 고위 관리라도 되는 듯했다.

“자칫 흠결이라도 생겼다간 지맥의 흐름이 흐트러진다. 그리 되면 노사나불을 수리한 귀인이 직접 자리하지 않는 한 수리가 불가하지.”

“어차피 한족의 눈썰미로는 백 번 천 번 설명하여도 이해하지 못할 걸세. 관병들도 마찬가지야. 손길을 타서 닳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는데!”

이제 보니 한둘이 아니었다. 족히 열 명이 넘는 산정들이 노사나불 주변에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었다.

뭣 모르는 행인들은 그들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둔족이 어찌하여 이곳에?”

“둔족? 관복을 떡하니 입고 있는데도 감히 모욕을 입에 담아? 여봐라! 본관을 능멸한 이놈을 당장 끌고 가거라!”

“아, 아이고……! 소인의 눈이 침침하여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요!”

놀랍게도 근처에 자리하고 있던 한족 관병들이 산정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다. 한 마디로 신분을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몇몇 행인들은 그 광경을 익숙하다는 듯 지켜보았다.

“또 한 사람 끌려가는군.”

“얼마나 견문이 모자랐기에 면전에서 저런 말을 할까. 아무리 산정이 드물다 해도, 북경을 한 번이라도 방문해봤다면 저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

“산정들은 하나같이 성격이 불같다더니. 그 소문이 틀리지 않네그려.”

“저 정도면 양반이네. 듣자 하니 예술작품 앞에서는 성격이 유해진다더군.”

“……저게 유해진 것이오?”

그제서야 서연의 시야에 산정들의 모습이 제대로 들어왔다.

하나같이 날카로운 눈매와 외골수 같은 기질을 품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고집이 몹시 셀 듯한 인상이었다.

서연이 드문 예외일 뿐, 본디 중원에서는 고집이 강할수록 실력이 뛰어난 장인으로 인정받는 기조가 존재했다. 겸손한 자보다 호탕하고 오만한 자가 더 고수로 대접받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의 산정들은 외양만으로도 천하에서 손에 꼽는 장인들이라 할 수 있었다.

‘황실에서 일한다는 석공들이 이들일까.

낙양 부윤이 황실의 장인들을 입에 담았던 이유를 알 듯했다. 아무리 지역에서 이름을 날린 석공이라 한들, 날 때부터 장인으로 태어난 씨족에 비하기는 힘들 터였다.

‘솜씨는 또 어떠할까.

패검대주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심득을 얻었던 탓일까, 각예의 견문을 넓힐 좋은 기회로 여겨졌다.

서연은 그리 생각하며 정면으로 걸음을 옮겼다.


산정 씨족들은 예로부터 황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교룡마저 탐내는 신묘한 손재주 덕이었다.

아득한 옛적, 태조가 교룡의 둥지에서 그들을 구했을 때부터 충성을 맹세했다던가. 수명이 긴 편에 속하는 산정들에게도 이제는 전설 속 이야기일 뿐이었다.

북경에서 가장 가까운 산자락에 자리를 틀었다. 대장군들은 물론이고, 천명검 말단의 무기까지 그들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본디 은둔을 즐기는 성정 탓에, 그들의 외출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물었다.

용문석굴의 복원을 확인하라는 황실의 명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먼저 떠났던 산정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를 이상히 여겨 뒤따라간 두 번째 산정 역시 소식이 끊겼다.

―더 봐야겠소.

―하루이틀 걸릴 일이 아니오.

전서구로 고작 한 줄씩을 적어 올렸을 뿐이다.

석굴 터에서 귀한 광맥이라도 발견되었나 싶었다. 허나 달포가 지나도 돌아가지 못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뒤이어 그들을 데려오겠다던 산정들도 소식이 끊겼다. 다시 잡아오겠다며 떠나가고 소식이 끊기기를 수 차례나 반복했다.

작금의 상황이 그 결과였다.

―이것이 정녕 한족의 솜씨라고? 믿을 수 없다.

낙양 부윤에게 몇 번이고 진위 여부를 확인했다. 끝끝내 소림사로 들어가 삼신세불을 목도하고 나서야 진실임을 깨달았다.

“야장신의 축복이라도 받지 않고서야…….”

“씨족의 자존심이…….”

나이 지긋한 장인 특유의 옹고집이 발동했다. 이보다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낼 때까지 이곳에 틀어박히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중간에 낀 관리들의 속만 타들어갔다. 산정들이 하나같이 황실에 수십 년 동안 몸담은 중진이었던 탓이다.

뭣 모르는 한족들이 작품을 훼손할까 염려한 산정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석굴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관리자들 역시 자연스레 구석자리로 밀려났다.

“이곳 좀 보게. 곡면을 한 치의 오차 없이 깎아냈어. 누가 보면 석굴 전체를 거푸집에 넣어 굳혔다고 해도 믿을 지경이야.”

“족히 십 년은 걸릴 작업을 어찌 한 달 만에, 그것도 홀로 끝냈단 말인가? 낙양 부윤의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내 눈으로 직접 볼 때까지는 믿지 않겠네.”

“이 중 복원록을 가장 많이 읽은 작자가 퍽이나 불신하겠군 그려.”

평소라면 환장하는 곡주조차 입에 대지 않을 정도였다. 그만큼 작품을 경건한 자세로 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들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 열심히 나누고 계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옆에서 노사나불을 구경하던 여인이 불쑥 입을 열었다.

“산정 분들의 솜씨가 천하제일이라는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저 또한 각예에 관심이 있어, 혹 조언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욕심에 걸음했습니다.”

산정들의 시선이 일제히 여인의 손으로 향했다. 마치 갓 깎은 백옥처럼 희고 부드러운 손은 평생 칼자루 한 번 제대로 쥐어본 적 없는 듯 섬약해 보였다.

속으로 혀를 차는 산정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한족 여인의 태도가 정중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조언하면 자네가 알아들을 수는 있겠나?”

“노력해 봐야지요.”

쏘아붙이는 말에도 여인의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또렷했다. 얄팍한 호기심이나 허세를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 기개는 마음에 들었다.

“각예에 관한 아무 질문이나 해보게. 그것으로 수준을 가늠할테니.”

수준이 뒤떨어지면 축객령을 내리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

여인은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몇몇 산정들이 실소를 머금은 그 때였다.

“그 책에 대한 감상을 듣고 싶습니다.”

여인의 손가락이 복원록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