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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검대주는 손에 들린 시신을 놓았다. 원체 무거운 호신갑을 입고 있던 탓일까, 시신은 호수 바닥으로 쏜살같이 가라앉았다.
무력대를 이끄는 수장 격의 시체는 다시 떠오르지 못했다.
패검대주는 가볍게 손을 털어 묻은 핏물을 털어내며 놈들의 무공 연원을 가늠했다. 천명검의 대주들은 황실의 정보단체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동급의 고수들에 비해 견문이 넓었다
‘마라법찰(魔羅法刹)인가.’
옛 마교가 거느리던 단체였다. 파문당한 땡중들이 모인 무맥이라던가.
소림의 칠십이절예처럼 수많은 무학을 뒤섞어 쓰는 것이 특징이었다. 작은 나룻배를 경공으로 옮겨 타며 합격진을 이어가는 모습만으로도 그 실력을 짐작할 만했다.
어떻게든 움직임을 지연시켜 합류를 막으려는 행동. 그쯤 되니 패검대주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동호에서 들렸던 폭발음과 분명 연관이 있으리라.
등평도수를 펼치며 인근을 살피던 패검대주가 품속에서 얇은 서책을 꺼냈다. 비급이라기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빈 종이였다.
패검대원들의 생사가 기록되는 명부. 아무런 글씨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뜻이다.
‘착각이었나.’
이 법보(法寶)의 원리는 그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건국 시기부터 내려오는 물건이자, 단주가 지닌 법보의 열화판이라는 사실만 알 뿐이었다.
천하를 징치하겠다고 나서는 천명검을 지방의 호족들이 함부로 해치지 못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그때쯤 은비조가 날아들었다. 패검대가 사용하는 영물이었다.
말단들의 최선임 격인 단리가예가 보낸 전서였다. 상황이 정리되자마자 급히 쓴 것인지, 평소와 달리 필체가 흐트러져 있었다.
―구마교의 광명좌사, 동정호 방향으로 도주.
―심면천(沈免千), 과장학(郭長鶴), 묘구(描仇) 등 삼인 부상.
―벽력탄 총 84개 중, 1개 폭발, 83개 회수.
―구마교 추종자 33명 체포.
“…….”
전서의 첫 줄부터 이해하기 힘들었다. 패검대주는 곧장 미간을 좁혔다.
실로 구마교의 광명좌사가 나타났다면 패검대가 몰살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헌데 도주라니? 이치에 맞지 않았다.
그때, 또 다른 은비조가 날아들었다. 역시나 전서가 매달려 있었다.
―신녀문주로 추정.
―구마교의 추종자 전원을 한 합으로 제압. 마교주의 군림보(君臨步)와 유사한 원리로 추정.
―광명좌사는 토혈 후 어검비행으로 도주. 이후의 상황은 부족한 견문으로 파악 불가.
―대주님. 신녀문주가 유람선을 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알아보니 동선이 겹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념하십시오.
이전보다 더욱 망가진 필체였다. 그만큼 다급히 적었다는 뜻이리라.
패검대주의 미간은 더욱 깊게 굳어졌다.
신녀문주, 들어본 적이 있었다. 황태자가 중히 여기는 인물이라던가. 대주들 사이에서 절세고수라는 말이 파다했다.
암검대주는 아예 한술 더 떠서 다음 대 단주 내정자라는 말도 했다. 종잡을 수 없는 괴팍한 괴력난신이라는 평을 덧붙이면서다.
반로환동의 여파를 과하게 겪은 늙은이다. 말투에 과장과 허언을 섞는 경우가 많았다. 나잇값을 못한다는 뜻이다.
얼핏 듣고 넘겼다.
패검대주는 타인을 직접 겪어보고 나서 판단하는 인물이었다. 뭇 소문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때 웬 유람선 한 척이 보였다. 거리가 꽤 되었다.
패검대주는 유람선에 올라탄 민초들의 표정과 행색부터 살폈다.
정갈한 옷차림과 밝은 표정에서 동호의 상황을 짐작했다. 이대로 복귀해도 될 듯싶었다.
‘신녀문주도 있는가.’
얼굴이나 볼 요량으로 갑판을 차례로 살폈다. 거리가 상당히 멀었던 탓에, 올라타있던 민초들은 그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때였다.
갑판 꼭대기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이 움텄다.
호수 위에 태양이 하나 더 떠올라 명멸하는 듯했다. 직시하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암검대주의 말이 떠올랐다. 괴팍한 괴력난신이라던가. 그 말이 맞았다.
도대체 어떤 고수가 저만한 경지에 오르고도 보란 듯이 기파를 뿜어내고 다니겠는가. 반박귀진을 이루지는 못할망정.
‘무공이 얼마나 고강하기에.’
자신의 기파를 직시한 모든 고수에게 선전포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부 상대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천명검의 단주나 보일 법한 자신감이었다.
‘어울리기는 하는군.’
패검대주는 천명검을 이끄는 자는 구파의 장문인보다는 세가의 가주와 같은 기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천하를 징치하기에 걸맞는 패도적인 기질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작금의 천명검단주가 그러했다.
그런 평을 하던 도중에, 느껴지던 기파가 다시금 거세졌다.
처음에는 자신을 도발하려는 줄 알았으나, 나중에서야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저 시선이 마주친 여파였을 뿐이다.
‘…….’
도문을 이끈다는 여인의 눈이 어찌 저리 패도적인 광망으로 번들거린단 말인가.
집채만한 산군이 저를 응시하는 듯했다. 모든 비무를 생사결로 임할 광인이나 가질 법한 눈빛이다.
광명좌사도 저 기질을 느끼고 도주한 것이 분명했다.
당장이라도 시선을 내리깔지 않으면 물어뜯기기라도 할 듯했다.
언젠가 상관이 될 수도 있는 이에게 자존심을 드러내 무엇할까. 비무는 북경에서 원없이 할 수 있을터였다.
결국 패검대주는 대의를 택하기로 했다.
“…….”
언제까지 시선을 돌리고 있어야 하는가. 부자연스러운 적막이 느껴지던 때였다.
신녀문주가 마침내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그를 짓누르던 압박감도 사라졌다.
“……음.”
그제서야 다리가 발목까지 잠겨 있었음을 깨달았다. 마라법찰의 정예를 상대할 때도 젖지 않았던 옷자락이었다.
신녀문주의 기파에 짓눌린 여파였다.
패검대주는 다시금 암검대주의 발언에 틀림이 없음을 인정했다.
‘당최 종잡을 수가 없는 여인이군.’
흠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한 집단을 이끌 초고수라면 저만한 기백을 보여야 했다.
도리어 장점으로 다가왔다. 패검대주 역시 별종에 속했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패검대주는 멀어지는 유람선을 지켜보았다. 찰박― 울리는 발소리 너머로 그의 신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리 즐겁지는 않구나.’
어느덧 나루터에 다다른 유람선을 보며 서연은 그리 생각했다.
본디 뱃놀이란 유복한 이들의 풍류라 들었다. 하여 제자들과 경치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악공들의 음악을 들으면 절로 미소가 피어오를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오죽 할 짓이 없으면 이런 짓까지 할까 싶었다.
차라리 날을 잡고 각예를 하는 편이 수십 곱절은 즐거울 듯했다.
서연은 고개를 내려 제자들의 면면을 살폈다. 둘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배를 타는 와중에 비연천공을 운용하는 것이 꽤나 고역이었던 탓이다.
서연은 넌지시 말했다.
“인근에서 하루 묵고 낙양으로 가자꾸나.”
뱃놀이를 즐기는 사이에 동호의 사건이 일단락된 듯했다. 곳곳에 관군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폭발한 객잔 주변을 둘러싼 관군들은 창을 치켜든 채 지나가는 행인들을 면밀히 살폈다.
그 한가운데.
헌앙한 얼굴의 사내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당소소를 응시하고 있었다. 녹빛을 띄는 눈동자. 당소소의 오라비였다.
“네가 어찌 이곳에……?”
당소소에게 듣기로는 열 살 연상이라고 했다.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팔대세가의 직계라는 것일까. 뭇 여인들에게 미청년이라 불릴 만한 용모였다.
다시 보니 체구 또한 탄탄했다. 암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다 몇 년 전 패검대의 무공에 맞춰 몸을 새로 짜낸 듯했다.
독문병기를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도, 허리춤에 매인 검이 몸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단련을 하루도 쉬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 별 것이 다 보이는구나.’
서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뭇 장문인들은 이러한 시선으로 타인을 마주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설마 출가한 것이냐? 가주님께 말씀은 드렸느냐?”
당지승이 말했다. 그는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당소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태도가 마치 어린 아이를 대하듯 조심스러웠다.
“사천성에서 호북의 거리가 족히 수천 리인데. 어찌 가문의 호위도 데려오지 않고…….”
“오라버니.”
당소소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당돌한 어투로 말을 끊었다.
“족히 삼 년만에 뵙는군요. 중상을 입으셨다 들었는데, 다시 보니 무탈하신 듯하여 다행입니다.”
당지승은 곧장 어린 여동생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멋쩍은 웃음을 띤 얼굴로 말했다.
“혹 내 걱정이 되어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냐?”
“안타깝지만 아닙니다. 우연이었지요.”
“큰일에 휘말리지 않아 다행이구나. 도중에 네 모습을 보았다면 염려하여 임무에도 몰두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전하십니다.”
살포시 미소 지은 당지승이 말했다.
“장자가 가문의 뜻을 저버리고 떠나간 탓에, 겪지 않아도 되었을 평지풍파를 겪었겠지. 너와 진성이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마주하니 좋구나.”
조용히 읊조리던 당지승의 시선이 그제야 서연에게로 향했다.
커진 눈동자만 보아도 서연의 존재를 뒤늦게 알아차렸음을 알 수 있었다.
“송구합니다.”
직전에 당소소에게 보였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태도였다.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패검대의 당지승이라 합니다. 신녀문주시지요? 당시 현장에 없던 탓에, 곧바로 알아뵈지 못했습니다. 선배들이 구명지은을 입었다 들었습니다.”
협의지사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내였다. 세가의 위명을 내세우지 않고 패검대로서의 정체성만 드러내는 것만 봐도 그러했다.
여태 만났던 후기지수들과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제대로 닦여 있구나. 당가주께서 안타까워하신 이유를 알겠다.’
서연은 생각했다.
당소소가 오라비를 또 언제 만날지 기약할 수 없었다. 이번 기회에 함께 식사라도 한다면 좋을 터였다.
곧 서연이 입을 열었다.
일대를 관할하는 부윤이 천명검을 배려하여 관에서 운영하는 객잔의 상층을 비워준 상황이었다.
눈치를 보던 무인과 세인들이 빠져나간 탓에, 드높은 객잔은 답지않게 고요했다.
청목족으로 살아가며 패검대에 오래 몸담은 탓인지, 동료들의 죽음을 누구보다 많이 겪었다. 오늘 일로 누군가 죽지는 않았으나, 은퇴를 논할 만한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단리가예는 연장자로서 착잡한 심정을 풀고자 복도로 나온 참이었다.
독룡과 그 뒤를 따라 여인들이 객잔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대화를 나누는 것이, 그새 친분을 쌓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동료들이 중상을 입었거늘, 아무리 임무가 끝났다고는 하나 저리 방종한 행태를 보여서는 안되었다.
‘여태 저런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거늘.’
사경을 헤매고 성격이 뒤바뀌기라도 한 것일까. 연장자로서 문책해야 마땅했다.
큰 숨을 들이쉬던 순간이었다. 단리가예의 시선이 일순 막 객잔 내부로 들어오는 여인에게로 향했다.
“……!”
단리가예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사자후를 토해내려던 입술을 다물었다.
분노가 한순간에 사그라들었다.
사자후가 한순간에 소심한 전음으로 탈바꿈했다.
―독룡아,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독룡의 시선이 객잔의 위층을 향했다. 단리가예는 격하게 반응했다. 시선이 닿지 않도록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단리가예 선배님?
―둘러보지 말고 거기서 대답하거라.
―예, 다름이 아니라 신녀문주께서 이곳의 명물인 우창어(武昌魚)를 드셔보고 싶다고 하시어…….
독룡이 데려온 것이 아니라, 신녀문주가 직접 찾아왔다는 뜻이다.
단리가예는 식은땀을 느끼며 물었다.
―……설마 상층에서 드신다더냐?
―아랫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시는 분입니다. 설령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미리 전해드리겠습니다.
다행히 독룡이 별호에 걸맞게 처신했다.
단리가예는 진심을 담아 덧붙였다. 고맙다.
속으로 안도하던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다시금 객잔으로 들어왔다.
얼굴에 선명히 새겨진 흉터.
“…….”
패검대주였다.
침묵 속에서 신녀문주와 시선을 마주했다.
“…….”
놀랍게도 먼저 입을 연 것은 패검대주였다.
"식사하려던 참인데, 합석하시겠소?"
단리가예는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