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5 KiB
Raw Permalink Blame History

잠깐의 실랑이가 있었으나, 서연은 이내 용문석굴의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만에 하나 있을 상황에 대비하여 마흔 명 남짓한 병사들이 옆에 붙은 덕분이었다.

용문석굴 내부의 기운은 숨 막힐 듯 무거웠다. 허나 이는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언제라도 어둠 속에서 짐승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팽팽한 긴장감에 가까웠다.

“아주 작은 그림자 사이에서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육안으로는 쫓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 증언이 들려올 때마다 서연은 백호임을 확신했다. 천하에 어찌 이리 신묘한 범이 둘씩이나 존재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두려워하기에는 너무나 오랜 세월을 함께했다.

그런 상념에 잠겨 얼마를 걸었을까, 멀지 않은 곳에서 병사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다들 날카로운 창날을 치켜들고 한곳을 겨냥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부서진 노사나불이 있는 방향이었다. 정확히는, 그 앞에 태산처럼 앉아있는 거대한 백호를 겨누고 있었다.

“무슨 크기가!”

“저 정도면 산신령 아닌가?”

무지한 병사들이 떠들어대자, 무관들이 엄한 눈빛으로 주의를 주었다. 섣불리 공격하는 병사는 없었다. 백호가 보란 듯이 쩍 벌어진 입으로 하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의 없는 맹수를 공격하여 분노케 할 만큼 어리석은 자는 적어도 이곳에는 없었다. 다만, 맹수이기에 경계할 따름.

백호는 잠시 코를 킁킁거리더니, 돌연 고개를 어딘가로 치켜들었다.

“어어, 움직인다!”

“으아아악!”

“막아라!”

백호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날카로운 창의 숲을 단 한 걸음에 뛰어넘고는, 서연의 눈앞에 의연히 착지했다.

서연은 자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거대한 백호를 올려다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어째 그새 곱절은 커진 것 같구나.

손을 하늘로 치켜들어야 겨우 백호의 얼굴에 닿을 정도였으니, 그 크기가 짐작 가는가.

‘아직 다 자란 것이 아니었구나.

놀랍게도 그 압도적인 크기에도 불구하고, 아직 성체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무, 물러나십시오!”

서연의 곁에 있던 무관이 다급히 검을 뽑아들었다. 서연은 무관을 향해 손을 내밀며,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곧, 백호가 거대한 얼굴을 서연에게 마구 비벼대기 시작했다. 서연은 백호의 등과 목덜미를 정겹게 쓰다듬었다.

“이게 대체 무슨…….”

아예 넙죽 드러누워 배를 보이며 뒹구는 백호를 본 무관은 황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저 여인이 대체 누구인지 당장이라도 부윤께 여쭙고 싶었으나, 감히 무례를 범할 수 없어 입술만 꾹 다물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 크기부터 가히 영물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데, 심지어 사람의 말도 알아듣는다. 저만한 산군을 아무렇지 않게 부리는 인물이 어찌 보통 사람이겠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서연은 한참 동안 백호를 쓰다듬었다.

“도와주러 왔구나.”

노사나불의 크기는 5장이 족히 넘는다. 나무로 된 사다리도 쉽게 버티지 못할 높이였다. 결국 절벽에 매달린 채로 작업해야 했는데,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나 백호가 도와준다면 그보다는 쉽게 해낼 수 있을 터였다.

이내 백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연은 단숨에 백호의 등에 올라탄 다음, 노사나불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그 어떤 병사도 감히 앞을 막아세우지 못했다.


서연은 조급히 작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창작이 아닌 복원이기에,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치 검술을 복원하듯, 창작자의 의도부터 헤아려야만 했다.

그런 심정으로 노사나불의 겉면을 더듬던 서연의 손끝에, 무언가 이상한 감각이 전해졌다.

‘다르다.

옷 주름을 새길 때의 강약과 팔을 조각할 때의 새김의 깊이가 확연히 달랐다. 보통 사람이라면 결코 알아챌 수 없었을 미세한 차이였으나, 서연은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비범한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곧 서연은 어깨를 만든 석공과 손가락을 다듬은 석공과 바닥 장식을 새긴 석공까지 모두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못해도 수십 명의 석공들이 힘을 합쳐 완성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쉽지 않겠다.

타인의 의도를 완전히 꿰뚫어 보아야 하니, 그 난이도가 실전된 절학을 익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 문득 서연의 뇌리에 청허대사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서책을 쓰는 것이 좋겠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시주께서 직접 말이오.

서연은 그제서야 자신이 서책을 쓰겠다고 마음만 먹었을 뿐, 여태껏 딴 짓만 해왔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이번 노사나불 복원이야말로 그 서책을 쓰기에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타인의 대작, 그것도 이만한 크기의 조각을 복원하는 작업은 다시는 없을 귀한 경험이 될 터이니 말이다.

서연은 문방사우가 구비된 책상을 보다가 말했다.

“빈 책 한 권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무엇에 쓰려 하시오?”

부윤은 이전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기색이었다. 방금 전까지 산군의 등에 타고 있던 이를 어찌 예전처럼 대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그것을 감안하면 부윤은 대단히 담대한 편에 속했다. 당장 지금만 해도 백호가 움직일 때마다 수많은 병사들이 움찔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복원하는 방법을 기록해두려 합니다. 훗날 이와 같은 일이 또 생길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윤은 서연에게 어린 제자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서연의 속 뜻을 읽어내고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한 권을 이쪽에서 필사하게 해 주시오. 그대의 말대로 어디서 또 이런 일이 생길지 모르니 말이오. 허나 원본은 그대 마음대로 해도 좋소.”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러면 그 책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넘겨줄 생각이었소?”

“그리 명하신다면 그리해야지요.”

부윤은 이제 감탄사를 내뱉을 힘조차 없었다. 여드레 내내 끼니와 잠을 잊고 오직 조각에만 몰두한 여인이 집채만한 범을 제 수족처럼 부리는 것으로 모자라 물욕마저 없다.

‘진정 신선 아닌가.

불교나 도가에서 천상의 존재들이 어린아이, 노인, 혹은 여인의 모습으로 지상에 나타나 속세의 고관대작들을 골려주는 설화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든 생각이다.

‘아.

부윤은 문득 어지러움을 느껴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이 이상 머물렀다가는 황상께 불경한 마음을 갖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서연은 부윤이 준비한 기록들을 읽고 확인하는 데 꼬박 반나절을 소모했다. 목차는 어떠한지, 그림은 어떠한 상황에 그려 넣었는지, 심지어는 문체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살폈다.

개중에는 특이하게도 무공서와 흡사한 서책도 있었다.

‘특이하게 혈자리를 다 그려 놓았구나.

조각칼을 내리칠 때 어느 혈자리에 힘을 주어야 하는지, 또 어떻게 깎아야 가장 효율적인지 적혀 있는 기록들이 적지 않았다. 보아하니 먼 과거에는 무림인 중에 취미로 석공 일을 하던 기인들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보통 서책은 아니다.

서연은 서책을 읽던 도중 문득 떠오른 구결을 되뇌었다.

‘정중견진 보시자비(靜中見眞 普施慈悲).

소란에서 벗어나 참된 자신을 보고, 자비로운 마음을 품어라. 유독 선명하게 뇌리에 새겨진 탓에 기억에 남았다.

생각해보면 조각을 할 때에 마음가짐까지 신경 썼던 적은 손에 꼽았던 것 같았다. 그저 집중하면 족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것도 가르치면 좋겠다 싶어 빈 서책에 옮겨 적었다.

문득 서연의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

본디 서연은 조각 그 자체를 하나의 심공으로 삼았다. 타고난 재능과 속세와 동떨어진 환경 덕에 무의식적으로 터득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정해진 구결이랄 것도 없었고, 당연히 그것을 가르치는 것도, 배우는 것도 불가능했다.

허나 지금, 심공의 첫 구결이 선명히 새겨졌다.

무맥의 발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름을 정해야겠다.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담게 될 터이니, 운월정공(雲月淨功)이라거나 벽해진공(碧海眞功)과 같은 그럴싸한 이름들이 뇌리를 스쳤다.

허나 이내 그만두었다. 그저 조각에 몰입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담은 서책에 불과할진대, 무슨 그리 거창한 이름을 붙이랴.

서책을 만들기로 결정했을 때의 마음을 되새기는 것으로 족했다.

서연은 화련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어떠한 생각을 했던가.

제 제자가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웠으면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전부 할 수 있었음 했다.

‘비연천공(飛鳶天功)이라 해야겠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처럼 자유롭게 세상을 거닐라는 뜻이다.

이후 서연은 노사나불의 복원을 재개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음이 찾아올 때마다, 빈 서책에 비연천공의 빈 부분을 조금씩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하늘에 닿은 오성이 불세출의 신공의 창안을 부채질했다.

서연은 시간이 평소보다 느리게 흘러간다고 느꼈다. 그 정도로 몰입한 것이다.

‘여기서는 이렇게 했구나.

옛 장인들의 흔적을 더듬으며 그들의 자세와 움직임을 읽어냈다. 그러한 움직임들 또한 비연천공에 담으려 했으나,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차라리 움직임만을 따로 모아 새로운 책에 집필하는 것이 나으리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비연천공에는 오직 마음가짐에 해당하는 것만을 적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했다. 심법이라는 뜻이다.

심법이라 하니 거창하게 들리지만, 어찌 무림인만 마음을 가다듬겠는가. 농부든, 석공이든, 상인이든, 속세의 번뇌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결국 마음의 중심이 오롯이 서야 하는 법이다.

노을이 저물고 땅거미가 선명해지며, 다시 아침 해가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그러한 시간 속에 비연천공에 새겨지는 글자 또한 늘어갔다.

서연은 이따금 금진송의 거처로 돌아가 화련과 식사를 같이하고, 가르침을 베풀기도 했다. 삼신세불을 만들 때처럼 단기간에 끝낼 수 없는 작업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연천공을 거의 완성했을 때, 서연은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없음을 직감했다.

재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다만 경험이 부족했다.

오랜 세월 홀로 자연 속에 은거하며 살았기에 심공을 창안할 수 있었으나,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도리어 글로는 다 풀어낼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홀로 깨닫기에는 충분했으나, 남을 가르치고 이해시키기에는 부족했던 것이다.

서연은 동시에 왜 달마대사나 장삼봉 같은 대종사들이, 또 소림사의 승려들과 구파의 도인들이 강호무림을 주유했는지를 깨달았다.

직접 걷고 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 지금도 그러했다. 노사나불을 눈으로만 보았을 때와, 직접 만지고 복원했을 때 얻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다른 석공들이 겪었을 고뇌와 고찰을 읽고, 그것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얻는 바가 이리 컸다. 가까운 낙양에서도 이러할진대, 강호 사방의 다른 곳에서는 또 어떠할지 궁금했다.

북경의 석공들이 그리 뛰어나다던데, 그들은 어떠할까. 옛 남방의 석공들도 실력이 뒤지지 않는다 들었다. 운강석굴의 불상도 그리 웅장하고, 또 머나먼 북해에서는 아예 얼어붙은 폭포에 그림을 새겨 넣는다고도 했다.

서연은 다시금 복원에 전념했다.

강호를 두려워하던 여인은 이제 없었다.


  • 가고 싶은 곳은 정했느냐?

“일단은 사천이나 운남을 생각하고 있어요.”

  • 운남? 듣자하니 모산파로 돌아갈 생각은 아예 없는 모양이구나.

“적어도 몇 년은 더 기다려야 괜찮을 듯 싶어서요. 제가 갑자기 나타나 봐야 어머니만 힘들어하실 거에요.”

금진송의 별장에 위치한 마루였다. 화련과 유혼이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서연이 노사나불 복원을 거의 마무리하고, 여행을 떠나자고 이야기했던 것이 불과 하루 전의 일이었다.

서연은 화련으로 하여금 목적지를 정하도록 했다. 기왕이면 어린아이가 가고 싶어 할 만한 곳으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화련은 어린아이가 아니었기에, 최대한 스승의 마음을 헤아리려 했다.

사천에는 옛 조각가들의 뛰어난 작품들이 즐비했고, 운남에는 대리석의 발원지인 대리국(大理國)이 있었다. 이 두 곳을 목적지로 정한다면 서연의 가르침을 더욱 원활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결국 운남을 가려면 사천을 거쳐야 하니, 결과적으로는 둘 다 가겠구나.

“그렇게도 되겠네요.”

화련은 제 말투가 어린아이처럼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너무 오래 어린아이 행세를 하다 보니 예전 말투가 더 부자연스러워진 것이다. 요즘 들어 하루에 한 번꼴로 당과를 먹게 된 것도 그러한 연유였다.

문득, 화련은 제 키가 그동안 조금도 크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마침 유혼도 옆에 있겠다, 화련은 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했다.

“혹시 키는 안 크나요?”

  • 자고로 어릴수록 기경팔맥이 수월하게 순환하는 법. 주인님의 무학을 익히려면 지금처럼 어린 편이 좋다.

당연한 이야기였으나, 화련은 왠지 유혼이 대답을 회피하려 한다고 느꼈다.

“저는 키가 조금 컸으면 좋겠는데요.”

  • 갈(喝)!

유혼이 일갈했다. 그는 진심으로 분노한 기색이었다.

  • 자고로 중요한 것은 내적인 성장이거늘, 어찌 허물에 불과한 외적인 것에 집착하느냐! 내 너를 그리 가르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꾸준히 자라는 편이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잠시 침묵이 일었다.

  • 더 어리게 만들어주랴?

화련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유혼은 진정 그러고도 남을 짐승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