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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K 아레나가 아닌 아담한 경기장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천 석 조금 넘는 아늑하고도 팬들과의 소통을 중시한 경기장의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친숙함이 느껴졌다.
“자, 얘들아, 트루 왔다고 너무 던지지는 말고.”
“감독님, 저희는 오래 살고 싶어요.”
“그래. 그래. 알면 됐다.”
“......”
다른 녀석들에겐 유감스럽지만 안재훈 감독님은 옛날 옛적부터 내가 최우선인 분이시다.
“이제 슬슬 들어갈 준비 부탁드립니다!”
얼마 안 가 직원의 준비 신호와 함께, 우리는 슬슬 대기실에서 짐을 챙겼다.
“물병은 왜 챙겨?”
“나 돌아왔는데도 못하면 제일 못한 사람 내려찍어보려고.”
“......”
싫으면 다시 통나무 들든가.
내가 해맑게 웃어 보이자 플루크는 딜교 성립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선 탑답게 자리 선점을 위해 대기실을 가장 먼저 나섰다.
물론 어차피 탑부터 바텀 순서대로 입장이라 뭐가 됐든 입장은 플루크가 일 등으로 해야 해서 줄 먼저 서든 말든 의미가 없긴 했지만, 그래도 탑 라이너로서의 자세가 일상생활 속에서도 배어있다는 점에서 합격이다.
“자, 슬슬 가시죠?”
우리는 그렇게 대기실을 나서 무대로 향하는 통로에서 멈췄다.
[자! 그랜드 리그 1라운드, ST와 BDRX, BDRX와 ST의 그 열다섯 번째 경기가 바로 오늘 펼쳐집니다!]
[응원하는 팬들의 함성으로 저희 중계진도 지금 대화가 잘 안될 정도인데요, 정말 대단합니다.]
[LOCK 아레나보다 작은 경기장이지만, 열정은 그에 못지않습니다!]
중계진들은 열정 넘치게 분위기를 더욱 돋우고 있었다.
[그럼 오늘 관전 포인트부터 보실까요?]
[역시 누가 뭐래도 ST의 구원자, 트루 선수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네. ST3에서 잠시 콜업되었던 이스케이프 선수가 다시 마스터 리그로 돌아가고, 자그마치 그 프라우드 선수의 빈자리를 메꿔주었던 트루 선수가 정겨운 ST2 멤버들이 있는 이곳, 그랜드 리그로 복귀했습니다.]
[누군가는 애초에 그랜드 리그 데뷔도 안 한 선수에게 왜 귀환이니 복귀니 하는 말을 붙이나 싶겠지만, 원래 왕이나 황제에게는 귀환을 붙이는 게 멋지지 않습니까!]
[그런...가요?]
[그런 겁니다!]
해설의 정신 아득해지는 논리를 듣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빠져든다.
그리고 그건 옆에서 조용히 서 있던 엔비도 마찬가지인 모양인지, 아까까진 굳어있던 그가 나를 보자 이내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
“잘 해봐요.”
“...그래.”
아닌가.
그냥 해탈한 건가.
아무튼.
입모양으로 대화를 살짝 나눈 직후.
[자, 그럼 이제 슬슬 선수들 만나보실까요?]
[카메라 감독님! 선수들 보여주시죠!]
가까이 다가온 중계 카메라가 선수들의 면면을 담는다.
[BDRX 선수들, 완전체가 된 ST2 선수들을 만나 긴장 가득한 모습입니다.]
[그래도 해야죠! 어쩌겠습니까! 그리고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몰라서 더 재미있는 곳이 바로 협곡이니까요!]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단지 오늘은 내가 저 말을 틀리게 만들 뿐이다.
[그에 반해 ST 선수들은 아주 신수가 훤해졌습니다.]
[그랜드 리그에 데뷔한 이래 플루크 선수가 저렇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보는데요?]
[ST의 다른 선수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스트라이크 선수는 그냥 인간 카피바라가 됐습니다. 그냥 세상이 아름다워 보여요!]
[그리고 이들의 변화는 역시 미드 라인에 돌아온 트루 선수가 이끌어낸 거겠죠.]
타이밍에 맞춰 선수들이 빛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그럼 이제 화면으로 말고, 실제로 만나봅시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우리는 당당하게 무대로 걸어갔다.
이제 이곳에 더 이상 9승 5패의 ST는 없다.
남은 경기 전승을 달성할 우리가 있을 뿐이었다.
[선수들 제자리에.]
[협곡으로 향하기 전, 밴픽 시작됩니다!]
[이름값 하는 BDRX가 블루, ST가 레드 진영입니다!]
밴픽이 시작되자마자 BDRX는 주저 없이 야쇼를 밴했다.
“오. 리스펙트.”
“어지간히도 트루 야쇼한테 썰리긴 싫나 보네.”
“너라면 유튜브에 평생 박제될 챔피언 던져주고 싶겠냐.”
“그렇긴 해.”
스트라이크와 벨은 내가 ST1에서 그들의 경기를 볼 때와 딴판으로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밴픽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우리 이러면 플랜 E대로 가자.]
“넵.”
감독님의 말씀에 동시다발적으로 대답한 직후, 플루크와 옥스는 칼리스탄와 마오이카를 밴했다.
[이거 시사하는 바가 좀 큽니다.]
[뭔가요!]
[마오이카야 말 그대로 궁 버튼만 딸깍하고 누르면 되고요, 칼리스탄도 시야 잡는 스킬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변수 제거다.
똑같이 시야를 잡아야 하는 상황, 스킬이 아니라 몸을 들이밀고 뒤틀린 숲의 어두운 곳을 뚫어야 하는 그 상황에서 과연 저들이 대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몰아가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똑같이 시야를 잡을 수 있지만 동료를 한 턴 살릴 수 있는 스킬이나 유사 이동기조차 없는 애시는 굳이 밴하지 않았다.
뚜벅이들은 어차피 접근하면 다 똑같으니까.
[아, 이렇게 양 팀의 첫 밴 카드 모두 세 개씩 소모!]
[BDRX는 야쇼, 르블람, 갈레온 밴. 그리고 ST는 칼리스탄, 마오이카, 트위스티드 페이드까지.]
[각자 뭘 추구하는지 눈에 보이는 밴 카드 사용이죠?]
[그렇습니다. 서로 벽 보고 밴픽하는 거 같으면서도, 컨셉 하나는 확실하게 나올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서로 고르고 싶은 걸 고르며 두 번째 밴픽까지 완전히 끝났다.
[두 팀 드디어 밴픽창 완성합니다!]
[BDRX는 탑에 오름, 헌터에 릴리안, 미드에 코르킨, 바텀에는 궁극기로 한 턴 빼는 게 가능한 애시와 앞 라인을 완성하는 브라운을 챙깁니다.]
[애시를 이용해 초반을 넘기고, 중후반은 밸류를 따져보려는 BDRX.]
릴리안의 경우는 밴픽 중 상대의 고민이 길어진 걸 보아 옥스를 견제해 픽을 빌미로 뺏어간 느낌이지만, 어찌 됐든 고민의 보람이 있었는지 조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ST 보시죠!]
[탑에 그윈, 헌터에 짜오란, 미드에는 자그마치 트린디미어가 등장합니다.]
[이게 BDRX 픽이 코르킨을 제외하면 CC기가 넘쳐나서 조건부지만 면역 스킬 있는 그윈이나 한 턴 벌 수 있는 무적 궁극기 달린 트린이 티어가 올라갔어요.]
[이거 BDRX, OP픽을 주는 걸 경계하다 인게임에서 약간 힘들어졌습니다.]
트린은 네 번째 픽에 내가 요구해서 뽑았다.
사실 무적보다는 군중 제어기 무효가 달린 올리프를 고를까 했는데, BDRX 감독이 그건 기가 막히게 밴해서 꿩 대신 닭 느낌이다.
그리고 그윈 픽은 밴 카드를 플루크가 아닌 나에게 뺀 순간부터 나오는 게 반 확정이었다.
우리 팀 AP—주문력—담당 챔피언이니까.
[그래도 ST가 강점이 있는 라인전에서는 오히려 BDRX의 픽이 분명 이점이 있습니다. 탑이야 탱커라 그윈이 제대로 아이템 들고 오기 전에는 버티자면 버틸 수 있고, 특히 미드는 근거리 대 원거리 대결이니까요.]
[실제로 ST도 픽을 마음대로 하지는 못했죠!]
[네. 원딜 중 사실상 최고의 생존 스킬을 가진 이즈를 픽해 공격적인 압박보단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밴픽 방향을 틀었고, 그에 맞춰 서포터로는 앞라인에서 버텨줄 수 있는 레오난을 픽했습니다.]
아예 라인전부터 박살내도록 이즈—카르만 조합을 꺼내고 싶었지만, 내게 덤볐던 팀들에게 무언가 배우긴 한 건지, 남은 밴 카드는 적절히 다른 포지션에 배정해서 그런지 카르만까지 쓰도록 놔두진 않았다.
상대 입장에서는 우리 이즈를 밴 하는게 낫지 않냐고 할 수도 있긴 한데, 솔직히 객관적으로 주요 딜러는 상체가 될 확률이 높으니까.
나나 플루크가 카르만의 버프 받고 상대 진영으로 헤집고 들어가면 발생할 문제를 원천 차단하는 느낌이었다.
뭐, 그 정도는 아무래도 좋다.
우리는 오늘 승리를 거두고 돌아갈 거니까.
[자! 이렇게 밴픽 모두 끝났고!]
[선수들 협곡으로 입장합니다!]
“하나! 둘! 셋!”
“ST 파이티이이잉!”
팬들의 함성과 함께 익숙한 협곡의 소리가 오감을 채운다.
“준비한 대로 하자.”
“해야지.”
언제나 협곡에서의 첫 대화는 비슷하지만, 그 준비한 걸 초반에 얼마나 펼치는지는 날마다 다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준비한 것 그 이상을 보여줄 능력이 있었다.
[ST, 대체 트루 선수가 돌아오고 무슨 일이 있었나요?]
[공격적이지만 불안정했던 살얼음판 걷는 라인전은 없고, 그냥 압도합니다.]
[심지어 미드도 초반 딜교 말이 안 됩니다! 트루 선수는 록의 신이 편애하나요? 가볍게 평타 교환을 했는데 트루 선수의 평타가 세 번 다 치명타로 터집니다!]
[이거 진짜 엔비 선수는 억울한데, 이게 또 록입니다.]
치명타가 안 터졌어도 최근 약간 너프받은 코르킨의 대미지와 내 유지력을 생각하면 걸 만한 딜교였다.
그리고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트린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치명타 띄우는 것도 실력이다.
“뭐냐. 어떻게 한 거야?”
상대가 탱커라 여유롭게 라인전하느라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이스케이프 선수가 미드에 있을 때의 버릇이 남은 건지.
플루크는 방금의 딜교를 언제 또 보고서는 놀라 입을 열었다.
역시 탑 라이너답게 내 트린의 숙련도—물론 이거랑 치명타는 관계 없다—를 알아준다.
“실력이지.”
“......”
우리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라인전에 집중했다.
[의외로 평화롭습니다.]
[물론 라인별로 체급이 밀리는 BDRX가 집도 자주 다녀오고 그러지만, 최소한 킬은 안 따이고 있어요.]
[BDRX 입장에서는 이 평화가 좀 더 유지돼서, 다들 궁극기가 온이 되면 그때야말로 좀 교전상황을 보고 싶을 겁니다.]
물론, 우리가 평화주의자도 아니고 그걸 잠자코 기다려줄 생각 따윈 없었다.
탑과 미드가 궁극기 시전 가능한 6레벨이 되기 직전.
“바텀! 바텀!”
“이거 오면 다 잡아!”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지속되던 평화는 헌터까지 끌어와 싸운 바텀 대결에서 한 틱으로 살아간 스트라이크가 공격성을 마음껏 뽐내기 시작하며 붕괴했다.
[ ST OX -> BDRX Shield ]
[으아악! 서폿인 쉴드 선수가 쉴드 역할도 못하고 폭사!]
[미니언 먹으면서 가장 먼저 6레벨 찍은 짜오란이 궁극기 시전하고! 애시와 릴리안까지 이러면 답이 없어요!]
[스트라이크 선수 옥스 뒤에서 야무지게 스킬이랑 평타 다 꽂아넣습니다!]
[이러면 다 잡혀요!]
[ ST Strike -> BDRX Duck ]
[ ST Strike -> BDRX Scar ]
“어 형이야.”
스트라이크는 경기 시작 전 좋은 기분을 그대로 유지하다 못해 미소가 귀에 걸렸다.
[ ST Fluke -> BDRX Dell ]
“나도 잡았어.”
곧이어 탑에서 들려오는 승전보.
나는 화답하듯 이동기를 써버린 채 타워에 붙어있는 엔비에게 검을 빙빙 돌리면서 돌진해 그대로 다이브했다.
[으아악! 그냥 궁극기 믿고 막 들어갑니다!]
[근데 그래도 돼요! 지금 BDRX에 CC기 없는 유일한 챔피언이 코르킨이니까요!]
평타. 평타. 평타. 평타.
[아니 이 와중에 코르킨 광자탄이랑 미사일은 어떻게 다 피하나요!]
[타워 두 번 맞고 궁극기 쓸 거 세 번 맞고 쓰는 트루!]
[그리고 이러며어어언!]
마지막 한 대.
—퍽!
치명타 모션과 동시에 궁극기를 활용해 타워의 공격을 버티고, 쿨타임이 돈 스킬을 이용해 몸과 검을 회전하며 타워 공격범위 밖으로 빠져나간다.
[ ST True -> BDRX Envy ]
내가 떠난 자리에 남은 건.
처량한 고물 비행기 하나뿐이었다.
[아니이이이이!]
[이 잠깐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그래.
이게 팀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