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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돌아온 집.
“오빠. 나 플레이오프 표 좀 구해줘.”
평소에는 오빠라고 부르지도 않던 여동생이 갑자기 살갑게 구는 모습에, 밀키웨이의 미드라이너 엔비는 왠지 모를 공포를 느꼈다.
“네가 웬일로 나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냐?”
오빠를 응원하려는 여동생의 기특한 마음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실제로 아니긴 하다—엔비는 의심의 눈초리로 은채를 바라봤다.
“아니, 친구가 거기 경기 뛰거든. 보러 가고 싶은데 표가 다 매진됐어.”
“벌써 매진됐다고?”
“응. 방금 접속해 보니까 대기열 이천 명이라 그냥 포기했다니까.”
결승을 제외하면 마스터 리그는 전부 입장 인원 천 명 언저리의 아레나에서 치러진다.
대기열만 이천 명이면 그냥 못 구한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근데 무슨 친구?”
“은설이. 트루 있잖아 트루.”
“......ST 걔?”
세상 참 좁다 싶으면서도, 친오빠는 유기한 채 친구나 응원하는 모습이 퍽 야박하다.
“응. ST 미드라이너.”
“그럼 그냥 걔한테 부탁하지 굳이 왜 나야.”
“그야, 은설이는 플레이오프 준비하니까?”
“나는 준비 안 하냐?”
“에이, 집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거랑 경우가 다르지. 그리고 최근에 한 번 신세 져서 또 부탁하기가 좀...”
맞는 말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어긋난 말에, 엔비는 한숨만 쉬었다.
“아니 그러면 가서 ST 응원할 거란 소리잖아. 내가 표를 왜 구해다 주냐?”
“나 알잖아. 둘 다 응원할 거야. 그리고 안쪽 유니폼은 오빠가 준 밀키웨이 거 입고 가줄게.”
“바람막이 점퍼 ST 걸로 입고가는 거 아니지?”
“......아마?”
저 미묘한 침묵을 보고 있자니 더 표를 구해다 주기 싫어졌지만, 남매싸움이 으레 그렇듯 부모님의 교통정리에 모든 게 끝났다.
“난 모르겠다. 밀키웨이 좌석에서 시뻘건 거나 입고 다니지 마라...”
물론 아레나가 표면적으론 전부 중립석이긴 하지만, 팬들의 암묵적인 룰에 따라 보통 특정 구역에는 각 팬들이 밀집해있는 편이다.
그리고 그런 구역 중 몇 자리를 프로 선수들의 초대표로 배정하는 만큼 ‘밀키웨이의 미드라이너 엔비’의 초대표는 당연히 밀키웨이 팬들이 많은 구역이다.
“근데 어쩔 수 없잖아. 은설이가 오빠보다 잘하는 걸. 난 이기는 팀 응원하는 게 좋아. 그래도 오빠니까 응원해 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
보니까 저번에도 ST 응원하는 사람이 칠 할은 넘던데.
ST의 영원한 라이벌인 밀키웨이의 일원으로서, 엔비가 그 말에 긁히는 건 필연이었다.
“아오. 그냥 표 다시 안 줄까보다.”
“그럼 엄마한테 이를 거야.”
“......”
“아무튼 표는 연락하면 내가 사옥 가서 직접 가지고 갈게. 나 간다?”
빌어먹을 여동생은 그 길로 친구들이랑 놀러 가는지 확답만 받아놓고 쫄래쫄래 밖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가장 슬픈 건.
저 말에 반박을 못 했다는 거였다.
보통 스크림은 시즌이 끝나지 않은 팀, 그러니까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팀 중 만날 가능성이 비교적 낮으면서도 최대한 체급이 높은 팀과 진행한다.
“그대로 밀어. 쟤들 나 못 막아.”
그리고 저 조건에 부합하는 팀이 현재 KTT와 DS 게이밍인데, DS 게이밍과는 이미 경기를 치르면서 견적을 내봤기에, 오늘 스크림은 KTT와 하루 종일 진행하고 있었다.
[적 팀이 찬성 5표, 반대 0표를 항복했습니다.]
그리고 연습 그 자체인 스크림은 경기와 달리 언제든 게임을 끝낼 수 있었다.
“서렌 칼같이 하네.”
“...카시딘 들고 네가 그렇게 하면 데이터가 잘도 쌓이겠다.”
“그렇다고 봐주면서 살살 하는 것도 못 할 짓 아니야?”
게다가 이번 판은 사실 강가에서 KTT 교전 집중력이 떨어진 데다 내가 그 혼전 속에서 트리플킬을 주워 먹어서 그렇다.
아무리 나여도 평범하게 했을 때 카시딘 들고 초반부터 무쌍은 못 찍는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KTT 얘들은 왜 이렇게 밸류 상대하는 걸 많이 하지.”
스크림은 원래 밴픽을 전략을 짜보기 위해 감독들끼리 의논해 밴픽 타임 없이 따로 정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KTT는 우리를 상대할 때 우리가 밸류픽을 해주길 요구했다.
“DS 게이밍은 이길 거 같고, 밀키웨이랑 만나면 이런 게 필요하니까 그렇겠지.”
사실 KTT는 내가 띠모 들고 이겨서 인터넷 커뮤니티 쪽에 이상한 밈이 잡혀서 그렇지, 다른 팀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강팀이다.
그런 만큼 무난히 DS 게이밍을 잡아낼 확률이 높고, 결승 진출전—4라운드—상대는 밀키웨이가 될 확률이 높긴 했다.
우리는 안 지고 곧장 결승전 갈 거니까 더 그랬다.
“그럼 은설이 네가 보기엔 KTT 얘들이 밀키웨이 잡을 거 같아?”
“딱히요.”
이건 내가 밀키웨이를 고평가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내가 누구 좋으라고 그 녀석들을 고평가해 줄까.
“일단 다른 라인들 체급 차이도 있고, 미드 차이가 요즘 좀 커 보이던데.”
스크림이야 관전이 안 된다지만 나한테는 스파이 찬스가 있다.
은채 말로는 최근 날 이겨 보겠답시고 엔비가 하루 종일 연습실에서 산다고 했다.
특히 그 말을 기반으로 해서 솔로 랭크를 관전해 보니, 확실히 폼이 정규 시즌보다 오르긴 했다.
물론 솔로 랭크가 판단 기준이 못 된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지만, 그래도 관전을 하다 보면 선수로서의 감이란 게 있는 법이다.
“근데 네 말대로면 폼 한창인 놈이랑 붙는다는 소리 아니야?”
“제가 컨디션이 좀 안 좋긴 하죠.”
“......뭐?”
“한 반도 안 되는 것 같긴 한데.”
프라우드 그 인간이랑 한 번 다시 붙으려면 폼을 더 끌어올려야 하긴 했다.
엔비는 애초에 내 입장에서는 유망주 느낌이라 별로 할 말도 없고.
“지환아, 쟤는 저게 허풍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는 게 제일 무섭다.”
“은설이 쟨 록 관해서는 거짓말 안 해요. 본인 판단이니까 맞겠죠 뭐.”
“그냥 걱정 안 하는 게 속 편하겠네.”
벨은 한숨을 쉬고선 기지개를 켰다.
가상 공간이라 몸이 찌뿌둥한 걸 느끼지도 못하면서 왜 하는 건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까 그게 언제였지...?’
슬슬 배가 아플 때가 됐는데.
“자, 얘들아. 이번에는 우리가 준비한 조합 해볼 차례다.”
감독님의 말에, 나는 사념을 털어버리고 다시 스크림에 집중했다.
현재 마스터 리그 스크림 성적 유출
—(화이트보드STKTT.jpg)
(화이트보드MWDS.jpg)
ST vs KTT : 18승 14패
밀키웨이 S vs DS 게이밍 : 20승 6패
└이걸 어케 유출했누?
└작성자 100%어디 관계자일 듯
└ㅋㅋㅋㅋㅋㅋ팀한테 고소미 안먹게 조심해라
└스크림이라 확실히 서로 안 만날거 같은 놈들끼리 했네
└ㄹㅇㅋㅋ
└근데 ST 스크림 성적은 은근 안 좋네
└저거 실험픽 해서 그런 듯
└초반 몇 패는 그런 거 같긴 한데 화이트보드에 날짜 보면 나흘 전부터는 한두 판 빼고 쭉 졌는데?
└엄...
└진짜네
└이러면 어케 되냐
└신난 우유견들이면 개추
└ㅋㅋㅋㅋㅋㅋ
마스터 리그 선수피셜) 요즘 관계자들 사이에서 엔비 폼 좋다
—이러면 ST 폼도 떨어졌으니 비벼볼 수 있냐?
└엔비가 원래 마스터 리그 미드 1황이긴 했는데
└?? : 트루가 밉다...
└ㅋㅋㅋㅋㅋ
└둘 다 잘 치는 미드긴 해
└트루 상대로 라인전 안 터지는 것만 해도 나쁜 건 아님
└트루랑 붙으면 구도대로 못 가는 새끼들 한트럭임
└근데 저런 말들은 사실상 작성자가 뇌피셜로 지어내면 끝 아님?
└ㄴㄴ이 고닉새끼 관계자 맞음
└어케아누
└관계자만 들어갈 수 있는 밀키웨이 사옥 안쪽 들어간 인증샷도 있음
└오
└코럼 인정이지
└ㄹㅇㅋㅋ
록에 미친 록갤 상주 인원들은 LOCK 경기가 없어도 어디서 누렁이마냥 하부 리그 썰까지 일일이 퍼오는 중이었다.
“감독님.”
“왜?”
“이거 스크림 성적 진짜 맞아요?”
“뭐야. 이거 누가 유출했어.”
감독의 반응을 보자, 엔비는 본인 팀 스크림 성적이 적힌 화이트보드 사진뿐 아니라 ST의 것도 거짓말이 아니라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쓰읍. 일단 유출한 사람은 나중에 잡고, 내가 너 커뮤 좀 그만 보라고 했지.”
“보다 보면 재미있던데요.”
“너 그러다 멘탈 터진다.”
“이미 동생한테 한 번 터지고 와서 괜찮아요.”
원래 얼굴도 모르는 짐승의 원색적인 욕설보단 가족이 툭 던지고 가는 말이 더 아픈 법이다.
“넌 멘탈이 강한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
“뭐, 다른 건 모르겠고 왠지 이번에는 뭐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은 들어요.”
고작 스크림의 승패만 알 수 있지만, 엔비는 직감했다.
천하의 ST가 아무리 스크림이라지만 연패를 거듭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뿐이라는 걸.
‘트루 상태가 영 아니라는 거지.’
중심을 잡아주던 미드라이너가 흔들리니 팀적으로 무너지는 게 분명했다.
애초에 아무리 기상천외한 조합으로 스크림을 해도, 심지어 경기에서조차 미드 띠모를 꺼내고선 이긴 ST가 졌다면 그 이유 하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꼭.’
시즌 내내 한 번도 못 이기는 건 성미에 안 내킨다.
딱 한 번.
그게 설령 트루의 전력이 아닐지라도, 한 번만 이길 수 있으면 됐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 ST True -> Milkyway S Envy ]
“아니, 요즘 폼 안 좋다면서!”
인생은 좀처럼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