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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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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깊은 강, 넘을 수 있는 산.

프라우드의 뒤를 이어 ST의 미드라이너를 덜컥 맡게 된 내가 얻었던 별명 중 하나다.

이 수식어를 이용해 나를 놀려먹는 인간들이 퍽 많았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나는 어찌 됐든 산이고, 강이었다.

나는 절대.

그냥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LOC 월드컵을 2회 이상 우승한 미드라이너.

이 타이틀을 보유한 선수조차 게임의 수명이 다해갈 때까지 채 다섯 명도 나오지 않았고, 나는 그중 하나였다.

“그래서 이제 티어가 어디라고?”

하지만 친구들이 보기에는 그냥 내가 프로 도전 선언을 한 것 자체가 그저 흔히 있는 공부라는 길에서의 일탈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직 랭크 게임 돌리기 시작한 지 하루밖에 안 지났거든?”

“아 예. 그래서?”

“...아직 실버.”

“은채야, 너 록 티어가 어디랬지?”

“나도 실버.”

“......”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1년 동안, 아니, 일주일 내내 해서 저 티어인 것도 아니고, 피시방에서 5인 큐를 돌린 이후 집에서 근육통만 끙끙 앓다가 오늘에서야 겨우 나았다.

사흘간 아직 채 세 판도 못 돌렸을 뿐이지, 내 실력이 어디로 사라지진 않았다.

당장 남자애들이 나를 보는 시선만 해도 그냥 예쁜 무언가를 보는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선망하는 대상을 바라볼 때 보이는 눈빛이랄까.

프로 시절 팬들에게서 자주 보던 모습이었으니 잘 안다.

다만 여자애들 무리 사이에선 나는 그냥 타격감 좋은 인형이었다.

“그래서, 프로 하기 전에 체력부터 길러야 할 텐데.”

“이렇게 가녀린 우리 은설이가 대체 어떻게 운동을 하라고.”

친구들은 나를 진짜 인형처럼 이리저리 주물러 댔다.

슬픈 점은 그 만져지는 감각 속에서 근육의 흔적만 느껴졌다는 거다.

이 상태로 록 하겠답시고 VR 기기 끼고 게임을 당장 하루 종일 했다간 등교는 고사하고 방에서 나오는 것조차 힘들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나는 그걸 아는 만큼, 근육통에 끙끙대던 지난 며칠간 이미 계획을 세워두었다.

“학교에 안 나오면 그게 자퇴랑 비슷한 거 아닐까?”

물론 당장 학교에 안 나오겠다는 건 아니다.

‘부모님 걱정은 안 시켜야지.

최소한 내 선언이 장난이 아니었다는 걸.

그리고 내가 객관적으로 재능이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 때가 된다면 말이라도 약간 꺼내 볼 수 있으려나 싶다.

뭐, 그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계획은 세워뒀으니까.

“쟤 또 혼자 웃네.”

“우리 은설이는 진짜 자기 얼굴 뜯어먹고 살면 되는데 이상한 거에 꽂혀서...”

“누가 말리겠니.”

“그냥 놔둬. 어차피 전에 선수 만나고 싶다고 유명 스트리머 되겠다면서 방송도 하다가 한 달도 안 돼서 때려치웠잖아.”

잠깐.

“내가 방송도 했어?”

“와, 홍은설 진짜 해본 적도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 봐.”

“네가 우리한테 방송 꼭 보라고 해놓고 뜸해지다가 그만 뒀잖아.”

어쩐지 전체적으로 록에 대한 지식이 있다 싶더니, 시청자 수 품앗이를 하면서 나름대로 주워들은 모양이다.

홍은설은(는) 친구들의 우정에 감격했다...!

“봐봐. 저렇게 입 닫고 딱 앉아있으면 그냥 화보잖아.”

“포기해 연솔아. 우리가 아무리 말해봤자 아이돌 오디션도 안 보는 앤데 뭐.”

“남들 아이돌 티켓팅할 때 록 보러 가는 것부터 이미 끝났어.”

“연예계가 이렇게 또 별을 잃는구나...!”

어쨌든 간에.

원래 위대한 선수들의 기본 학력은 고등학교 자퇴지만, 내가 고점을 갱신해보는 거다.

...고점인지 저점인지는 넘어가도록 하자.


피시방에서 했던 첫 1인칭 플레이의 기억은 아직 선연하다.

처음 했었던 만큼 미숙한 부분도 있었으니 프로들은 나보다 좀 더 빠르게 움직이는 걸 전제하는 게 맞겠지.

하지만. 랭크 게임에서 만나는 상대는 프로가 아니다.

특히 지금 내가 있는 랭크부터 최소 마스터까지는 굳이 1인칭을 위해 VR 기기를 쓸 필요는 없어 보였다.

록이 전생보다 훨씬 더 유명한 게임인 만큼 관련 영상들도 넘쳐난 덕에 판단이 섰다.

정작 프로 1인칭 영상은 반응 속도를 감으로밖에 잴 수 없어서 그런지 내 예상보다 느려서 약간 애매했지만. 그건 나중에 티어가 오르든, 프로가 되어 서로 칼을 맞대든 할 때 확인할 일이다.

지금 중요한 건 랭크 게임 자체였다.

‘일단 티어를 올려야 편하지.

굳이 부모님과의 약속 문제가 아니더라도, 낮은 티어에서 연습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티어별 1인칭 반응 평균 속도와 플레이 영상을 보니 VR 기기에 대한 적응은 차라리 최대한 높은 티어에서 몸을 박으며 해보는 게 맞다.

1인칭인 만큼 몰입도가 더 높은 터라 괜히 낮은 티어와 비비다가 나쁜 습관이라도 들면 답이 없으니까.

어찌 됐든 나는 LOC라는 게임 자체면 모를까, 인게임의 1인칭 시점 시스템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게 많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빠르게 티어를 올리기 위해 집에 들어가자마자 가방을 대충 던져놓고 컴퓨터를 켰다.

LOC가 켜지기 전, 화면에 보이는 익숙한 아이콘 하나.

방송을 위한 프로그램 바로가기가 눈에 띄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방송도 켜볼까.

원래 프로란 실력도 중요하지만, 경기 외 퍼포먼스도 중요하다.

특히나 나같이 아직 지망생 단계도 못 밟은 이들이 스카우터의 시야에 들기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나 인터넷 방송이었다.

물론 전생 같은 경우에는 그냥 3달 제한 조건 따위 없이 착실히 티어를 올리고 ST 아카데미부터 입단해 데뷔까지의 단계를 밟아갔지만, 이번에는 좀 화려한 장식이 필요하다.

부모님에 대한 설득과 더불어, 온 이목을 끌어야 프로 데뷔까지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특히나 내가 당장 노리는 게 프라우드, 그러니까 1군 미드 라이너 자리도 아니고 그랜드 리그—2부리그—의 미드 라이너 자리였으니 더 그랬다.

ST에서 물갈이가 가장 많은 자리.

당장 1군에는 프라우드라는 신이 버티고 있는 탓에, 실력이 넘치는 선수는 다른 팀 1군으로 데뷔하고, 그 빈자리를 계속해서 채워 올리느라 언제나 변화가 잦았다.

일단 한번 자리를 차지하고 유지하는 건 전혀 걱정이 없지만, 거기까지 올라가기에 장애물이 좀 많아야지.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체급을 키우는 거다.

흥행 싫어하는 리그 관계자는 없으니까.

관심조차 뜸한 그랜드 리그라면 더 할 테고.

게다가 조급해진 이유는 또 있었다.

...이번에도.

프라우드의 부상은 마치 그 재능에 대한 저주라도 되는지, 어느 세상에서나 그를 괴롭혔다.

프라우드의 손목은 낫지 않는다 >

최선을 다할 뿐...일상생활이 힘들다면 은퇴할 것. >

신경의 이상 연결인지 뭔지, 게임할 때마다 기기에서 가해지는 전기 자극에 과민반응하는 손목으로 인해 프라우드는 생활에 큰 불편을 겪는 수준이라고 언론에 이미 관련 기사 십수 개가 나와 있었다.

아무리 게임을 기기를 통해 몸을 움직일 필요도 없이 할 수 있다지만, 저렇게 신경 자체를 자극해버리면 인게임에서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고도 했고.

내 프로 생활 이전에 한 사람의 팬으로서 프라우드가 차라리 멀쩡하게 선수 생활을 이어나간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나를 이렇게 만들어 과거로 돌려보낸 녀석은 그걸 허락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결국, 이 세상은 내가 여자가 되어버린 것 이외에는 큰 역사대로 흘러간다는 거겠지.

그렇지만 달라진 것.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내가 있으니까.

두 번째 데뷔전은 절대로.

절대로 지지 않을 것이다.


[실버에서 챌까지 : 1일차]

심플한 방제에, 이전 방송 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하꼬의 방송이었지만, 시청자들은 홀린 듯이 들어왔다.

—와

—마음!

—흐흐흐흐

—일루와잇!

—록 방송 말고 딴 거 함?

그렇게 평소 하던 버릇 못 버리고 실시간 채팅을 치던 인간들은 방송화면 한구석에 메모장으로 대충 적어놓은 ‘중학생입니다’라는 공지에 갑자기 바른 생활 인간들이 되었다.

—록 진짜 잘하시네요~

—방금 스킬 다피한거 칭찬해~

—중딩 잘한다!

—이거 이기면 골드임?

—몰루

—근데 전적 뭐냐

—배치 끝나고 9승 1패ㄷㄷㄷ

그렇게 방송인의 외모에 홀려 왔다가, 압도적인 전적에 약간의 흥미를 느낀 시청자들이 오늘의 저녁 볼거리로 골랐을 무렵.

누군가가 위화감을 눈치챘다.

—아니 근데 잠만 손 왜 움직임?

—???

—?????

—지금 키보드랑 마우스로 록하는거임?

—원리 록은 키보드랑 마우스로 해 새끼들아

—아니 저거 캠 ㅂㅅ아

—화면 가상현실 공간 아니잖아

—씨1발 진짜네

—1인칭 시점 아예 안쓴다고??

—저거뭐냐

—그냥 랭크 등반이 아니었네

—ㅁㅊ

—딸피들도 안하는 짓을 중딩이?

—역시 큰일은 청소년이 한다

—ㄷㄷㄷㄷㄷ

상식적으로 있는 기능을 안 쓰는 건 족쇄 차는 것과 다름이 없거니와, 논타겟 스킬을 피하고 세밀한 조작을 위해서는 기왕이면 교전에서는 1인칭 시점으로 게임하는 게 상식이었다.

[트리플 킬!]

[쿼드라 킬!]

하지만 지금 화면 속에 보이는 여자아이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오직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한 조작으로 상대 팀 전체를 박살내고 있었다.

[펜타 킬!]

그렇게 한타가 끝난 직후.

“뭐야, 사람들 왜 이렇게 많아요?”

중학생다운 앳된 미성(美聲)이 튀어나왔다.

—극

—락

—바로구독박음ㅅㄱ

—극

—락

—박아?

—극

—미1친새끼들아 중딩이야

—(대충 블라인드 처리된 글 아님)

—님 대체 마우스랑 키보드로 어케함?

—ㅇㄱㅈㅉㅇㅇ??

—챌까지 등반할거임?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다행히 은설은 필요한 질문을 뽑아냈다.

“네. 챌까지 갈거고, 지금 쓰는 거 키보드랑 마우스 맞습니다.”

그 발언이 클립으로 만들어지고 온 갤러리를 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