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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묵아, 미안하다…!!”
단체 훈련 직전, 명감독은 대뜸 머리를 박으며 내게 사죄했다. 역대급 헬 파티가 열린 A조를 뽑아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이 상당한 모양이다.
“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류지를 데려올 때까지만 해도 ‘이제 해볼 만하다!’라고 생각이야 했지만, 이런 지옥불 대진도 문제없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내가 그 4팀 상대로 전부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봄 대회 경기는 총 7경기.
결승전인 마지막 경기는 져도 세종기에 진출 가능하니 제외한다고 쳐도, 6경기 중 4경기에서 작년에 세종기에 출전한 강호급 고교를 상대로 이겨야 한다. 투구 수 제한이 있는 대회 특성상 내가 3경기, 핫산이 3경기를 나서야 할 텐데….
‘핫산은 아직 완성이 덜 됐단 말이지….’
아직은 그냥 포텐만 짱짱한 구속 원툴 투수에 불과하다. 직구에 강점이 있는 타선을 만나면 홈런 공장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
그렇다고 핫산만 미완성인 것도 아니다. 대기만성형 선수들이 팀에 더 많은 터라 포텐셜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녀석들이 많다.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긴 하지만, 본래 계획은 봄 대회에서 적당한 팀을 만나 경험치를 쌓고 여름 대회를 제패하는 거였는데 시작부터 지옥의 조에 걸릴 줄이야.
이래저래 대진이 너무 빡세지며 고민이 깊어지는 상황. 나는 우선 별거 아니라는 듯 명신우 감독을 달랬다.
“뭐, 이미 뽑은 걸 어떻게 합니까. 제가 얘들 달래고 있을 테니까 훈련 시간에 천천히 나오십쇼.”
“그래, 알겠다….”
축 처진 명감독을 뒤로한 채 나는 운동장으로 향했다. 그러자 예상대로 표정이 굳어있는 부원들이 보인다.
“전체 집합!!”
내 목소리에 일사불란하게 모여드는 부원들. 전원이 둥글게 모여서자, 나는 부원들을 쓱 한 번 쳐다보고는 물었다.
“너희들 왜 다들 그리 죽상이냐, 조 편성 때문이냐?”
“………….”
다들 눈치를 슬슬 보는 것이, 아무래도 맞는 모양. 오히려 재밌겠다며 싱글벙글한 류지나 원체 감정표현이 적은 석운강, 리동혁 정도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A조 배정 학교들에 쫄아있는 게 보인다.
사실 이해는 간다. A조에서 만나게 될 강팀인 금강고, 기린고, 대관령고, 한청고 모두 우리가 친선전에서 온몸 비틀기로 이긴 청현고보다도 강하다. 자연히 전의가 꺾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니 시발, 당연한 게 어딨어.’
생각해보니 그러네.
내가 어떻게 모은 얘들인데, 붙어보기도 전에 쫄아서 움츠러드는 꼴은 도무지 못 보겠다. 일단 쓴소리 한 번 해야 직성이 풀리겠다.
“어이가 없네, 애들아. 꿀조 걸리면 무조건 전국 가고, 죽음의 조 걸리면 무조건 탈락이야?”
“……….”
“정신머리가 글러 먹었네. 대회 시작 전부터 그렇게 쫄아있을 거면 어차피 떨어질 텐데 그냥 때려치자, 때려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궁색한 변명이라도 해보려는 몇몇 후배들.
그러나 나는 이미 더 이상 그들에게 뭐라 할 생각이 없다.
“내가 봤을 때 너희들은, 자기 객관화가 너무 안 되어 있어.”
“………?”
“너희가 지금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전혀 모른다 이거야.”
지랄 한 번 했으니 이제는 당근을 줄 차례. 나는 석운강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야 운강아, 뭐 하나만 물어보자.”
“예, 물어보시죠.”
“솔직히 지금 문혁고, 어느 정도 수준이냐?”
“…….”
“과장하지 말고, 사실대로.”
모두의 시선이 석운강에게 고정됐다.
소림사 출신 스님인데다, 강직하고 곧은 인성을 지닌 그가 절대 거짓말을 할 리는 없기에 모두가 긴장한 채로 운강이 무슨 말을 할지를 기다렸다.
“솔직히 매일 놀라고 있습니다.”
“왜?”
“저는 이렇게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학교를 본 적이 없습니다. 이는 티끌만큼의 거짓도 없는 진심입니다.”
“……!”
모두가 놀란 눈으로 석운강을 쳐다봤다.
그같이 대단한 선수가 이렇게 후한 평가를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겠지. 나는 운강의 교묘한 단어 선택에 씩 웃음이 나왔다.
‘나름 녀석 딴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동기부여구만.’
잠재력이 좋다고 했지, 당장 실력이 좋다는 말은 안 했다. 아마 운강이 나름대로의 최후의 양심이겠지.
그런데도 꽤 사기가 올라간 것처럼 보이는 부원들. 이래서 유명세 있는 사람 말이 중요하다.
“들었지? 자타공인 월클 유망주, 운강이가 우리 고등학교 대단하다잖냐. 지금 주변 동료들 한 번 싹 봐봐. 사정이 좀 있어서 여기에 있지만, 절대 어디 가서도 꿇리는 녀석들 아니다.”
그렇게 자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는 부원들. 외국인 4인방인 석운강, 타카히나 류지, 핫산, 리동혁 부터 지수용, 최아담, 도도진, 서경수 등. 명문고에 가서도 주전을 먹을 수 있는 포텐셜을 충분히 가진 녀석들이다.
그리고 그건 세계관 최상급 재능을 지닌 나 또한 마찬가지.
“나도 나름 명문인 부전고 때려치우고 이 학교 왔는데, 명문고? 솔직히 게네들 별거 없어. 오히려 지금 너희가 나은 부분이 더 많아.”
“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세종기 단골 손님인 부전고가 별거 없을 리가 있나. 그래도 딱히 죄책감은 없다. 어차피 그 시절 금성묵의 기억 따위 깡그리 날아갔거든.
자, 이제 슬슬 쐐기를 박아볼까.
“이 지랄맞은 대진까지 다 뚫어내면 누가 뭐래도 이번 봄 대회 주인공은 우리들이다. 전국구 스타 한 번 되어보자, 짜식들아.”
내 말에 다들 결연한 표정을 짓는 부원들.
이제야 좀 볼만한 표정들이 됐다.
“재밌겠네, 우리 같은 신생이 그 잘난 학교들 모조리 거꾸러트리면 다들 놀라 자빠질 거 아냐?”
“우오옷, 이 한 몸 바쳐서 무조건 이기겠습니다…!!”
실실 웃는 류지와 열의를 불태우는 지수용.
거기에 도진과 핫산 역시 한마디씩 보탰다.
“역시 형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한번 해보죠, 우리.”
“…저도 열심히 할게요!!”
이쯤 하면 얼추 동기부여는 끝난 것 같다.
당장 코앞으로 닥친 1차전만 이겨도 꽤 자신감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곧 마무리 훈련도 있으니 슬슬 끝내볼까.
“오케이, 다들 가까이 와봐.”
내 손짓에 가까이 모인 녀석들. 중앙을 향해 다 같이 손을 모은 우리들은 곧 운동장이 떠나가라 외쳤다.
“자, 문혁고…!!”
““화이팅………!!!””
변하는 건 없다.
아무리 지랄 같은 상황에 닥쳐도, 우리는 다 무찌르고 전국으로 간다. 기필코.
########
도도연은 최근 상당히 바쁘다.
원래라면 조 추첨 때도 잠깐 집에 들러 얼굴을 비추려고 했으나, 시간이 너무 없어 차마 그러지 못했다.
탁!
신형 포르쉐 SUV에서 내린 그녀.
한 큼지막한 사무실로 들어가는 그녀는 골머리가 아팠다.
“하아, 하필이면 A조라니.”
문혁고의 조 추첨이 최악으로 뽑힌 탓이었다.
물론 문혁고는 객관적으로 약한 팀이 아니다. 잠깐 눈을 떼보면 어디서 짱짱한 포텐의 선수를 데려와서 구멍을 메꿔버리고, 실력도 쑥쑥 느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급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경험 부족과 빈약한 뎁스.
이건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더더욱 조 대진이 중요했다.
중간중간 약팀을 만나 숨 쉴 틈을 만든다면 그런 단점도 크게 두드러지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에도 도연은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그래도 그 아이가 있으니까….”
금성묵, 최근 그녀의 눈에 계속 밟히는 선수다.
동생이 도진을 구해준 것도 구해준 거지만, 선수로서도 그 포텐셜이 어마무시했다.
‘일정한 투구 메커니즘에서 구속과 회전수를 조절하는 투수, 전무후무한 재능이야.’
스킬 태양신맥 때문에 생긴 오해긴 하지만, 야구를 수천 단락으로 쪼갠 데이터의 덩어리로 보는 그녀 입장에서는 가히 예측이 불가능한 거대한 변수가 금성묵이란 존재였다. 아직 그녀는 성묵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반도 꺼내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다분히 개인적이지만, 그날 성묵과 처음 대화하면서 느꼈던 땀 냄새. 이런 게 수컷이라는 듯 확하고 다가왔던 그 냄새가 왠지 그녀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도 참.”
후끈해진 얼굴을 휘휘 저으며 잡념을 떨쳐낸 도연. 그녀는 곧 큰 규모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미리 와있던 직원들 십여명이 일제히 그녀에게 공손하게 인사한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네, 반가워요. 다들 와 계셨네요?”
“하하, 오늘부터 시작인데 당연하죠.”
상당히 다양한 나이대, 성별의 사람들이 사무실에 모여있다. 놀랍게도 그들 모두가 도도연이 고용한 인물로서, 데이터 전문가, 전직 스카우터, 스포츠 기자 출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다.
간간히 알바나 하던 그녀가 갑자기 이렇게 누군가를 고용할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은 아주 단순한 계기였다.
‘혹시나 싶어 샀던 그게 인생을 바꿀 줄은….’
성묵이 학교에 장비 살 예산이 없다고 한 그날, 도연은 문득 눈에 밟힌 스포츠 토토를 한 매 구매했다. 프로 경기는 데이터 구하기가 워낙에 쉬웠고, 그녀의 예측은 족족 들어맞았다. 그 결과 도연은 얼떨결에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
비싼 집으로 이사하며, 고가의 SUV를 구매한 것 역시 그 자금 덕분이었다.
‘누나, 대체 어디서 돈이 났길래…?!’
유일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도진이 놀라하는 것은 당연할 따름. 동생은 처음에는 설마 자기 누나가 이상한 쪽에 발을 담근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주 적합한 핑곗거리를 그에게 내밀었다.
‘도진아,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약속할게, 대체 뭐길래…?’
‘나, 로또 1등 당첨됐어.’
‘로, 로또!?’
통장에 찍혀있는 십수억원의 금액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도진. 인터넷에 검색해서 나온 액수와도 일치했기에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더 이상 일 따위 하지 않은 채 토토만 해도 여느 재벌 못지않게 살 수 있는 도연이였으나, 더 이상 그녀는 그쪽에는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
‘돈은 이 정도면 충분해.’
이미 노후 대비가 완벽하게 끝난 도연이다.
도진이 결혼할 때를 서울에 번듯한 집 한 채 정도 사주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은 상황. 그녀는 다 쓰지도 못할 돈만 무한정 불리는 것 보다는, 이제 자신의 꿈을 좇기로 했다.
‘나만의 데이터 분석팀.’
늘 꿈꿔왔던 그 목표.
그녀가 원하는 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데이터를 긁어모아 상대방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석해내는 도도연 만의 팀.
물론 아무런 연줄도 돈도 없는 그녀이기에 본래라면 어느 구단에 입사하여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무리 능력을 입증해도 십여년은 걸렸을 테지만, 충분한 자금이 있는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대표님, 이제 출발해보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본격적인 대회 시즌에 들어간 이상, 그녀가 직접 발로 뛰는 것만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분석할 대상이 많아진 만큼 도연은 각 구장에 직원들을 파견해 데이터를 모아오게 했다.
‘인력이 늘어난 만큼, 분석할 수 있는 대상도 훨씬 늘어났어.’
이전에는 볼 배합, 핫존 콜드존, 구속 변화 등의 데이터 적인 부분에 여력을 쏟았다면 이제는 투수의 자잘한 쿠세, 워크에식, 심판의 성향 등등 좀 더 다양한 부분까지 시야를 확장할 수 있게 됐다.
이 차이는 앞으로 경기에서 있을 정보전에서 문혁고에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들어줄 것이 분명하다. 혼자의 힘만으로도 신묘한 적중률을 보이며 훗날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될 도연이었으나, 이제는 그보다도 훨씬 더 엄청난 인물이 되고 있었다.
‘내일이 첫 경기였지?’
이미 현미경 단위로 상대 팀을 분해한 데이터를 성묵에게 보내놓았다. 아마 그 데이터대로라면 1차전을 이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
‘…내가 항상 뒤에 있을 테니까.’
도연은 문혁고를 꼭 정상에 올릴 생각이다.
그 어떤 수를 써서라도 말이다.
거기엔 그녀의 개인적인 사심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다는 것은, 아직 도연 본인도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