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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마검 포르테(Forte) (8) - 이거까지만 끝나고 갑니다
“발자레스 그 머저리는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야?”
『기만』의 명령을 받고 이번 작전에 투입된 세 악마 중 하나, 디바나(Divana)는 그리 불평을 내뱉었다.
그녀의 역할은 용사의 후손을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해 봉인을 파괴하도록 부추기는 것.
작전이 수월하게 진행되려면 발자레스와 그 계약자가 이리저리 깽판을 치며 교수진의 이목을 끌어줘야 하는데, 어찌 된 건지 발자레스는 학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단순한 땡땡이나 게으름일 가능성은 없었다.
악마들의 성격이 변덕스럽고 잔혹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도 상황 나름이다.
다른 일도 아니고 그들의 주군이 직접 내린 명령을 대충 처리할 리가 있겠는가. 죽고 싶은 게 아니고서야.
가능성은 하나였다.
뭔지는 몰라도, 작전을 수행할 수 없을 만한 상황에 빠진 것이다.
“그 얌체 같은 놈이 그리 쉽게 당할 리가 없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후보는 라벨로시아의 대마법사 델피나리스지만, 이내 디바나는 그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델피나리스가 약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정면 승부에서라면 충분히 발자레스를 압도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발자레스 그 자신도 알고 있는 사실.
정정당당 따윈 개나 줘버리라고 여길 그 악마가 델피나리스와 정면 승부 따위를 해줬을 리가 없다.
틀림없이 부딪칠 일이 없도록 살살 피해 가며 움직였을 테고, 혹여라도 위험을 느꼈다면 곧바로 도주했겠지.
그런데도 소식이 없다는 건, 발자레스가 전혀 상정치 못한 상황에서, 상상치 못한 상대에게 허를 찔렸다는 뜻.
“…쯧.”
허나 그걸 알면서도, 디바나는 당장 작전을 중지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주군이 직접 그녀를 지목해서 내린 임무다.
지금 임무를 멈추고 마계로 돌아간다면 가장 큰 죄인은 물론 발자레스가 되겠지만, 그녀 역시 책임을 완전히 회피할 수는 없다.
뭣보다 발자레스의 역할은 다른 이들의 시선을 끄는 유아등.
있으면 임무가 더 안전해지긴 하지만, 없다고 해도 실행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거기에 디바나는 자신감도 있었다.
“용사의 후손이니 뭐니 해봐야 결국 세상 물정 모르는 계집아이 하나. 타락시키는 것쯤은 일도 아니야.”
입학시험 때 보여준 무력은 그럭저럭 눈여겨볼 만했지만, 이 역시 어떤 의미로 보면 장점이었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그 정도의 무력을 손에 넣었다는 건, 어린 시절부터 놀고먹는 일 따윈 없이 한결같이 수련에 매진했다는 뜻 아니겠는가.
맑고 깨끗한 물일수록 작은 잉크 한 방울에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외골수 같은 삶을 살아온 상대일수록 한번 삐끗하는 순간 거침없이 타락한다는 것을, 디바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잘할 수 있겠지?”
“네, 디바나님. 맡겨 주십시오.”
디바나의 말 한마디에, 금발벽안의 청년이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준수한 실력, 나쁘지 않은 배경,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의 호의를 얻기에 충분한 미모를 갖춘, 디바나의 계약자였다.
작전은 그리 어려울 게 없었다.
본래 미인계라는 건 남녀를 가리지 않고 효과적인 법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용사의 후손.
피나 발레스티아는 청년의 제안을 간단히 받아들였다.
청년이 단독으로 제안했다면 아무리 그래도 경계심이 앞섰을 테니, 일부러 남녀를 혼합해 파티를 이룬 보람이 있던 셈.
“우선은 저층에서 가볍게 호흡을 맞춰보시죠.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넵.”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피나의 모습에 청년은 웃었고, 청년의 장신구 속에 몸을 숨긴 디바나 역시 쾌재를 불렀다.
괜히 자존심을 세우거나 틱틱 거리면 달래는 데 시간이 걸렸을 텐데, 순순히 이쪽의 유도대로 따라와 주니 이보다 쉬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딱 봐도 기가 약해 보이지 않는가.
우선은 차근차근 호흡을 맞추며 호감도를 높이면─
서걱!
서걱!
서걱!
【스켈레톤을 토벌했습니다!】
【구울을 토벌했습니다!】
【리자드맨을 토벌했습니다!】
“…….”
청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어떻게든 미남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긴 했지만, 동요를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피나의 심리적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영입한 다른 동료들 역시 놀란 건 마찬가지였는지, 하나같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그들이 뭘 해보기도 전에 피나가 앞으로 스윽 나가더니 적들을 모조리 도륙해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응?”
피나 역시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꼈는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이내 불안한 기색으로 되물었다.
“호, 혹시 제가 뭔가 실수했나요?”
“아뇨, 아닙니다. 실수라니요.”
청년은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그저 예상했던 것보다 실력이 훨씬 뛰어나셔서 놀란 겁니다. 역시 발레스티아 가문은 수준이 다르군요.”
“아, 네.”
청년의 칭찬에도 피나는 자랑스러운 듯이 가슴을 펴는 대신 멋쩍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청년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과한 칭찬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로군. 담백한 정도가 좋겠어.’
“그러면 다음 영역으로도 가보죠. 이번엔 저희가 나설 테니 피나 양은 뒤에서 기다려주십시오.”
너무 피나에게만 모든 걸 떠넘기려 한다면 혹시 기생하려는 건 아닐까 하며 의심할 여지가 있었다.
여기에서는 청년 역시 그저 들러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할 터.
피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새롭게 나온 적과 청년 일행의 전투가 벌어졌다.
청년의 검이 적을 베었고, 전사의 방패가 앞을 지켰으며, 사제의 축복이 일행을 강화했고, 마법사의 주문이 주변을 불태웠다.
애초에 시험을 통과하고 정식으로 학생이 된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실력은 있다는 뜻이었기에, 그들의 전투는 무척이나 순조로웠다.
몇 번인가 피나를 포함해 호흡을 맞춰본 뒤, 청년이 말했다.
“후우, 오늘은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군요. 어떻습니까? 함께 돌아가서 식사라도 하시는 건.”
“그게, 그, 먼저 돌아가셔도 괜찮아요. 저는 아직 좀 더 가야 해서요.”
“그렇습니까?”
어차피 돈이나 가문의 권력, 외모를 이용해 주도권을 붙잡아둔 파티였기에 실질적인 선택권은 청년에게 있었다.
‘여태까지 전투를 하면서도 고전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좀 더 위험한 영역까지 혼자서 가본 거겠지. 여기서 물러나면 자기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파티 권유를 다시 안 받을지도 몰라.’
“그러면 같이 가시죠. 사실 저희도 약간 부족하다고 느끼는 참이었으니까요.”
“그랬나요? 그런데, 그, 제가 좀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라서요.”
“하하, 괜찮습니다. 체력에는 자신이 있으니까요.”
청년의 단언에, 피나의 안색이 조금 더 환해졌다.
아마도 자기랑 어울려 줄 상대가 있다는 것에 기뻐하는 듯했다.
참으로 쉬운 상대라며 청년은 웃었다.
그러니까, 대략 30분 동안은 웃을 수 있었다.
서걱!
【리자드맨을 토벌했습니다!】
서걱!
【메탈슬라임을 토벌했습니다!】
서걱!
【만드라고라를 토벌했습니다!】
서거거거거거거걱!
【좀비를 토벌했습니다!】
【좀비를 토벌했습니다!】
【좀비를 토벌했습니다!】
【좀비를 토벌했습니다!】
【좀비를 토벌했습니다!】
전투라는 건 체력과 정신력을 갉아먹는 행위이다.
특히 실전의 경우 일반인은 단 몇 분 만으로도 탈진 상태에 빠질 정도.
청년을 비롯한 일행은 다들 학원 입학 전 나름대로 단련을 거듭한 이들이었기에 어느 정도 내성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수십 마리를 넘는 몬스터를 상대로 계속 전투를 이어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피나는 달랐다.
일격일살(一擊一殺).
그녀가 한 번 검을 휘두르면 반드시 몬스터 하나의 숨통이 끊어졌다.
그에 반해 몬스터들의 공격은 그게 몽둥이질이건, 박치기건, 독액 뿜기건, 그 무엇이든 간에 피나에게 닿지를 못했다.
애초에 상대 쪽에서 공격을 해보기도 전에 전투가 끝나는 일이 수두룩했고, 어쩌다 여러 마리를 동시에 만나서 상대 쪽으로 턴이 돌아가도, 그러니까 다른 몬스터가 죽어 나가는 사이에 공격을 퍼부어도 피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를 회피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전투에 함께하던 이들도, 나중에는 뒤에서 멍하니 구경만 하게 될 정도였다.
1시간째. 청년은 생각했다.
‘상상 이상으로 강하군. 디바나 님의 권능을 받기 전, 예전의 나라면 감히 상대조차 되지 못했겠지.’
2시간째. 청년은 생각했다.
‘저 힘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거듭했을지 상상도 되질 않는군. 좋은 일이야. 그만큼 노력을 쌓아왔다면 반드시 마음속에는 휴식과 남들 같은 일상에 대한 갈망이 있을 터. 그 부분을 찌르면 된다.’
3시간째. 청년은 생각했다.
‘…좀 길군. 그래도 슬슬 지칠 때가 됐어.’
4시간째. 청년은 생각했다.
‘……헛, 순간 나도 모르게 멍을.’
5시간째. 청년은 생각했다.
‘……. 언제, 끝나는, 거지?’
동료들이 제발 좀 어떻게 해달라며 열렬한 시선을 보내는 걸 무시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청년은 떨리는 목소리로 피나에게 물었다.
“피, 피나 양. 아직입니까?”
“아, 아뇨! 안 그래도 이제 끝내려고 했어요!”
“그렇군요!”
“저녁은 먹고 다시 들어와야 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