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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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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괴도 도팽(Dauphin) (15) - 내 작은 경비병을 건드린다면

시작은 분명, 두 영주 사이의 별것 아닌 자존심 싸움이었다.

어느 한쪽이 살짝만 뒤로 물러났더라면.

혹은 나라 꼴이 조금만 더 제대로여서, 그들을 중재할 만한 누군가 존재했더라면, 그것만으로도 쉽게 끝났을 소소한 다툼.

하지만 한 번 흐르기 시작한 피는 더욱 큰 피를 요구했고, 자존심, 이권, 원한 등 온갖 요소가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하자 두 영주는 브레이크라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마구 폭주하기 시작했다.

젊은 청년들이 강제로 징병당했고, 전쟁세라는 명목으로 세금이 대폭 늘어났으며, 일가족이 어찌어찌 하루하루를 연명할 수 있었던 식량 사정은 아예 가족 중 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될 수준으로 열악해졌다.

이웃 마을이었던 두 마을의 청년들은 땅을 다스리는 영주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반대편에 선 채 함께 웃고 떠들던 이들에게 창을 겨눠야 했고, 도대체 우리가 왜 싸워야 하냐며 반발하던 이들은 영주 휘하의 직속병에게 두들겨 맞고 입을 다물거나, 심하면 아예 살해당했다.

힘들고 괴로워서, 이대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으며 애원했다.

가장 낮은 곳의 기사님.

민중을 위해 싸우는 진정한 기사시여.

부디 우리들을 구원해 주소서.

이 이유도 영문도 알지 못할 싸움을 제발 멈춰주소서.

너저분한 옷을 입고, 비쩍 마른 몰골인 채로, 고개를 조아리며 눈물을 흘리는 그들의 모습을, 기사는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민중의 기사가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는 소식에 두 영주의 휘하에 있던 영민들은 차례차례 지배자들을 향해 반기를 들었고, 두 영주는 늘 그러했듯이 이를 폭력으로 진압하려 했으나, 강력한 기사의 존재로 인해 실패했다.

물론 영민들 쪽에도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기사의 무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그는 한 명이었고, 그가 없는 곳에서 영민들은 수많은 피를 흘려야 했으니까.

허나, 전과 달리 영민들은 당하더라도 쉽게 당하지 않았다.

과거의 영민들은 열 명 중 한 명이 본보기로 당하면 나머지 아홉 명이 고개를 수그렸지만, 이제는 굴종하는 대신 맞서 싸우길 선택했다.

기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귀족들에게, 통치자들에게 맞설 수 있다는 것을, 그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절대로 항거할 수 없는 무적의 존재가 아니라, 그저 힘을 가지고 있을 뿐인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기사는 두 영주들에게 고했다.

그대들의 무도한 통치 탓에 영민들이 이렇게나 괴로워하고 있노라고.

그러니 제발 싸움을 멈추고, 영주로서 영민을 돌보는 의무를 다해달라고.

하지만 영주들은 기사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대신 다른 귀족 가문들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택했고, 영민들은 이에 분개하며 기사에게 외쳤다.

가장 낮은 곳의 기사님.

우리와 함께 싸우는 민중의 기사시여.

우리가 내민 손을 저들이 거절했으니, 이제 남은 건 목을 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저 사악한 압제자들에게, 우리가 받은 고통을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이 비루한 나라에는 우리처럼 고통받으면서도 맞서 싸우는 방법을 몰라 그저 참고만 있는 이들이 너무나 많으니, 그들에게 우리의 뜻과 성과를 알린다면 반드시 이 나라 그 자체를 바꿀 수 있을 겁니다.

남은 인생 모두를 과거처럼 고통받으며 살 바에는, 차라리 이 큰 뜻을 위해 목숨을 걸겠습니다.

기사는 당황했다.

그저 약자를 돕고, 외면받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검을 휘둘러왔던 자신의 행동이, 영민들의 편에서 귀족들에게 검을 겨눈 행위가,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불씨를 일으켰는지 비로소 깨닫고 만 것이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독한 인물이었더라면.

혹은 커다란 꿈을 위해 작은 희생을 용납할 수 있는 인물이었더라면.

그는 자기가 이끌던 영민들의 뜻에 맞춰, 이 나라를 전란 속으로 빠트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약자들을 위해 싸워왔던 기사는, 설령 올바른 일을 위해서라고 한들 수많은 사람들이 피 웅덩이에 빠질 길을 선택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자기만을 믿고 따라와 준 이들을 내버려둔 채 딸만을 데리고서 도망치는 길도 선택하지 못했다.

고뇌하던 기사에게, 당시에는 아직 총기를 잃지 않았던 늙은 왕의 사자가 와서 고했다.

더욱 커다란 싸움, 더욱 많은 피가 흐르기 전에 기사의 목만 바친다면, 관련자들에게는 그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고. 이를 왕가의 이름으로 보증하겠노라고.

울부짖는 딸을 외면한 채, 기사는 자신의 검을 들어─


“─8소대장 달리아. 너를 도적 도팽과 내통한 죄로 추포한다!”

사르노스 기사단.

그 부단장이 외친 선언에, 경비대 거점 내부가 단숨에 소란으로 뒤덮였다.

“뭐? 내통? 8소대장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쿠웅!

십여 명의 기사들이 동시에 진각을 밟자, 거대한 충격음이 울려 퍼지며 경비대의 소음이 단숨에 잠잠해졌다.

거대한 바위라도 지면에 떨어진 것 같은 굉음에, 다들 본능적으로 움츠러든 것이다.

달리아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애써 침착함을 유지한 채 반론했다.

“내통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전 그런 적이 없습니다.”

“부정해 봐야 소용없다. 네가 도팽에게 경비대 내부의 정보를 흘려 범행을 돕고, 반대로 도팽은 너에게 일부러 당해주는 척하며 너의 입지를 올리는 계획은 모두 간파했으니까.”

“그러니까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의심을 하시는 겁니까!”

“경비대 내부에서 증언이 있었다.”

“예?”

부단장이 손짓을 하자, 구석에 있던 경비병 일부가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8소대장이 도팽을 끝장낼 수 있는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놓아주는 모습을 봤습니다!”

“다른 이들에게는 거침없는 공격을 일삼는 도팽이, 8소대장에게만은 공격을 느슨하게 하는 걸 봤습니다!”

“기사단 여러분이 온 뒤에도 8소대장이 밤중에 도팽으로 추정되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봤습니다!”

사람은 너무나 기가 차면 순간 말문이 막히는 법.

순간 멍해져 버린 달리아를 대신해서, 8소대의 부관이 목청을 높였다.

“헛소리하지 마!! 네놈들, 중대장한테 그렇게 아양을 떨다가 이제 새 주인이라도 찾은 거냐!?”

그제야 달리아는 저 경비병들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본래 달리아는 경비대 내에서 겉돌던 입장이었지만, 도팽이 나타난 뒤로 달리아가 두각을 드러내자 경비대의 많은 인원들이 손바닥을 뒤집듯 그녀에게 호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끝까지 달리아를 인정하지 않고 적의를 보이던 이들도 있었고, 그들이 지금 이 순간 기사단의 편에서 위조된 증언을 내뱉고 있었다.

“들어주실 필요 없습니다, 대장님!! 누가 봐도 본인들 명성에 흠집이 생길 것 같으니까 대장님한테 누명을 씌워서 책임전가를 하려는 겁니다!!”

“역시 천한 것들이라 그런지, 말본새가 더럽군.”

부단장이 인상을 찡그리자, 기사단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와 부관이 있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자기에게 공격이 다가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부관의 모습에 기사가 냉소를 띄운 그 순간.

으득.

“─제 부하에게 손대지 마십시오.”

기사의 손이 부관에게 닿는 것보다 먼저, 달리아의 손아귀가 기사의 손목을 단단히 붙들었다.

기사는 흠칫하며 달리아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아무리 거칠게 발버둥을 쳐도 달리아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뭐, 우왓!?”

한 박자 늦게 공격을 인지한 부관이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고, 부단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 항명이라도 하겠다, 이건가?”

“애초에 기사단은 경비대의 직속상관도 아닐뿐더러, 설령 직속상관이라고 해도 하급자에게 부당한 폭력을 휘둘러도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상관의 이야기 도중에 멋대로 끼어든, 제 주제를 모르는 개에게 벌을 내리려던 것뿐이다. 불경으로 참형에 처해도 이상하지 않을 죄야.”

“그런 건…!!”

제대로 된 법이 아니다.

적어도 그녀가 ‘그’와 이야기했던 세상 속의 법률과는 아득히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달리아는 그 말을 끝까지 내뱉을 수 없었다.

달리아가 본인의 마음속에서 나름의 정의와 법도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건 현실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부단장이 고했다.

“의혹이 사실인지 어떤지는 차차 조사해 보면 알게 될 터. 순순히 명령을 따를 텐가, 아니면 끝까지 저항할 텐가. 8소대장.”

달리아는 망설였다.

아무리 고지식한 그녀라고 해도, 여기서 순순히 끌려가는 순간 그리 좋지 않은 결과가 기다린다는 걸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부한다면?

달리아는 잠시 8소대의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창 자루를 강하게 붙든 채, 달리아를 향해 결연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가 싸우고자 한다면 함께 싸우겠다는 것처럼.

그리고 동시에, 달리아는 알아차렸다.

미세하게 떨리는 다리, 슬금슬금 배어 나오는 식은땀, 거친 호흡.

그들의 의지와는 별개로, 그들의 몸은 이미 겁에 질려 있다는 사실을.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8소대의 경비병들은 경비대 내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편이지만, 개중 마력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제대로 된 연공법으로 몸을 강화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신체 능력은 거의 맹수와 일반인 수준으로 차이가 나며, 하물며 상대는 제대로 된 갑주를 갖추고, 검술에 숙련되어 있으며, 검기를 자유롭게 흩뿌릴 수 있는 인간 병기들.

일단 싸움이 벌어지고 나면, 달리아 본인이야 어찌 됐든 소대원들이 무사할 가능성은 없다.

그리고 그건, 달리아가 바라지 않는 결과였다.

짧은 한숨과 함께, 달리아는 붙들고 있던 기사의 팔을 놓아주었다.

기사는 잽싼 몸놀림으로 뒤로 물러선 뒤 달리아를 노려보았는데, 일개 경비병 따위에게 공격을 제지당한 것이 어지간히도 굴욕적인 모양이었다.

달리아는 기사단 부단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통 같은 걸 한 적은 없지만, 조사에는 응하겠습니다.”

“좋은 선택이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경비대의 다른 대원들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고 여기, 경비대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선언해 주십시오. 또한 하루 단위로 8소대의 대원 중 한 명과 면회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부단장의 얼굴이 노골적으로 일그러졌다.

“지금, 범인 주제에 그게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하는가?”

“아까 부단장님께서 말씀하셨을 텐데요. ‘의혹이 사실인지 어떤지는 차차 조사해 보면 알게 될 터’라고. 조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범인이라고 단정 짓는 건 너무 이르신 것 같습니다. 아예 범인이라고 확정 지어 놓고 결과를 만드시려는 거면 또 몰라도.”

“네 이년!! 지금 감히 나를 농락하려는 거냐!!”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그리 느끼셨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다채롭게 색이 바뀌는 부단장의 얼굴을 바라보며, 달리아는 문득 생각했다.

자기가 언제부터 이렇게 달변에 능해졌지, 하고.

해답은 딱히 고민할 필요도 없이 명확했다.

그야 능구렁이 같은 ‘그’하고 허구한 날 이야기를 나눈 결과일 게 뻔했으니까.

이런 울적한 상황인데도 ‘그’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노라면 문득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달리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년이…!”

부단장은 매우 고뇌하는 기색이었다.

이대로 순순히 달리아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만약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힘으로 억지로 제압하기에는, 방금 기사를 상대로 보여준 달리아의 움직임이 신경 쓰인다.

결국 그는 혀를 차면서, 벌레를 씹어 뱉듯이 말했다.

“좋다! 그 알량한 요구사항은 들어줄 테니, 이만 순순히 조사에 응해라!”

달리아는 양손을 내밀었고, 기사들은 그녀의 손을 묶은 뒤 끌고 가기 시작했다.

8소대의 대원들이 그런 달리아를 만류했다.

“대장님!”

“괜찮으니까 꾸준히 면회나 와. 바깥이 어떤지 확인해야 하니까.”

대원들은 무척이나 할 말이 많은 기색이었지만, 생각보다 여유가 있는 듯한 달리아의 모습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오후.

레브루크에는 묘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거 알아? 경비대의 8소대장이 붙잡혀 들어갔다는구먼.”

“뭐? 대체 왜?”

“그동안 8소대장이 활약할 수 있었던 게, 사실은 도팽이랑 뒤에서 짜고 친 거라서 그렇다는데?”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게 말이 돼?”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하긴 했잖아? 기사단조차 못 잡는 도팽을 상대로 어떻게 일개 경비병이 그렇게 활약할 수 있었겠어? 본인은 도팽이랑 적당히 짜고 치면서 명성을 올리고, 기사단이 나타난 뒤로는 내부에서 정보를 흘려 방해했다고 하면 충분히 말이 되지 않아?”

“음, 으음.”

“사실 난 원래부터 수상했다니까. 아니, 그렇게나 뛰어난 사람이면 왜 진작에 이름을 못 알리고 도팽이 나온 뒤에야 활약하기 시작한 건데?”

소문은 다소 지나칠 정도로 기사단에게 편파적이고, 달리아와 관련된 정보들을 왜곡하고 있었지만, 여러 군데에서 일사불란하게 음모론을 떠들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많든 적든 의혹의 시선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소식을 들은 한 남자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것참. 재미있군. 너무나 기발한 농담이야.”

말과는 달리, 남자의 입가는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 모습을 그림자 속에서 확인한 대악마는 생각했다.

아, 열받았네.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