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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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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괴도 도팽(Dauphin) (13) - 긍지 없는 폭력

본래, 사르노스 백작은 레브루크의 일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현장의 자치권을 존중한다든가 하는 건 당연히 아니었고, 그냥 백작의 관심사가 다른 곳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궁정 내에서 벌어지는 정치 다툼.

비르카 왕가의 분열은 왕국 내 최대의 세력을 자랑하는 후작가와 백작가에게는 큰 기회였고, 여기서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국왕으로 올리는 데 성공한 쪽은 그 공적을 인정받아 명실상부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걸 넘어서 왕가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실질적으로 나라를 지배하는 것조차 가능했다.

그래 봐야 대륙에 널린 그저 그런 나라 중 하나일 뿐 아니냐고?

내실도 개판인 국가의 우두머리 자리를 얻어 봐야 별 의미도 없다고?

모르는 소리.

권력자에게 더 큰 권력을 탐하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변방의 귀족 가문 하나, 별거 아닌 사업체 하나에서조차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권력 다툼이 벌어지는데, 하물며 국가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무슨 일이 있어도 승리해서, 그 짐승 냄새 나는 후작 놈을 무릎 꿇리겠다!!”

거기에, 사르노스 백작에게는 개인적인 동기 역시 충분했다.

사르노스 백작과 레드벨 후작의 인연은 아직 가문을 계승 받기 전 후계자 시절부터 이어지지만, 사실 그 당시만 해도 두 사람의 입지는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 만큼 아득한 차이가 있었다.

긴 역사는 있지만 몰락할 대로 몰락한 레드벨 후작가와 달리, 사르노스 백작가는 당시에도 왕국 최강의 무인 가문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드벨 후작은 그야말로 신들린 듯한 음험함과 대범함으로 몰락해 가던 가문의 머리채를 붙잡은 뒤 강제로 끌어올렸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리라 여겼던 후작가는 어느새인가 사르노스 백작가와 대립할 만큼 커져 버렸다.

동년배. 서로 왕국 내에서 손꼽히는 세력가.

그런데 한쪽은 그냥 부모에게 물려받은 계승자고, 다른 한쪽은 자기 능력으로 올라선 자수성가 타입.

왕국 곳곳에서, 심지어 사르노스 백작의 부모조차도 백작과 후작의 능력을 비교했고, 사르노스 백작은 레드벨 후작이라면 이를 갈았다.

정치 공작으로 레드벨 후작에게 한 방 먹이는 데 성공한 뒤로는, 그 짜릿함에 중독이라도 됐는지 가문 일은 대충 내팽개치고 날이면 날마다 궁정 귀족들과 어울리며 모략을 꾸미는 데 몰두할 정도였다.

백작가의 가신들은 그런 백작의 모습에 영 찝찝함을 느꼈다.

그들이 보기에, 그들의 주군은 음험한 모략이나 치밀한 정치 공세 같은 것과는 제법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귀족 가문의 가주로서 최소한의 소양 정도는 갖추고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뱃속에 능구렁이 수백 마리쯤은 키우고 있을 후작을 상대로 맞수를 이룰 정도는 아니었다.

‘어설프게 정치 쪽으로 싸우려고 하는 것보다, 그냥 사르노스 가문의 전통대로 무력으로 압박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나?

‘본래 도박판에서도 호구한테는 아슬아슬하게 져주면서 승리의 맛에 중독시키는 법인데.

‘설마 주군이 정치 쪽에 몰두하게 하려고, 일부러 접대해 주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의혹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를 백작에게 고하는 이는 없었다.

애초에 의혹만 있을 뿐 그럴듯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는 데다가, 백작은 평소 신하들의 간언을 그리 잘 받아들이는 군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딱 봐도 정치 공작 심취해 있는 백작에게 괜히 딴지를 걸었다가 그 분노가 이상한 방향으로 터지기라도 하면 뒷감당은 어찌하란 말인가?

사회적인 의미의 모가지라면 그나마 다행이지, 다혈질적인 백작의 성미를 생각하면 자칫 물리적으로 목이 날아갈 가능성도 없진 않았다.

보신에 철저한 신하들의 행보 덕에 사르노스 백작은 궁정에서의 정치 투쟁에 몰두할 수 있었고, 최고 실권자가 영지에 관심이 없으니 웬 괴도 하나가 영역권에서 날뛰어도 이에 대한 반응은 느릿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

“요즘 웬 도적놈 때문에 노고가 많으시다고 들었소. 빨리 사태가 진정되기를 기원하지요.”

“예? 아, 예, 뭐.”

레브루크에 있는 여러 권력자들은 백작가에 아무리 하소연을 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자 아예 방식을 바꿔 평소 백작과 자주 어울리는 궁정 귀족들에게 관련 소식을 흘렸고, 기분 좋게 폴로(Polo)를 즐기다가 ‘너네 영지 요즘 개판이라며?’라는 소리를 들은 백작의 기분은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오랜만에 본가로 돌아온 가주를 맞이한 가신들이, 느닷없는 호통 소리에 목을 움츠려야 했던 건 덤이었다.

“그깟 도적놈 하나 알아서 처리 못 하고, 내가 궁정에서 다른 놈들한테 그 이야기를 듣게 만들어?! 네놈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소, 송구합니다- 커헉!”

와장창! 퍼억!

온갖 물건을 때려 부수고, 재떨이로 가신 중 하나의 대가리를 피투성이로 만든 뒤에야 겨우 흥분을 가라앉힌 백작은, 심드렁한 얼굴로 의자에 몸을 눕힌 채 가신들에게 말했다.

“도팽, 도팽. 두 번째로 듣는 이름이로군. 분명 내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니까 알아서 잘 처신하라고, 경비대한테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혹시 내가 말한 거 아래쪽에 제대로 전달 안 했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대로 전달했습니다! 경비대 쪽에서도 어떻게든 붙잡겠다며 의욕을 불태웠습니다!”

“그러면 왜 이 날파리가 지금까지도 내 영토에서 날뛰고 있는 거지? 아니, 됐네. 변명 같은 건 들어봐야 귀만 더러워질 뿐이지.”

원인이 뭐든, 과정이 어찌 됐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일개 도적놈 때문에 왕국 최고의 권력자 중 하나인 백작의 자존심에 상처가 생겼다는 것.

“기사단장을 부르게. 그 도팽이란 놈의 목을 잘라서 내 앞에 가져오라고 명해야겠어.”


본디 상부의 감찰을 좋아하는 하위 부서란 없다.

하물며 찔리는 게 있는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다.

고로, 사르노스 기사단의 방문 일정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경비대의 중대장은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해 부대원들을 닦달했다.

청소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고, 갑옷이나 무기에 광이 없으면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소리를 들어야 했으며, 휴일이고 경계고 뭐고,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완전 무장 상태로 기사단 환영식에 참가해야만 했다.

“어서 오십시오, 기사단 여러분. 먼 길을 오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기사단을 상대로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는 중대장의 모습에, 경비병들은 내심으로 혀를 찼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기사단의 호의를 얻어 질책을 최소화해 보겠다는 중대장의 의도가 너무나도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중대장을 이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괜히 고개를 빳빳하게 세워서 화를 돋우느니, 차라리 굽힐 때 확실히 굽히는 것 또한 방법이라면서.

다만 중대장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이건,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건, 다음에 벌어진 사태를 앞두고는 하나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퍼어억!

기사 중 한 명이 내뻗은 주먹에, 중대장이 피를 흘리며 뒤로 나자빠졌다.

경비대도, 기사단의 모습을 구경하러 온 시민들도 일제히 눈을 부릅뜨는 와중, 주먹을 내뻗은 기사만이 아무렇지도 않게 중대장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붙잡고 연이어 펀치를 날렸다.

살이 뭉개지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중대장의 팔다리가 발작이라도 일으킨 듯 경련하고, 입안에서 하얀 옥수수 같은 무언가가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뭐, 뭘 하시는 겁니까!!”

한발 늦게 상황을 인식한 달리아가 앞으로 나서서 항의했지만, 기사는 말없이 폭행을 이어갔고 그를 지켜보는 다른 기사들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참다못한 달리아가 힘으로라도 기사를 제지하려 했을 때, 기사단의 옆.

경비대와 비슷한 복식을 갖춘 이들 중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노년의 남자가 대신 입을 열었다.

“레브루크의 소대장인가? 나서지 말게.”

“하지만…!”

“대대장 명령일세. 상관의 명령을 무시할 생각인가?”

대대장이라는 말에, 경비대 사이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생겨났다.

경비대의 총책임자.

그의 얼굴을 모르던 이들은 아는 이들에게 저게 사실이냐는 듯이 눈빛을 향했고, 아는 이들은 씁쓸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단의 기사가 경비대의 중간 관리직을 폭행하고, 경비대의 최고 책임자가 이를 방관하도록 명령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혼란에 빠진 달리아가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에, 기사단 중 가장 화려한 갑옷을 입은 인물이 입을 열었다.

“그만.”

“예.”

중대장을 폭행하던 기사는 명령을 듣자마자 행동을 즉각 중지했고, 겨우 해방된 중대장의 몸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가까스로 숨은 붙어 있는 모양새였지만, 건틀릿으로 두들겨 맞은 얼굴은 완전히 짓이겨져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잔혹하기 짝이 없는 손속에 사람들은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지만, 이 상황을 연출한 이, 그러니까 사르노스 기사단의 기사단장은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는 듯이 주변을 한번 슥 훑어보고는, 이내 고압적인 태도로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레브루크 경비대의 중대장은 즉각 그 보직을 해임하며, 경비대에서 제명한다. 새로운 중대장이 임명될 때까지 경비대의 통솔은 여기 있는 보베르 대대장이 대신할 것이다. 본래라면 일개 도적 따위를 붙잡지 못하고 백작님의 심기를 어지럽게 만든 경비대 전원에게 처벌을 내려야 하겠지만, 백작님의 자비로운 판결에 따라 책임자만을 벌한 것이니 이를 명심하고 그 은혜를 가슴에 새기도록.”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사단장의 말에 반발해서가 아닌, 함부로 입을 열었다가 눈에 띌 것을 두려워한 공포에서 비롯된 침묵이었다.

기사단장 역시 딱히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닌지, 달리아나 다른 경비병들에게는 시선조차 향하지 않고 발길을 옮겼다.

자연스럽게 상류층 구역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 애초에 경비병들과 같은 곳에 머무르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은 듯한 기색이었다.

“으, 아으….”

중대장.

아니, 이제는 경비병조차 아니게 된 한 남자가, 두 눈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뭉개진 입으로 흐느꼈다.

혼자서는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불가능한 그의 상태를 보고도, 경비병들은 전부 시선을 회피할 뿐 누구 하나 그의 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어떻게든 중대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양을 떨던 소대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번에도 달리아가 나서 전 중대장을 부축했다.

빠득.

달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중대장에게 좋은 기억이 거의 없는 건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과시하듯이 두들겨 패고, 넝마짝처럼 길거리에 방치하는 행태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본보기라는 말도 우습다.

이는 차라리 천박한 화풀이에 가까웠다.

겨우 도적 하나를 처리 못 해서 자기들을 이런 곳까지 오게 했으니, 처벌이라는 명목으로 두들겨 패버린 것이란 뜻이다.

달리아는 저 멀리 떠나가는 사르노스 기사단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태양 빛을 반사해 화려하게 빛나는 갑옷.

일사불란하면서도 절도 있는 걸음걸이.

보는 이들 누구나가 사르노스의 위엄과 그 무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도록, 백작 가문에서 오랜 세월 영지에서 긁어모은 돈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정예 중의 정예들.

겉보기로는 너무나도 그럴듯한 그 모습이, 달리아의 눈에는 허울뿐인 모조품처럼 느껴졌다.

명예도, 긍지도, 자비도 없는 강함이란, 그저 사람들을 공포로 억압할 뿐인 폭력 장치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