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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괴도 도팽(Dauphin) (12) - 다가오는 시간제한
아이제른 제국. 수도 칼라스티아.
황태자의 거처인 금운궁.
“그런데 말이야, 그 마력연공법이라는 거 함부로 퍼지면 위험한 거 아니야?”
“흠?”
“평범한 일반인도 강력한 힘을 손에 넣게 해주는 거잖아? 왕국의 평민들 전원이 기사급의 강함을 지니게 된다고 하면, 왕국뿐만 아니라 여기 제국까지 위험해지는 거 아니냐고.”
루시드라의 질문에, 황태자는 잠시 턱을 쓰다듬고는 대답했다.
“제국은 일반 병사들에게도 마력연공법을 가르치네만? 아, 물론 징집병은 말고, 전문 군인에 한해서일세. 그건 오해하지 말게나.”
“…….”
“애초에 마력연공법이라는 건 누구든지 딸깍하고 배우기만 하면 갑자기 강해지는 그런 힘이 아닐세. 딱 1년 배워서 검기를 뿜어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10년 넘게 배워서 겨우겨우 어설프게 신체 강화를 할 수 있는 이도 있지. 같은 걸 가르쳐줘도 개인의 자질에 따라 효력이 극과 극으로 나뉜다면, 최대한 여러 후보를 대상으로 적용해 보고 개중 우수한 이들을 끌어올리는 게 효율적이지 않겠나.”
비르카 왕국의 귀족들처럼 가문의 혈족에게, 혹은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충성과 복종을 학습시킨 가신과 사병들에게만 마력연공법을 전수한다면, 그 인재 풀은 극히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그냥 국가에 소속된 일반인들에게도 마력연공법을 풀어버린다면, 시행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당첨도 늘어난다.
아니, 꼭 당첨이 아니라고 해도 그냥 그 자체가 국가 전력이란 관점으론 이득이다.
마력에 자질이 거의 없는 병사라도, 일단 안 배운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니까.
그러면 왜 비르카 왕국에선 이런 방법을 쓰지 않는가?
“국가가 개판이라서 그렇네. 서민들에게 함부로 힘을 쥐여주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거야.”
비르카 왕국은 문제가 많은 국가다.
진짜 왜 이게 망하지 않냐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에서 불협화음이 미쳐 날뛰고 있다.
그래도, 망하지는 않는다.
상층부에서 폭력을 독점하고 있기에, 정확히는 그 공포로 사람들을 찍어 누르고 있기에.
“그래서, 마력연공법을 들려줘서 사람들에게 싸울 힘을 주겠다?”
“글쎄, 내 생각대로라면 그건 부차 요소일 뿐 핵심은 아니야. 뭐, 그래도 도움이 되긴 되겠지.”
황태자는 말을 아꼈다.
이 뒤를 논하는 건 제국의 황태자가 아닌, 사르노스의 괴도와 경비병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도팽이다! 도팽이 나타났다!”
“그러면 그렇지, 도팽이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잖아!!”
도팽이 달리아에게 저지당한 날로부터 약 3일 뒤.
정말로 강에 빠져 죽은 게 분명하다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단숨에 뒤엎어버리듯이 화려하게 등장한 도팽은, 이번에도 화려하게 범행에 성공하며 귀족들로부터는 저주를, 서민들에게서는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기세를 몰아치듯이 바로 다음 날에 시도된 도팽의 범행은, 부하 병사에게 본인 행세를 시키고 정작 본인은 다른 곳에 숨어 있었던 달리아에 의해 저지되고 말았다.
“오호, 이제 머리를 쓰기 시작했나? 하기야 무조건 힘만 쓰는 모습은 좀 멧돼지 같기는 했네!”
“누굴! 보고! 멧돼지라는 거야!”
콰아앙!
전투 과정에서 소형 교량 하나가 박살 나는 참사가 벌어지긴 했지만, 호위 대상과 호위 대상의 재산 양쪽 모두가 무사히 지켜졌으므로 굳이 전적을 따지자면 달리아의 승리라고 하는 것이 옳을 터.
물론 도팽이라고 매번 실패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야말로 널 잡겠─”
콰직! 풍덩!
“대, 대장님!!”
“하하하! 밤중에 발밑은 잘 보고 다녀야 하는 법이라네!”
어느 날은 달리아를 함정에 빠트려 강에 입수시켜 버리는 걸로 발을 묶은 뒤 당당히 범행에 성공하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환영 마도구로 만든 가짜 도팽으로 달리아를 유인한 뒤에 다른 곳에서 표적을 단죄하기도 했다.
“현재 전적은 20대 14인가? 도팽이 제법 우위를 점하고 있군.”
“그래도 최근에는 경비대 쪽의 대응력과 반응속도도 많이 올라오긴 했어. 뭣보다 시간이 갈수록 명단의 표적은 줄어들 테니 도팽 입장에서는 더 어려운 도전이 되겠지.”
“밤중에 잠이 안 와서 맥주 한잔 걸치고 있는데, 지붕 위에서 도팽과 8소대장이 쫓고 쫓기는 모습이 보이더군. 그만한 안주가 없던데?”
“뭐? 이 부러운 자식! 난 한 번도 직관 못 했는데!!”
일이 이쯤 되자, 레브루크의 시민 중에는 도팽과 달리아의 대결을 일종의 구경거리처럼 인식하고 구태여 밤중에 관람을 즐기는 이들마저 생겨날 지경이었다.
경비대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
“경비대랑 도둑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데 저 반응이 맞는 건가?”
“전처럼 도팽을 막아냈다는 이유만으로 죽일 놈 취급을 받는 것보단 낫잖아. 아니 뭐, 지금도 방해꾼 보듯 보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보단 훨씬 나아졌던데?”
도팽의 범행은, 단순한 효율로만 따졌을 땐 지나치게 낭비가 많고, 화려했다.
커다란 연을 이용해 하늘에서 목표 지점으로 강하할 때도 있었고, 강 위를 땅처럼 걸어서 나타날 때도 있었으며, 멀쩡히 존재했던 건물 표면에 특수한 도색을 해서 건물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반대로 존재하지 않는 건물을 트릭을 이용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오로지 한밤중에만 이루어지던 범행 시각도 점점 다양해져, 남들이 한창 멀쩡히 일하고 돌아다니는 도중에 갑작스레 표적을 납치해 갈 때도 있었다.
도팽의 지극히 쇼맨십적인 행보에 사람들은 들뜬 기분으로 그의 행보를 기대했고,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도팽과 맞서는 경비대의 이미지마저 희화화(戱畫化)하는 효과를 보였다.
정의의 단죄를 막는 사악한 놈들에서, 도팽의 앞을 가로막다 골탕을 먹는 라이벌 비슷한 위치로 인식이 바뀐 것이다.
명단에 이름이 올라간 표적들은 달리아와 경비대를 닦달했지만, 그렇다고 달리아의 입지가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표적들도 전부 바보는 아닌 터라 자기들끼리 한군데 모여있으면서 경비를 강화하기도 했고, 때로는 영지에서 기사를 데려와 함께 도팽을 붙잡아 보려고도 했으나, 결과는 모조리 참패였기 때문이다.
나설 때마다 백전백패하는 다른 전력들과 어찌 됐든 도팽과 엎치락뒤치락하는 달리아.
어느 쪽을 믿고 의지해야 할지는, 그야 따로 말할 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도팽과 달리아의 이야기에 일희일비했고, 처음에는 그녀와 8소대를 아니꼬워하던 다른 경비대 역시, 서서히 친한 척을 시도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리아는 그런 과정에서 느낀 여러 감정을, 남자에게 털어놓고는 했다.
“솔직히 너무 뻔뻔한 것 같아요. 그렇게 뒷담화, 아니 대놓고 들으라는 식이었으니 뒷담화도 아니고 앞담화지. 아무튼 온갖 비아냥이나 욕이란 욕은 다 했던 인간들이, 이쪽이 좀 잘나가는 것 같으니까 바로 손바닥을 뒤집는 꼴이라니.”
“뭐 그것도 경비병 아가씨가 잘나간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증거라면 부디 사절하고 싶네요.”
달리아 역시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매 휴일마다 ‘그’의 집에 찾아오지도 않았고, 때로는 영양가 없이 사무적인 이야기만을 나누기도 했다. 계속 속내를 털어놓는 것이 다소 속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 금이 나버린 둑에선 계속해서 물이 흐르듯이, ‘그’를 향한 달리아의 마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언제나 차분한 태도로 달리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달리아가 푸념을 해도, 불평을 말해도, 추한 모습을 보여도 딱히 태도를 바꾸는 일 없이 솔직담백하게 대화에 응했다.
의무감, 사명감, 규율, 질서.
이런 것들로 자신을 꽁꽁 얽매고,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도 그걸 표출하지 않고 계속 마음속에 눌러 담아오기만 했던 달리아에게, 그냥 편한 모습 그대로 자기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란 마약보다도 강렬한 중독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예전의 그녀였더라면, 곧 죽어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을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가끔, 정말, 정말로 가끔이지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지금 이 상황이 언제까지고 이어지면 좋겠다고.”
‘그’는 무언으로 달리아의 말을 기다려주었다.
재촉도 추궁도 아닌, 그저 차분함을 품은 그의 눈빛에, 달리아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로 꺼낼 수 없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경비대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겉돌던 제가, 이제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어요. 못난 대장 밑에서 고생하던 부하들도 전보다 좋은 대우를 받고 있고요. 안하무인으로 날뛰던 상류층의 주민들은 행실을 조심하고, 다른 소대는 상부의 눈치를 보며 업무에 열중하고 있죠. 심지어 명단에 올라가 있던 이들이 자발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비는 일도 늘어났고요.”
여전히 도팽을 응원하며, 달리아를 방해꾼 취급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다.
도적 하나 빨리 잡지 못하는 거냐고 달리아를 책망하는 이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레브루크라는 도시 전체로 본다면, 전보다 우울해하는 이들은 줄어들고, 도시 전체에 어딘지 모르게 활기가 들어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달리아가 아무리 성실하게 업무에 임하고 범죄자들을 체포해도 바뀌지 않았던 도시의 모습이, 서서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래서, 정말 조금, 아주 조금뿐이지만, 달리아는 이런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정말로, 도팽이 옳았던 건 아닌가, 하고.
그런 자신이 부끄러운 것처럼, 달리아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너무 한심해요. 그렇게나 질서와 규율을 부르짖었으면서,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부추기지 말라고 주장했으면서, 막상 그의 존재로 인해 상황이 나아지는 것 같으니까, 너무도 간단하게 손바닥을 뒤집고 싶어 하는 저 자신이.”
그토록 강렬하게 주장해 왔던 신념을, 계속 올바르다고 여겨왔던 마음가짐을, 달리아는 더 이상 굳건하게 믿을 수가 없었다.
자기는 그게 정말로 ‘옳다고’ 생각해서 지켜왔던 게 아니라, 그저 다른 방법 같은 건 없다고, 이게 최선이라고, 그렇게 자신의 포기와 체념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변명을 늘어놓았던 것은 아닐까?
사실은 자기가 싸울 각오가 없었던 것뿐인데, 다른 사람들의 핑계를 대며 정답을 외면해 왔던 건 아닐까?
마치 고해와도 같은 달리아의 말에, ‘그’는 입을 열었다.
“경비병 아가씨.”
그렇다, 그는 언제나 달리아를 ‘경비병 아가씨’라고 불렀다.
이미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을 텐데도, 단 한 번도 그녀를 달리아라고 부르지도, 이름을 물은 적도 없었다.
그리고 그건 달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를 항상 ‘당신’ 혹은 ‘익살꾼 씨’라고 부를 뿐, 그의 이름을 물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치 그것이 암묵의 규칙이라도 되는 것처럼.
“도팽의 행보는 파격적입니다. 그는 무법자이며, 법의 바깥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자신만의 정의를 들이미는 존재이지요.”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의 행보에 통쾌해하고, 그를 응원하지요. 허나 경비병 아가씨. 이거 하나만큼은 명심하셔야 합니다.”
“─괴도는 질서를 부술 수는 있어도,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달리아는 숨을 삼켰다.
“일그러지고, 녹슬고, 찌그러진 나머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질서라면, 그런 것은 부서져 버리는 편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건 질서 그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질서를 부쉈다면, 누군가는 그 자리에 새로운 질서를 쌓아 올려야 하지요.”
“그 작업에서 괴도는 무력합니다. 왜냐하면 괴도의 존재 자체가 ‘법률 따위보다 내 안의 정의가 더 중요하다’라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는 무법자가 만든 법을, 대체 어느 누가 지키려고 하겠습니까.”
달리아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그’가 지금처럼, 마치 도팽 본인이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는 작업을 거쳤다.
괜찮다.
도팽의 오른팔이 부러졌을 때, 그는 멀쩡하게 오른팔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두 명은 다르다.
설령 그 사건 뒤로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었다고 해도, 온갖 기괴한 도구를 다루는 도팽이라면 부러진 팔을 움직이는 방법 정도는 있을지 모른다고 해도, 다를 수밖에 없다.
달라야, 한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너무 비하하지 마시죠. 당신은 괴도 도팽은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그렇게 굉장한 사람이 아니에요.”
“아뇨, 굉장한 사람이 맞습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물론 경비병 아가씨께서 제 안목 같은 건 믿을 수 없다고 한다면야 어쩔 수 없습니다만, 이라고 익살스레 어깨를 으쓱이는 남자를 달리아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대체 자기보고 어떻게 부정을 하란 말인가.
그날의 대화는 그걸로 마지막이었다.
달리아의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그녀는 이내 머리를 흔들어 그런 잡념을 지워 날렸다.
다음에도 대화할 기회는 있다.
쌓인 의문은 그때 해소하면 되겠지.
달리아는 그렇게 생각했고.
“─백작가에서 기사단이 온다.”
다음날, 중대장이 죽을상으로 내뱉은 말에 저도 몰래 얼어붙었다.
줄곧 외면하며 미뤄두었던 결산을, 마침내 해소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