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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괴도 도팽(Dauphin) (7) - 괴도의 휴일, 경비병의 휴일
“그거 들었어? 도팽이 처음으로 표적을 단죄하는 데 실패했다는군.”
“으음, 조금 실망인걸. 하기야, 지금까지가 너무 잘 풀린 거긴 했지.”
“이러다 붙잡히는 건 아니겠지? 아직 벌을 받아야 할 녀석들이 많은데!”
어수선한 레브루크의 거리를, 한 남자가 걷고 있다.
남자의 외형은 지극히 평범했다.
너무 평범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방금 지나간 남자의 특징을 말해주세요’라고 질문해도, 누구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하기야, 애초에 눈에 띄지 말라고 한 변장이었으니 어떤 의미로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하하! 다들 네 실패로 떠들썩하네. 따지고 보면 붙잡히지도 않았는데 이 반응이니, 내심 좀 분하겠어? 응?]
남자의 그림자 속, 대악마가 깔깔거리며 남자를 조롱했다.
내기 패배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밤낮 없이 일하다가 오랜만에 황태자의 곁에 돌아온 루시드라는, 일이 돌아가는 꼴을 파악하고는 싱글벙글 기분이 좋았다.
무릇 실패의 경험이란 실패를 몇 번 맛보지 않은 이들일수록 더욱 크게 다가오는 법.
그 뛰어난 재능으로 뭐든 수월하게 처리해 오던 황태자가 처음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으니, 그 반응이 얼마나 달콤하겠는가!
옆에서 조롱하는 악마에게 화를 낼까?
아니면 애써 담담한 척을 하며 남몰래 속을 삭일까?
루시드라는 눈을 번쩍번쩍 빛내며 대답을 기대했다.
‘그래, 자네 말대로일세, 실로 분한 일이야! 확실히 그 경비원 아가씨는 이래저래 만만치가 않더군! 자칫했다간 계획이 어그러질지도 모르겠어!’
[……?]
어라, 이게 아닌데?
루시드라는 그림자 속에서 황태자, 가 아니라 평범한 민간인으로 위장한 도팽을 바라보았다.
지극히 평범하고도 무해해 보이는 얼굴 속, 어딘지 모르게 들뜬 기색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어젯밤의 경험을 통해 내가 지나치게 자만했음을, 그리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더군. 솔직히 나는 사르노스 백작가에서 자랑하는 기사단이 파견될 때까지는 제대로 된 적수다운 적수는 없으리라 예상했네. 헌데 일개 경비병이 그 정도의 능력을 지녔을 줄이야! 실로 놀라운 일 아닌가!’
[그, 그런 것치고는 뭔가 기뻐 보이는데?]
루시드라의 질문에, 도팽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웃음기가 드러났다.
‘자네의 눈에 그리 보인다면, 그건 분명 내가 느끼는 낙담보다도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겠지.’
괴도를 괴도답게 정의하는 것은 무엇일까.
완벽한 트릭? 대담한 퍼포먼스? 거대한 스케일?
사람마다 여러 대답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괴도 도팽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호적수.
경찰, 형사, 탐정.
세세한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법과 질서의 아래에서 괴도를 붙잡으려 하는 이들이야말로 괴도를 완성하는 법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이를 이뤄질 수 없는 꿈이라 여기기도 했네. 그도 그럴 게, 이 땅은 정말로 최악이었거든.’
레드벨 후작 가문이 통치하는 영역은, 분명히 말해서 백성들에게 친화적이고 그들이 살기 좋은 곳은 아니었다.
그들은 영지의 부를 위해 영민들을 쥐어 짜내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영지의 통치력을 강화하기 위해 권위적이고 폭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적어도 그건 ‘효율성’과 ‘경제성’을 따진 행동이었다.
레드벨 후작은 인정머리가 없는 인물일지언정 무엇이 본인과 가문에 이익이 되고 해가 되는지를 모르는 머저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 관리자들이 그걸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탓에 가끔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적어도 세력 전체의 방침 자체는 그러했다.
황태자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도덕적이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수단’만 건네주면 그걸 그대로 적용할만한 기반 정도는 있었다는 뜻이다.
헌데 이곳, 사르노스 백작가의 영역은 그보다도 최악이었다.
이곳의 지배층이 저지르는 범죄에는 합리도 효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괴롭히고 싶으니까, 화가 나니까, 재미있으니까, 자기들은 특별한 존재라서 천한 아랫것들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되니까.
영주는 다스리는 자로서 책무를 다하지 않고, 기사는 명예로운 자로서 긍지를 지키지 않으며, 관료는 위에 아부하며 아래의 목소리를 외면한다.
도팽이 ‘괴도’를 자칭하면서도, 정작 하는 행동은 의적에 가까울 정도로 폭력적이고 난폭했던 것 역시, 평범하게 물건만 훔쳐서 피해자들에게 돌려줬다간 그들이 대낮에 범죄자 놈들에게 다시 해코지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사회 질서 그 자체가 개판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땅에서 어찌 괴도를 괴도답게 할 진정한 의미의 ‘호적수’를 만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도팽은 호적수와의 대치 같은 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그냥 보이는 족족 죄다 갈아엎는 깽판 메타로 방향성을 바꿨다.
[어제 만난 걔는 다르다 이거야? 네가 원하는 ‘선과 질서를 추구하는 호적수’에 걸맞은 인재라고?]
‘겨우 얼굴 한번 맞댄 정도로 어떻게 그걸 단언할 수 있겠나. 하지만 적어도 그 자질 정도는 느꼈네. 지금은 그걸 확인하러 가는 길이고.’
괴도가 좋은 이유가 무엇인가.
단 한 명의 분신으로도 변장을 통해 다른 모습을 위장하고, 여러 얼굴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대놓고 나 괴도요, 하고 접근하면 제대로 된 대화조차 불가능할 테니, 도팽은 우선 민간인으로 위장한 채 달리아에게 접근해 볼 생각이었다.
들뜬 기분을 억누른 채 도팽은 달리아를 찾아 헤맸고.
“당장 썩 꺼져! 이 빌어먹을 년!!”
촤아악!
어느 노파에게 물벼락을 맞는 달리아의 모습을 목격했다.
도팽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히야! 역시 유능한 대장 밑에 있어야 몸이 편한 모양입니다. 소대장님이 공훈 한번 세우고 나니까 이렇게까지 대접이 달라질 줄이야.”
소대원 중 한 명 너스레로 포문을 열자, 다른 소대원들 역시 저마다 입을 열었다.
“그러게, 설마 그동안 못 쓴 휴일까지 유급 휴가로 바꿔줄 줄은 몰랐어. 여태까지 중대장 그 인간 하는 꼴로 봐선 그냥 그 휴일 죄다 없던 걸로 취급하고도 남았을 텐데.”
“역시 사람이 말이야, 제대로 된 노동을 하려면 휴일도 좀 챙겨줘야 해. 어제 하루 쉬고 나니 오늘 몸이 어찌나 가뿐한지!”
“너 분명 저번에는 휴일 없이 일하니 더 인생이 충실한 것 같다고 소대장님한테 아부하지 않았었냐?”
“어흠,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난 휴일보다도 다른 소대 반응 바뀐 게 더 좋더라. 전에는 지나가면서 깔보거나 비웃는 시선으로 신경 거슬리게 하던 것들이, 이젠 반대로 우리 눈치를 살피던데?”
“그런가? 난 오히려 전보다 더 원망스러운 눈으로 보는 것 같던데. 눈에서 질투가 이글이글 타오른다고 해야 하나.”
“그래 봐야 어차피 대놓고 뭐라고 떠들지도 못할 텐데, 뭘.”
“거참, 평소에 만만한 잡범이나 때려잡을 때는 대장의 능력이 필요 없으니까 찬밥 취급하다가 이렇게 손바닥을 뒤집는 걸 보면 좀 그렇긴 해.”
“그러게나 말이야, 그야말로 도팽 님 만만세─커헉!”
“야 이 새끼야. 그게 할 말이냐?”
익살스러운 동작으로 두 팔을 들어 올리던 소대원이, 옆에 있던 다른 대원에게 뒤통수를 주먹으로 얻어맞고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소대원들이 슬금슬금 자기 눈치를 살피는 걸 보고, 달리아는 곤란한 듯이 뺨을 긁적거렸다.
도적을 찬양하는 듯한 모습은 경비대로서 마땅히 질책당할 만한 것이었지만, 평소 경비대 내에서 소대원들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그로 인해 어떤 불만을 느꼈을지를 생각하면 대놓고 꾸짖기도 좀 그랬다.
그렇다고 반대로 동조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 뭘 어쩌겠는가.
그냥 침묵할 수밖에.
어색해진 분위기를 무마하듯이, 부관이 입을 열었다.
“어흠. 아무튼 대장님, 오늘은 잘 쉬다 오십시오. 갑옷이랑 창은 새것처럼 완벽하게 정비해 놓겠습니다.”
달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6번부터 8번 거리 쪽으로 돌아다닐 예정이니까, 혹시 급한 일 생기면 불러.”
“…쉬러 가시는 거 맞죠? 저번처럼 휴일까지 순찰하고 다니시면 안 됩니다?”
잠시 움찔한 달리아는, 이내 손을 내저었다.
“서, 설마! 아무리 나라도 갑옷도 창도 없는데 그런 짓은 안 해.”
“맨손으로도 여기 애들은 다 때려잡으시는 분이 그런 걸 이유로 대셔도 말이죠.”
“아무튼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럼 다녀올게!”
반쯤은 억지로 대화를 끊고, 달리아는 경비대 건물을 뒤로했다.
물론,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실제로는 앞서 말한 거리의 모습을 살펴볼 생각이 만만했다.
중대장의 엄포가 있으니 함부로 이상한 짓을 저지르는 경비병은 드물겠지만, 그래도 본인들이 한직으로 밀려났다고 생각한 이들이 현장에서 돌발 행동을 벌일 가능성도 없진 않으니까.
도시 내에서 제법 유명인이 된 달리아였지만, 의외로 그녀를 알아보는 이는 거의 없었다.
경비병으로 활동할 때는 항상 갑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투구의 면갑 부분을 내린 채 활동하는 달리아였기에, 그녀에게 도움을 받거나 평소 대화를 나누던 이들도, 막상 맨얼굴을 본 적은 없는 경우가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뭐, 느슨한 평상복 차림 덕분에 다른 의미로 주변의 시선을 끌어모으기는 했지만, 달리아는 딱히 개의치 않았다.
그녀의 부관도 말했듯이, 맨손으로도 어지간한 상대 쯤은 가볍게 때려눕힐 수 있는 게 그녀였다.
‘…생각보다는 제대로 일하고 있네?’
거리를 배회하며 경비병들의 모습을 살핀 달리아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염려했던 것과 달리, 주민들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는 경비병들은 보이지 않았다.
행동이나 태도에 귀찮음이 다소 묻어나오긴 했고, 적극적으로 주변을 수색하기 보단 그냥 정해진 코스만 돌아다니는 느낌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치안 유지 효과는 확실했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근처에 무장한 경비병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주목하지, 그들이 의욕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신경쓰지 않으니까.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면 좋을 텐데.’
그리 생각하는 달리아였지만, 동시에 그게 현실성이 없는 일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은 어디까지나 도팽이라는 존재에 의해 일시적으로 발생한 특수한 사태일 뿐, 도팽을 붙잡고 나면 더 이상 중대장이 달리아를 우대할 필요는 사라진다.
아무리 그래도 붙잡자마자 토사구팽이라는 사태가 벌어지진 않을 테고, 혹시 모를 만약을 대비해 전보다는 대우가 다소 나아질 테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모든 게 그녀가 바라는 느낌으로 흘러가지는 않겠지.
도팽을 붙잡기도 전에 붙잡은 다음을 생각하는 본인이 우습기도 했지만, 모처럼 들뜬 기색이던 소대원들의 처우가 다시 열악해질 걸 생각하면 걱정을 금할 수 없는 달리아였다.
“…8소대장님?”
고민에 잠긴 채 길을 걷던 도중, 문득 자기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달리아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과거 그녀가 도운 적이 있던 중년의 상점 주인이, 긴가민가한 기색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달리아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점주님.”
“아하, 목소리를 들으니 확신이 드는군요. 머리카락이랑 걷는 모양새를 보고 혹시나 하긴 했는데,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
“딱히 속이려는 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네요. 혹시 다른 소대의 경비병들이 뭐 해코지하고 그런 건 없죠?”
“적어도 제가 아는 범위에서는 없습니다. 딱히 친근하거나 열정적인 태도는 아니어도, 일단 보이는 머릿수 자체가 많으니 양아치 놈들도 다들 몸을 사리더군요.”
“그건 다행이네요.”
“최근 큰 공훈을 세우시고 상류층 구역으로 승진했다고 하시던데, 일이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달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승진 같은 게 아니에요. 여기도, 거기도 똑같이 제가 지켜야 할 거리인걸요. 그냥 구역만 잠시 바뀐 거죠.”
“하하, 거기랑 여기를 똑같다고 말씀하시는 건 소대장님밖에 없을 겁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는지, 주변에 있던 다른 점주들 역시 슬금슬금 고개를 들이밀었다.
“진짜 소대장님이야? 갑옷만 벗었는데 완전히 딴 사람인데?”
“이야, 갑옷 입고 있을 때도 대충 짐작하긴 했지만 역시 발육이, 커헉! 왜 때려! 이 여편네야!!”
“왜 때리긴 뭘 왜 때려!! 이 인간이 노망이 났나! 어디서 함부로 주둥이를 나불대!?”
“아니, 그냥 칭찬, 악! 악! 잘못했어! 잘못했다고!”
두 부부의 만담 같은 모습에, 달리아를 비롯해 다른 이들이 웃음을 터트리고 있던 그때였다.
“…아가씨, 정말로 아가씨가 그 소대장님이우? 이번에 도팽에게서 세무관을 지켰다는, 그?”
거리 구석에서 작은 매대를 지키고 있던 한 노파가, 달리아에게 다가와 그리 질문했다.
경비병 모습으로 순찰할 때 웃는 얼굴로 달리아에게 감사를 표하거나 마실 물 따위를 건네주던 노파였기에, 달리아는 별 경계심 없이 미소로 노파를 맞이했다.
“네, 할머니.”
“그래, 그렇구먼….”
노파는 고개를 숙이고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이내 가게 안쪽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평소처럼 물이라도 건네주려나 싶어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달리아는, 이내 몸을 굳혔다.
다시 밖으로 나온 노파의 얼굴이, 짙디짙은 분노와 증오로 가득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썩 꺼져! 이 빌어먹을 년!!”
촤아악!
노파의 손에서 퍼부어진 물벼락이 달리아를 젖은 생쥐 꼴로 만들자, 방금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점주들이 하나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와중에도, 노파는 독살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그 쓰레기! 내 딸 괴롭히고 혼자서 목숨 끊게 만든, 배를 갈라 산 채로 내장을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새끼!! 그걸, 그놈을, 왜 구했어! 왜 도왔어!! 내버려 뒀어야지!! 도팽이 그놈을 처벌하게 했어야지!! 여태 다른 놈들은 다 벌을 받았는데, 왜 그놈만!! 대체 왜─!!”
퍽!
노파가 던진 토마토가, 달리아의 머리카락을 붉은색으로 더럽혔다.
노파는 매대에 있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달리아에게 집어 던졌고, 달리아는 그걸 빤히 보면서도 방어도, 회피도 하지 못했다.
노파의 분노가, 딸을 잃은 어머니의 절규가, 달리아에게 그 어떠한 행동도 허락하지 않았다.
“뭐가 경비병이냐!! 뭐가 사람을 지킨다는 거야!! 정작 목을 매달아버려야 할 진짜 쓰레기들은 그냥 내버려 두고 있으면서!! 쓰레기들한테 아양 떨어서 그들 곁으로 간 주제에, 뭐가 똑같이 지켜야 할 거리냐고! 속으로는 우리를 비웃고 있잖아!!”
노파의 말은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고, 적지 않은 오해가 담겨 있었다.
아양 같은 걸 떤 적은 없다.
당신들을 비웃은 적도 없다.
나는 진심으로 사람들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아아, 하지만.
저 분노와 슬픔과 비탄을 앞에 두고, 대체 무어라 말해야 한단 말인가.
달리아는 침묵했지만, 그 침묵은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
자기가 무시당한다고 생각한 노파가, 과일 손질용의 작은 칼을 움켜쥐고 달리아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늙은 여인, 그것도 특별한 훈련을 받은 전문가 따위가 아닌 작은 가게나 운영하던 이의 동작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느렸고, 허술했으며, 불필요한 행동도 많았다.
달리아가 직접 나설 것도 없이, 상인 중 누구 하나만 노파를 막으려 했어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을 터.
허나, 그들 중 움직일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노파가 뿜어내는 귀기와 악에 받친 살기 앞에서, 그들은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달리아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힘없는 노파의 칼날은 그녀의 몸을 죽일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의 마음만큼은 확실히 난도질하겠지.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없다.
막을 자격을 갖춘 자도 없다.
“그쯤 하시지요, 어르신.”
─자격 따윈 개의치 않고, 그저 자기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괴도 외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