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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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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괴도 도팽(Dauphin) (2) - 예고장

─그거 들었어? 파벨로 자작령에서도 나왔대!

─나오다니, 뭐가?

─의적 말이야, 의적! 거기 아들들이 여자관계가 엄청나게 지저분해서 영지 내의 아가씨들을 상대로 더러운 일을 많이 했다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납치당해서 마을 광장 중앙에 전시당했다더라! 그 사람들이 가진 재산도 탈탈 털렸고!

─굉장하네! 호위도 철저했을 텐데, 대체 무슨 수로 그런 일을 한 걸까?

─이보게, 들었나? 아프림 상회가 탈탈 털렸다더군!

─그 악랄한 인간이 당했다고? 그거 말이 상회지 실제로는 반쯤 도적단 아닌가!

─하하! 반쯤 도적이어도 진짜 의적에게는 못 이긴 거 아니겠나?

─허어, 근데 진짜 겁도 없는 인간이군. 후환이 무섭지도 않나?

─토스로프 남작 말입니다. 본래는 농노들을 험하게 대하는 걸로 유명했는데 요즘은 갑자기 대우를 잘해준다는군요.

─응?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그러죠?

─말로는 ‘농노들도 소중한 사람인 걸 알았다’니 어쩌니 떠들고 있는데, 그걸 누가 믿겠습니까. 다들 예의 의적 때문에 알아서 사리는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 봐야 도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도적 하나 때문에 이렇게 바뀌는 걸 보면 참 어이가 없군요. 의적이라는 칭호도 아예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하! 그 도적놈 때문에 요즘 마음 편히 살 수가 없소!

─애초에 도적‘놈’이 맞긴 한 거요? 겨우 한 명에게 나라 전체가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소!

─그것도 그렇군, 어쩌면 거대한 집단이 한 명의 간판을 내걸고 활동하는 걸지도 모르겠구려.

─사르노스 백작가의 영역에서만 활동하는 것도 이상하오. 혹시, 다른 곳에서 의도적으로 파견한 집단은 아닐는지.

─다음에는 어디로 향할까? 빨리 여기로 오면 좋을 텐데!

─걱정하지 마! 지금 순서대로면 정해져 있지, 다음은 이 레부르크 차례니까!

─제발 썩은 귀족들을 전부 날려버렸으면!

─아아, 도팽! 도팽! 부디 우리들을 구해주세요!


사르노스 백작가의 경비대는 소대, 중대, 대대의 세 분류로 나뉜다.

백작가의 직할령 중 그 크기가 그리 크지 않은 영지에는 10명에서 20명 사이의 경비소대가 머물고, 소대장이 그 책임자가 된다.

사르노스에서는 이런 영지들을 지역별로 몇 개의 묶음으로 묶어 관리하고, 해당 지역의 소대장들은 중대장의 지시를 받는다.

대대장은 사르노스 본가에 단 한 명만이 존재하며, 백작가 소속의 모든 경비대를 총괄한다.

다른 경비 중대들은 중대 본부가 있는 영지와는 별개로 인근 마을에 있는 경비 소대들까지 관리해야 하는 것에 반해, 레브루크 중대는 다른 마을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오직 도시 하나만을 지키는 특이케이스에 속했다.

도시가 워낙 거대하고 인구수가 많다 보니, 다른 마을에까지 관여하지 말고 오직 레브루크 하나만 잘 관리하라며 인원을 잔뜩 몰아준 덕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레브루크 중심가에 있는 중대 본부에서는 기이한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들, 요즘 떠들썩한 도적놈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중대장의 말에, 회의실에 모여있던 소대장들의 눈빛이 다채롭게 변했다.

악명을 떨치는 범죄자를 붙잡겠다는 사명감과 정의감… 이었다면 같은 공간에 있는 달리아의 내심도 제법 편안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소대장들의 눈에 떠오른 감정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건 차라리, 바닥에 떨어진 무척이나 두툼한 지갑을 발견한 사람 특유의 눈빛에 가까웠다.

빨리 줍고자 하는 다급함과 다른 이가 먼저 손에 넣으면 어쩌지 싶은 경계심, 숨기지 못할 탐욕까지.

아무리 봐도 도시를 지키는 경비대가 드러내도 좋을 감정이 아니었지만, 중대장은 오히려 그것이 기껍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도적 ‘도팽’. 이 건방진 도적놈은 본인의 이동 경로를 숨길 생각도 없는지, 맨 처음 모습을 드러낸 벨모르 남작령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인근 영지를 순차적으로 습격하고 있다. 놈이 갑자기 행동 패턴을 바꾸지 않는 이상, 앞으로 며칠 안에 우리 레브루크에서 활동을 시작하리라는 게 상부의 예측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나?”

중대장의 질문에, 소대장 중 하나가 실실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돼지가, 겁도 없이 사냥터로 달려온다는 뜻 아닙니까?”

“바로 그거다!”

쾅!

중대장은 흥분한 듯이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친 뒤 말을 이었다.

“도팽 그놈이 휩쓸고 간 지역 중에는 다른 중대에서 관리하던 영지들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 병신 같은 놈들은 겨우 도적 하나도 잡지 못하고 추태를 보이고 말았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그놈을 잡는다면, 우리 레브루크 중대야말로 최고의 경비대라고 알릴 수 있을 터! 백작님께서도 틀림없이 크게 포상을 내리실 거다!”

우오오오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대장들의 입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내질러졌다.

그러면서도 옆의 소대장들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것이, 혹여 자기 소대가 아닌 다른 소대가 저 황금 돼지를 붙잡진 않을까 서로 견제하는 모양새였다.

달리아는 한숨을 애써 억누른 뒤, 손을 들었다.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던 중대장은 발언을 요청한 것이 달리아라는 걸 깨닫고 살짝 얼굴을 굳혔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가, 8소대장?”

“도적놈을 잡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지나치게 방심하는 건 좋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들떠있던 공기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가라앉았다.

중대장 역시 불쾌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달리아는 그래도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희는 놈의 정확한 정체도, 실력도, 배후에 어떤 세력이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뭣보다 놈에게는 뚜렷한 실적이 있습니다. 아예 다른 영지 소속의 경비대라면 몰라도, 저희와 같은 백작가 소속의 경비병들까지도 놈을 놓쳤지요. 이런 상황에서 ‘붙잡는 게 당연’이라는 듯한 마음가짐으로 움직였다간 자칫 실태를 범할 가능성도─”

“아, 됐네. 거기까지 하게.”

중대장은 짜증이 가득 묻어나오는 동작으로 손을 내저었다.

“요는 방심하지 말자, 이거 아닌가. 그 짧은 말을 꼭 그렇게 구구절절 늘려서 해야겠나?”

그야 제대로 된 이유도 없이 그냥 말하면 제대로 듣지 않을 테니까 그렇지.

달리아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상대가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방심은 나쁘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아. 하지만 지금은 다들 흉악한 범죄자 놈을 붙잡자며 함께 의욕을 끌어올리고 있는 도중 아닌가. 꼭 이런 타이밍에 그런 말을 해서 동료들의 의욕을 꺾어야겠나? 자네가 굳이 그렇게 잘난 듯이 지적하지 않아도, 여기 있는 친구들도 다 그 정도는 알고 있고, 알아서 어련히 잘할 친구들일세.”

“…죄송합니다.”

“쯧, 아무튼, 다들 경계에는 만전을 기울이게. 야간 순찰 인력은 크게 늘리고, 주요 인사들이 머무는 건물에는 아예 전담 인원을 붙여서 관리하는 거 명심하고, 잘하리라 믿네.”

그 뒤에도 작전 회의는 계속되었지만, 달리아에게 발언권이 주어지는 일은 없었다.

다른 소대장들의 비웃음 섞인 시선을 묵묵히 견디며, 달리아는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8소대의 병사들은 하나같이 눈을 끔뻑거렸다.

위에서 내려온 경비 구역 배분이 그만큼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레브루크 중대에 소속된 소대는 총 10개.

이 중 레브루크 전체 면적 중 1/4 정도를 차지하는 상류층 구역에 배치된 소대가 아홉.

그리고 나머지 3/4에 배치된 소대는 달리아 휘하의 8소대 딱 하나뿐이었다.

담당 면적은 3배인데, 인원은 1/9이라는 눈을 의심할 수준의 배치도였다.

“미안해, 어떻게든 바꿔보려고는 했는데. 실패했어.”

달리아는 부하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본래도 그녀와 소대원들은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구역까지 순찰을 돌며 치안을 지켰지만, 그건 정해진 담당 구역을 돌고 여력이 남으면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시간이나 인력이 부족하면 상황에 따라 순찰을 줄이거나 하는 것도 가능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레브루크의 7~8할 정도가 담당 구역으로 주어졌다.

이전처럼 ‘갈 수 있으면 가는’ 게 아니라, ‘무조건 순찰을 해야하는’ 구역이 대폭 늘어난 것이다.

이 넓은 구역을 8소대 단독으로 감당하려 했다간, 소대원들은 휴일조차 없이 매일 전원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됐다.

심지어 명확한 기간이 정해진 것도 아닌, ‘도팽을 잡는 그때까지’라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끝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달리아는 중대장에게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참으로 기가 막힌 것이었다.

「이는 레브루크, 나아가 사르노스 백작가의 명예가 걸린 일일세. 사르노스 소속의 병사로서, ‘약간의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중대장은 도팽을 확실하게 잡기 위한 배치 변경이라고 주장했지만, 이것이 일종의 보복성 인사라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본인이 싫은 소리를 듣거나 비웃음당하는 건 견딜 수 있는 달리아였지만, 자기 때문에 부하들까지 피해를 보게 됐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기분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고개를 숙인 달리아의 모습을 보고, 8소대의 소대원들이 저마다 눈빛을 교환했다.

부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고개 드시죠, 대장님. 대장님 잘못도 아닌데 뭘 미안해하십니까.”

다른 대원들도 덧붙였다.

“크게 달라진 것도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 외에는 챙기지도 않던 구역이었는데요, 뭘.”

“오히려 잘된 거 아닌가? 괜히 남의 구역까지 챙겨주려니 그놈들 일 대신하는 것 같아서 은근히 기분 나빴는데, 이젠 그냥 우리 일 우리가 하는 거잖아?”

“거 안 그래도 고급 마차니 뭐니 지나간다고 좁아터진 귀족 거리에서 복작거리느니, 널찍한 곳에서 뛰어다니는 게 속 편합니다.”

“그래요, 대장님! 중대장 그 새끼가 나쁜 건데 왜 대장님이 사과를 해요!”

“야, 여기 중대 본부인데 중대장 욕해도 되는 거냐?”

“시발, 원래 없는 곳에선 백작도 까는 법인데 까짓 중대장이 대수라고.”

“사실 중대장이라고 해봐야 우리 앞에서나 거들먹거리지, 본가 소속 기사는커녕 그 시종들 앞에서도 굽신거리는 처지인데 뭘.”

“대대장님은 어떠려나? 경비대를 이끄는 우두머리니까, 기사단을 이끄는 기사단장이랑 동급인가?”

“에이, 개나 소나 들어올 수 있는 경비대랑 귀족들 아니면 못 들어가는 기사단이랑 똑같냐? 대대장이라고 해봐야 일반 기사랑 비슷한 취급이겠지.”

처음만 해도 분명 달리아를 위로하는 도중이었을 텐데, 어느새인가 경비대와 기사단의 실력과 취급 차이에 대해 떠들기 시작한 부하들의 모습에 부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여간 이 새끼들은 뭐 하나 진중하게 붙들고 있지를 못해요….”

“하하.”

군기가 없다 못해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부하들이었지만, 오히려 그 가벼운 모습이 울적해 있던 달리아의 입가에 미소를 돌아오게 했다.

뒤통수를 긁적이던 부관은, 그런 달리아에게 말했다.

“근데 그 도팽이라는 놈, 오긴 오는 걸까요? 솔직히 저라면 저렇게까지 경비병이 바글거리는 곳에는 발도 들이기 싫을 것 같은데요. 아니, 왔다가도 대충 상황 확인하고 그냥 튀지 않겠습니까?”

“글쎄. 그럴 수도 있겠네.”

어차피 정정당당과는 거리가 먼 도적놈.

상황이 불리해지면 꽁무니를 빼고 도망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달리아의 그런 생각은, 정확히 하루 뒤에 박살이 났다.

도적 도팽은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전 영지에서는 안 하던 짓까지 하며 세간의 이목을 당당히 끌어모았다.

상류층 구역에 있는 어떤 상회의 소유 건물.

그 넓디넓은 벽면에 이런 문장을 큼지막하게 적어놓고 갔기 때문이다.

「딱히 친애하지는 않는 악덕 상인에게 고하도록 하지.

몽보르크 상회의 상주, 앙리 몽보르크여.

자네가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농민들을 속여, 그들이 피땀 흘려 농사지은 곡식들을 헐값에 사들였다는 걸 알고 있다네.

자네의 창고에는 곡식 자루가 가득하건만, 정작 이를 이루어 낸 농민들은 하루하루 굶주림을 견디고 있으니, 이 어찌 불합리가 아니겠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자네에게 피해를 입은 모든 농민들에게 사죄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게.

해와 달이 두 번 서로의 위치를 바꿀 때까지 자네가 경고를 듣지 않는다면, 그땐 내가 직접 이자까지 쳐서 주인들에게 대가를 돌려주겠네.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시게나.

-괴도 도팽-」

의심할 여지가 없는 선전포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