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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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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하인 세드릭(Cedric) (15) - 세 가지 문제, 세 가지 해답

“후작님께서 찾으십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날벼락처럼 갑작스러운 호출이었다.

레드벨 가문이 직간접적으로 다스리는 여러 영지에는 수많은 가신들이 존재하지만, 개중 후작과 대면한 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 겨우 한 줌에 불과하다.

이는 다른 영지에 있는 이들만 그런 게 아니라, 후작이 거주하는 본채에서 활동하는 가신들까지도 포함한 이야기다.

봉신 가문 출신일지언정 구성원 대부분이 귀족 태생인 가신들마저 그러할진대, 어지간해서는 평민들로 구성된 하인들의 경우엔 말할 것도 없다.

헌데 그런 후작이, 타 영지에서 가문의 막내 영애가 고용했을 뿐인 일개 하인을 대체 왜 부른단 말인가.

클라우디아를 따라온 가신과 하인들은 하나같이 당혹을 금치 못했고, 이는 다른 자식들을 따라온 인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알겠습니다. 안내해 주십시오.”

하지만 그런 주변의 반응이야 어찌 되었든, 세드릭은 너무나 태연한 모습으로 길을 재촉했다.

긴장감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그 태도에, 얼음장처럼 무표정을 유지하던 본가 가신들의 얼굴에 희미한 놀라움이 피어났다.

다른 곳의 가신들과 달리 본가의 가신들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일에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레드벨 후작이 변방의 일개 하인에게 흥미를 보이는 것에 기이함을 느끼던 그들이었지만, 대범하다 못해 간을 밖에 내놓은 것 같은 세드릭의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예상했던 것과는 좀 다른 얼굴이로군.”

저택 정원의 심부.

그의 모습을 확인한 세드릭이 인사를 건네는 것보다도 먼저, 후작이 대뜸 내뱉은 말이었다.

세드릭을 안내한 하인은 그가 곤혹스러워할 것이라며 내심 동정했지만, 정작 세드릭은 웃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렇습니까? 어떤 모습을 예상하셨는지 궁금하군요.”

“내 딸의 혼을 쏙 빼놓은 놈 아닌가. 그 애가 홀딱 반할 만큼 절세 미남이라고 여겼지. 하지만 생각해 보니 지금 그 면상은 그 면상대로 위험한 느낌은 있군. 둥글둥글한 게 사람 경계를 빼앗는 얼굴이야.”

“과찬이십니다.”

“칭찬처럼 들리나?”

“칭찬으로 들어야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가볍게 오가는 말의 응수에, 주변의 가신들이 동요한 기색을 보였다.

거대한 상단의 상주나 자기 영지에선 왕처럼 행세하는 영주들조차도 후작 앞에서는 잔뜩 긴장한 채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내뱉는 데, 일개 하인의 저 천연덕스러움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들은 하인의 무례를 지적해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정작 후작은 흥미롭다는 듯한 기색을 드러낼 뿐, 특별히 분노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고귀한 피를 타고난 귀족 중에는 가끔 탈권위적인 모습을 보이며 평민들과 격의 없이 대하는 이들도 드물게 있지만, 레드벨 후작은 본디 그런 타입이 아니다.

고로, 일개 하인의 당돌한 언행에도 그가 노여움을 보이지 않는 지금 상황은 무척이나 예외적인 일에 속했다.

“칭찬으로 들어야 한다, 라. 눈치가 빠르군. 하지만 시건방지기도 해.”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듯합니다. 송구합니다.”

“잘못했다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녀석에게 들으려니 엎드려 절받기가 따로 없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흐음.”

레드벨 후작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는 세드릭의 속내를 간파하려는 듯이 그 모습을 지긋이 응시했지만, 세드릭은 태연자약한 자세로 그 모든 것을 받아냈다.

“그래서, 목적이 뭔가?”

“저의 능력이 부족하여, 후작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부디 조금만 더 자세한 설명을 베풀어 주시겠습니까?”

“무슨 목적으로 내 딸에게 달라붙었냐고 물었네. 돈을 원하나? 그 아이의 몸? 그것도 아니면…”

후작의 발치에서, 피가 솟구치는 듯한 모습과 함께 거대한 짐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

정면에는 사자의 머리, 몸통 중간에 돋아난 염소의 머리, 꼬리는 뱀.

어린 시절 몰락 직전이었던 후작가를 다시금 일으키는 과정에서 수많은 위기를 경험해야 했던 레드벨 후작.

그런 후작과 함께 사선을 넘겨왔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클라우디아가 보여주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위용과 기세를 지닌 혈마수.

5등급 최상위의 힘을 자랑하는, 레드벨 후작가 최강의 전력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으르렁거림을 자아내자, 그 소리를 들은 가신들이 일제히 안색을 창백하게 했다.

혈마수의 관심이 향한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생물로서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 것이다.

“…이 가문의 권력이라도 손에 넣고 싶은 건가?”

허튼 대답을 내뱉는 순간 곧바로 물어뜯으리라.

후작은 그렇게 생각했고, 실제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후작 본인의 능력이 아닌, 그와 연결된 혈마수가 짐승 특유의 감으로 파악한 결과였다. 그리고 이는 정확했다.

기본 4급, 조금 무리하면 일시적으로 5급과 맞서 싸우거나 오히려 쓰러트리는 것도 가능했던 베른과 달리, 세드릭의 순수 전투 스펙은 3급 정도.

부작용을 각오하고 한계를 초월하면 4급 수준의 힘은 낼 수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혈마수를 상대로 승리할 정도의 능력을 끌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순수한 무력으로는 자기를 지킬 수 없는 상황.

헌데도, 세드릭의 대답은 공포라고는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명확했다.

“─제 목적은 간단합니다. 클라우디아 아가씨께서 훌륭한 군주가 되는 것이지요.”

“훌륭한 군주? 더 많은 권력을 뜻하나?”

“권력은 수단일 뿐입니다.”

세드릭은 후작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레드벨 후작님. 솔직한 감상을 말하건대, 이 나라의 권력자들은 최악입니다.”

흐읍, 하고 주변에서 숨이 넘어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후작 역시 순간 눈살을 찌푸렸지만, 혈마수를 시켜 세드릭의 입을 강제로 다물게 하지는 않았다.

“국토 곳곳에서 위험한 몬스터들이 활보하는데도 이를 방치하고, 그로 인해 백성들이 괴로워하든 말든 하루하루 나태와 향락으로 무의미한 나날을 보내는 거 말고는 하는 일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되는 행보를 보이는 귀족들도 적지 않더군요.”

“지금 그 귀족들 제일 위에 있는 나한테 따지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냐고 묻는다면, 예,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어째서지?”

“후작님께서는 행동 이념이 ‘선’이 아닐 뿐, 적어도 영민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생활을 안정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통치자에게도 이득이라는 걸 이해하고, 이를 실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모험가 베른이 보았던, 대체 저것들은 존재 의의가 무엇인가 고민될 정도로 무능하고 나태했던 귀족들과 비교하면, 레드벨에서 파견한 영주와 그 대리들은 적어도 영주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와 역할을 저버리지는 않았다.

솔선수범해서 영지 발전이나 민생 향상을 위해 나서는 이들은 드물었지만, 어쨌든 도적 떼나 몬스터의 습격처럼 영지 단위에서 대처해야 하는 일에는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뜻이다.

“이 왕국에는 그 최소한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합니다. 덕분에 이 나라 곳곳에서는 언제 나라 그 자체를 죽음으로 몰고 갈지 모르는 암 덩어리들이 착실하게 자라나고 있지요. 저는 아가씨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만한 인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돕는 거고요.”

“조사해 보니 아이제른 제국 출신이라던데, 비르카 왕국의 민생이 어찌 돌아가든 그게 자네랑 무슨 관계지?”

“반대로 묻겠습니다만, 후작님께서는 옆집에서 불이 활활 타고 있으면 ‘우리 집이 탄 게 아니니까 내 알 바 아니야’라면서 그냥 방치하시겠습니까?”

“…과연, 공감은 하지 않지만, 이해는 했네.”

후작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세 가지 문제가 있네.”

“말씀하십시오.”

“부패를 쳐낸다는 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세상에는 나라가 망하든 말든 당장 자기 몸이 편하고 익숙하면 그걸로 족하다는 머저리들이 널리고 널렸거든. 그들은 클라우디아가 영향력을 확대하면 확대할수록 격하게 반발할 걸세. 이를 어찌할 건가?”

“그건 이미 해결된 문제입니다.”

“흐음? 어째서지?”

“제가 아는 클라우디아 아가씨께서는, 그딴 놈들이 있으면 개밥으로 던져주시는데 주저하실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클라우디아의 성격은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는 어렵다.

성급하고 폭력적이고 충동적.

그러나, 그렇기에 남들은 뒷감당이 두려워서라도 꺼릴 일조차 주저 없이 저지를 만한 추진력을 지니고 있다.

“거슬리는 놈들이 있으면 구슬리거나 타협하는 게 아니라 쓸어버릴 테니 문제가 없다? 허허, 이 친구 아주 위험한 친구로군.”

후작이 눈을 빛냈다.

“그러면 두 번째 문제일세. 클라우디아가 지금 하고 있는 치안 개선 제도는, 결국 그 아이가 지닌 혈마수의 능력에 의존하는 구조일세. 중소규모 영지 한두 개라면 몰라도, 이 나라 그 자체를 같은 방식으로 바꾸는 건 불가능해. 이건 어떻게 할 건가?”

“그것도 이미 해결된 문제입니다.”

“지껄여 보게.”

“혈마수가 일반 동물들을 상대로 번식할 수 있도록 개조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

후작의 얼굴이 순간 멍해졌다.

그리고 그가 툭 하고 내뱉기를.

“자네 혹시 돌았나?”

“저는 지극히 제정신입니다.”

세드릭의 시선이 후작의 곁을 지키는 거대한 혈마수로 향했다.

“레드벨 가문의 비전은 무척이나 훌륭합니다. 충직하고, 언제든지 함께할 수 있고, 험하게 굴려도 되니 개인 호위로서 이만큼 쓸 만한 이들도 드물겠지요. 허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주인의 피와 마력을 이용해 구성된다는 점은 다소 아쉽습니다. 이래서야 수를 크게 늘리기가 어려우니까요.”

후작은 애초에 그렇게까지 수를 쪼개서 쓰라고 만든 비전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눈앞의 하인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를 지껄일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새로운 혈마수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직접 구현하는 것이 아닌, 들개나 고양이 따위에게 기존 혈마수의 육체 일부를 깃들게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질 겁니다. 본래 가진 재생력이나 소형화 능력, 막강한 전투력 등은 전부 잃어버리겠지만, 주인을 향한 막연한 충성심과 주인의 명령을 이해할 수준의 소통 능력은 남습니다. 뭣보다 이 상태의 혈마수는 일반 동물처럼 평범하게 번식할 수가 있지요.”

“그렇게 태어난 자식에게도, 혈마수로서의 특징이 그대로 인계된다는 건가?”

“세대를 거치면 거칠수록 피가 열화되는 걸 확인하기는 했지만, 계산해 본 결과 적어도 나라 정도는 커버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풍 같지만, 가능하다고 치면 효용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겠군. 실존한다면 나도 배워보고 싶을 정도야.”

“그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클라우디아 아가씨 전용으로 커스텀한 거니까요.”

“하! 써먹고 싶으면 괜히 이상한 곳에 팔아먹지 말고 꽉 붙들고 있으라 이런 건가? 아주 충신 납시었군.”

후작이 불쾌하다는 듯이 코를 울렸다.

하지만 그 눈은 더 높은 권위와 권력을 향한 길을 찾아낸 것처럼, 심상찮은 열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마지막 질문을 하지. 지금 클라우디아에게는 혼담이 잡혀 있네. 명목상으로는 왕가 쪽에서 주선을 서겠다고 한 거지만, 실제로는 클라우디아의 급성장을 견제한 아들놈의 수작이지. 이미 판은 벌어졌고, 이제 와서 되돌리는 건 나라고 해도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해. 그리고 나는 정체도 모르는 하인 한 놈의 호언장담만 듣고 손해를 감수할 만큼 낭만주의자가 아니네. 이건 어떻게 해결할 건가? 이것도 이미 해결된 문제인가?”

세드릭이 대답했다.

“그건 조만간에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저도 후작님께 말씀 한마디만 올려도 괜찮겠습니까?”

“이왕 어울리기로 했으니, 끝까지 들어보지. 뭔가?”

“다소 듣기 거북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만,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후작이 노골적으로 혀를 찼다.

“알겠으니까 뜸 그만 들이고 말이나 하게. 대체 무슨 말이길래 그러나?”

세드릭이 입을 열어 선언했다.

“애 상대로 할 말이랑 못 할 말도 못 가리십니까? 말년에 혼자 외로우시면 업보라고 생각하십시오.”

“…….”

그림자 속의 대악마는 생각했다.

저게 무슨 하인이야 이 미친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