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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화 음악가 하멜(Hamel) (7) - 범죄 조직의 충의
미스트헤븐 북쪽 거리에는 3층짜리 유령 저택이 하나 있다.
높게 솟아오른 담벼락과 철창은 한때 이 저택의 주인들이 누렸던 영광과 고고함을 상징하는 듯하고, 저택 그 자체에서 새어 나오는 음산함과 어두침침함은 혁명 당시 가주는 목이 잘리고 남은 가족들은 비참한 앞날을 비관해 약으로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증명하는 듯했다.
본래 이런 유령 저택의 이야기에는 멋모르는 불법 침입자들의 무용담이 한 쌍처럼 따라오는 편이었지만, 이곳의 경우는 예외였다.
제 담력을 증명해 보겠다며 허파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은 채 담벼락을 넘은 젊은이들이,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유령이 되어버린 귀족들의 저주라며 수군거렸지만, 몇몇 이들은 진실을 알았다. 알고서 침묵했다.
유령은 두렵지 않을지언정, 그 유령 저택의 소문을 가림막 삼아 저들의 본거지를 감춘 ‘조직’은 두려웠기에.
“하, 거참. 여긴 언제 와도 우중충 하단 말이지. 먼지 냄새 때문에 폐가 썩는 것 같군.”
언뜻 봐도 고급 느낌이 물씬 풍기는 붉은 넥타이와 하얀 정장으로 비대한 몸을 억지로 감싼 남자가, 한 손에 시가를 든 채 불평을 내뱉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출렁이는 뱃살과 손가락에 끼워진 금반지까지. 그야말로 천박한 졸부의 모습을 형상화한 듯한 외모.
“먼지 때문이 아니라 담배 때문이겠지.”
그런 졸부를 향해, 온몸에서 피와 철의 냄새를 풍기는 전직 군인이 핀잔을 내뱉었다.
졸부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허어, 담배는 목을 맑게 하고 가래를 없애준다는 공화국 학자들의 최신 연구도 모르나?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헛소리를 지껄이는군.”
“책상물림 나부랭이들이 뭐라고 떠드는지엔 관심 없다. 경험상 담배를 계속 피워대는 놈들이 안 피우는 놈들보다 더 힘겹게 숨을 쉬는 걸 봤을 뿐.”
“네놈의 알량한 경험이 정답이라는 오만을 버려라.”
“네놈이야말로 그놈의 팔랑귀를 고쳐라.”
졸부와 군인은 서로를 못마땅한 듯이 노려보았지만, 그 이상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대신 그들의 시선은 테이블에 앉은 채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는 세 번째 인물을 향했다.
둥근 테의 안경과 곱슬거리는 백발. 온화하고 선량해 보이는 표정과 분위기는 마치 신전의 사제를 연상케 했으나, 군인도 졸부도 저 무구해 보이는 거죽 뒤에 얼마나 거무죽죽한 내용물이 숨어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꼈는지, 사제가 입을 열었다.
“이런, 화해하신 겁니까? 언제 개입해야 할지 몰라서 조마조마했건만, 실로 다행입니다.”
“조마조마는 개뿔, 투기장의 투견 보듯이 흥미진진해하는 게 빤히 느껴졌는데.”
“오해하신 겁니다. 같은 동료끼리 어찌 그런 흉참한 마음을 품겠습니까?”
“하. 내 살다 살다 전직 사이비 교주 놈한테 흉참하다는 소리를 다 들어보는군.”
“허허허, 다 옛일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자기가 모시던 귀족들이 죽은 틈을 타 그 재산을 꿀꺽 삼키는 걸로 장사를 시작한 것처럼 말이죠.”
“…그놈이 그놈이군.”
“넌 또 뭘 혼자서 점잔 떨고 있어?”
“놔두십시오. 군인 시절 정부 말만 믿고 죽였던 무고한 희생자들이라도 생각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말에 물리적인 형상이 존재했다면, 서로가 서로를 칼로 난도질했을 것만 같은 광경.
한때 귀족들의 식당으로 이용되었을 넓디넓은 공간에 있는 이들은 수십 명을 넘었지만, 개중 입을 연 채 수다를 떠는 건 단 세 명의 대간부뿐이었다.
간부들은 의자에 앉는 건 허락되었으되 감히 말소리를 낼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그나마도 허락되지 않은 채 목각인형처럼 서서 대기하는 이들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상황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
아예 이 회의에 초대조차 받지 못한 이들에 비하면, 이곳에 있는 이들은 그래도 인정받는 편이었으니까.
“─보스께서 입장하십니다.”
안내와 동시에, 조직원들이 일제히 빠릿하게 움직였다.
이미 서 있던 일반 조직원들은 온몸에 힘을 준 채 각을 잡았고, 간부들은 즉각 기립했으며, 대간부들조차 느긋하게나마 몸을 일으켰다.
또각. 또각.
그들 사이를 여유롭게 가로지르는 그림자가 하나.
모두가 정장을 갖춰 입은 조직원들 사이에서 가면과 로브라는 복장은 언뜻 이질적이었으나, 동시에 사람들을 압도하는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식당 중앙에 배치된 테이블. 그 상석에 보스가 착석하자, 조직원들이 모두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넸다.
마녀 헤카테는 가벼운 손짓으로 그들의 인사를 받은 뒤, 나른한 몸짓으로 다리를 꼬고 말했다.
“시작하렴.”
정기 회의의 개시를 알리는 말에, 간부들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보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동부 1번가에서 보고하겠습니다. 보호금과 직영점 운영 수익은 이전 달과 비교해 5% 정도 감소─”
“북부 4번가에서 보고하겠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패거리들이 저희의 영역 내에서 영업을 시도─”
“남부 2번가에서 보고하겠습니다. 항구에서 발생했던 침몰 사고는─”
만약 다른 영지의 뒷골목에서 나름 힘 좀 쓴다 하는 범죄 조직들이 이 광경을 보았더라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좋게 말해서 융통성이 있고, 대놓고 말하자면 주먹구구에 가까운 그들과 달리 이곳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지극히도 체계화되어 있었으니까.
도시 곳곳에서 보호금이라는 이름의 세금을 거두고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을 보고받는 모습은 어째서 조직이 이 도시의 실질적 지배자라고 평가받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체계가 잘 갖춰진 것과 문제가 없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간부들의 보고가 끝난 후, 대간부들이 입을 열자 이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보스. 요즘 저희 영역을 노리는 다른 조직들의 외부 개입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남부 정리를 끝낸 정부가 슬슬 북부 쪽에도 손을 데려고 하니 여기에도 대응해야겠지요.”
먼저 운을 띄운 것은 졸부 같은 외모의 남자, 드롤이었다.
“이를 위해선 사람도 더 뽑아야 하고 준비금이나 공작금도 마련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현재 조직의 자금 상태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간부 중 몇몇이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드롤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눈치챘기 때문이다.
“보스께서 지시하신 대로 조직 차원에서 사업을 몇 개 시도하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성과는 그리 좋지 않습니다. 간신히 손해만 면하고 있는 수준이지요. 이 상황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저희 조직은 언젠가 말라붙어 버리고 말 겁니다.”
헤카테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디 한번 계속 말해보라는 듯이 드롤을 바라보았을 뿐.
가면 너머로 느껴지는 금색의 시선에 내심 긴장하면서도, 드롤은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말했다.
“보호금의 액수를 올린다면 어느 정도는 만회할 수 있겠지만,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데다가 아예 낼 능력이 없는 이들도 속출하겠지요. 고로, 한 가지 방도를 건의하고 싶습니다.”
“그래. 말해보렴.”
“금지하셨던 상품들을 다시 취급하게 해주십시오.”
드롤이 말하는 상품이란 두 가지였다.
노예. 그리고 마약.
선대 보스 시절 조직의 핵심 상품으로서 조직이 지금 같은 힘과 지위를 손에 넣는 데 크게 공헌했지만, 헤카테가 새롭게 보스가 되며 취급을 금지해 버린 품목들.
“매매는 중단되었지만, 아직 당시의 거래망 자체는 남아 있습니다. 저희 쪽에서 다시 손을 내민다면 그리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복구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자금 문제도 회복될 겁니다.”
“안 돼.”
장황하게 설명한 것이 무안해질 정도로 짧은 거절의 말이었다.
드롤은 당황하면서도 재차 간언했다.
“보스, 저희가 미스트헤븐을 지배하고 있듯이, 다른 도시에는 다른 조직들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약이든 노예든 서슴없이 취급하며, 그렇게 확보한 자금을 통해 이웃 영역에까지 손을 뻗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저희 조직 역시 경쟁에서 밀려나고 말 겁니다.”
“드롤.”
헤카테가 드롤의 이름을 부른 순간, 회의장의 온도가 몇 도는 내려간 듯한 감각이 자리에 있던 모두를 감쌌다.
대부분은 다소 긴장으로 몸을 굳힌 정도였지만, 일부 고참의 경우 아예 죽은 사람처럼 안색이 창백해졌다.
“내가 말했잖니. 안된다고. 허가하지 않는다고. 혹시 내 말이 안 들렸니? 아니면, 듣고 싶지 않은 거니?”
마치 아이를 나무라는 것 같은 말투에, 드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는 쉽게 분노를 드러낼 수 없었다.
헤카테가 쓴 가면 너머.
금색의 눈동자가 차갑게 얼어붙은 채 그를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보스. 저는 그저 조직을 위한 충심으로 말했을 뿐입니다.”
“그래, 괜찮단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으니까.”
나긋하고, 요염한, 언뜻 온화하게마저 느껴지는 목소리.
허나 그 주체가 미스트헤븐을 지배하는 마녀라고 한다면, 이는 곧 불길함이고 음산함이며 괴이함이었다.
터지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봉합된 위기에, 안색이 창백해졌던 고참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다재다능함, 무엇보다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랄함으로 조직을 철권 통치하던 선대 보스가 병으로 급사했을 때의 혼란을.
선대의 피를 이었다고 한들 아직 어린 계집 따위에게 충성을 바칠 순 없다며, 보스 자리를 노리고 달려든 야심가들을.
그리고, 그렇게 반역을 시도한 이들을 나이프로 차례차례, 잘근잘근 찢어발기던 지금의 보스를.
제 어미의 혈통이 품은 연공법과 제 아비의 잔혹함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후계자를.
마녀 헤카테의 분노를.
“빌어먹을 계집년 같으니!!”
와장창창!
값비싼 유리잔이 바닥에 내팽개쳐지며 산산조각이 난다.
회의가 끝난 후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대간부 드롤은 그동안 억눌러왔던 분노를 단숨에 터트리듯 주변의 온갖 것들을 깨트리고 부서트렸다.
조직원들이, 그의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마치 아이처럼 질책을 받은 것.
그리고 그에 대해 불만조차 말하지 못하고, 주변의 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때까지 온순한 척을 해야 했던 것.
그 모든 사실이 참을 수 없이 화가 났고, 또 굴욕적이었다.
“가진 거라고는 힘밖에 없는 멍청한 년!! 이대로 가면 우리 조직은 끝이란 말이다! 왜 올바른 말을 한 내가 비난을 받고, 같잖지도 않은 위선을 떠는 저년은 당당한 거지? 말이 안 되잖아!!”
허억, 허억.
난장판이 되어버린 방안.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드롤은 소파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한차례 열기가 빠져나간 머리에, 문득 하극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 건방지고 오만한 계집을 굴복시키고, 제 앞에 무릎 꿇리는 광경을 상상하고 있노라면 하반신에 절로 피가 쏠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상상을 실현하기까지의 난관과 위험부담을 생각하면, 막상 오금이 저리는 것 또한 사실.
“빌어먹을.”
솔직히 말해서, 헤카테는 보스로서 문제가 많은 이였다.
조직의 핵심 상품 매매를 금지하여 재정에 막대한 타격을 준 주제에, 정작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그걸 대신 할만한 무언가를 제시하지도 않았다.
마약과 노예 매매의 압도적인 효율에 비하면, 헤카테의 지시로 시작한 사업체 굴리기 따윈 새 발의 피조차 되지 못하니까.
선대 시절 미스트헤븐을 넘어 주변 영지에까지 세력을 확장할 것만 같았던 조직의 성장은 헤카테가 보스가 되며 그대로 멈춰버렸고, 그들이 단숨에 밀고 들어갔더라면 손에 넣을 수 있었을 영역에서는 새로운 경쟁 세력이 자라나고 말았다.
조직을 키우겠다는 야심도, 사업 수완도, 제 아비에 비하면 모두 열화품 수준.
그런데도 모두가 감히 반기를 들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이미 그걸 시도한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았으니까.
배신자의 말로는 이런 것이라는 듯, 살아 있는 그대로 고통과 절망을 주입하는 모습을 보았으니까.
저 마녀는 적어도 사람들을 공포로 지배하는 능력만큼은 제 아비만큼이나 우수했고, 그걸 실행할 무력에 있어선 아비보다도 뛰어났다.
“하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에 드롤이 깊은 한숨을 내쉰 그때.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하인이 조심스레 노크를 했다.
“뭐냐.”
“주인님 앞으로 온 편지입니다.”
“편지? 누구지?”
“그것이, 발신인이 적혀 있지 않아서….”
드롤은 심드렁한 태도로 편지봉투를 받아 들었다.
일단 읽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내용을 훑던 그는, 이내 글자 하나하나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래, 사이비 교주 놈. 네가 보기에도 돌아가는 꼴이 개판 같긴 했나 보지?”
물론 대놓고 이름이 쓰여 있는 건 아니었다.
만약 그가 이 편지를 들고 보스에게 찾아간다고 해도, 그놈은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겠지.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오히려 그놈이 대뜸 드롤을 신뢰하며 자기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증거물을 남겨주었더라면, 드롤은 오히려 함정을 의심했을 것이다.
“이러면 2/3. 군인 그놈까지 끌어들이면 확실하겠지만, 뇌까지 딱딱한 그놈이 넘어올 리가 없겠지.”
선대 보스 시절 스쳐 지나가듯 얼굴 한 번 본 게 인연의 전부인 드롤과 달리, 같은 대간부라도 그 퇴역 군인 놈은 유소기 시절부터 호위를 담당했던 측근 중의 측근이다.
보스의 사생활까지 보조하는 놈인 만큼 아군으로 만든다면 절대적인 승산을 얻겠지만, 그런 위치인 만큼 끝까지 충성을 다할 터.
그와 교주놈의 부하 중에는 상대가 보스라는 걸 알면 꽁무니를 빼거나 오히려 돌아설 이들도 포함되어 있을 테니, 이대로 도박을 걸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좀 더 많은 아군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왕이면 정면 승부 이외로 그년을 찌를 비수도.
그리 생각하며 편지를 계속해서 읽어내리던 드롤은, 어느 대목을 확인하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시장 역시 지금의 허수아비 대우에 영 불만이 많은 모양이더군요. 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보다 우호적인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음모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피와 공포로 엮어낸 충성이란, 대개 그런 것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