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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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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윤채하는 어두운 공동에 서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가, 서서히 시야가 돌아온다.

내가 공방에 처음으로 입장했던 장소, 거기 맞다.

“협회장님! 입구가 열렸…?”

입구를 지키던 협회 직원이 반사적으로 무전기를 들더니, 그 자세로 굳어버렸다.

그의 눈동자가 데굴, 하며 내 옆의 여성을 향해 옮겨갔다.

그야, 입장할 때는 나 한명이었으니까.

윤채하.

낯선 공간임에도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옆에 서 있었다.

그때, 눈앞의 직원이 윤채하를 보며 중얼거렸다.

“… 불가람님?”

“아니구요.”

이상한 오해를 하는 것 같아서 일단 틀어막았다.

“일단, 나가서 이야기하시죠.”

나는 그대로 밖으로 향했다.


정신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윤채하와 나는 협회의 최고 등급 조사실로 이동했다.

물론, 말이 이동이지 상당히 귀중한 대접이다.

푹신한 가죽 의자와 고급스러운 조명, VIP 응접실이라 봐도 무방한 장소다.

의자가 너무 푹신해서 긴장을 놓으면 바로 자버릴 것 같다. 워낙, 몸도 피로한 상태라.

지금 시각은 오후 8시.

덕분에 직원들은 야근하게 생겼다.

앉아서 대기하던 그때.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왔다.

“먼저… 정해인 영웅님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착한 협회 담당자가 머리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피로가 깊이 깃든 얼굴이었다. 눈 밑엔 다크서클이 비친다.

“협회장님이 빠르게 오고 계십니다. 자택에서 곧 도착하실 겁니다.”

“네.”

나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담당자는 눈치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현재 시각, 오후 여덟 시. 공방 시련 종료가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아직 저희 시스템에는 별도의 메세지가 표기되지 않고 있습니다.”

말끝을 흐리며, 담당자는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봤다.

실패한 전례가 너무 많았고, 나도 예외는 아닐 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혹시… 성공 여부에 대해 여쭤봐도 괜찮으실지….”

그는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나를 바라봤다.

아직 성공을 알리는 메세지는 떠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지, 묻는 행위 자체가 상당히 조심스럽다.

나는 담담히 답했다.

“성공했습니다.”

“네?”

“아, 맞다. 얘도요.”

  • 꼬집.

나는 말끝에 손을 들어,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윤채하의 볼을 꼬집었다.

“으에ㅡㅡ.”

그녀는 잠에서 깼는지 웅얼거렸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그새 잠에 들려 하는 것 같길래 바로 깨웠다.

“일어나.”

아까부터 담당자가 그녀를 슬쩍슬쩍 힐끔거리던 게 보여서, 내가 그냥 미리 설명해줬다.

정체가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이었으니까.

“예? 옆에 계신 분도… 말입니까?”

“네. 얘도 불가람 님이 직접 지목해서 불렀어요.”

담당자의 눈빛이 다시 흔들렸다.

아직까지 완전히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이해한다.

전례 자체가 없는 일이었으니.

불가람 공방의 시련은 지금껏 늘 단독 수행.

그런데 입장할 때는 한 명, 나올 때는 두 명이다?

직원은 연신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서류를 뒤적거렸다.

그런데 표정은 공허하다. 당연히 메뉴얼에는 없을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담당자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개를 숙이며 동시에 문 쪽으로 빠르게 몸을 돌렸다.

문이 찰칵하고 닫히고,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

윤채하는 눈을 비비며 다시 나에게 기대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즉시 문이 다시 열렸다.

협회장이었다.

“… 해인 군은 정말 나를 많이 놀라게 하는군.”

그는 손을 내리며 한 걸음 다가왔다.

“우선, 정해인 영웅, 그리고 윤채하 영웅. 모두 축하하네. 역사에 남을 기록을 새겼어.”

나는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하지만 협회장의 시선은 여전히 내 옆, 윤채하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 눈빛에는 당혹감과 의문이 섞여 있었다.

“친구입니다.”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얘도 초대를 받았네요.”

뭔가 더 설명하려다가 말았다.

애초에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냥 이게 끝이다. 갑자기 불가람이 윤채하의 방으로 텔레포트를 시켰으니까.

“… 허, 뭐 그분이야 워낙 예측 불가능한 불같은 분이시니.”

협회장이 납득한 듯 조용히 웃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장은 한동안 턱을 쓰다듬더니,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시련을 통해 얻은 것은 혹시 무엇인가?”

이번에도 나는 담담히 답했다.

“무형의 유산입니다.”

“무형…이라….”

그가 되묻는 사이, 나는 창을 대뜸 꺼내 보였다.

검은 천에 감싸 두었던 그것.

금색 음각으로 새겨진 창신이 방 안의 조명을 받아 은은히 빛났다.

협회장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 아름답군.”

나는 창을 다시 덮었다.

“저는 제 무구에 불가람 님의 손길을 받았고, 윤채하는 무형의 유산을 얻었습니다. 자세한 건 말씀드리기가….”

“이해하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도 이미 충분해.”

협회장은 미소 지으며 우리 둘을 바라봤다.

“많이 피로하겠군.”

그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오늘은 푹 쉬게나. 조만간 기자회견을 잡….”

그때였다.

  • 띠링.

[불가람(不伽藍)의 공방이 마침내 새로운 주인들을 맞이한다.]

[계승의 불씨. 연대의 증표를 가진 자들에게 찬사를.]

금빛 문장이 공중에 겹겹이 떠올랐다.

조용했던 방 안에,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 와아아아아!!

응접실 바깥에서 협회 직원들이 내는 함성이 새어 들어왔다.

나를 비롯한 모두의 눈앞에 시스템 메세지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허허….”

협회장이 멈춰 선 채 머쓱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바로 준비해야겠구먼.”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워치를 꺼내 들었다.

“정해인 군.”

그가 다시 말했다.

“아무래도, 쉬지는 못할 것 같네.”


결국 우리는 한숨도 쉬지 못하게 됐다.

빈말로도, 나와 윤채하의 상태는 좋다고 할 수 없었다.

바깥에서는 고작 하루 남짓이지만, 안에서는 거의 몇주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니까.

몰골이 거지 같을 수밖에 없었지만….

협회장은 그런 몰골을 보고선, 오히려 좋아했다.

‘오히려 그편이 낫겠어.

결국 그는 이해 못 할 소리를 남기고는 먼저 내려갔다.

어쨌든 나와 윤채하는 엘리베이터를 통해 협회의 로비에 도착했다.

오늘 기자회견은 이곳에서 진행된다.

힘들다는 핑계를 삼아, 약식으로.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찌푸렸다.

'무슨 카메라가….'

수십 개의 렌즈가 일제히 이쪽을 향해 돌아간다.

없던 울렁증도 생길 정도다. 이렇게 많을 이유가 있나.

이미 기자들은 협회의 보도자료를 받아든 상태였다.

우리는 무대 위에 올랐다.

정확히는 협회장이 먼저 자리를 잡고, 우리를 가볍게 안내했다.

어차피 옆에는 협회장이 있기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천천히, 질문은 시작됐다.

질문과 답변은 기본적으로 협회장이 진행한다.

답할 수 없는 것과 잘 모르는 것 정도만 내가.

"시작하죠."

협회장의 선언과 함께, 잠깐의 정적.

그리고 이내 질문이 폭발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해인 군! 대한민국 두 번째 불가람의 시련 통과자입니다! 실질적인 첫 번째라는 분석도 있는데요. 혹시, 이번에 얻은 보상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협회장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불가람님의 의지에 따라 전해진 무형의 자산입니다.”

기자 중 하나가 다시 묻는다.

“자세한 설명은 어려울까요?”

“어렵습니다.”

협회장은 단칼에 쳐냈다.

당연히 안되지.

이 방송은 아마, 마인도 보고 있을 것이다.

다음 질문은 빠르게 이어졌다.

“시스템 메시지에 따르면 공방이 ‘새로운 주인들’을 맞이했다고 했습니다. 혹시 뒤에 계신 여성분이… ?”

협회장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윤채하 영웅은 불가람님의 직접적인 지목에 따라, 공방에 입장했고, 계승의 증표를 받았습니다.”

플래시가 번쩍였다.

순간, 기자 몇 명이 서로 눈치를 주고받더니 결국 노골적인 질문이 튀어나왔다.

“두 분은 어떤 사이입니까?”

이번엔 내가 직접 답했다.

“친구 사이입니다.”

그 한마디로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사진기자들이 다시 셔터를 갈기기 시작했다.

이유가 뭔가 했더니, 윤채하가 갑자기 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얘 왜 이래.

그러더니, 내 손에서 마이크를 뺏어 들었다.

윤채하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친구 아닙니다.”

그리고 다시 마이크를 내 손에 쥐여줬다.

말없이, 아주 평온한 얼굴로

잠깐 정적이 흘렀다.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얘가 지금 뭔 짓을 한 건지는 알까?

“잠깐만요, 그러니까….”

그러나 기자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대응 다운 대응을 하기도 전에 질문은 계속됐다.

향후 진로 계획, 훈련 재개 시점, 차기 행보에 대한 기대감.

결국 해명하는 건 포기했다.

사실, 이 회견의 목적은 하나였다.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것.

내 영웅적인 입지를 올려두는 것.

그런데, 슬슬 피로감이 몰려온다.

공방에 있었을 때는 느끼지 못한 쌓였던 것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윤채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인터뷰를 마치고자 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질문이 들어왔다.

“해외 길드와 단체들이 벌써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카우트 제의가 쏟아질 텐데, 혹시 어떤 대응을….”

나는 그냥 웃으면서, 고개를 조금 갸웃하며 말했다.

“예? 오지 말라 하세요.”

기자단이 술렁였다.

“어차피 안 갈 거니까요.”

나는 마무리하듯 덧붙였다.

그 말에 기자들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나는 잠깐 시선을 들었다.

조명이 눈을 찌른다.

얼른, 이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었다.

“이걸로 마무리하죠.”

협회장의 마무리 멘트가 떨어졌고, 회견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우리는 정리된 경호 라인을 따라 리무진에 탑승했다.

협회장이 직접 리무진 문을 열어주며 말한다.

“수고 많았네.”

윤채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에 타자마자 내 무릎에 누워버렸다. 그리고는 숨을 쉬기도 전에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본 협회장은 리무진 문을 닫기 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해인 군, 혹시 애인 있나?”

뜻밖의 질문이었다.

“없습니다.”

협회장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오늘 정말 고생했네. 그리고 축하하네.”

그는 문을 닫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다행이군?'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너무 피로했다.

차가 조용히 도로를 달린다.

윤채하는 여전히 고요하다.

내 무릎에 머리를 박은 채 숨만 규칙적으로 쉬고 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목의 워치를 켰다.

‘지금쯤이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벌써 관련 기사들이 메인에 줄지어, 나와 윤채하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고 있었다.

“…?”

그런데 문제는, 그게 시사나 이슈 탭이 아니라는 거다.

연예 탭이었다.

기사의 첫 제목부터 가관이다.

[불가람 공방의 계승자들, 연인 사이?]

[“친구입니다.” 그리고 “친구 아닙니다.” 상반된 입장?]

[들어 갈 때는 혼자, 나올 때는 둘? 묘한 기류… 내부에서 로맨스 있었나]

나는 화면을 내리다 말고, 워치를 꺼버렸다.

“아.”

그제야 협회장이 내게 차 타기 전에 던졌던 질문이 떠올랐다.

너무 피곤해서, 그때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인제 와서 돌이켜보니….

“하….”

  • 꽈아아악.

나는 그대로 잠든 윤채하의 양 볼을 잡아당겼다.

도망도 못 가게 양손으로 양쪽을 동시에, 정성껏.

말랑 쫄깃한 감촉이 손에 가득 차오른다.

기분은 좋은데, 스트레스가 풀릴 정도는 아니었다.

“에….”

눈도 못 뜬 채로 뭘 중얼거린다.

“이 금쪽아….”

윤채하의 볼에 남은 손자국이 붉게 올라왔다.

그게,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