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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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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술은 자연을 파악하는 게 기본이다. 원소에서 자연을 발견해야―.”

“원소에 생명의 이미지를 불어넣는 게 기본이라는 뜻이군요.”

“…그렇게도 말하지.”

에이린이 시무룩해져 어깨를 내렸다.

지금 와서 생각하는 거지만, 에이린은 말투가 살짝 뾰족해도 기본적으로 순한 성격이었다.

착하다고 해야 되나?

벗겨 먹기 딱 좋았다.

“조심하세요. 에이린 님. 그러다 돈에 미친 어떤 상인에게 걸리면 귀랑 코까지 베여요.”

“마법에 미친 어떤 마법사에게 걸리면 영혼까지 털리는 거겠지.”

나는 크리스를 빤히 응시했다. 크리스도 지지 않고 나를 응시했다.

이 녀석. 요즘 말도 안 되는 음해가 점점 늘어난다.

“자꾸 크리스 님이 이상한 말을 하니까 적영이 보고 배우잖아요.”

[주인님. 주인님의 영향도 적지 않아.]

“이것 보세요. 전부 크리스 님의 잘못이에요.”

나는 요즘 적영을 이상하게 만든 범인을 검거하고 마법 훈련에 다시 집중했다.

방구석 모험을 재밌게 즐긴 에이린은 약속대로 내게 정령술을 알려주….

“이건 가짜다. 내가 원하던 게 아니야.”

…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거부했었다.

뭐, 엄밀히 따지면 맞는 말이었다. 가상 현실과 실제 현실은 아예 성질이 달랐으니까. 세계 여행을 원하는 사람에게 을 가져가면 화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다만.

“세계의 비밀을 파헤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살짝 이상하네요.”

“…….”

“아하. 알겠어요. 너무 몰입해 즐기는 모습을 저희가 구경한 게 부끄러워서 도망치려는 거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에이린 님이 황자와 데이트를 할 때는 신변 보호를 위해 자리를 비켜줬―.”

“정령술을 알려주면 되는 거지?”

함락 완료.

쉽구만.

하여간 이렇게 나는 에이린에게 정령술의 기초를 주입받았다.

정령술은 원소에 자아를 불어넣는 마법이다. 확실히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요정족이 떠올릴 법한 마법 체계였다.

자연과 어울리다 보니 ‘사실 자연은 살아있는 게 아닐까?’라는 망상을 하게 되고, 그걸 바탕으로 인공 자아가 깃든 원소를, 정령을 탄생시킨 것이다.

원소에 자아를 불어넣는 법.

자연에서 생명을 느끼는 법.

정령.

인공 자아.

에이린에게 배운 모든 걸 속으로 되뇌던 나는, 허공에 바람을 모았다.

그 후 정신을 최대로 집중하자―.

“…….”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바람을 없애며 질문했다.

“혹시 잘못 알려주신 거 아니에요?”

“제대로 알려줬다.”

“그런데 왜 성공할 기미도 안 보이나요.”

“알려주는 것과 익히는 건 아예 다른 문제니까. 요정족의 고유한 마법 체계를 익히는 게 그럼 쉬울 줄 알았나?”

“그건 아니지만요.”

정령술을 익히는 게 쉽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마법을 익히는 건 늘 어려웠으니까.

오히려 반대로 어려울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결과가 나오니 영 아쉬웠다.

또 재능이야?

억울하다 억울해.

각종 방법으로 재능의 한계를 어느 정도 부순 나였지만, 그게 재능을 얻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처럼 감각이 중요한, 재능이 필수적인 상황이 찾아오면 영 힘을 못 썼다.

정령술의 구조 자체는 이해했다. 심지어 나는 적영이라는 유사한 마법을 보유 중이라. 상황만 놓고 보면 여태 배웠던 마법 중 가장 조건이 좋았다.

그 좋은 조건에서도 영 효과가 안 나와서 그러지.

정령술의 핵심은 원소에 ‘생명의 이미지’를 부여하는 거였다.

그러기 위한 기반으로 원소를 ‘정령’에 가까운 모습으로 깎을 필요가 있었는데, 이 부분은 문제없었다. 내 원소 제어 실력은 4위계니까.

결국 지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미지였다.

강렬한 의지, 번뜩이는 영감, 뚜렷한 심상. 뭐라고 불러도 좋았다. 세계를 구성하는 법칙을 뒤틀 재료가 부족하다는 것만 알면 말이다.

마법에 대한 갈망은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 자부했지만, 그거랑 위의 나열한 요소들은 크게 관계가 없었다. 정확히는 관계는 있어도 영향이 크지 않았다.

정확한 감각이 필요했다. 딱 맞는, 군더더기가 없는, 그런 이미지를 짜야 했다.

완벽히 정령술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자연의 생명력을 원소에 불어넣어라?

무슨 말인지 이해는 했다. 어떤 구조인지도 파악했다.

그런데.

그래서 그걸 어떻게 하는 거냐고.

언젠가 겪어본 적 있는 답답함이 나를 덮쳤다.

원소에서 ‘특징’을 발견하라던 켈튼의 말을 따를 때의 답답함.

물질을 ‘변환’하라던 뮤란의 말을 따를 때의 답답함.

머나먼 과거라기엔 바로 어제처럼 생생한 기억에 나는 눈을 가라앉혔다.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벽에 막혔다면, 똑같은 방법으로 돌파하면 됐다.

예전에 나는 무슨 방법을 써서 문제를 해결했을까.

불에 몸을 던졌다. 그걸로 나는 원소 이해도의 벽을 부쉈다.

내가 발견한 각종 원소의 ‘특징’을 응용해 물질을 변환했다. 그걸로 나는 연금 마법의 벽을 부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한 시작점은 하나였다.

나는 내 심상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거대한 욕망을 들여다봤다.

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

태어났을 때부터 품고 있던 이 욕망의 근원은 나도 몰랐다. 전생에서 이어진 욕망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누군가 심어준 욕망일 수도 있었지만, 별로 중요하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마법을 좋아한다는 사실뿐이니까.

자연에서 생명을 발견하고, 그걸 원소와 이어 원소에게 생명의 이미지를 부여한다?

괜찮은 방법이었다. 실제로 괜찮았으니 많은 요정족이 저 방법으로 정령술에 성공했겠지.

다만.

나랑 맞는 방법은 아니었다.

자연이 살아 있으니 원소도 살아 있다?

나는 굳이 그런 식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나는 마법이 살아 있다고 느꼈으니까.

눈을 감자 넓은 세상이 펼쳐진다.

심상에서 뛰놀던 저울, 나무, 벽, 원숭이, 슬라임이 나를 바라본다.

그 순진무구한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다음 다급히 도망가려는 벽을 붙잡아, 힘껏 뽑아냈다.

그리고 눈을 떴다.

그리고 기가 죽은 바람의 정령이 쭈뼛대는 걸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술.

대성공.

“쉽네요.”

“네 정령은 뭔가 특이하군. 저건…벽인가?”

“굳이 따지면 미로예요.”

나는 에이린에게 적당히 대답해 주고 바람의 정령을 어깨 위에 올렸다.

아직 최하급 정령이라 쓸모가 많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마법을 익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최하급 바람의 정령을 쓰다듬으며 에이린에게 말했다.

“이제 에이린 님은 쓸모가 사라졌군요?”

“마법을 익히자마자 바로 버리는구나.”

“농담이에요. 아직 볼일이 남았잖아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끝이 없는 나무가 내 시야를 가렸다.

세계수. 요정족 사이에선 ‘생명의 어머니’라는 조금 과장된 별명으로 불리는 나무를 올려다본 나는 고개를 내리며 입을 열었다.

“신기하네요.”

“세계수 님은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니까. 일반적인 상식으로 재단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 말이 아니라요. 그…깔끔해서요.”

“그게 무슨 뜻이지?”

에이린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문자 그대로 내가 한 말을 이해 못 한 건데, 어쩔 수 없이 나는 설명을 추가했다.

“그니까요. 세계수가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하잖아요.”

“당연한 일이다. 세계수 님은 우리의 어머니니까. 조심히 돌봐야지.”

“그런 말도 아닌데요.”

“그럼 뭐지?”

혹시 요정족은 충격적인 일을 기억에서 지우는 기능이 있나?

맥락상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데, 아예 모르는 걸 보니 의심됐다.

나는 차분히 입술을 뗐다.

“아델리안 님이 분명 세계수를 반으로 갈라버렸을 텐데, 흠집 하나 없는 게 신기하다고요.”

“…….”

언젠가 말한 적 있지만, 아델리안은 세계수를 반으로 갈라버린 적이 있었다.

아델리안의 특기 마법 굉륜(轟輪)은 그렇게 유명해졌다.

요정족이 왜 인간을 싫어하나요?

정답은 싫어할 법한 일을 한 적이 있어서입니다. 감사합니다.

에이린은 나직이 대꾸했다.

“…다른 요정족 앞에서는 그 얘기를 하지 마라.”

“아델리안 님이 참 사람은 좋은데요.”

“…아델리안과 무슨 사이지?”

“제 스승의 스승님이에요.”

“…그것도 절대 말하지 마라.”

아무래도 아델리안은 요정족에게 거대한 발작 버튼인 모양이었다.

“이왕 물어본 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아델리안 님이 왜 그런 짓을 했나요?”

“하아.”

“절대 말해주기 싫지만, 여기서 말 안 해주면 제가 이상한 짓을 저지른다는 걸 눈치채셨군요? 역시 에이린 님이에요.”

“당시 우리들이 먼저 습격했다는 것만 안다. 자세한 건 몰라.”

“아델리안 님이 순해 보여도 먼저 건드리면 지옥을 보여주긴 해요.”

그 증거로 마법사의 탑에서 본 장면을 제출하겠다.

성 하나를 통째로 증발시키던 과거의 아델리안은, 그녀가 어떤 성격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줬으니까.

하여간.

나는 세계수를 만지작대며 중얼거렸다.

“열매 이거는 언제 맺히나요?”

“기다려라.”

다행히 며칠 후. 나는 세계수의 열매를 성공적으로 얻고 마법학교로 돌아갔다.

이번 여행의 수확.

현자의 돌 제작법.

세계수의 열매.

정령술.

거기에.

“으흐흐.”

TRPG 중독자…가 아니라, 성실한 요정족과 친해지기까지.

알차다 알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