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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이라는 단어에서 사람들은 보통 다음의 뜻을 떠올린다.
하늘의 검. 천검(天劍)이라고.
허나 이 세계의 천검은 딱히 하늘과 관련이 없었다. 하늘과 관련된 건 하늘을 제련하겠다는 미친 드워프지.
실버즈라의 이명은 천검(千劍)이다. 간단히 풀이하면 천 개의 검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듣고도 보통 사람들은 다음의 뜻을 떠올린다.
‘천검(千劍)? 천개의 검을 다루는 검사인가?’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건 이 세계의 초월자들을 잘 모를 때 나오는 소리였다.
예외는 없다.
초월자들은 모두 필멸자로서의 무언가를 버렸기에 초월자가 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래.
모든 초월자는 정신이 나가 있다.
“그래도 그게 진짜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내 정신은 멀쩡하다만?”
“어떤 멀쩡한 인간의 정신이 1000개로 나누어져 있어요.”
천검이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인격이 1000개라 천검일 줄이야.
진짜 상상도 못 했다.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긴 하지. 내가 굳이 말을 안 해주니까. 네가 내 진실을 정확히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저한테도 말하지 말지 그러셨어요.”
“제자에게는 그래도 밝혀야 하지 않겠나?”
“누가 제자인가요. 누가.”
실버즈라는 피식 웃고는 설명을 이어갔다.
“내게 천검이라는 이명이 붙은 건 별 이유는 아니다. 1000개의 검술을 다뤘으니까. 이게 끝이다. 이건 단순히 여러 개의 검술을 다룬다는 의미랑은 다르다. 1000개의 이치를 완벽히 손에 넣은 검사. 그게 나다.”
“그게 1000명의 인격 탓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네요.”
“일상적인 대화는 보통 내가 하니까. 그래서 대부분은 눈치 못 채지.”
“눈치챈 사람이 있긴 한가 보네요?”
“발리온은 내 인격이 여러 개인 걸 알긴 한다. 아무리 그래도 1000명인 건 모르는 거 같지만.”
“발리온 님이 끝이에요?”
“아델리안과 락토르, 천백은 알 거 같긴 하군.”
순서대로 제자에 미친 8위계 대마법사, 전지에 닿은 엘프 현자, 잠만 자는 용인족 초월자였다.
나는 어이가 없어 눈을 깜빡였다.
“뭐가 ‘네가 내 진실을 정확히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인가요. 벌써 아델리안 님, 락토르 님, 천백 님이라는 예외가 셋이나 존재하잖아요.”
“쟤들은 사람이 아니다만?”
“그건 맞긴 해요.”
초월자는 사람이 아니다. 그 증거는 내 앞에 있다. 이게 어떻게 사람이야. 사람의 탈을 쓰고 돌아다니는 괴물이지.
“저 같은 선량한 일반인과 비교하면, 초월자는 거의 외신이죠.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에요.”
“…….”
“왜 그러시나요.”
“새삼 네가 재능이 넘쳐 보여서 그렇다.”
“저예요.”
재능이 넘친다고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다. 이런 칭찬은 전생에 ‘너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재능이 넘친다’라는 감탄을 들은 이후로 처음이었다.
실버즈라가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에 뛰어들었을 인간인데, 왜 화상 자국이 없지. 치료했나.”
“제가 화염 원소를 다루는 걸 용케 눈치채셨네요?”
“나쯤 되면 몸 안에 화염이 넘실거리는 게 보이니까. 별개로 너는 굳이 내 수준이 아니어도 눈치챈다.”
“왜요?”
실버즈라가 손가락으로 내 손을 가리켰다. 거기엔 등불이 들려 있었다.
아하.
이해 완료.
실버즈라는 월병을 아그작 씹으며 지붕 위에서 본관을 내려다봤다.
본관에선 갑자기 사라진 실버즈라를 찾느라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녔는데, 나는 실버즈라의 옆에서 질문했다.
“도망치시는 이유가 있나요?”
“굳이 도망치지 않을 이유도 없지. 어차피 저들도 쓸데없는 이유로 나를 찾으니까.”
여상한 태도로 대꾸한 실버즈라는 품에서 포장된 만두를 꺼내 입에 넣었다.
그다음 말했다.
“뭐, 제자로 받겠다는 건 농담이긴 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나야 네가 마음에 들지만, 다른 녀석들은 아닐 수도 있거든. 그래서 제자 같은 부분은 일찌감치 합의했다. 전원이 동의하는 게 아니면 제자를 키우지 않기로.”
“어차피 제 스승님은 하나밖에 없어요.”
“누군진 모르겠지만, 고생 꽤나 하셨다는 건 알겠다.”
왜 나를 보면 다 저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켈튼은 내가 해주는 식사 맛있게 먹다가 평온히 체스별로 갔다니까.
안 되겠다. 억울해서라도 부활시켜서 해명하게 해야겠다.
그나저나.
“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실버즈라 님을 찾는 중이었거든요.”
“왜지?”
“제 일행이 실버즈라 님에게 볼일이 있어서요. 편지 심부름 중이거든요.”
“편지라. 누가 보낸 거지?”
“발리온 님이요.”
“발리온이라.”
실버즈라가 턱을 쓰다듬었다. 살짝 곤란한 사람의 반응이었는데, 내가 그 이유를 묻기도 전에 실버즈라가 말을 이었다.
“그건 받아보긴 해야겠군.”
실버즈라가 나를 한 손으로 들어 허리춤에 낀다.
직후.
풍경이 바뀐다.
실버즈라는 나를 내려놓으며 웃었다.
“반응이 격하구나. 발리온의 제자야.”
누군가 솟아나듯 앞에 나타나 반사적으로 검에 손을 올렸던 헤이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자세를 고치며 물었다.
“천검님이십니까.”
“스승에게 제대로 배웠구나. 한 자루의 검이 됐어.”
“감사합니다.”
“내게 줄 게 있다고?”
“여기, 스승님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헤이즈는 실버즈라에게 편지를 건넸다. 손가락으로 스윽 그어 밀랍을 베어낸 실버즈라는 편지를 읽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발리온 녀석. 사람을 탁아소로 아는군.”
탁. 편지를 접어 품에 넣는 실버즈라.
그런 실버즈라에게 헤이즈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스승님은 편지를 전하고, 그에 대한 답을 들으라고 하셨는데, 어떻습니까.”
“네 스승이 부탁한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럼―.”
“다만 지금은 못 해주는 일이지. 아쉽게 됐구나.”
“정말 죄송하지만, 스승님이 어떤 부탁을 한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헤이즈도 편지의 내용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헤이즈의 말에 실버즈라는 별거 아니라는 태도로 대답했다.
“검의 궁극을 보여달라는군.”
“…그런 부탁을 하셨다고요.”
“발리온에겐 신세 진 것도 많으니까. 거기에 딱히 어려운 부탁도 아니다. 검 한 번 휘두르는 게 무얼 어렵다고. 그러나 말했듯 지금은 못 해준다.”
“어째서죠?”
나도 이해가 안 됐다.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데 지금은 못 해준다니. 실버즈라가 바쁜 인간이었으면 이해되지만, 한량이나 다름없어 시간도 넘치지 않나?
그렇게 나랑 헤이즈가 의문을 담아 쳐다보자, 실버즈라는 머리를 톡톡 두들기며 입을 열었다.
“간단하다. 검의 궁극을 보여줄 수 있는 인간이 지금 외부랑 차단된 상태거든.”
“외부랑 차단된 상태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실버즈라의 상태를 잘 모르는 헤이즈가 황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헤이즈에게 실버즈라는 1000명의 인격을 몸 안에 키우는 괴물이라고 설명하는 대신, 지금 가장 궁금한 걸 물었다.
“언제부터인가요?”
“언제부터냐고?”
실버즈라가 웃음을 터트렸다. 상당히 크게, 이 말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어서 굉장히 유쾌하다는 듯.
실버즈라는 나랑 눈을 마주치며, 차분히 말을 늘어놨다.
“당연히, 태어났을 때부터지.”
검과 무관한 농부의 삶을 살던 실버즈라가, 악신의 교단의 등장에 처음으로 검을 뽑아 들고 모든 적을 참살한 일화는 굉장히 유명했다.
하지만 이 일화엔 숨겨진 비밀이 존재했다.
그래서.
대체 어떻게 실버즈라는 검을 처음 들어봤음에도, 고위 사제가 다수 포함된 악신의 교단을 모조리 베어 죽였을까?
천재라서? 단순히 천재라고 그런 게 가능한가?
물론 천재의 한계는 참으로 높아서.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실버즈라는 딱히 천재가 아니었다. 실버즈라가 보유한 검의 재능은 지극히 평범했다.
1년을 수련하면 1년만큼 강해졌고, 2년을 수련하면 2년만큼 강해졌다. 절대 검을 잡자마자 모든 적을 참살하는 기적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하여 모순이 생긴다.
실버즈라는 처음 검을 잡자마자 악신의 교단을 참살했다.
실버즈라의 재능은 절대 처음 검을 잡자마자 그만한 기적을 보여주지 못한다.
두 가지 명제가 충돌한다.
이러면 반드시 둘 중 하나는 거짓을 고하는 중이었다.
실버즈라가 재능이 충만하든가.
아니면.
처음 검을 잡은 게 아니든가.
악신의 교단이 등장한 그날, 마을의 모두가 산 제물이 되려던 그날, 실버즈라의 첫 번째 분리 인격은 내면에서 벗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체감상 수십 년의 수련을 마치고 불쑥.
그리고 이것이 실버즈라의 일화가 지닌 비밀이었다.
사실 실버즈라는, 태어났을 때부터 검을 수련했다.
내면의 세계에서, 모든 신체 활동은 그저 시키는 대로 사는 껍데기에게 맡기고 쭉.
검을 너무나도 갈망했던 실버즈라는 혼자만의 수련은 의미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그게 실버즈라의 인격이 분리된 이유였으며, 1000명이나 되는 인격이 모두 제각각의 검술을 쓰는 이유였다.
같은 검술을 쓰는 녀석과 대련해 봤자 의미가 없었으니 말이다.
“주인격이 세상에 나온 건 살면서 딱 한 번이다. 검의 궁극에 도달했을 때. 그 외에는 사실 주인격과 관련이 없지.”
마족을 참살한 것도, 악신의 교단을 저지한 것도, 약혼자를 죽인 왕족을 죽인 것도, 왕국과 전면전을 한 것도, 전부 실버즈라와는, 정확히는 실버즈라의 주인격과는 관련이 없었다.
그는 오로지 검만을 사랑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우리 분리 인격은 완벽한 검은 보여줄 수는 있어도 궁극은 보여주지 못해. 거기에 도달한 건 주인격이 유일하니까.”
“복잡하네요.”
“어쩔 테냐. 주인격이 갑자기 밖으로 나올 수도 있지만, 그럴 확률은 지극히 낮다. 차라리 세상을 돌아다니는 게 백배는 낫지.”
헤이즈는 잠깐 고민하고는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일단 기다려보겠습니다.”
“발리온의 제자는 시간이 썩어나는구나. 그럼 내 제자야. 너는 어쩔 생각이지?”
“제자로 못 받는다면서요.”
“정식 제자만 아니면 되지. 하여간 어쩔 생각이냐?”
나?
나야 뭐 뻔하지.
대충 초대 황제의 검이나 찾다가 마법학교로 돌아가야겠다.
헤이즈? 그게 누군데.
버려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