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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운신검은 만검(萬劍)이다.
중검, 쾌검, 변검, 환검, 패검, 둔검… 그 모든 검의 이치를 단 한 자루의 검에 담는다.
그 근본된 이치가 곧 무극이태극이라.
무극과 태극이 같으니, 기운이 음과 양으로 나뉘어 만물을 낳아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아니한다.
무극은 바다와 같고, 태극은 바다 위에 생겨난 하나의 파동이니.
파도가 일어도, 일지 않아도, 여전히 바다는 바다다.
그리하여 황운신검의 본질은 곧 검이다. 아직 시작되지 않은 무극을 품었다.
즉 황운신검 자체는 공(空)하나, 그것에 만물로 화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럼에도 검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같은 맥락을 공유하는 황운신공 역시 그러한 이치에 따라 스스로 무극을 이루고자 하니, 그것은 ‘나’라는 본질이요,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나, 그 무엇으로든 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혼원신공은 다르다.
혼원은 이미 모든 것을 품었다. 만물이 뒤섞인 혼원은 그 자체로 만(滿)하다.
혼원이태극은 그러한 맥락에서 무극이태극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무극은 공백에서 시작하여 모든 것으로 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요, 혼원은 이미 만물을 품어 그 자체로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태초의 모습이다.
그러니 혼원이태극이란 곧, 만물은 ‘혼원’이라 일컫는 어떠한 존재의 일부에 불과함을 말한다.
모든 것으로 화할 수 있는 무극과, 이미 모든 것을 품은 혼원.
어찌 보자면 같고, 어찌 보자면 다르다.
그것은 모든 것에 이름 붙이고자 하는 인간의 오만으로부터 비롯된 간극이니.
서준은 이제 더 이상 혼원신공과 혼원일월공을 구분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지금껏 자신의 미숙함 탓에 온전하지 못한 태극을 깨뜨리는 방식으로 혼원일월공을 사용해왔으나, 이제는 혼원으로써 태극을 이루는 것이 가능해졌다.
혼원신공(混元神功) - 황운신검(黃雲神劍)
용의 껍데기를 쓴 혼원이 아가리를 쩍 벌린 채 떨어져내린다.
인형과 손속을 나누던 검광은 그 기세에 전율하며 퍼뜩 고개를 돌렸다. 새카만 아가리. 한치 앞도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
검광의 피로 된 몸이 출렁였다. 채 닿지 못한 깨달음의 벼락이 그의 영혼을 후려쳤다.
그는 눈앞의 저것에서 혼원이라는 이름을 떠올리진 못했으나, 저 기운의 본질이 자신이 바라는 궁극과 맞닿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형검. 형식 없는 검. 그 또한 만검의 이치와 맥을 같이하니, 검광은 혼원을 보며 무극을 떠올렸다.
[그건, 뭐냐….]
인형의 손아귀가 검광의 가슴을 꿰뚫는다. 검광의 몸뚱이를 이루는 피가 일월에 휘말려 증발한다.
검광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저것, 황운신검과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지고의 무학을 좇았다.
‘알고 싶다.’
저것에 담긴 근본된 깨달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검광은 불빛에 홀린 부나방처럼 묵룡의 아가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쩌저적-!
그의 주변으로 형태 없는 검이 형식 없이 휘둘러진다.
용의 이빨을 쳐내고, 발을 깊숙이 내디뎌 그 아가리 속으로 몸을 던졌다.
화아악-!
검광은 그 새카만 혼돈 속에서 만물을 보았다. 이곳에 만물이 깃들어있다. 이것은 만물을 아우른다.
검광은 스스로라는 존재가 혼원에 섞여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혼원으로부터 비롯된 존재가 다시금 혼원으로 돌아간다.
콰득-!
검광은 스스로 혀를 깨물었다. 피로 된 혀에는 통증조차 없으나, 그 행위를 통해 검광은 스스로의 의지를 되찾았다.
‘먹히면 안 된다. 내가 잡아먹어야 돼.’
그는 의식적으로 제 권능을 다시금 입에 담았다.
[무형검(無形劍).]
의식하여 입에 담은 말은 곧 힘이 되고, 검광은 그 힘을 능숙하게 휘둘렀다.
쩌저저저적─────────!!
검광을 삼켰던 묵룡의 몸통이 갈기갈기 찢겨나간다.
검광은 그 찰나의 순간만에 확연히 줄어든 자신의 기운에 환하게 웃었다. 이름 모를 저것, 그리고 황운신검. 그 둘만 얻을 수 있다면 영혼마저 팔 수 있다.
서준은 묵묵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콰악-! 그 동작과 함께 갈기갈기 찢겨나간 묵룡의 조각들이 검광에게로 뭉쳐든다.
혼원이 역태극을 이루어 검광과 함께 수렴한다.
검광은 무형검으로 그것들을 베어내곤, 서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검광의 뒤를 인형이 쫓았다.
서준은 다가오는 검광을 지켜보다 한 걸음 내디뎠다. 쩌저적-! 공간에 새겨지는 선.
느릿하게 움직인 서준의 눈이 그것들을 보았다. 보았다면 피할 수 있다. 가볍게 내디딘 걸음에 검광의 무형검이 허공을 베어낸다.
[역시…!]
“닥쳐라.”
탁한 눈이 공간을 본다.
혼원과 무극에 대해 알았다. 무형검의 이치는 무극과 닿아있다. 그러니 무형검 역시 이전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서준의 눈에는 검광 주변의 공간에 되다 만 검의 형상들이 무수하게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그것에 검광이 의지를 담으면 검이 되어 공간을 베어낸다.
그것이 검광의 무형검이다.
꿈틀, 맥동하는 검의 형상. 서준이 즉시 반응해 허공을 박찼다.
슷-
순식간에 검광의 눈앞까지 치달았다. 쩌적-! 서준의 등 뒤로 무형검이 공간을 베어낸다.
검광은 눈썹을 꿈틀대면서도 노련하게 반응했다.
콰륵-! 피로 된 몸이 출렁이며 검의 형상을 한 두 손이 휘둘러진다. 동시에 무형검 역시 서준을 향해 날을 세웠다.
서준은 이기어검을 회수했다. 휘릭-! 묵룡과 함께 날아갔던 검이 튕겨지듯 돌아온다.
그때까지의 시간. 서준은 양어깨와 골반, 허벅지, 팔뚝, 눈, 이마, 가슴, 발목, 복부를 노리는 무형검을 한 걸음 걸어 피해내고, 오른손에 기검을 만들어내 검광의 양손을 크게 쳐냈다.
콰앙-!
검광의 손이 밀려난다. 검광은 즉시 어깨를 비틀어 양팔을 다시금 휘둘렀다.
서준이 고개를 젖혔다. 피로 된 검이 턱끝을 스친다. 동시에 검광의 뒤를 잡은 인형이 양손을 내질렀다.
타악-! 검광은 무릎을 차올려 쳐냈다. 그 힘과 함께 몸을 허공에 날리고, 빠르게 회전하며 양손을 휘둘렀다.
쩌저저적-!
한 방향으로 회전하면서도 복잡한 궤적을 그리는 검들이 공간을 찢어발긴다.
서준은 한 걸음 물러났다. 탁, 이제서야 날아든 마검이 서준의 손에 잡혔다.
인형은 한 걸음 나아갔다. 콰각-! 인형의 몸뚱이가 검광의 손끝에 갈려나간다.
인형은 깎여나간 몸을 허공의 기로 채우며 끝내 검광에게로 파고들었다.
[어딜…!]
뻗어지는 손아귀. 검광은 어깨를 비틀어 피하고, 반대손을 인형의 복부에 처박았다.
콰악-!
검광의 손이 인형을 관통했다. 그리고 인형이 웃었다.
“쾅.”
장난스러운 말과 함께 인형의 몸이 점으로 수렴한다.
스읏-!
인형에 깃든 것은 하늘과 태양과 달의 심상. 기로 된 몸을 이용해 스스로 역천일월공으로 화했다.
스아아아악────────
한 차례 검은 번쩍임이 지나고, 검광은 몸의 반절을 잃었다. 날아간 반신의 단면에서 형태를 잃은 핏물이 죽죽 떨어져내린다.
[으음….]
검광은 찌푸린 낯으로 서준을 보았다. 그는 스스로가 광인임을 알고 있으나, 눈앞의 존재 앞에서는 한없이 상리(常理)에 가까움을 깨달았다.
이해할 수도, 형언할 수도 없는 존재. 아직은 인간의 탈을 쓰고 있으나, 검광은 저것의 본질을 얼핏 알 듯도 했다.
저것은 가까이 해서는 안 될 무언가다.
그럼에도 검광은 제 검법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저것에 깃든 검법을 다시 되찾을 수 있다면, 자신은 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이해할 수 없었다.
[…제가 만들어낸 피조물을 미련도 없이 버릴 줄이야.]
검광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의 손에서 태어난 검이 있다면, 검광은 그것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쳤을 테다.
그건 부성애 따위가 아닌, 자신이 갈고닦아 피어난 또 다른 ‘나’에 대한 경애다.
서준은 그를 비웃었다.
“어차피 그 또한 나다.”
서준은 인형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어차피 같은 의식을 공유하는 분신일 뿐이다.
심상이라는─ 인간의 마음을 부여했기에 반쯤은 자의식이 있으나, 자폭한다 한들 그 심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는 것뿐.
[그건 내가 판단하지. 그러니 내놔라. 나도 그 세계를 볼 수 있게끔!]
검광은 잃은 반신을 피로써 재생하며 활짝 웃었다. 깎여나간 기운 탓에 몸이 허하다.
반면 상대는 별다른 소모가 없다.
그는 빠르게 판단했다.
‘싸움이 더 길어지면 안 된다.’
검광은 자신의 주변, 그 모든 형태 없는 검들을 의식했다.
그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각각에 담긴 힘은 약해진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검광은 그냥 부족한 만큼의 힘을 모조리 쏟아부어 채웠다.
놈이 무형검을 보고 피한다면, 피할 수 없게끔 그 모든 공간을 에워싸 몰아넣는다.
무리하게 끌어다 쓴 의념에 눈앞이 이지러지고, 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팠으나, 이제 곧 되찾을 검법들을 생각하면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환희가 솟구친다.
[흐하하…!]
무수한 형태 없는 검들이 서준을 향해 몰아친다.
피할 곳은 없다. 받아치기에도 수가 너무 많다. 그 하나하나에 담긴 힘은 검광이 살아온 세월을 증명하듯 강대했다.
허나 서준은 무심했다. 그저 손을 앞으로 뻗었다. 공간의 틈에서 스스로 깨어진 구슬들이 다시금 제 주인에게로 스며든다.
하늘과, 땅과, 태양과, 달과, 산과, 바다와, 강과, 매화와, 그를 비롯한 세상의 만물이 다시금 심상을 채운다.
“이상향(理想鄕).”
뻗은 손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드넓은 세계가 공간을 덧칠한다.
짓쳐드는 형태 없는 검들. 펼쳐진 세계. 달려드는 검광.
서준은 그 모든 것들의 차이를 알 수 없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혼원의 일부.
“귀원(歸元).”
그 모든 것을 본질로 되돌린다. 무형검과, 세계와, 검광이 혼원으로 화한다.
서준은 혼돈으로 가득 찬 세계에 우두커니 선 채 허우적대는 미물을 보았다.
[아…! 귀원! 그래! 혼원! 그런 것이었나! 나는…!]
환하게 웃던 검광이 결국에는 혼원으로 귀원한다. 목소리가 사라지고 침묵만이 남았다.
아니, 그 둘이 뒤섞여 혼원이다.
이제 이곳에는 무엇도 없었다. 동시에 모든 것이 있었다.
한데 뒤섞여 그 본질로 화한 영역 속에서, 서준은 스스로의 본질을 보았다.
아주 깊은 곳.
들여다보는 순간, 뇌리에서 새하얀 벼락이 튄다.
거대한 눈. 나. 티끌과 같은 우주. 그 근원. 태초. 즉설유설무(卽說有說無). 허우적대는 팔다리. 나는 나아가서, 다시금 제자리.
탁한 눈이 이치를 보고, 이치는 탁한 눈에서 비롯된다.
낳는 것과 낳아지는 것. 형언할 수 없는 감정, 다시 그 근원, 헤엄치는 자의식.
길다란 몸통, 몸짓에 이는 기포, 그 속의 우주, 꿈, 다시 나.
“아.”
정신을 차렸을 때, 서준은 땅 위에 서있었다.
무너져내린 산들의 잔해와 심상 속에서 울려퍼지는 검광의 웃음소리.
저놈이 언제까지 웃을 수 있을까, 그를 비웃다 울컥 피를 토해냈다.
서준은 그 검게 죽은 피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좆됐네.”
심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