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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 입을, 둘에 조심하자. 하나!”

“입을…!”

“둘!”

“조심하자…!”

“어쭈, 목소리 제대로 안 내지. 둘!”

“조, 조심하자…!!”

안휘성 외곽의 뒷골목. 그곳에서는 건장한 사내 하나가 여인에게 짓밟힌 채 팔굽혀펴기를 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말해 뭐 할까. 남궁수아를 첩으로 받아주겠다던 그 사내다.

“알아들었어? 응? 이거 눈 조금 빛났다고 뭐가 되는 게 아니란 말이야.”

사내 위에 선 채 무게추 역할을 대신하던 춘봉이 쯧쯧 혀를 찼다.

“죄송합니다…!”

“목소리가 작다.”

“죄송합니다악…!!”

“좋아.”

에잉 쯧, 혀를 찬 춘봉이 사내 위에서 내려왔다.

자기가 뭔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알았던 모양인데,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첩이라니? 상식이 조금 부족한 친구다.

그걸 무언가 행동으로 옮기기라도 했으면 그냥 확 인생의 고달픔을 느끼게 해줬을 테지만, 말만 그렇게 하고 멀뚱멀뚱 있길래 이 정도로 끝냈다.

‘아니지, 혹시 모르니까 거세라도 해둘까?’

춘봉이 턱을 매만지며 사내를 보았다. 그 시선에 사내가 덜덜 몸을 떨었다. 알 수 없는 한기가 그의 본능을 자극했다.

“죄, 죄송합니다…!”

고민하던 춘봉이 혀를 찼다.

“에잉, 됐다. 일단 따라와보도록.”

“옙!”

사내가 벌떡 일어나 조심스레 춘봉의 뒤를 따랐다.

춘봉과 남궁수아는 사내를 데리고 뒷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간혹 둘을 노리고 덤벼드는 흑도 잡것들이 있었으나, 상대는 초절정의 무인이다.

곱게 접혀 구석에 쑤셔박힌 흑도 무인들의 모습에 뒤따라오던 사내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저…, 혹시 어디서 나온 분들이십니까?”

“뭐? 내가 말을 안 했었나?”

“예에….”

“남궁세가.”

“예, 예에…!?”

사내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듣자하니 이름이 춘삼이라는데, 이게 또 묘하게 정감이 가는 이름이다.

춘삼에게 안내를 시키며 뒷골목을 한 바퀴 훑은 춘봉이 쭈욱 기지개를 켰다.

“으읏…! 오늘은 이 정도면 되려나?”

챱챱 입맛을 다신 춘봉이 택천지재공에 선택받은 사람들을 한데 모았다. 설렁설렁 돌아다녔음에도 무려 열이 조금 넘는 인원수다.

그들 중 어린아이는 셋.

사실 무공은 어린 나이부터 익히는 게 좋은 만큼 아이들만 데려갈까 생각도 했으나, 춘봉은 택천지재공을 믿었다.

그 이서준이 확실한 재능에만 반응한다고 한 무공이 아닌가?

남궁일맥에 있어서 만큼은 다 큰 성인이라 해도 썩 괜찮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다.

다른 무공까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제….”

턱을 짚은 채 고민하던 춘봉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어쩌지?”

당연하지만 그냥 놀러 나온 금춘봉은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멀뚱하니 눈만 깜빡대고 있으니 지켜보던 남궁수아가 쿡쿡 웃음을 흘렸다.

“우선 가까운 분파에서 쉬다가 세가로 돌아가든가 해야지.”

“아, 그러면 되겠구나?”

이미 이들에게는 의사를 물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남궁세가까지 따라가겠다는 답을 받았다.

허나 이들을 무턱대고 남궁세가에 들일 수는 없는 법.

“그 무인들 시험 있잖아. 인성 검사 같은 거.”

“응? 그게 왜?”

“분파에서도 할 수 있나? 남궁세가까지 갔다가 떨어지면 골치 아프잖아. 여기까지 거리도 꽤 있는데.”

전원이 합격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솔직히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뒷골목에서 살면 십중팔구 그 인성에 문제가 생기는 까닭이다.

인성에 문제가 없는 경우는 딱 두 부류.

무력이 강하거나, 이미 시체가 됐거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인성을 버려야 하는 만큼, 당장 눈에 보이는 성격으로 무언가를 판단하기에는 이게 참 애매하다.

허나 남궁세가라면 대충 그런 것들을 걸러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터.

“그거야 내가 하면 되지?”

“응?”

남궁수아가 제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 춘봉은 출렁이는 무언가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두렵다…!’

전율하는 금춘봉. 남궁수아가 생긋 미소를 머금었다.

“나도 남궁세가의 무인인걸. 교육은 다 받았어.”

“아, 맞네.”

그런고로, 춘봉과 남궁수아는 십여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근처의 분파로 향했다.

오래 전 남궁세가에서 갈라져나간 문파라는데, 소천문(小天門)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다.

소천문의 문주는 춘봉과 남궁수아를 환대하며 흔쾌히 방을 내어주었다. 뒷골목 사람들 역시 따로 방을 배정받았다.

방에 들어선 춘봉은 엄지와 검지를 펼쳐 턱을 괴었다.

“흐으음…. 뭔가 할 말이 있었는데.”

“무슨 말?”

사락-, 남궁수아가 겉옷을 벗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환복했다.

‘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춘봉은 내심 감탄했다.

확실히, 여성스러움으로는 언니를 이길 수가 없다. 일단 저 거대한 여성의 상징부터가 문제다.

남궁수아의 가슴을 노려보던 춘봉이 문득 손뼉을 쳤다.

“아, 맞다! 그거다.”

“응?”

“우리 그, 순서 있잖아.”

“순서?”

“어. 왜, 그. 이제 혼례도 올릴 거고….”

“아, 첫날밤?”

“어, 어….”

춘봉이 뺨을 붉히자 남궁수아가 쿡쿡 웃음을 흘렸다.

“금 매가 먼저 해도 되는데?”

“그건 좀….”

“그러면 내가 먼저 할까?”

“그것도 좀….”

“으응…?”

남궁수아가 눈을 깜빡였다. 입술을 우물대던 춘봉이 눈을 딱 감고 외쳤다.

“그러니까 가위바위보로 정하자…!”

“가위바위보?”

“응, 저번에 그거.”

“아, 화권(划拳) 말하는 거구나?”

남궁수아가 씩 웃으며 오른손을 주먹 쥐었다.

무인에게 있어 가위바위보는 더 이상 운의 영역이 아니다. 패를 내는 그 순간까지 온갖 수 싸움이 성립하는 일종의 대련.

허나 춘봉은 그런 걸 바라지 않았다. 오로지 운! 눈 딱 감고 하늘에 맡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신 눈 감고, 내고 나서 확인하자. 이기는 사람이 먼저야.”

“후후, 알겠어. 그나저나 공부는 좀 했어?”

“공부라니?”

“이런 거 말이야.”

남궁수아가 엄지와 검지로 그린 원 사이를 반대손 검지로 왕복했다. 음탕하기 짝이 없는 손동작이다.

허나 춘봉은 나름 익숙했다. 원래 언니는 오빠가 없으면 조금 막 지르는 경향이 있다.

대화를 하다 보면 끝을 모르고 치솟는 수위에 깜짝 놀란 게 몇 번인지.

그나마 저 정도면 아주 양호한 편이다.

“나, 나름…?”

“나름이라니. 그러면 안 되지. 오늘 언니가 확실하게 알려줄게.”

“뭣….”

춘봉이 눈을 데굴 굴렸다.

“뭐, 뭘 알려주려고…?”

“방중술.”

방중술이란 곧 방사의 방법과 기술. 그러니까 그거다.

너도 할 수 있다! 초절정!

대충 성교 잘 하는 법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아니, 그걸 왜 알고 있어…?”

“천무각에 꽤 있는데? 아마 금가에도 꽤 있었을걸?”

“왓…?”

춘봉이 입을 쩍 벌렸다. 천무각에 방중술이 왜…? 원래 가문마다 방중술이 몇 개씩은 있는 건가?

아니, 그보다 무슨 방식으로 그걸 알려주려는 거지?

춘봉은 두려움에 덜덜 몸을 떨었다. 다만 딱히 거절하진 않았다.

솔직히 조금 궁금하긴 했으니까.

“아무튼…! 이걸로 딱 정하는 거다?”

춘봉이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가위바위보의 기수식이다.

이내 눈을 질끈 감고, 무수한 변수 속 단 하나의 답을 찾아낸다. 남자는 주먹. 그러면 여자는?

눈앞을 가린 미혹에 헤매던 금춘봉이 결론을 내렸다.

“가위, 바위…!”

두 여인이 각자의 패를 꺼내든 순간….

“보…!”

운명이 정해졌다.

북해빙궁의 심처.

백설향에게 진법의 완성을 의뢰받은 서준은 바로 그 다음날 다시 백설향을 찾았다.

“뭐냐. 왜 자꾸 찾아오는 게야. 일은 어쩌고?”

이제는 아예 의자 위에 드러누운 백설향이 서준을 맞이했다.

서준은 픽 웃으며 서책 한 권을 그녀에게 던졌다.

“받아라.”

“음?”

탁, 가볍게 서책을 받아든 백설향이 표지의 제목을 읽었다.

“빙설천라진? 뭐 어쩌라는 거냐.”

“완성시키라며.”

백설향이 미간을 구겼다.

설마 하루만에 진법을 완성했을 리는 없을 테고, 틀을 잡았으니 한 번 봐달라는 건가?

별 생각 없이 빙설천라진의 비급을 펼쳐든 백설향의 눈이 그 내용을 훑었다.

“이전의 빙설천라진과 비슷…, 음?”

문득 백설향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녀의 눈이 빨라진다. 순식간에 비급을 완독한 그녀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너, 뭐냐.”

시린 눈이 서준을 보았다. 그 눈에 어린 것은 경악과 불신.

이런 진법을 하루만에 만들어낼 수는 없다.

틀 자체는 이전의 빙설천라진과 같은 것이 맞다. 문제는 그 틀을 뺀 나머지가 아예 처음부터 다시 만든 수준이라는 것.

이미 만들어진 진법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으나, 이걸 처음부터 설계하고 짜맞추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고작 며칠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하루만에 이런 수준의 진법을 완성시킨다? 백설향은 단언할 수 있었다. 그건 불가능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빙설천라진의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고 개선점을 찾고 있던 게 아니라면….

“오호라.”

백설향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너, 아닌 척하면서 사실은 빙궁이 아주 신경 쓰였던 모양이로구나!”

“또 뭔 희한한 소리를.”

“사내자식이 부끄러워 하기는. 다 안다! 흐흐, 사실 궁주 자리도 말로만 싫다 하는 것 아니냐?”

백설향이 빙글빙글 웃었다. 서준은 그런 그녀를 안타까운 사람 보듯 보았다.

“힘내라.”

“뭐, 뭐냐 그 태도는…! 건방지다!”

백설향이 팔걸이를 쿵쿵 두드리며 날뛰었다.

이쯤 되자 서준은 한 가지 이론을 세울 수 있었다.

전에 봤던 황제도 그렇고, 황보세가주도 그렇고, 결정적으로 백설향까지.

‘화경 얘네 이거…. 인간성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사회성이 없는 거 아닌가?’

생각해보니 꽤나 그럴 듯하다.

화경의 무인들이 누군가. 인간이라는 종을 넘어서 새로운 지평에 다다른 초인들이다.

그런 경지에 다다르려면 당연하게도 무공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그 말인즉, 화경의 무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사람 죽이기, 방구석에서 무공 수련, 사람 패기, 방구석에서 무공 연구, 잠깐 쪽잠 이후 사이클 반복….

아마 거의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을까?

사회성이 박살나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인생이다.

“그쪽도 참 안타까운 인생을 살았군.”

“뭐…?”

서준이 끌끌 혀를 차며 백설향의 어깨를 두드렸다.

“밖에 나가서 사람도 좀 만나고 그러시오. 구석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원….”

“아까부터 자꾸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나는 궁주다! 너는 소궁주고! 경의를 표해도 모자랄 망정!”

“나는 이해하오. 그럴 수 있지.”

“이, 이익…!”

서준이 이를 악문 백설향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그래서.”

“흡…! 뭐, 뭐냐! 치워라!”

“이제 마지막 일만 남았는데. 무엇을 시킬 생각이오?”

백설향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가늘게 내리는 눈발 사이로 흰 도포가 휘날린다.

사내는 눈 위를 걸었다. 사내가 지난 자리에는 발자국 하나 남지 않았다.

그 뒤를 또 다른 사내가 쫓았다. 이마부터 뺨까지 길게 흉터가 진 사내다.

그가 물었다.

“백윤, 빙궁주가 오는 건 확실한 거냐?”

“그래.”

흰 도포의 사내는 무심하게 주변을 훑었다. 삼백 년 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허리를 숙여 발밑의 눈을 한 움큼 퍼담은 사내, 백윤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북해의 냉기보다도 시린 그의 숨결에는 김이 서리지 않았다.

“빙정의 기운을 보하기 위해서는 사 년에서 오 년 주기로 이곳을 찾아야 한다.”

“그 주기가 언제 돌아올 줄 알고?”

“시기로 봐서는 곧이다.”

“궁주 말고 다른 이가 올 가능성은?”

“그럴 리는 없다. 빙정은 궁주가 아니라면 손댈 수 없어.”

물리적으로든, 관습적으로든, 궁주 외에는 빙정에 닿을 수 없다.

“설령 계산이 틀렸어도 상관없다. 사흑련의 세가 크게 위축됐어. 변방에 놓인 빙궁쯤이야 둘로 충분하니…, 정 기다림이 길어진다 싶으면 우리가 찾아가면 그만이다.”

“정이 없군. 그래도 한때 몸을 담았던 문파인데.”

까드득-! 손아귀를 움켜쥐자 눈이 단단하게 뭉친다. 백윤은 그것을 성의 없이 눈밭에 내던졌다.

툭, 어느새 붉게 물든 눈덩이가 주변의 눈밭마저 핏빛으로 물들였다.

“상관없다. 이 벽을 넘어설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