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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물 범람.
간혹 마물들이 떼거지로 몰려드는 현상을 적당히 싸잡아 그렇게 부른다.
이는 마물의 개체수가 자연스럽게 증가하면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마물들이 뜬금없이 나타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으레 마교를 의심하곤 했다. 마인들이 마물을 다루는 경우가 꽤 흔하기 때문이다.
‘마교라….’
서준은 황산 인근으로 이동하며 고민했다.
마음 같아서는 사흑련을 완전히 지워내고 싶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사흑련주 때문이다.
파천제가 출신의 현경. 놈이 사흑련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상 사흑련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교의 힘을 빌릴 수는 없나?’
나름 만마종주의 싹이 아닌가.
저번에는 큰일이 날 뻔하긴 했지만, 어떻게 일이 잘 풀린다면 마교에서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천마가 나서지 않는 이상 사흑련주를 어찌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도움 정도는 될 터.
‘아니면 무림맹주가 나서준다거나.’
딱히 놀랍지도 않은 일이지만 무림맹에도 현경의 무인이 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 오래되어 그 얼굴을 아는 이조차 극히 드물다고는 하는데…. 어쨌건 존재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현 무림의 세력이 삼등분되어 있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허나 서준은 이 현경이라는 경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들이 왜 움직이지 않는지, 움직인다면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지,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당장은 장인어른의 장례와 곧 다가올 혼례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 벅차다.
지금은 우선 마물 범람부터.
쩌억-! 서준의 신형이 공간 너머로 사라졌다.
“대주, 지원이 오긴 오는 겁니까?”
남궁세가 소속 비연대의 한 무인이 멍하니 물었다. 터오르는 여명에 그의 눈가가 슬쩍 찌푸려졌다.
곁에 있던 비연대주 남궁창휘가 답했다.
“모른다. 오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겠지.”
“이거 저희만으로 막기는 벅찰 것 같습니다만.”
“…도시 몇 개 정도는 내어줘야 할지도 모르지.”
마물 범람이라 해서 대단한 수준의 마물이 튀어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아주 가끔 초절정과 비슷한 수준의 출력을 내는 마물들이 튀어나오는 정도가 전부.
그조차 제대로 힘을 다룰 줄 아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만큼 초절정의 무인이라면 대체로 승리를 장담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도 초절정의 무인인 남궁창휘가 있는 만큼 마물 하나하나는 큰 문제가 아니었으나…, 문제는 그 수.
남궁창휘가 도시의 모든 곳을 지킬 수는 없다. 필연적으로 구멍이 생기게 되고, 마물이 도시 내로 들어오는 순간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나마 비연대가 근처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중원이 어찌 되려고 요즘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다 지나가기 마련이다.”
남궁창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리서 뿌옇게 흙먼지가 인다. 두두두두-! 천지를 울리는 무수한 발소리. 남궁창휘가 혀를 차며 검을 뽑아들었다.
“견뎌라. 언젠가 전쟁은 끝난다. 도련님께서도 노력하고 계시잖으냐.”
“아….”
대원들이 남궁창휘의 곁에 섰다. 조를 나누어 도시를 수비 중인 만큼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태사님을 말씀하시는 거면, 대주께서 저번에 같은 전장에 서본 적이 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범상치 않은 분이셨지.”
남궁창휘가 픽 웃으며 검에 강기를 휘감았다. 휘이익-! 창궁비연검의 강기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빛을 흩뿌린다.
“우선…, 수를 줄일까.”
파츳-, 남궁창휘의 검에 뇌전이 어렸다. 남궁의 태사, 조금 더 익숙하게는 남궁의 도련님께서 창시하신 무공이다.
천뢰멸마공. 그 중에서도 내공의 소모가 크지 않은 하나의 초식.
천뢰멸진(天雷滅陣).
콰악-! 남궁창휘가 검을 땅에 처박았다. 검을 중심으로 푸른 전류의 파동이 너울너울 퍼져나간다.
우우웅-!
천뢰멸진은 진법의 이치를 이용하여 내공의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인 초식이다. 그 정확한 이치까지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츠츳-
퍼져나간 파동이 특정한 지점에서 실타래처럼 얽혀든다. 얽혀든 실 그 하나하나가 전부 벼락과 같으니.
파지지지지직────────!!
이내 땅이 푸른 벼락으로 물들었다.
-
캬아아악…!
-
크르륵…!
마물들이 감전되어 쓰러진다. 허나 초식은 끊기지 않는다. 파츠츳! 일정한 범위 내에 남은 벼락이 쓰러진 마물들을 끊임없이 불살랐다.
- 끄르륵….
이미 죽은 마물들의 시체가 시커멓게 타들어가며 매캐한 연기가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오오…!”
대원 중 하나가 감탄했다.
“멍청한 마물놈들 잡기에는 딱인 초식이군요!”
천뢰멸진의 벼락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자리에 남아 끊임없이 순환한다.
마물들 역시 벼락에 물든 땅을 피하려 기를 썼으나, 이번에는 그 머릿수가 문제가 됐다.
뒤에서 몰려드는 마물의 파도가 같은 마물들을 벼락 속으로 밀어넣었다.
- 뀌이익…!
파지지직-! 끊임없이 타오르는 벼락에 마물들이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타죽었다.
이내 그곳에는 새카맣게 탄 시체의 산 하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허튼 소리 말고 집중해라. 이제 시작이다.”
남궁창휘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땅에서 검을 뽑아냈다.
천뢰멸진을 우회한 마물들이 몰려온다.
“가자!”
“예!”
남궁의 비연대가 마물들을 막아섰다.
새벽에 시작된 전투는 한낮까지 이어졌다.
비연대는 치열하게 싸웠다.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크고 작은 부상을 입지 않은 사람 역시 없었다.
도시에 자리잡고 있던 문파들 역시 비연대를 도와 필사적으로 싸웠다.
허나 그리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최소한 마물에 비해 현격히 모자른 수를 어찌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인간에 불과한 무인들은 서서히 지쳐갔다.
남궁창휘가 이를 악물었다.
“양민들의 대피는!”
“거의 끝나긴 했습니다만…!”
이름 모를 문파의 문주가 쉰 목소리로 외쳤다.
“고향을 버릴 수는 없다며 버티는 사람들이 조금 남았습니다…!”
“이런….”
남궁창휘가 입술을 짓씹었다.
어찌 해야 할까. 남은 이들은 포기해?
비연대의 대원 하나는 훗날 수십 명의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 고향에 남겠다며 버티는 이들을 굳이 지키려다 대원을 잃는 것이 옳은 일인가?
‘허나….’
그들을 버릴 수만은 없다. 남궁창휘는 자신이 검을 잡은 이유를 기억했다.
무인의 비호가 없다면 양민들은 험난한 중원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남궁진천이 가족들을 위하는 모습을 보며, 남궁창휘는 힘없는 이들을 가족처럼 돌보고자 했다.
뜻없이 휘두르던 검에 뜻이 담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검에 별이 깃들었다.
남궁창휘는 그날 새로이 검을 잡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뜻이 꺾인 무인은 나아갈 수 없다.’
속으로 읊조리던 남궁창휘가 외쳤다.
“…우선 너희가 뒤로 빠져 남은 이들을 강제로라도 대피시켜라!”
남궁창휘와 함께 싸우던 조의 대원들이 눈을 크게 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큰 문제 없다. 적당히 막아서다 빠져나가는 건 어렵지 않아.”
수가 많아서 그렇지, 마물들은 남궁창휘보다 확연히 약하다.
방어선이 뚫리려 할 때마다 도시 곳곳을 오간 터라 체력의 소모가 상당했지만, 남궁창휘는 제 한 몸 정도는 건사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어서!”
망설이는 대원들에게 소리치자 그들이 고개를 숙였다.
“예!”
대원들이 마지못해 등을 돌렸다.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들의 대주는 강하다. 한낱 마물 따위에게 당할 위인이 결코 아니었다.
“가자.”
대원들이 급히 도시 내부로 향했다. 허나 그때, 그들은 문득 이질감을 느꼈다. 무언가 이상하다.
가장 먼저 깨달은 사내 하나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소리가….”
전장이 고요히 가라앉았다.
다른 대원들 역시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내 그들의 눈이 부릅 뜨였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이게 무슨….”
시뻘건 눈으로 달려들던 마물들이 굳은 듯이 멈춰섰다. 달려들지 않는다. 그저 제자리에 선 채 숨을 몰아쉬며 질질 침을 흘려댄다.
“이야, 오랜만에 보네요.”
한 사내가 허공을 걸어왔다. 남궁의 옷을 입은 사내는 태연하게 걸어와 남궁창휘의 앞에 섰다.
“도련님?”
남궁창휘의 말에 대원들은 즉시 깨달았다. 경황이 없어 잠시 알아보지 못했으나, 저 사내야 말로 남궁의 도련님이자 태사, 멸사천군 이서준이다.
아직 정식으로 태사직에 봉해진 것은 아니지만 알 사람은 전부 알았다.
“태사께 예를 올립니다!”
대원들이 즉시 예를 취했다. 태사는 가볍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됐어요. 피곤하실 텐데.”
스릉-, 태사의 허리춤에 메인 검이 스스로 뽑혀나와 허공에 떠올랐다.
“어떻게, 요즘 잘 지내요? 통 얼굴을 못 봤네.”
“이제 막 세가에 복귀 중이었습니다.”
“웬 존댓말? 편하게 해요. 전처럼.”
“이제 태사 아니십니까.”
“뭐 달라질 게 어디 있다고.”
태사는 남궁창휘와 태연하게 대화를 나눴다. 대원들은 묘한 괴리감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수습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급박하던 전장. 벌건 눈으로 달려들던 마물들이 얌전히 눈치를 본다.
태사는 이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 태연했다. 비연대가 전력으로 막아서던 마물 떼는 그의 앞에서 한낱 병풍이 되었다.
멍하니 태사를 바라보자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대원들을 보았다.
“아…!”
실례를 깨달은 대원들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네? 뭐가요?”
태사는 픽 웃으며 하늘을 향해 손짓했다. 그의 검이 손짓을 따라 하늘 위로 떠올랐다.
“죄송보다는 잘 봐둬요.”
일순 모든 바람이 멎었다. 시간이 멈춘 듯 무엇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태사의 입가에 씁쓰름한 미소가 걸렸다.
“저도 보고 배운 거니까.”
화아아아악─────────!!
시야가 푸르다. 땅이 하늘에 물들었다.
오싹-! 전신을 내달리는 전율에 대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
푸른 하늘이 걷힌 자리, 그곳에는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대원들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저곳에 있는 것이 마물이 아닌, 자신들이었다면?
‘무조건 죽는다.’
어째서 작금의 무림에 멸사천군이라는 별호가 울려 퍼지는지 지독하리만큼 실감할 수 있었다.
허나 대원들은 공포 대신 존경을 담아 그들의 태사를 보았다. 저 사내가 바로 남궁의 태사였다.
허나 태사는 스스로 이루어낸 이적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진 않는 듯했다.
태사는 잠시 묘한 표정으로 텅 빈 전장을 바라보다 손을 펼쳤다. 그의 손 위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마물들의 내단이다.
자그마한 내단들을 손 위에서 굴리던 태사가 그것을 남궁창휘에게 내밀었다.
“가질래요?”
남궁창휘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안 받아주면 제가 곤란한데.”
“예?”
“저도 장인어른께 받았거든요.”
남궁창휘는 망설임 끝에 내단들을 받아들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태사가 웃었다.
“조금은 따라잡은 것 같죠?”
“가주…, 아니, 전 가주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그렇지 않겠습니까? 도련님의 성장 속도는 중원에서도 유례가 없습니다.”
“그래요?”
잠시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태사가 손짓했다. 오묘한 미소를 머금은 그의 표정이 어딘가 어두웠다.
“아무튼 이제 갑시다. 데려다드릴게.”
서준은 비연대 대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장의 뒷정리를 도왔다. 대단한 수고를 들인 것도 아니다.
마물들이 시체조차 남기지 못했기에 할 일이 많지 않았다. 이런저런 잔해들을 허공섭물로 한데 모아준 것이 전부였다.
“저, 저희는 괜찮습니다!”
“에이, 됐어요.”
이내 서준은 비연대 전원을 허공섭물로 들어올린 채 남궁세가로 향했다.
허공섭물은 기(氣)의 영향을 크게 받는 영역.
이것 하나만큼은 장인어른과 비슷한 영역에 다다랐다고 생각한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서준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자신은 그를 대신하여 남궁의 그늘로서 잘 해내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남궁진천의 장례가 코앞까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