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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집으로 가는 동안 길다현은 여러모로 서연을 살피는 기색이 느껴졌다.

마치, 왜 자신과 공부하고 싶냐고 묻는 듯한 얼굴.

서연은 그에 대해 딱히 답할 말이 없었다.

'함께 공부할 사람들이 없어서.'

이 얼마나 비참한 대답인가.

지연은 오디션 준비로 바빴고, 조서희의 경우엔 어쩐지 지는 기분이라 싫었다.

조서희가 서연에게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가지니.

서연도 어쩔 수 없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박정우에게 말하자니.

"여배우가 함부로 그런 일로 남배우 부르면 난리 난다."

바로 그런 말로 퇴짜 맞을 게 분명.

그러니 남은 건 반 친구.

그중에서도 인물들은 떠올리게 하는 길다현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직접 대화한 적도 있고.

"다른 친구들은 안 불러도 괜찮아?"

"응."

길다현은 아무래도 여럿이서 함께 가고 싶었던 모양이었으나, 서연은 거절했다.

'그럼 내 공부 실력이 걸리잖아.'

입이 무거워 보이는 길다현과 별개로 다른 이들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는 법.

그리하여, 서연은 길다현은 졸졸 쫓아가 그녀의 집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었다.

"아, 드라마 때문에?"

길다현은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드라마.

작 중 배역을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학생이면 공부는 항상 하는 거 아닌가?'

그런 당연한 생각이 들었지만, 무척 진지한 서연의 모습을 보자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뭐, 평소와 다른 공부일 수도 있지.

'애초에 서연이는 공부도 잘할 것 같고.'

딱히 성적은 물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미지나 느낌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서연은 수업 시간에도 자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항상 말똥말똥한 눈으로 선생님을 보았고, 워낙 자세도 곧고 눈에 띄어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우등생의 모습이었다.

또 필기는 어떤가?

지나다니다가 힐끗 서연의 노트를 본 적이 있었는데, 다종다양한 필기구로 아주 예쁘게 필기한 노트가 보였다.

……조금 쓸데없이 신경을 쓴 느낌이지만, 그냥 정리하는 걸 좋아하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을 뿐.

하지만 그런 다현의 생각은.

"어, 이걸 몰라?"

"……."

"이건?"

"음."

서연은 매우 진지한 얼굴로 문제를 보았다.

다현은 그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거의 모르는데?'

아니, 생각해 보면 당연하긴 하다.

애초에 수업을 나오는 횟수가 적으니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이미지라는 게 있지 않은가.

"아, 암기력은 좋네."

"응."

그야 대본을 늘 외우니까.

서연은 대사를 틀리는 빈도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니 암기력은 굉장히 뛰어난 편.

'왜 그 뛰어난 암기력으로 이 성적이.'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다현은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았다.

서연은 그런 다현의 기색을 느꼈다.

그러니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공부는, 배우는 거잖아?"

"그, 그치. 그치!"

다현은 서연의 말에 급히 맞장구를 쳤다.

아무튼 학업에 전념하는 다현의 입장에서 조금 이해가 안 가지만 배우니까!

거기다 연기에서 보여주는 서연의 모습은 정말 프로다웠고 대단했다.

그러니 조금 당황스러워도 그뿐.

"이건 중학교 교과 과정인데."

"……."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배우가 되기 전에 배운 건 알아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다현에게, 서연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공부는 배우니까 몰라도 된다.

근데 좀 정도껏 몰라야지.

대략 그런 눈으로 자신을 보는 다현에게 서연은 꼬리 내린 강아지처럼 필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리고 보면 서연이는 운동 잘하잖아."

다현에게 말로 두들겨 맞기를 몇 시간.

'몸풀기'로 적당히 공부한 다현의 말에 서연은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운동?

당연히 잘한다.

아니 잘한다 뿐인가.

어렸을 때부터 비정상적이었던 육체는 이제 좀 뇌절의 영역까지 도달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솔직히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는 편.

"그럼, 운동부같이 동아리 활동을 해보는 것도 어때? 내신도 주니까."

물론 배우라 별 상관은 없겠지만.

그래도 여러가지를 해보는 게 좋지 않나 해서 권하자.

"스포츠 동아리라면 들어가 있어."

E 스포츠지만.

"아, 진짜? 역시."

그럴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다현에게 서연은 굳이 정확히 어떤 스포츠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동아리 활동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것이어서, 서연이 지금 골드로 향하는 길을 힘차게 두드리고 있었으나.

'조금 질려서…….'

대체 한 게임만 주구장창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신기했다.

요즘은 또 FPS가 인기라던가.

그쪽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FPS는 피지컬이 그렇게 중요하다던데, 자신의 피지컬이라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다, 아니 반장은 게임 같은 거 안 해?"

"어, 게임?"

다현이는, 이라고 말하려던 서연은 말을 바꿨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친한 척 말을 걸며 상대도 당황스러울 것 아닌가.

17세 주서연은 배려를 아는 인간.

절대 자신이 어색해서 그리 말한 게 아니었다.

'스포츠 이야기하는데 왜 게임으로 이야기가 넘어온 거지?'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별생각은 안 했다.

그보다 게임을 좋아하나?

"딱히 해본 적은 없네. 이래저래 공부하느라 바빠서."

다현은 그리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언제나 공부에 열심히였다.

다른 취미라고 해봐야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정도.

사실 그것도 사치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지만, 다현이 생각하는 최소한의 휴식.

그것이 영화나 드라마였다.

자신이 학창 시절을 돌아보았을 때, 공부뿐이면 조금 쓸쓸하지 않을까……하는 마음.

그래서 축제 같은 것을 할 때도 나서서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그런 다현의 이야기에, 서연은 의 인물들을 떠올렸다.

'쓸쓸하다, 구나.'

서연이 아는 사람 중 의 인물들과 가장 닮은 건 길다현이었다.

주로 학생 중에.

굳이 말하자면 조서희도 닮기는 했다.

단지 같은 학생이 아닌 상류층의 부모들과 닮았을 뿐.

아무튼, 서연이 다현과 함께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건 그런 연기 때문인 것도 분명 맞았다.

공부도 하고, 연기도 참조하고 실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하지만, 다르네.'

길다현은 의 인물들과는 달랐다.

"진학을 위해서라면 다른 곳이 좋지 않았냐고? 음, 그럴 수 있지만 여기서 멀잖아."

길다현에게는 두 동생이 있다고 한다.

오늘은 서연과 공부해야 하기에 잠시 밖에 놀고 오라고 했다나.

부모님이 늦게까지 맞벌이하는 터라, 동생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서.

그래서 다현은 고등학교를 가까운 곳으로 정한 것이다.

"서연이는 어렸을 때부터 배우였지?"

"응, 조금 쉬었지만."

"대단해. 나는 멀었는데. 서연이는 벌써 꿈을 이뤘잖아."

다현은 조금 그것이 막연했다.

공부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에 대해 모르기에, 단지 열심히.

그저 성실히 공부할 뿐이었다.

불안감을 지우고자 하는 그런 반복적인 행위일 지도 모른다.

그런 다현에게 서연은 이미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음.'

배우가 꿈인 건 맞지.

단지 이루고 싶은 목표가 또 하나 있는데…… 차마 그건 말할 수 없었다.

너무나 성실한 다현에겐 차마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말마따나 지금도 하려면 할 수 있다.

지연처럼.

하지만 여전히 망설이는 자신이 있었다.

솔직히 서연은 스스로 두 가지 일을 병행할 만큼 똑 부러진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우 일도 최근에야 겨우 복귀한 상황에서,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분명 제대로 할 수 없을 테지.

그러니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정말 좋아하는 만큼,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반장도 대단하다고 생각해."

"응? 아, 음, 고마워."

아무튼 서연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다현을 통해 의 이유주에 대해서도 조금 알게 된 게 있었다.

이유주와 다현은 거의 닮지 않은 인물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 라는 카테고리를 제외한다면.

하지만, 닮은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꿈.'

다만.

다현은 그저 무엇을 해야 할지 이정표를 잡지 못했다면.

이유주는 애초에 정해진 노선을 쫓아 왔기에, 이후를 생각하지 않은 것에 가까웠다.

이건 매우 큰 차이였다.

다현은 모든 행동을 스스로의 결정으로 행해왔다.

공부도 그렇다.

들어보면 부모님은 딱히 다현에게 공부를 강요한 적이 없었다.

다현의 성격이 원래 성실하여, 딱히 질책할 게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다현의 말로 들어보면 그랬다.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연화 고등학교에 온 것도.

전부 자신이 결정한 일.

그러니,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오롯이 자신이 선택해야 하기에 망설이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이유주는 정반대.'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태양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도.

전부 부모가 정해준 노선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주지 않았다.

막연히, 너는 공부를 잘하면 무엇이 될 수 있다.

의사, 변호사.

잘 나가는 학원 강사도 될 수 있고.

혹은 부모와 같은 입시 코디네이터나 선생님 같은 부류도 가능할 것이다.

가능성은 말해주었지만, 이유주는 그중 무엇 하나 마음에 끌리는 것이 없었다.

기계적으로 공부를 했으니,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녔어도 선택에 장애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이유주가 품은 혐오감은 타인을 향한 혐오감뿐이 아니다.

'자기 자신.'

스스로에 대한 혐오.

부모의 교육을 탓하면서, 결국 스스로는 무엇 하나 결정지을 자신이 없는 겁쟁이.

그런 자신을 이유주는 혐오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것을, 다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다현이 이것저것 하는 건, 미래를 위한 것.

자신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았을 때 공부뿐이면 쓸쓸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별것 없는 마음가짐.

하지만, 그 별 것 없는 마음가짐 덕에.

훗날 과거를 돌아본다면, 분명 즐거웠던 학창 시절이 떠오르겠지.

하지만 이유주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

'공감, 이라.'

어렵네.

서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이유주에게 서연은 쉽사리 공감하긴 어려웠다.

이런 말을 하긴 뭣하지만, 서연은 스스로를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먼저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난 예쁘잖아'가 기본 장착인 상태.

조금 낯을 가릴 뿐, 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이나.

지금 하는 일이나 전부 좋았다.

앞으로 하고 싶은 배역, 예능.

그리고 버튜버도.

정말 많았고, 그런 자신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아마, 과거의 자신이 너무나 부족했기에.

지금 살아가는 주서연이라는 자신이 더 좋은 건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긍정적인 서연에게, 이유주는 몰입하기 어려운.

어찌 보면 차서아보다도 어려운 인물이었다.

차서아는 전생의 자신이 있었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유주는.

"……그래도 방법은 알 것 같아."

"뭐가?"

잠시 고민하던 서연은 그리 중얼거렸다.

그 말에 다현은 의아하다는 얼굴로 서연을 보았다.

그 말에, 서연은 뒤늦게 고개를 들며 살며시 웃었다.

오늘, 여러 가지로 많이 배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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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의 첫 촬영.

가을이 여름처럼 느껴지는 날.

"이제 가을이 거의 없네요."

"앞으로는 매년 더워진다고 하던데요?"

"아."

그런 별것 아닌 대화가 촬영장에 오갔다.

하지만, 그건 불안감을 잊기 위한 대화이기도 했다.

"가뜩이나 신경 쓸 것도 많은데……."

"그쵸, 내적으로나 좀 도와주면 얼마나 좋아."

스태프들은 그리 말하며, 촬영장 한구석에 있는 민세희 작가를 보았다.

딱히 민세희를 탓하고자 본 것은 아니었다.

보통 드라마는 같은 시간대에 방영하는 타사의 드라마만 신경 쓰면 될 일이다.

그것도 피가 마르는 판에 이번엔 사내 정치까지 끼어있었다.

드라마 1국, 드라마 2국.

아직 확정된 건 아니나, 사실상 이게 첫 싸움이나 마찬가지.

월화 드라마와 수목 드라마의 시청률 싸움.

양쪽 다 황금시간대를 배정받았으니, 사실상 시청률의 싸움이다.

이 첫 교전이, 앞으로 드라마국 내의 신경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 생각하면 스태프들로서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성적이 일방적으로 밀리게 되면.'

'사실상 한쪽은 폐국 될 확률이 높으니까.'

드라마국을 두 개로 나눠 경쟁을 시킨다.

어처구니없는 짓이지만, 그 이유는 납득이 가는 것도 있다.

꽤 오랜 시간, KMB 드라마국에선 이렇다 할 히트작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전대 드라마 국장이 자리에서 내려오고.

신임 드라마 국장이 말아먹은 드라마가 몇 개.

불과 2년 만에 자리에서 내려와 하태오 국장이 자리에 앉은 게 작년이다.

적당히 성적을 내다 최근에야 로 제대로 된 성과를 내었지만, 그 정도로는 안 된다……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것이 이 상황까지 이르렀다.

라는 게 드라마국이 나뉘게 된 경위.

'물론 명목상이지.'

'백태수 PD에게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어.'

지긋지긋한 학연.

스태프들은 혀를 찼다.

뒤에서 움직이던 백태수가 전면에 나섰다면,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 부담감은.

"……."

현장에 나와 있는 민세희 작가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어쩌지.'

보통 작가는 현장까지 나오는 일이 드물다.

하지만, 오늘 그녀는 직접 찾아왔다.

자신이 처음부터 완벽히 구상한 드라마의 첫 촬영.

'너무, 무리한 건지도 몰라.'

민세희는 조금 무서웠다.

이번 그녀의 대본은 작가의 의사가 다수 반영되어 있었다.

로맨스 요소도 최소한으로 들어갔으며, 그녀가 하고 싶은 그대로.

본래 종편으로 갔을 시나리오를 전부 가져온 것이다.

이제 사실상 첫 작이나 마찬가지인 민세희에겐 끔찍할 정도로 부담스러웠다.

'그러니 드라마가 망하면.'

모두 자신의 탓은 아니어도, 그 잘못이 큰 비중을 차지할 건 분명했다.

그럼, 앞으로 KMB에서 활동할 수 있을까.

타사에서는 받아줄까?

결국 자신은 종편에 어울리는 사람인 게 아닐까?

그런 부담감.

"민세희 작가님."

그때.

"안녕하세요."

꾸벅, 하고 허리를 숙이는 소녀가 보였다.

언제나처럼 예의 바른 인사.

새까만 머리칼에, 하얀 피부.

오늘따라 돋보이는 아름다운 외모가 눈부시다.

언제나 입던 연화 고등학교의 교복이 아닌, 촬영을 위해 입은 '태양 고등학교의 교복.'

그것만으로 주서연이 아닌 '이유주'를 떠올리게 했다.

'어?'

민세희는 느꼈다.

평소와 분위기가 묘하게 다른 걸.

서연은 연기를 시작하면 분위기가 확, 하고 달라지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그런 시선을 느낀 걸까.

서연은 민세희를 보며 웃었다.

"조금 어려워서, 배워왔어요."

평소와 달리, 조금은 냉소적으로.

"풀이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