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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 씨, 연기 정말 좋았어!”

김필석 감독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리고, 스태프들도 놀란 눈으로 차나희를 보았다.

를 촬영하며, 처음으로 받아보는 호평이었다.

여태까지 꾸민 듯한 박수뿐이었다면, 지금은 달랐다.

모두의 반응.

그리고, 스스로도 방금 연기를 되돌아보며 놀랐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

‘아니, 연기가 맞았을까?’

몸을 뜨겁게 달군 열기가 식으며, 방금 라이브를 떠올렸다.

라이브, 아니. 연기.

서연이 한 걸음 나서며 노래를 부른 순간.

본래라면 그 존재감을 줄이거나, 어설픈 연기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마치 그거로 괜찮냐는 듯.’

오히려 역으로 전력을 다해 나희의 존재감을 약탈했다.

연기? 그래, 연기였다.

서연은 연기하며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괴물이었다.

나희는 그것을 느꼈다.

하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아이돌로서의 프라이드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판은 이미 그 순간 깔려 있었던 거야.’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모른다.

서연이 나선 순간, 차나희와 송소하의 감정이 일치될 수밖에 없었다.

본래 대본에는 없던 장면.

당황, 그리고 당혹.

여태까지 서연에게 느껴온, 질투.

그것이 서연이 나선 순간, 무대가 되어 ‘차나희’가 ‘송소하’로 보이게끔 만든 것이다.

‘배우란 그런 걸까.’

이번 촬영에서 박정우와 촬영을 할 때도 그런 것을 느꼈다.

하지만, 서연의 것은 보다 거칠고 본능적이었다.

그 흐름에 강제로 자신을 끌어들이는 듯이.

덕분에 이번 무대에서 차나희는 분명 송소하였고.

무대에서 이어진 갈채는, 시청자들에게까지 이어지기 시작했다.

“어제 드림퓨처 14화 봤어?”

“와, 나 진짜 장난 아니더라. 송소하 역에 차나희? 어디 그룹이었지? 라이브 장난 아니더라.”

“난 조하린이 떨어져서 너무 아쉬워.”

조하린과 송소하의 대결.

솔직히 연기를 잊고 순수하게 정말 아이돌의 대결 같은 느낌이었다.

작중 주인공은 송소하.

그런 의미에서 송소하가 조하린과의 대결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 깊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영상은.

“푸흐, 아주 그냥 연기를 가지고 놀더만.”

“선배님이 보기에도 그렇죠?”

함께 에 출연했던 이상수와 송광민은 14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에게는 썩 맞지 않는 드라마였다.

그럼에도 몰입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14화를 전부 봤을 정도였으니까.

특히 어제 14화.

조금 눈썰미가 있는 배우라면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상대 배우의 감정을 유도했어. 그리고 그건 시청자들의 감정도 함께 움직였다는 뜻이지.”

“맞습니다. 잘못했으면 굉장히 불편한 장면이 되었을 테니까요.”

“분명, 애드립이었던 거겠지.”

장면을 돌려보면 서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는 순간, 차나희에게서 진짜 감정이 툭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것이 상황상 굉장히 자연스러웠기에, 시청자 중 누구도 그것이 NG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NG가 자연스럽게 감정 변화의 흐름으로 이어지며, 차나희는 송소하가 되었다.

“이 나이에 이 정도의 연기…….”

“타인의 감정을 굉장히 오랫동안 관찰하지 않았다면 어려운 일이죠.”

이 나이에 어떻게 그런 게 되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감정의 이해도가 굉장히 깊었다.

‘정확히는 어떤 상황에서, 사람이 어떻게 반응한다는 걸 안다는 느낌.’

자신의 행동에 타인이 보일 감정이 기계적으로 학습된 것 같다.

당연히 서연의 나이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마치 그렇게만 느껴졌다.

“선배님.”

“응?”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서연은 이상수에게 이번 14화를 봐달라고 했다.

그 의도는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우리 후배가 이렇게 연기하시라고 꼬드기잖아요.”

“…….”

헐리우드에서 실패하고, 연기에 대한 열정을 잊었다.

‘불씨.’

언젠가, 자신과 친한 후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별빛과 불씨를 지닌 자.’

안타깝게도, 이상수는 불씨를 지닌 이였다.

별빛처럼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그 몸을 불사르며 연기하는 배우였다.

불이 차디찬 물살을 얻어맞고 꺼졌으니 다시 불이 붙기 어려웠다.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제, 오랜만에 재미를 느꼈다.

연기를 다시 해보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들었다.

“솔직히, 나는 그런 생각이었어.”

“예?”

“스타 어부가 끝나면 완전히 은퇴하겠다고.”

“!!”

처음으로 듣는 그의 속마음에 송광민의 눈이 커졌다.

그런 그를 보며 픽 웃은 이상수는.

“하지만, 아무래도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어린 후배가 숨을 불어넣은 불씨.

그것이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씨를 불어넣은 당사자는.

“그, 노래를…… 조금 알려줄 수 있나요?”

“……네?”

차나희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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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말하자면, 이지연과 함께 쇼핑하던 때였다.

서연은 스스로 옷을 잘 사러 다니지 않는 편이다.

엄마인 수아가 챙겨주는 옷이나 입으며, 패션을 원체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주서연, 너 예쁜 얼굴 두고 왜 쓰지를 못하니.”

“연기에 쓰는데.”

“……….”

“미안.”

서연은 이지연의 매서운 눈초리에 순순히 사과했다.

나름 유머러스한 대답이라 생각했지만, 이지연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전에는 정말 옷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연과 함께 돌아다니다 보니, 확실히 조금 관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서연을 보며 지연은 조금 떨떠름하게 말했다.

“……너는 묘하게 치마를 좋아하네.”

“편해서.”

“치마가 편하다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아니 굳이 말하면 편하긴 하다.

활동적으론.

다만, 그게 또 주변의 시선이나 뜀박질을 조금만 하면 올라가는 통에 쉽지 않은 것이다.

‘잘 보면 부끄러움이라는 걸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애가 가끔 감정이 무딘 게 있지만 설마 그걸 모를까 싶긴 했다.

여름에는 시원하지만, 겨울에는 춥고.

하지만 서연은 대부분 교복으로 생활하기도 했지만, 치마를 확실히 선호했다.

‘분명 이건 아줌마의 교육 영향이겠지.’

사실 어렸을 때 서연은 바지 밖에 입지 않았다.

그래서 이지연도 그런 서연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수아가 또 열심히 입히다 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다.

‘으음.’

다만 지연은 수아가 내심 불편했다.

그게 다 중학교 때 있었던 일 때문에…….

“네? OST 작업이요?”

그때 서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OST라니?

“무슨 일이야?”

“아니…….”

서연은 뭐부터 먼저 말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먼저 드라마의 주연이 될지도 모른다는 부분부터 말해야 하나?

‘하지만…….’

아무래도 이쯤 되면 지연에게도 눈치가 보였다.

자신만 연달아 배역을 따내는 느낌이었으니까.

정작 지연은 케이블 드라마 이후로는 이렇다 할 배역을 구하지 못했다.

본인 말로는 조금 쉬는 중이라 했지만.

“새로운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아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왔데.”

“매니저 언니한테?”

“응.”

본래 종편으로 갔을 각본이라고 한다.

각본을 맡은 인물은 민세희 작가.

아직 제대로 된 작품을 맡아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런데 의 후반부가 큰 호평을 받은 탓에 윗분들이 관심을 보인 모양이다.

마침 와 같이 어린 배우들이 주역인 드라마.

한번 KMB에서 방영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받은 모양.

그 말을 들은 민세희는 서연을 혹시 주연으로 써도 괜찮냐고 요청했고, 그것이 윗선에서 허락이 떨어진 것이다.

“더불어 이번 에서 제법 좋은 라이브를 선보였으니…….”

“OST 작업을 해볼 생각이 없냐고 말이 나온 것 같네.”

서연은 괜히 신경 쓰는 티를 내지 않게, 담담히 말했다.

다행히 지연은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어쩌겠어.’

물론 신경을 쓰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지연은 서연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뿐이다.

어린 별님.

어렸을 때부터 계속 바라봐왔기에 자신과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얌전히 내버려두기엔 또 걱정도 되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

조서희가 물어다 준 기회.

분명 서연과 함께 연기하고 싶다는 약은 생각으로 가져다준 게 분명했지만, 이건 지연에게도 큰 기회였다.

그런 점에선 조서희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꼭 오디션에 붙어야 해.’

예술 영화를 선호하는 백민 감독의 영화이니 경쟁률은 그다지 높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런데 이지연.”

“왜.”

“……혹시, 그 저번에 그분한테 또 배울 수 있을까?”

가끔 ‘라미엘’과 합방을 하는 ‘마법사’.

아마 한다영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그분이라니.’

묘하게 거리감 있는 호칭에, 이지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문득 ‘마법사’가 ‘라미엘’과 합방할 때마다 묘하게 까칠해지는 서연을 떠올리고는 픽 웃었다.

그런 주제에 또 노래는 한다영한테 배운다니.

확실히 마법사가 노래를 잘 부르긴 했다.

가르치는 실력도 좋고.

“근데, 언니 일본 갔는데.”

“?”

“일본의 ……어떤 회사랑 미팅이 잡혀서.”

“어, 얼마나?”

“아마 이번 달은 안 돌아올걸?”

버튜버 소속사라고 하려다 굳이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쪽은 흔히 말하는 빨간약 계열의 말이었으니까.

우스운 말이지만 서연은 저런 부분에선 굉장히 철저했다.

“……진짜?”

그런 지연의 말에 서연은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게, OST에 앞서 스튜디오에서 한번 테스트를 해보자는 말이 나왔으니까.

그날이 정확히 2주 후.

그때 형편없는 모습을 보인다면 OST가 취소될 수도 있는 일.

‘그건 싫은데.’

솔직히 OST 작업해 보고 싶었다.

아무튼 처음 하는 일은 우선 해보고 싶은 것이다.

뭣보다 다들 노래를 잘한다 잘한다 하니 또 부르고 싶은 게 사람 심리가 아닌가.

‘그, 버튜버하게 되면 쓸 일도 많고…….’

이제는 변명처럼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서연은 OST 작업에 욕심을 부렸다.

‘생각해 보면 OST를 맡는다는 소리는 주연도 맡겠다고 한 거네.’

너무 생각 없이 승낙한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차피 GH 그룹에서 기획하는 액션 영화의 오디션은 아직 날짜도 잡히지 않았고.

는 애초에 촬영까지 몇 달. 거기에 오디션도 볼 필요 없어졌다.

그러니 서연은 지금 상당히 한가해졌다.

“보통 그럴 때는 광고나 예능을 찍으며 휴식기를 가지는 게 보통이야.”

라고 박은하 매니저가 말했지만, 그다지 내키지 않았으니까.

서연의 넘치는 체력은 광고로 만족할 수 없었다.

‘어쩌지…….’

서연은 망설였다.

주변에 좀 도와달라고 할 사람 없나.

하고 생각하던 순간, 한 사람이 떠올랐다.

마침, 함께 촬영한 사람 중에 친해진! 아이돌이 하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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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걸그룹 ‘여름 소녀’의 라빈은 차나희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 응.”

차나희는 어물쩍 말했다.

그룹 내에서 차나희의 입지는 미묘했다.

정확히는 인간 관계적인 면에서.

우연히 예능에서 뜨는 바람에 혼자 인기를 독식했고.

방송 활동도 가장 많은 편.

이번엔 로 그 실력을 증명하여 ‘여름 소녀’는 차나희 외의 떨거지가 되어버렸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다른 멤버들과 차나희 사이에는 거리감이 있는 편이었다.

‘운 좋게 뜬 게.’

라빈은 차나희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처음 데뷔할 때만 해도 차나희는 멤버 중에 가장 서열이 낮았다.

비주얼로 뽑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

‘외모랑 노래 빼면.’

라빈은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고민했다.

‘차나희가 데려와 봐야 기껏해야 별거 아니겠지.’

차나희는 멤버 내에선 소심한 편.

생각이 많고, 사람을 사귀는 데 신중하기에 아는 사람도 대체로 재미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 상관없어.”

그러니 ‘여름 소녀’의 리더인 라빈은 대수롭지 않게 허락했다.

그리고, 다음날.

“안녕하세요.”

“…….”

조금 딱딱한 목소리.

긴 검은 생머리에, 단정한 교복.

하얀 얼굴과 소름이 돋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이게 배우.

거기다 , 그리고 로 일약 대세의 흐름에 올라탄 소녀.

주서연이 그들에게 차분히 인사해 왔다.

그리고 당황하는 그들을 보며 서연은.

‘다리가 진짜 가느네.’

걷어차면 부러지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