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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숨긴 달, 8화의 재연이 시작되기 3시간 전.
박정우가 도착하고, 스태프들이 한창 촬영을 진행하고 있을 시점이었다.
“주서연.”
이지연은 서연을 향해, 한복을 내밀었다.
오늘 아침에 스태프가 준 ‘연화공주’의 한복이다.
“입어.”
서연은 그 한복을 조금 난처하다는 얼굴로 보았다.
그건 무척 복합적인 이유였다.
중학생 때, 연화공주로 알려지며 위험했을 뻔한 일들.
이번 배역은 자신이 아닌, 이지연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것.
혹시 연극에 뭔가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그런 여러 이유가 서연을 망설이게 했다.
“이지연, 나.”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이지연은 서연에게 말했다.
10년이나 붙어 지낸 사이다.
예전이야 저 무표정한 얼굴에 속내를 읽기 어려웠으나, 이제는 아니다.
가끔 모를 때도 있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훤히 보였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 뭣보다 내게 너무나 좋은 기회니까.”
탑 스타에 가까운 젊은 배우, 박정우와 촬영할 기회다.
또래의 배우라면 눈에 불을 켜고,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 할 기회였다.
부족한 시청률?
박정우는 그것을 채워줄 인지도가 된다.
아니, 예능이 뜨지 않아도, 인터넷 기사만으로 인지도는 크게 오를 테지.
알고 있다.
전부.
“네가 연극으로 뭔가 하고 싶은 거 알아.”
분명 뭔가 계획이 있겠지.
하지만, 서연의 첫 복귀 무대가 평범한 연극인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복귀 후 첫 무대.
단 한 번 뿐인 프리미엄 찬스를 내다 버리는 기분이었으니까.
“탑 배우가 될 거라며.”
지연은 생각했다.
평범한 무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특별한 무대로 만들면 그만이다.
이번 예능은 그걸 위한 좋은 기회였다.
“이건 기회야. 너도 알잖아.”
처음부터, 연화공주 역을 받았던 그때부터.
지연은 이런 상황을 몇 번이고 떠올렸다.
연화공주는 서연의 것이다.
오래 전.
TV에서 그녀를 보았을 때.
그 별빛을 목도했을 때부터 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
서연은 가만히 지연을 보았다.
조용히.
그리고 고요히.
조금의 시간이 흘렀을 때, 서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결단을 내렸다.
지연의 말이 옳다.
서연이 ‘눈을 감고’에 참여한 건 다음 스텝을 위한 발판.
하지만, 그 발판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나쁠 건 없다.
머뭇거림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마저 포기하며 말하는 지연에게 실례겠지.
“할게.”
서연의 단호한 대답과 함께 환복이 시작되었다.
지연이 직접 불러온 메이크업 아티스트, 그리고 매니저가 일을 도왔다.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미 지연이 전부 준비해둔 덕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환복을 도울 매니저.
그들의 도움으로 서연은 몸을 맡기고 분장을 시작했다.
연화공주 이혜월.
10년 만에 그녀가 되기 위해.
“자, 팔 들어주세요.”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무지기 치마를 입고.
저고리를 걸친다.
“서연아, 고개 들어줘.”
검은 긴 흑발을 묶는다.
거울에 얼굴을 비추며, 섬세하게 화장하며 꾸민다.
거울에 비친 연화공주.
어린 이혜월이 성장한 아름다운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이지연 씨? 대체 무슨 일로…….”
그리고 마침, 지연이 부른 정민재 PD가 도착했다.
그는 떫은 얼굴로 오자마자, 멍청하게 굳어버렸다.
‘이지연?’
눈을 비볐다.
이번 촬영 전에 지연의 사진은 몇 번이고 봤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여성은 누구란 말인가?
검은 흑발, 새치름하게 올라간 눈매.
단아한 자태와 정적인 분위기의 여성.
말 그대로 연화공주의 현신이었다.
10년 전 보았던, 어린 이혜월이 성장하면 딱 이런 모습일 것 같은…….
“어?”
정민재 PD는 황급히 폰을 꺼내, 10년 전 연화공주 역을 맡았던 아역을 검색했다.
주서연.
그래, 분명 그런 이름이었지.
그리고 사진이 떴을 때.
“어, 어어어? 어? 잠깐, 잠깐만. 지연 씨? 아니, 지연 씨 아니죠?”
당황한 정민재는 ‘연화공주’의 바로 곁에 지연이 서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누군가 있는 건 알았지만 서연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던 탓이다.
“네. PD님.”
서연은 차분히 미소 지었다.
“전, 주서연이예요.”
툭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정민재는 그만 스마트폰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순간 강당에 있던 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냥 연기라 여겼다.
스마트폰을 들고, 확대해서 영상을 찍던 고등학생 스트리머, 송용호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평범한 연극.
그래, 드라마보단 연극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딱히 볼거리는 없는 뭔가.
특히 처음에는 학생들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서 더더욱 지루했다.
-
씹 ㅋㅋ 이거 왜 망했는지 알겠네
-
요즘 잠을 못잤는데... 이걸 보니 벌써 졸린다....
-
그냥 집에서 게임이나 한판하는게 한 수십 배 재밌을듯
아니나 다를까 채팅도 송용호의 생각과 비슷했다.
물론 딱히 편집도 없이 라이브로 보는 예능이 더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처음 그 느낌이 반전된 건 박정우가 등장한 이후.
그가 한복을 입고 모습을 드러내자 비명과 같은 함성이 강당 가득 울렸다.
-
아니 익룡머냐???
-
잠들뻔 했는데 시발 잠 다깸
-
제발꼬추3센치제발꼬추3센치발꼬추3센치제발꼬추3센치제발꼬추3센치
박정우의 등장과 함께, 채팅들이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했고.
200명 언저리던 시청자 수가 500명까지 늘었다.
송용호는 기쁜 미소를 지으며, 촬영 중인 예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배우는 배우네.’
그런 마음이 들었다.
등장한 것 만으로 확실히 ‘학생’과 ‘배우’라는 경계가 또렷이 보일 지경이었다.
박정우가 연기하는 장면은 볼만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예능이 배우가 홀로 열연하는 걸 보고자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
끝나면 깨워다오...
-
박정우도 못살리겠는데
-
흠...
그렇게, 다들 시큰둥해질 무렵이었다.
수많은 학생이 튀어나오며 인파를 이루었다.
아마 ‘시장’을 나타내려 한 모양인지, 저마다 물건을 파는 추임새를 넣었다.
그 속에서 조용히 걷는 박정우의 모습.
‘거의 끝났구나.’
이제 대략 분량의 3분의 2 쯤 지난 시점.
송용호가 조금씩 줄어가는 시청자 수를 애달프게 바라보던 그때.
“어?”
“뭐야?”
박정우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연기인가?
만약 그렇다면 정말 실감나는 연기였다.
홀린 것처럼 누군가를 쫓아가 걸어가는 박정우.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는 긴 장옷으로 모습을 감춘 여성이 서있었다.
연화공주.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서일」
마이크를 타고, 청량한 목소리가 스피커에 울렸을 때.
송용호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천천히 머리를 감싼 장옷을 내리며, 살포시 미소 짓는 소녀.
-
???????
-
머임?
-
저거 이지연 아닌데?
-
연화공주 배우 누구임??? 걍 와꾸가 미쳤는데????
-
뭔가...옛날에 본 것 같은데... 연화공주 아역아닌가?
-
아재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쇼
-
저거 주서연 맞음 진짜 어린 연화공주역 맡았던 아역 확실함
-
진짜라고???
-
그게 말이 됨????
송용호는 갈고리로 가득 찬 채팅창을 볼 엄두도 못 냈다.
“미친…….”
그 정도로, 순식간에 그는 이 극에 몰입해버렸으니까.
‘쟤는 분명…… 4반의 주서연 아니야?’
‘연극부였어?’
‘아니, 그보다…….’
태양을 숨긴 달은, 학생들에겐 무척 낯선 드라마다.
그야 10년 전.
그들이 겨우 7살 때 방영된 드라마였으니까.
아무리 유명한 드라마여도, 그 아역이 설령 큰 화제를 모았어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 건 어렵다. 기억하는 건.
“서연이가, 그 주서연이었어요?”
“아니, 닮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기다려봐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바로 선생님들.
그들은 어린 연화공주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설마 그 예쁜 여학생이 ‘배우 주서연’일 거라곤 미처 생각 못했다.
‘생활 기록부에도 그런 특이 사항은 없었는데??’
서연이 배우 활동을 멈춘 건 초등학교 입학 전.
당연히 그에 대한 말도 적혀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의문을 해소해준 건 바로 박정우의 반응이었다.
굳어버린 그가.
눈앞에 있는 서연이, 그 ‘아역 주서연’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
눈을 크게 뜬 채 얼어버린 박정우.
천천히, 서연에게 다가가며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듯.
입을 뻐끔 거리는 그의 모습이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박정우에 기억 속에 남은 건 작은 어린아이.
하지만 눈앞에 있는 소녀는 아름답게 성장한 여성.
장난기 어린 붉은 눈과, 부드럽게 휘어진 입술.
그 표정은 과거보다 더욱 살갑고 눈이 부셔서.
「서일?」
미처, 연기할 수 없었다.
“너, 너!!”
서연의 팔을 잡고, 당황하며 말하자 그녀의 눈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대사가, 틀린데요?”
“지금, 아니, 지금 그런 말을 할 때야? 진짜 주서연. 너 주서연 맞…….”
네가 왜 여기 있어.
아니, 대체 이지연은 어디 가고, 왜 진짜 연화공주가 여기 있는 거냐고.
박정우는 자신도 모르게 서연의 양팔을 쥐고 그런 말을 내뱉으려 했다.
“……아.”
그리고 뒤늦게, 강당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
박정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조금 깜짝 놀랐다.
박정우가 갑자기 자신의 팔을 잡고 짤짤짤 흔들 줄이야.
이런 장면이 있었나?
라고 생각했지만 당연히 없었다.
“잠깐, 잠깐 쉬었다가 진행하실게요!”
잠시 촬영이 소강상태에 이르며, 카메라가 나와 박정우를 잡았다.
이것도 전부 화면에 담을 생각인 모양이다.
서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NG내버렸네요.”
“너…… 말이야.”
박정우는 머리를 감쌌다.
머리가 지끈 거렸다.
방금까지 느끼던 피로함도 단번에 날아간 느낌이다.
“……대체 왜 네가 여깄는데?”
“당연히 제가 재학 중인 고등학교니까요.”
“하, 이게 진짜 말이 되나.”
놀란 가슴이 여전히 뛰었다.
서연을 향해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뭔가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다.
어색하다고 할지.
참 여러모로 느낌이 이상했다.
“……복귀, 하는 거야?”
조용한 박정우의 말.
카메라가 그의 목소리를 담았다.
당연히 강당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그리고 촬영 중이던 학생들, 지켜보던 선생님의 시선이 둘에게 집중됐다.
서연은 느꼈다.
바로 지금이라고.
“네.”
“작품은 구했어? 없으면 내가…….”
“이미 구했어요. 연극이죠.”
“연극?”
그건 박정우에게 굉장히 의외인 말이었다.
서연이 대체 왜, 복귀작으로 연극을 택했단 말인가.
“제목이 뭔데?”
“그건…….”
서연의 입이 달싹였다.
그리고 그 말은 모두의 귀에 똑똑히 박혔다.
10년 전, 연화공주로 화제를 모았던 주서연의 복귀작의 이름을.
“하지만, 지금은 이 연기가 중요하잖아요?”
강당에 있는 학생들의 시선이 모였다.
서연은 그것을 바라보다, 이내 정우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분위기가 변했다.
비교적 차분하던 서연의 분위기가 장난기 어린 이혜월로 변했다.
그럼에도 기품이 느껴지고 단아한.
연화공주의 모습으로.
단순한 TV의 예능이라는 것도 잊고.
모두가 극에 몰입한 채, 그것을 지켜보았다.
「서일」
연화공주 이혜월.
성장한 윤서일과의 재회 장면.
10년 간, 태양을 숨긴 달의 팬들이 바라던.
어린 이혜월과 어린 윤서일이 성장하여 찍는 명장면이.
「오래 기다렸나요?」
그런 그녀의 말에 정우는 픽 웃었다.
「예, 저하.」
그렇게 10년 만에 시작된 8화의 재연은.
어마어마한 파급을 몰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