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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아, 엄마가 과일 깎아 왔…….”
딸의 방에 노크를 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연 수아는 말끝을 흐렸다.
서연이 책상 위에 머리를 박은 채 엎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죽었나?’
순간 그런 의문이 들 정도의 광경이었다.
하지만 방금까지 영상을 보고 있었는지, 모니터에는 재생이 끝난 유튜브 동영상이 표시되어 있었다.
딸이 또 이상한 걸 보고 있구나.
수아는 그런 생각을 하며 엎어져있는 서연의 옆에 과일을 올려두고 사라졌다.
딸이 이상한 건 하루 이틀 있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누구야…….’
서연은 꾸물꾸물 일어나 접시 위에 놓인 사과를 오물오물 먹었다.
상큼한 당분이 돌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질투!
서연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 속을 불사르는 이 마음.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사과를 이빨로 짓이기는 그 마음이 바로 질투였다!
‘이지연에게 모델링이나 장비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
그에 대해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지연의 주변 인물 중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나 말고 또 있었나?’
분명 이전에 지연이 서연의 집에 찾아왔을 때만 해도 버튜버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때 이후,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관심이 생겨서 시작한 건가.
“으으.”
동영상을 다시 재생할 수 없었다.
저 마법사.
아니지, 마법사 쪽은 이미 버튜버를 하고 있는 것 같으니 검색해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서연은 국내 버튜버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았지만, 전부 아는 건 아니었다.
모르는 것도 있었다.
지금 파란 마법사가 그런 경우.
‘구독자 3만에 평청자는 천 정도.’
개인세로 이정도면 정말 잘나가는 수준이었다.
왜 몰랐지?
그보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빨간약 없나?
‘없다…….’
나름 활동을 1년 이상 해온 버튜버라는 건 알겠지만, 그 외에 정보는 딱히 없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면 발성은 제대로 배운 사람.
‘발성?’
거기까지 생각한 서연은 하나의 가능성을 점쳤다.
이지연과 친한, 발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그 범위가 굉장히 좁혀지니까.
분명 성우 학원의…….
우우웅!
그때, 서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황급히 그것을 받아 들자.
「뭐야, 주서연. 전화했었어?」
까칠한 이지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연은 모니터에 비친 라미엘과 지연을 겹쳐보았다.
‘그냥 물어보면 되는 거 아냐?’
맞아. 그냥 이러면 되는 걸 복잡하게.
그렇게 생각한 서연은 태연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
함부로 이런 걸 물어도 괜찮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빨간약을 대놓고 물어보는 게 아닌가.
그리고 서연에게도 라미엘과 지연이 동일 인물이라 해도, 그것을 본인 입으로 직접 듣는 건 다른 문제였다.
“아, 중간고사…… 시험 범위 때문에.”
「너 공부 안 하잖아.」
“…….”
그런 지연의 말에 서연은 할 말을 잃었다.
차마 그 말에는 반박할 수 없었으니까.
다음날.
마음 같아서는 바로 성우 학원을 들쑤시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서연은 영화 촬영으로 좀처럼 시간을 내기 어려웠으니까.
하필 오늘은 아침 촬영이라 학교도 쉬었기에 지연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서연 씨, 좀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아요.”
“그래? 그래도 중요한 역이니 컨디션 관리 잘 해야 해. 알지?”
“네.”
김대헌 배우의 말에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마 어제 버튜버 방송을 보고 분한 마음에 제대로 잠을 못 잤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컨디션 관리…….’
확실히 맞는 말이다.
서연의 역은 이 영화의 메인 빌런인 차서아.
작 중 비중이 엄청나고, 등장 빈도도 많은 만큼 서연이 촬영에 빠지면 찍을 수 있는 장면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몇 번이야 괜찮지만, 잦은 문제가 생기면 개봉에도 지연이 생길 것이다.
‘아역 때와는 달라.’
요구하는 책임감도.
그리고 비중도.
서연은 애써 마음을 다 잡았다.
그렇게 시작된 촬영.
‘차서아 연기는 거의 본인이라 할 정도인데.’
배진환 감독은 이전 촬영에서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서연의 차서아 연기는 솔직히 말해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그런데, 아주 조금.
정말 하나만 더 추가됐으면 좋을 것 같았다.
말하자면 살인의 동기.
그리고 거기에 나타나는 차서아의 감정이 애매모호했다.
물론 애매모호해도, 관객이 그것을 추측하는 재미가 있는 법이긴 했다.
차서아의 범행 동기.
그리고 살인에 대한 그녀의 감정.
하지만, 배진환은 그것을 서연이 좀 더 또렷이 나타내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십 대의 배우에겐 무리한 요구인가.’
오히려 자신이 배가 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잘하고 있는 배우에게 더 잘해달라?
솔직히 말해, 괜히 잘하고 있는 연기도 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오늘 연기를 보고 한번 말은 해보자.’
감독이라는 게 뭔가.
결국 배우에게서 원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연기를 지도하고 요구하는 역할.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말해야 한다.
‘그리고 분명.’
서연의 잠재력이면, 금방 할 수 있을 것이다.
배진환은 그런 믿음이 있었다.
“오늘 씬은 수정된 장면입니다. 들으셨죠? 차서아의 설정이 일부 변경된 것?”
“아, 네. 편의점 알바생, 맞죠?”
그런 말을 한 건, 바로 피해자 한예화 역의 정시현 배우였다.
오늘은 그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본래는 우연히 길가에서 마주치는 장면이었지만, 수정된 장면은 편의점에서 서연과 마주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씬 넘버 34번.”
시간 대는 형사와의 추격전이 있었던 다음 날.
말하자면 네 번째 피해자가 나온 후였다.
길가에 깔린 경찰차들.
그리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경찰들의 모습이 비친다.
그와 대조적으로 행복한 한예화의 모습을 비추며, 다음 피해자를 암시하는 씬이었다.
피해자이자, 이번 영화의 히로인이나 마찬가지인 한예화.
그녀의 첫 등장 장면.
“이번 장면은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시현 씨와 서연 씨는 서로 분위기가 대조 되어야 해요.”
촬영 시작 전, 배진환은 간단히 연기를 지도했다.
대략적인 카메라의 동선.
그리고 요구하는 장면과 감정선을.
정시현의 경우에는 그렇게 어려울 것 없는 연기였다.
한예화는 지금 일어나는 살인사건이 ‘설마’ 자신에게 닥칠 거란 생각은 못하는 일반인이었으니까.
행복한, 그리고 연인과의 약속을 잡고 들뜬 여성의 모습을 연기하면 된다.
중요한 건, 서연이었다.
그런 그녀를 차서아는 웃는 얼굴로 대하며, 긴장감을 연출해야 한다.
행복한 한예화와는 대비되는 음울한 차서아의 감정이 드러나야만 했다.
되도록 강렬하고 또렷이.
“자! 그럼 우선 해보죠.”
짝, 하는 박수와 함께.
저마다 주어진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카메라, 음향을 점검했고.
각 배우들도 촬영을 위해 장소를 이동했다.
정시현은 거리로.
서연은 편의점 계산대에.
‘설마 편의점 아르바이트 역을 맡게 될 줄은.’
서연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입고 있는 유니폼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설마하니 서연이 자주 찾는 편의점의 유니폼을 입게 될 줄이야.
‘차서아의 감정.’
솔직히 말해, 접객을 하는 역은 차서아에게 맞지 않다.
그야 올바르게 감정을 나타내지 못하는 병을 지닌 차서아는 애초에 접객을 할 수 없다.
못한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고증적인 문제는 어느 정도 극의 재미를 위해 희생했다는 거겠지.
‘아니면, 나처럼 흉내를 낸다고 생각하면 될지도.’
병을 숨기는, 혹은 극복한듯한 연기.
하지만 사실 전혀 달라지지 않은 자신.
차서아의 연기는 과거의 자신보다 어색하고, 조잡했다.
그러니 차서아는 대부분 표정을 짓지 않는다.
감정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 나타내도, 타인의 불쾌감을 유발할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편의점의 문이 열렸다.
오늘은 평범한 날이었다.
적어도 차서아에게는 그랬다.
어제 밤에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몸이 조금 뻐근했지만, 그 정도는 괜찮았다.
운동을 조금 열심히 했다고 치면 되지.
그런 생각을 하며, 방금 들어온 손님을 보았다.
「응, 오빠. 나는 별 일 없지. 그럼, 나도 알아.」
한 손에 폰을 쥔 채, 밝은 얼굴로 통화하는 여성.
갈색 머리칼에, 전체적으로 귀여운 인상의 여자였다.
마치,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얼굴.
「…….」
편의점에 다른 손님들도 있었지만, 차서아의 시선은 천천히 그녀의 뒤를 쫓았다.
밝은 얼굴의 여성.
행복한 미소를 지은 한예화를.
조금씩, 차서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마땅한 감정을 찾지 못한 입술이 경련하듯 움찔거렸다.
스스로, 지금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판단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손님이 있음에도,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차서아의 동공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것을.
확대한 카메라가 정확히 차서아의 시선을 잡아냈다.
‘뭐야.’
배진환은 일련의 광경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도 그럴 게, 서연의 눈동자에 선명히 비치는 감정.
질투.
그 강렬한 불길이, 그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배진환만이 아니었다.
다른 스태프들도 마찬가지.
즐겁게 통화를 하는 한예화와는 대비되는 긴장감이 그곳에 있었다.
특히 직접 화면을 확대하고 있는 카메라 감독은 더더욱 그 감정을 여실히 느꼈다.
본래부터 차서아와 싱크로율이 높았던 서연이었다.
거기에 차서아의 범행 동기.
행복한 인간을 향한 질투가 더해지자.
여태까지 차서아에게서 보았던 긴장감을 ‘따위’로 취급할 만한 것을 느낄 수있었다.
마치, 진짜를 앞에 둔 것 같은…….
「……!」
그 탓이었을까.
통화를 마치고 계산대로 몸을 돌리던 한예화 역, 정시현 배우의 몸이 움찔했다.
예상 이상의 강렬한 연기에 순간 무의식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인간이라면 무의식적으로 저럴 수밖에 없었다.
예상하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 차서아에게서 느껴지는 긴장감에.
그리고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불쾌함에 저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건 실수가 아니다.
당연한 거다.
하지만 장면적으로는 NG였기에 배진환이 ‘컷’을 외치려던 순간이었다.
「……오늘 날씨 좋죠?」
한예화가 말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차서아에게 웃는 얼굴로.
「네?」
「조금 피곤하신 것 같아서요. 이렇게 좋은 날, 일을 하고 있다면 누구나 그럴 것 같아요.」
특히 이런 봄이면 더더욱 그렇다고.
한예화는 그리 말했다.
날씨가 좋은 날 오후면 몸이 노곤노곤해지는 법이다.
한예화는 계산대에 올려진 유리병을 하나 차서아에게 내밀었다.
방금 구매한 비타민 음료였다.
「이거 마시고 힘내세요.」
한예화는 그렇게 말하며 사람좋은 미소를 지었다.
차서아는 무심코 그것을 받아 들고, 편의점을 나가는 한예화의 등을 보았다.
다른 손님이 그녀를 부를 때까지 계속.
하염없이.
“컷!!”
장면이 마무리 지어지며, 배진환이 외쳤다.
NG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거기서 정시현이 자연스럽게 애드립을 할 줄이야.
‘본래 없던 대사죠?’
‘네.’
‘정시현 씨 오늘 연기 날이 섰네.’
자연스러운 연기였다.
잠깐 흔들렸던 게, 오히려 한예화의 캐릭터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서연 씨.”
“네?”
정시현의 애드립을 칭찬하기에 앞서, 배진환은 먼저 서연을 불렀다.
“무슨 특훈이라도 했어요?”
“네?”
“사실 오늘 조금 이야기해야겠다 싶었는데, 이젠 필요 없겠네요. 차서아의 감정을 정말 완벽히 나타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연은 그런 배진환의 말에.
“……?”
그저 그런가? 싶을 뿐이었다.
평소처럼 연기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문득.
“아.”
서연은 깨달았다.
이번 연기를 할 때 무심코 떠올렸던 게 무엇인지.
질투.
그와 흡사했던 하나의 감정을.
“아아, 네. 트, 특훈을 했어요.”
그 계기가 무엇인지는 서연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서연도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으니까.